연무장의 학살극
대리석으로 포장된 천검문 북강분타의 연무장은 거대한 도살장과 같았다.
차가운 아침 공기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핏비린내가 사방으로 진동했다. 넓은 연무장 한가운데에는 십여 명의 광부 노예들이 사슬에 묶인 채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깊은 절망과 공포로 초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연무장 주변을 에워싼 천검문의 하급 무사들과 감독관들은 이 참혹한 광경을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도살극은 지루한 광산 생활의 유일한 유희에 불과했다.
“다음 놈, 앞으로 끌어내라.”
연무장 단상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던 사내, 남궁세가의 방계 천재 남궁태가 지루하다는 듯 손짓했다. 그의 푸른색 무복 자락에는 핏방울이 군데군데 튀어 있었다. 그의 손에 쥐인 명검 창천검(Sky Sword)의 검신에서는 은은하고 예리한 푸른빛의 창궁검기(Sky Sword Qi)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공 이류(Second-Class Inner Qi)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얇은 강철판도 단숨에 두 동강 낼 수 있는 치명적인 기운이었다.
간수들이 사슬을 거칠게 잡아당기자, 마르고 나이 든 광부 한 명이 대리석 바닥을 긁으며 앞으로 끌려 나왔다.
“소, 소협! 제발 목숨만…… 악!”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남궁태가 귀찮다는 듯 창천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스윽.
공기를 찢는 가느다란 파열음과 함께 푸른 검기가 반월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쇄도했다. 단 한 번의 격돌도 없었다. 예리한 내공의 칼날은 늙은 광부의 목덜미를 두부 썰듯 관통했다.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 선혈이 백색 대리석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잘려 나간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자, 연무장 주변에서 잔인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남궁태는 검 끝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혀를 찼다.
“쯧, 뼈의 밀도가 형편없구나. 마치 썩은 나무를 베는 기분이야. 천검문의 불법 흑철을 먹고 자란 놈들이라 근골이 남다를 줄 알았더니, 하나같이 쓰레기 소체들뿐이군. 사마준, 다음 놈은 조금 더 쓸 만한 놈으로 골라라.”
단상 옆에서 차를 마시던 천검문 소문주 사마준이 오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소협, 아직 과녁은 많이 남아 있으니 조급해하실 것 없습니다. 여봐라! 다음 과녁을 바쳐라.”
간수장의 거친 손길이 다음 노예의 머리덜미를 움켜쥐었다. 끌려 나온 것은 비쩍 마르고 앳된 소년이었다.
아성(A-seong)이었다.
열두 살 안팎의 소년은 영양실조로 누렇게 바랜 머리칼을 흔들며 부르르 떨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참수를 목격한 소년의 바지춤은 이미 차가운 오줌으로 젖어 있었다. 아성은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흙먼지 묻은 손을 필사적으로 비벼댔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잘못했습니다……”
남궁태는 아성의 왜소한 체구와 마른 어깨뼈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런 쥐새끼 같은 근골은 내 검기를 시험하는 것조차 수치다. 하지만 과녁을 거르는 것도 귀찮으니, 단숨에 심장을 꿰뚫어 주마.”
남궁태가 창천검을 곧게 세웠다. 그의 단전에서 솟구친 이류의 푸른 진기가 검신을 타고 흐르며, 검 끝에서 눈이 부실 정도로 날카로운 창궁검기의 맹아가 형성되었다. 소년의 심장을 향해 검 끝이 좁혀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쿵.
그때, 연무장 구석에서부터 묵직하고 기이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경공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전신의 무게를 대지에 고스란히 싣고 걷는, 걸음마다 대리석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둔탁한 소리였다.
구부정하고 비쩍 마른 노예의 행색을 한 사내가 광부들의 대열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설무강이었다.
무강은 걸어 나오며 자신의 뒤틀려 있던 골격을 하나씩 제자리로 돌려놓기 시작했다.
으드득, 드드득.
그의 전신 안쪽에서 뼈가 어긋나며 맞춰지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파골음이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구부정했던 척추가 대들보처럼 꼿꼿하게 일어섰고, 가라앉아 있던 어깨뼈가 거인처럼 벌어졌다. 골격 재배치 비결(Skeletal Realignment Secret)을 해제하며 본래의 다부진 육체로 돌아오는 과정이었다.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힌 호심침(Heart-Protecting Needle)이 흉골을 찌르는 듯한 극심한 마찰 통증이 밀려왔으나, 무강의 얼굴에는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그의 안광은 오직 남궁태를 향해 차갑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놈은 또 뭐지?”
주변의 간수들이 당황하며 쇠몽둥이를 치켜들었으나, 무강은 그들을 무시한 채 아성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는 아성의 마른 어깨를 잡아 자신의 등 뒤로 대피시켰다. 무강의 넓은 등판이 소년의 시야를 완벽하게 가렸다.
“형님……?”
아성이 울먹이며 무강의 바지 자락을 잡았다. 무강은 대답하지 않고, 단상 위의 남궁태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가 연무장의 차가운 공기를 얼려버릴 듯 무겁게 떨어졌다.
“그 검, 내가 상대하지.”
