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의 대진각
“단전이 파괴된 노예 괴물 놈이 기이한 통뼈를 믿고 사마현을 죽였다 한들, 명문 정파의 진짜 검을 넘어설 수는 없다.”
송무극(Song Mu-geuk)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협곡 사이로 몰아치는 칼바람조차 그의 말마디 앞에서는 얼어붙는 듯했다. 그의 손에 쥔 묵검 끝에서 스며 나온 회색빛 무정검기(無情劍氣)가 설무강의 목덜미를 정조준했다.
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쪽 뺨에는 남궁태와의 결투에서 남은 가느다란 찰과상 흉터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붉은 선혈이 흉터를 타고 턱끝으로 흘러내려 뚝, 뚝 떨어졌다. 사마현과의 혈투로 부러진 허벅지 뼈가 흔들릴 때마다 골막을 송곳으로 후벼 파는 듯한 극통이 뇌수를 찔렀지만, 무강의 안광은 깊은 심연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가죽 끈으로 단단히 묶은 삼십 근 무게의 이가 빠진 무쇠 쇠망치 머리가 쥐여 있었다. 내공은 한 푼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피부 아래 감춰진 골격은 골쇄초의 극독을 견디며 백 번 두들겨 맞춘 2성 철골(Iron Bone)의 경지였다. 오직 정직한 육체의 질량과 강도만으로 정파의 위선적인 검기를 부숴버리겠다는 투지만이 그의 전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본산의 수석 제자가 겨우 노예 하나를 잡으려 대군을 이끌고 협곡을 가로막다니. 참으로 명문 정파다운 당당함이군.”
무강의 갈라진 목소리가 협곡의 적막을 깨뜨렸다.
송무극의 눈살이 미세하게 꿈틀했다. 얼굴에 새겨진 깊은 칼자국이 음산하게 뒤틀렸다.
“구차한 도발이군. 네놈의 뼈다귀가 얼마나 단단한지 내 직접 갈아주마.”
송무극이 움직였다. 그의 신법은 바람조차 비껴갔다. 묵검이 가볍게 허공을 가르자, 회색빛 무정검기가 쇄도했다. 단순한 검기가 아니었다. 일류 극성의 내공이 한 점으로 압축되어 공간을 찢어발기는 파괴력이었다.
무강은 양팔을 교차해 전면에 세웠다. 철골 호신의 방어 자세였다. 내공 방어막 따위는 없었기에, 오직 단단하게 다져진 전완의 뼈대로 검기를 직접 받아내야 했다.
콰지직! 깡!
묵검의 무정검기가 무강의 전완에 격돌했다. 쳇바퀴가 맞물려 갈리는 듯한 극도의 금속 마찰음과 함께 무강의 팔뚝 피부가 찢겨 나가며 검붉은 피가 안개처럼 비산했다. 검기가 피부를 도려내고 뼈에 닿는 순간, 무강의 철골이 칼날을 물리적으로 움켜잡듯 충격을 받아냈다.
하지만 송무극의 내공은 사마현의 것보다 훨씬 순수하고 매서웠다. 전완 골막에 깊은 균열이 가며 기괴한 파골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무강의 입에서 둔탁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힌 호심침(Heart-Protecting Needle)이 요동치는 심장을 찌르며 쇼크사를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지만,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강은 즉시 진동 흡수결을 가동했다. 뼈로 전해진 충격파를 온몸의 근육 미세 떨림으로 바꾸어 발끝을 통해 대지로 흘려보냈다. 콰콰콰! 무강이 디딘 협곡 바닥의 자갈들이 가루가 되며 사방으로 튀었다.
무강은 이 틈을 타 단골수: 꺾기로 송무극의 검을 낚아채려 손을 뻗었으나, 송무극은 검을 번개처럼 회수하며 리치를 벌렸다. 일류 검수의 정교한 신법 앞에서는 섣부른 관절기가 통하지 않았다.
“과연 사마현을 죽일 만한 맷집이군. 하지만 내 검기는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네놈의 뼈가 먼저 바스러질지, 내 내력이 먼저 다할지 시험해 보자.”
송무극의 눈에 경탄과 함께 더욱 잔혹한 살기가 서렸다. 묵검의 검신에서 회색빛 검기가 다시금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었다. 무강의 허벅지 뼈는 이미 어긋나 있었고, 혈점 압박의 마취 효과가 풀리며 전신 신경 마비 전조가 서서히 그의 사지를 옥죄고 있었다.
그때, 철판 마차 뒤편에서 경계를 서던 용이(Yong-i)가 협곡 우측 절벽을 가리키며 울부짖었다.
“대장! 협곡 중앙의 저 바위 기둥입니다! 저곳이 이 가파른 절벽 지반을 떠받치는 핵심 맥입니다! 저곳만 무너뜨리면 포위망을...!”
