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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백강혁과의 기묘한 밀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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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수로의 썩은 물은 차갑다 못해 살을 에는 듯했다. 흑철곡 지하 오백 장 아래에서 시작된 물길은 광산의 온갖 찌꺼기와 유황 가스가 녹아들어 탁한 검은빛을 띠고 있었다. 설무강은 그 차가운 하수 속에서 묵묵히 몸을 앞으로 밀었다. 오른팔의 부러졌던 뼈마디에서 피어오르는 청동빛 열기가 차가운 물에 닿을 때마다 치익 하는 기묘한 환청이 머릿속을 때렸다.


그의 등 뒤에서는 서기태가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뼈만 남은 선비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지만, 지상으로 나가 아성을 구해야 한다는 무강의 차가운 안광에 밀려 감히 멈추겠다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무강은 수로의 천장 틈새로 비치는 아주 미세한 달빛을 이정표 삼아 마침내 쇠창살이 녹슬어 벌어진 배수구 틈을 비집고 지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북강의 밤바람은 흑철곡 지하 공동의 한기보다 매서웠다. 무강은 젖은 몸을 웅크린 채, 서기태를 이끌고 어둠이 짙게 깔린 광산 외곽의 허름한 판자촌으로 스며들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흑철곡 구석에 처박힌 냄새나는 흙벽집, 바로 백강혁의 약방(Baek Gang-hyeok's Apothecary)이었다.


야간 정찰 회피 규율(Night Patrol Evasion Rules)을 몸에 익힌 무강은 간수들의 횃불 주기를 완벽하게 계산해 움직였다. 순찰조가 저 멀리 사택 모퉁이를 돌아서는 찰나, 무강은 약방의 낡은 나무 문을 소리 없이 밀어젖히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시큼하고 비린 약초 냄새와 유황 연기가 눅눅한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천장에는 말린 지네와 독사의 껍질들이 음산하게 매달려 있었고, 구석의 작은 화로 위에서는 시커먼 탕약이 보글보글 끓으며 기이한 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화로 옆에 앉아 낡은 놋쇠 잔에 싸구려 수수술을 따르고 있던 사내가 삐걱거리는 문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때가 꼬죄죄하게 묻은 의원포를 걸친 삼십 대 후반의 사내. 흑철곡의 노예 의원, 백강혁이었다.


백강혁은 술잔을 입가로 가져가려다 말고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


“너…… 설무강? 사지갱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는데, 네놈이 어떻게 살아 있는 거냐?”


백강혁은 들고 있던 놋쇠 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챙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은 술이 바닥의 흙먼지 위로 쏟아졌다. 사지갱 붕괴 사고는 수백 톤의 암반이 쏟아져 내린 대재앙이었다. 천검문 감독관들은 물론이고 다른 광부들조차 무강이 이미 짓눌려 형체도 없이 으스러졌을 것이라 단정했다. 그런데 그 괴물 같은 놈이 온몸에 진흙과 피를 뒤집어쓴 채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무강은 대답 대신 약방 중앙의 거친 나무 탁자 위에 자신의 오른팔을 툭 올려놓았다. 오른팔은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라 있었고, 검붉은 내출혈의 흔적이 피부 아래 가득했다. 하지만 뼈가 부러진 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백강혁은 침을 꿀컥 삼키며 무강에게 다가왔다. 의원으로서의 호기심과 인간으로서의 경외감이 그의 눈빛 속에서 기묘하게 교차했다.


“팔을 좀 보자.”


백강혁의 거친 손가락이 무강의 오른팔 전완 중앙을 움켜쥐었다. 그는 뼈가 산산조각 나 덜렁거리는 핏자루를 예상했다. 그러나 그의 손끝에 닿은 감각은 전혀 달랐다. 백강혁의 눈썹이 기괴하게 꿈틀했다.


“이, 이게 대체 뭐지?”


백강혁은 힘을 주어 무강의 요골과 척골 부위를 압박했다. 보통 인간이라면 뼈마디가 갈리는 극통에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을 터였다. 하지만 무강은 단 한 마디의 신음도 흘리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안광으로 백강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얼굴 근육은 미세한 떨림조차 없이 평온했다.


백강혁의 손가락이 무강의 골막을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의 의학적 지식이 뇌릿속에서 거세게 비명을 질렀다. 부러졌던 요골과 척골이 단순히 붙은 수준이 아니었다. 뼈마디 사이의 틈새가 일반인의 서너 배 이상 굵고 단단한 골격 세포로 메워져 있었다. 마치 청동을 녹여 부은 것처럼 단단하고 밀도 높은 기이한 조직이 피부 아래에서 묵직한 질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골(Bronze Bone)의 맹아였다.


“뼈가…… 스스로 단단하게 엉겨 붙었어. 내공 한 푼 없는 네놈의 몸뚱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이건 단순한 접골이 아니다. 뼈의 성질 자체가 변했어.”


백강혁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소매 안쪽에서 은백색의 신비로운 침통을 꺼내 들었다. 침통의 뚜껑이 열리며 한 자가 넘는 서늘한 장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강혁은 침 끝을 무강의 목덜미와 가슴의 치명적인 혈도를 향해 겨누며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


“똑바로 말해라, 설무강. 네놈 대체 지하에서 뭘 익힌 거냐? 내공도 없는 놈이 뼈를 스스로 부수고 다시 맞추는 금단의 외공이라도 익힌 거냐? 천검문 약리당의 미친놈들이 이 사실을 알면, 당장 네놈을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 가죽을 벗겨낼 거다.”