남궁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천한 노예 주제에 감히 명문 세가의 무인에게 검을 겨누겠다는 오만함. 그것도 내공 한 푼 느껴지지 않는 빈 껍데기 같은 육체로.
“단전이 파괴된 버러지 놈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내 검기가 네놈의 잡뼈를 어떻게 가루로 만드는지 똑똑히 보여주마.”
남궁태의 눈빛이 살기로 번뜩였다. 그는 망설임 없이 창천검을 내질렀다. 푸른빛의 검강이 아성의 심장을 향해 벼락처럼 쏘아져 갔다.
타앗!
무강은 피하는 대신 오른발을 들어 연무장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아앙!
순수한 물리적 질량과 완력이 실린 진각(Stomp) 일격이었다. 무강의 발끝이 닿은 두꺼운 대리석 타일이 쩍 갈라지며 바위 파편들이 사방으로 솟구쳤다. 대지의 급격한 진동으로 인해 남궁태의 정교한 찌르기 궤도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푸른 검기는 아성의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허공을 갈랐다.
“이 천한 놈이 감히!”
자신의 초식이 노예의 무식한 진각 한 번에 무너진 것에 남궁태의 자존심이 극도로 상했다. 그는 분노하여 단전의 내공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창천검의 검신이 요동치며, 세 장에 달하는 푸른 창궁검기 3연격이 무강의 가슴을 향해 연속으로 방출되었다.
슈우우욱! 슈욱!
검기는 대기의 마찰을 일으키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내공이 없는 무강으로서는 정면으로 맞으면 전신이 종잇장처럼 조각날 위기였다.
무강은 눈을 크게 뜨고 적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의 뇌리 속에서 골음감지(Bone Sound Perception) 능력이 극대화되었다. 남궁태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그의 오른쪽 어깨 관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인대의 긴장도가 무강의 청각 신경에 입체적으로 각인되었다. 과거 무리한 내공 단련으로 인해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에 미세한 파열 부상이 있어, 특정 초식을 펼칠 때 0.1초의 미세한 지연이 발생한다는 약점(Foreshadowed in Ep 8)이 정확하게 포착되었다.
‘지금이다.’
무강은 무릎과 골반 관절을 정상적인 가동 범위를 벗어나 기괴하게 꺾는 역골 보법(Reverse-Bone Footwork)을 시전했다.
으드득!
그의 골반이 옆으로 비틀어지며 신체가 유령처럼 낮게 가라앉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푸른 검기가 무강의 가슴팍과 어깨를 간발의 차로 스쳐 지나갔다. 검기가 스쳐 지나간 자리의 마의가 산산조각 나며 흩날렸고, 피부 표면에 얇은 자창이 발생해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뼈에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어딜 피하느냐!”
남궁태가 기겁하며 세 번째 검기를 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수평으로 휘둘렀다.
무강은 피하는 대신 오른손을 뻗어 남궁태의 검집과 검날을 직접 맨손 단골수로 움켜잡으려 했다. 적의 무기 제어권을 빼앗아 정면에서 파괴하려는 무모하고도 하드보일드한 전술이었다.
스아아앗!
그러나 명검 창천검 주변에 흐르는 이류 내공의 창궁검기는 무강의 생각보다 훨씬 날카롭고 강렬했다. 무강의 손바닥이 검날에 닿기도 전에, 검기 주변의 강한 반동 장력과 예리한 기운이 그의 손바닥 피부를 가차 없이 찢어발겼다.
쫘아악!
붉은 선혈이 허공에 비산했다. 손가락 뼈가 잘려 나갈 듯한 예리한 마찰열과 통증에 무강은 이를 악물며 즉각 손을 거두어 뒤로 물러섰다. 2성 철골(Iron Bone)의 강도로 뼈 자체는 상하지 않았으나, 피부 가죽이 도려 나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하하하! 내공 한 푼 없는 천한 외공가 놈이 감히 남궁세가의 명검을 맨손으로 잡으려 해? 네놈의 뼈다귀를 오늘 기필코 가루로 만들어 주마!”
남궁태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그는 검을 고쳐 쥐며 전신의 진기를 한 점으로 집중시켰다. 그의 주위로 푸른 내공의 장막인 호심침의 압박을 능가하는 호심강기(Body-Protecting Qi)가 흐릿하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가문의 명예를 걸고 이 건방진 노예의 사지를 절단하겠다는 집념이었다.
남궁태의 검 끝이 다시 한번 무강의 얼굴을 조준했다. 예리하게 압축된 창궁검기가 무강의 오른쪽 뺨을 스쳐 지나갔다.
스윽.
무강의 뺨 위에 한 줄기 가느다란 자창이 생기며 차가운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검기의 잔인한 한기가 피부를 자극했다.
그러나 설무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차갑게 눈을 감았다.
연무장을 채운 비명 소리, 간수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남궁태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공의 진동이 사라지고, 오직 남궁태의 어깨뼈가 움직이는 미세한 골음(Bone Sound)만이 그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강은 적의 최종 궤적을 읽어내기 위해 모든 신경을 뼈의 소리에 집중했다.
지옥 같은 연무장의 한가운데, 쇠와 뼈의 진짜 격돌이 임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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