산악 지형과 벌목 경로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용이의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무강의 골음감지(Bone Sound Perception) 감각이 용이가 가리킨 바위 기둥으로 향했다. 바람의 흐름과 바위의 미세한 마찰음, 그리고 절벽의 하중이 실리는 소리가 그의 고도로 발달한 청각에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바위 기둥 깊은 곳에 흐르는 미세한 균열선. 저곳이 이 협곡의 가장 취약한 지반 약화 지점이었다.
송무극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의 검은 묵검이 하늘을 가르며 무강의 정수리를 관통하려 하향 조준했다. 천검무정검의 극의가 사방의 공기를 얼려버리며 쇄도했다.
무강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부러진 허벅지 뼈를 쥐어짜며, 전신의 질량을 실어 협곡 중앙의 바위 기둥을 향해 몸을 던졌다. 질량 체득의 원리였다.
“어리석은 놈! 자멸을 택하는구나!”
송무극의 묵검이 무강의 가슴뼈를 사정없이 난도질하며 파고들었다. 콰드득! 흉골이 어긋나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전신 골막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으나, 무강은 이빨을 악물고 뇌격 분산법으로 충격을 최소화하며 오른발 뒤꿈치에 온몸의 질량을 집중시켰.
그리고, 바위 기둥의 균열선을 향해 발을 힘껏 내리찍었다.
진각: 지반 붕괴(Earth Stomp: Ground Collapse)!
쿠우우우웅!
둔탁하고 거대한 진동이 대지를 뒤흔들었다. 무강의 오른발 뒤꿈치 뼈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지는 끔찍한 파골음이 들렸으나, 그 진동은 바위 기둥의 균열선을 정확히 관통했다.
지이이잉! 콰콰콰콰쾅!
바위 기둥이 반으로 갈라지며 협곡 전체가 거대한 거인의 울부짖음처럼 요동치기 시작했다. 가파른 절벽 위에서 수천 톤의 거대한 바위와 토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이, 무슨...! 퇴로를 막으려는 속셈이냐!”
송무극의 안색이 처음으로 하얗게 질렸다. 그는 묵검을 휘두르며 낙석을 쳐내려 했으나,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산사태의 물리적 질량 앞에서는 일류 극성의 검기조차 무력했다. 거대한 절벽이 송두리째 무너지며 송무극과 그의 정예 검수대, 그리고 절벽 위의 쇠뇌 사수들을 사정없이 집어삼켰다.
콰아아앙!
거대한 먼지 폭풍이 협곡을 가득 채우며 천검문의 추격대를 바위 더미 속에 완전히 매몰시켜 버렸다. 포위망은 완벽하게 붕괴되었고, 추격로 역시 거대한 바위 성벽에 가로막혀 차단되었다. 결사대의 위장 전술인 바위산 포위망 돌파가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커헉...!”
무강은 무릎을 꿇으며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전신에서 기이하고 소름 끼치는 파골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대진각의 충격 반동과 무리한 자가 탈골 수련의 후유증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다.
뒤틀린 철골의 부작용 발작(뒤틀린 철골의 부작용 발작)이었다.
그의 오른팔과 척추뼈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리며 가슴뼈 안쪽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어긋난 갈비뼈가 심장을 찌르려 하자, 무강은 호흡을 멈추고 자폐식 호흡법으로 심장 박동을 늦추려 했으나 전신 신경 마비로 몸이 통제되지 않았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영구히 사라지는 듯한 마비감이 사지를 덮쳤고,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무강아! 정신 차려라! 무강아!”
마차에서 뛰어내린 백강혁(Baek Gang-hyeok)이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백강혁은 무강의 뒤틀린 골격을 보자 안색을 극도로 굳혔다. 뼈들이 비정상적으로 어긋나 고정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뼈가 심장을 관통해 즉사할 터였다.
“마칠! 호철! 빨리 이놈을 마차로 옮겨라! 당장 양주성으로 가야 한다!”
백강혁이 무강의 가슴에 침을 꽂으며 울부짖었다. 마칠과 호철이 피투성이가 된 무강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철갑 마차 안으로 뉘었다.
“희섭아! 말들을 폭주시켜라! 뼈가 완전히 어긋나 굳어지기 전에 양주성에 있는 독고벽의 비밀 가옥(독고벽의 양주성 비밀 가옥)으로 가야 해! 그곳의 철기방에서 특수 철사를 이식하지 못하면 이놈은 죽는다!”
희섭이 눈물을 훔치며 고삐를 꽉 쥐었다.
“가자! 이랴!”
찰싹! 채찍 소리와 함께 마차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황야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서 혼절한 설무강의 전신 뼈마디는 여전히 기기묘묘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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