살기가 약방 안의 시큼한 공기를 타고 흘렀다. 백강혁은 단순한 돌팔이 의원이 아니었다. 그의 손끝에 실린 침기는 예리했고, 혈도를 짚는 기세는 일류 무인 못지않았다.


하지만 무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자폐식 호흡법을 가동하여 자신의 맥박과 혈류를 극도로 낮추었다. 백강혁이 침 끝으로 가슴의 혈도를 압박했으나, 무강의 신체는 어떤 통증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통각 신경을 의지적으로 차단하는 기괴한 신체 제어력에 백강혁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단전이 파괴되어 기공을 쓸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오직 이 뼈대뿐이다.”


무강의 목소리는 쇳소리가 섞여 서늘하게 울렸다.


“뼈를 부러뜨리고 다시 세워 강철로 만든다. 내공을 믿고 방심하는 천검문 놈들의 목덜미를, 나는 이 주먹과 뼈의 무게만으로 모조리 으스러뜨릴 것이다. 의원, 자네가 나를 고발하겠다면 지금 침을 찔러라. 그렇지 않다면 나를 도와라.”


백강혁은 무강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눈 속에는 죽음마저 초월한 처절한 살의와 불굴의 투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백강혁의 침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윽고, 백강혁은 나직하게 실소를 터뜨리며 침을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걸렸다.


“미친놈. 정말 미친놈이로군.”


백강혁은 술병을 들어 나발을 불었다. 뜨거운 독주가 그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자, 그의 눈빛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안광이 되살아났다.


“천검문 놈들의 가식적인 검기를 뼈다귀로 부숴버리겠다니…… 묘하게 내 가슴을 뛰게 만드는구나. 그래, 사실 나도 그 정파 무인이라는 위선자 놈들의 뼈다귀가 부러질 때 나는 소리를 아주 좋아하지.”


백강혁은 화로 위에 끓고 있던 시커먼 약탕관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들어 올렸다. 시큼하고 걸쭉한 액체가 사발에 담겼다. 그것이 바로 백강혁의 접골탕(Baek Gang-hyeok's Bone-Setting Decoction)이었다.


“나는 과거 황실 태의원의 어의였다.”


백강혁이 사발을 무강의 앞에 툭 내려놓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서기태가 구석에서 그 소리를 듣고 숨을 들이쉬었다. 황실의 어의가 어찌 이 지옥 같은 광산의 노예로 떨어졌단 말인가.


“황실의 금지된 인체 해부학을 연구했다는 이유로 간신 놈들의 모함을 받아 이곳으로 쫓겨났지. 인간의 골격이 어디까지 단단해질 수 있는지, 내공 없이 육체만을 극단으로 단련하면 어떤 조화가 일어나는지…… 나는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그 고통을 버텨낼 미친 소체(素體)가 없었지. 그런데 오늘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백강혁은 침통에서 은빛 광채가 흐르는 정교한 침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침 끝이 무강의 가슴뼈 중앙, 심장 바로 위를 겨냥했다.


“네놈이 하려는 수련은 매 순간 정신을 잃게 만드는 극통을 수반한다. 뇌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쇼크를 일으키면 심장이 그대로 멈춰 서 죽게 되지. 그걸 막기 위해 네놈의 가슴뼈 아래에 이걸 심어두마.”


백강혁의 손끝이 움직였다.


스윽.


마취도 없는 상태에서 장침이 무강의 흉골 아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침 끝이 단단한 가슴뼈 밑바닥을 긁으며 심장 경맥의 한가운데로 밀려 들어갔다. 뼈와 금속이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 무강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렸다.


무강은 철심 단련 구결을 유지하며 이빨을 악물었다. 전신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으나, 그의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다. 백강혁은 침 끝을 비틀어 심장 주변의 진기를 강제로 돌리는 혈도에 침을 고정시켰다. 그것이 바로 심장마비를 막아줄 특수 은침, 호심침(Heart-Protecting Needle)의 시술이었다.


“이 호심침은 네놈의 심장 박동이 멈추려 할 때마다 경맥을 자극해 억지로 숨통을 붙잡아 줄 것이다. 대신 평생 가슴팍에 은침을 품고 살아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지.”


백강혁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약방 구석에서 두꺼운 소가죽과 철판을 덧대어 만든 가죽 구속대(Leather Restraints)를 꺼내 무강의 앞에 던졌다.


“뼈를 부러뜨린 직후에는 이 구속대로 관절을 완벽하게 묶어 고정해라. 그렇지 않으면 재생되는 과정에서 뼈가 뒤틀려 괴물처럼 변해버릴 테니까.”


백강혁은 접골탕이 담긴 사발을 무강의 손에 쥐여 주었다. 약사발에서는 지독하게 비리고 쓴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백강혁의 눈동자가 기이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 약을 마셔라. 네놈의 부러진 뼈마디 사이로 골막 세포를 폭발적으로 증식시켜 줄 비약이다. 하지만 기억해라, 설무강.”


백강혁의 목소리가 낮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 약을 먹으면 고통은 일시적으로 줄겠지만, 네놈의 뼈는 쳇바퀴처럼 스스로 단단해져 결국 돌처럼 완전히 굳어버릴 것이다. 육신이 쳇바퀴에 갇혀 석화되기 전에, 네놈은 스스로 뼈를 더 강하게 두들겨 깨부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이것이 나와 네놈의 기묘한 밀약이다.”


무강은 검은 약탕을 내려다보았다. 사발 표면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주저 없이 사발을 들어 뜨겁고 걸쭉한 액체를 한 입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불타는 듯한 약 기운과 함께, 오른팔의 청동빛 골막이 다시 한번 기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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