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어둠 속의 기연
흑철곡의 아침은 채찍 소리보다 먼저 허파를 찢는 유황 냄새로 시작된다.
설무강은 차가운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등을 가로지른 채찍 상처가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때마다 쩍쩍 갈라지는 통증이 밀려왔다. 왼쪽 어깨뼈의 미세한 균열은 숨을 쉴 때마다 둔탁한 통증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단전이 깨진 육신에는 그 흔한 진기 한 자락 흐르지 않았다. 오직 선천적으로 타고난 질긴 통뼈와 지독한 생존 본능만이 그의 사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무강은 구석에 굴러다니는 쇠망치 머리를 집어 들었다. 참나무 자루가 송지효의 내공 채찍에 부러져 날아가 버렸기에, 이제 남은 것은 삼십 근 무게의 묵직한 무쇠 덩어리뿐이었다. 무강은 거친 가죽 끈과 누더기 천을 동원해 무쇠 머리를 오른손에 칭칭 감아쥐었다. 자루가 없다면 주먹 자체를 망치로 쓰면 그만이었다.
“무강 형… 진짜 갈 거야? 몸이 그 모양인데….”
구석에서 떨고 있던 아성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물었다. 소년의 여윈 어깨가 눈에 밟혔다. 오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 아이는 약리당의 생체 실험실로 끌려가 온몸의 뼈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는 연골단의 시험체가 될 터였다.
무강은 대답 대신 아성의 머리를 거친 손으로 한 번 쓸어내리고는 갱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늘의 작업지는 ‘사지갱(Sajigaeng)’.
흑철곡에서도 가장 깊고 위험하여 매년 수십 명의 노예가 낙석과 독가스로 목숨을 잃는 폐쇄 노역 구역이었다. 사지갱 입구에 들어서자, 횃불을 든 천검문의 간수들이 사나운 얼굴로 채찍을 바닥에 내리쳤다.
“더 깊이 들어가라! 이 쓸모없는 버러지들아! 오늘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조는 그 자리에서 다리를 부러뜨려 사지갱 지하 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송지효의 심복인 간수들의 호령이 동굴 벽을 울렸다. 무강은 묵묵히 마칠의 뒤를 따라 사지갱의 심층부로 걸어 들어갔다. 제3광구의 가장 깊은 곳은 축축한 습기와 유황 가스가 뒤섞여 숨을 쉬기조차 어려웠다.
깡! 깡!
부러진 자루 대신 주먹에 무쇠 머리를 감은 무강은 거친 완력으로 흑철 암반을 내리쳤다. 자루가 주는 탄성이 사라진 탓에, 망치질을 할 때마다 삼십 근의 무게와 암반의 물리적 반동이 그의 손가락 뼈와 손목 관절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으나, 무강은 이빨을 악물고 주먹을 휘둘렀다. 내공이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직한 신체의 힘으로 돌을 깨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갱도 깊은 곳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화약 발파다! 모두 대피해라!”
간수들이 할당량을 빠르게 채우기 위해 지반이 약한 심층부에 무리한 심심 발파를 지시한 것이었다. 대피 경고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갱도 안쪽에서 고막을 찢는 폭음이 울렸다.
콰콰콰쾅!
단순한 발파음이 아니었다. 사지갱 전체가 거대한 거인에게 움켜쥐인 듯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금이 가며 수십 대에 달하는 거대한 낙석들이 빗발치듯 떨어져 내렸다.
“동굴이 무너진다! 도망쳐!”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린 가운데, 공포에 질린 아성이 바닥에 주저앉아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의 머리 위로 집채만 한 바위가 낙하하려던 찰나였다.
“아성!”
무강은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질긴 통뼈를 쥐어짜며 돌진한 그는 아성과 그의 곁에 있던 마칠을 갱도 입구 쪽의 단단한 암반 지대로 사정없이 밀쳐냈다.
콰아아앙!
두 사람이 튕겨 나감과 동시에, 무강이 서 있던 자리 위로 거대한 토사와 바위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사지갱의 허리가 완벽하게 끊어지며 암흑의 장벽이 쳐졌다. 무강은 무너져 내리는 바위 더미 속에서 홀로 지하 깊은 곳으로 고립되었다.
“형! 무강 형!”
장벽 너머에서 아성의 절규가 희미하게 들려왔으나, 이내 거대한 낙석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암흑. 그리고 정적.
무강은 바위 틈새에 끼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은 칠흑 같았고, 무너진 돌무더기 사이로 유독가스가 스며들어 목구멍을 조여왔다.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서서히 질식해 죽을 뿐이었다.
무강은 오른손에 묶인 무쇠 쇠망치 머리를 고쳐 잡았다. 왼쪽 어깨뼈의 균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보냈지만 무시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손끝의 감각만으로 바위벽을 더듬었다. 겹겹이 쌓인 바위들 사이에서 미세하게 바람이 통하는 약한 틈새, 즉 아치형 구조의 핵심 결합 부위를 찾아내야 했다.
‘여기다.’
미세한 가스 흐름이 느껴지는 틈새를 찾아낸 무강은 온 힘을 다해 주먹을 내리쳤다.
깡!
무쇠 머리가 바위 결합 부위에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강한 물리적 반동이 그의 오른팔 뼈를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뇌가 비명을 지르고 손가락 뼈가 으스러질 듯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무강은 멈추지 않았다.
깡! 콰직!
두 번째 타격에 바위 틈새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무강은 전신의 질량을 실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콰아아앙!
바위벽이 완전히 무너지며 거대한 공동이 열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강이 딛고 있던 바닥마저 쩍 갈라지며 아래로 가라앉았다. 중심을 잃은 무강의 신체는 지하 수십 장 아래의 깊은 어둠 속으로 사정없이 추락했다.
무강은 단단한 석조 바닥에 거칠게 굴러떨어졌다. 전신 골격이 어긋나는 듯한 충격에 숨이 턱 막혔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그는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이곳은 갱도가 아니었다.
사방의 벽면은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흔적이 역력했고, 천장에는 기이한 푸른빛을 내는 야광 조개와 석화들이 박혀 있어 희미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천 년 동안 지상의 빛을 보지 못한 지하 고대 공동(Ancient Underground Cavern)이었다. 한기가 서린 고요함 속에 기묘한 유황 온천의 열기가 스며 나오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콜록, 콜록! 누, 누구냐…?”
어둠 속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강은 쇠망치 머리를 움켜쥐며 목소리가 들린 구석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비쩍 마른 해골 같은 사내가 낡은 유생포를 걸친 채 사슬에 묶여 떨고 있었다. 광산에 노예로 끌려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몰락 선비, 서기태(Seo Gi-tae)였다.
“너… 너도 송지효의 사냥개냐? 아니면 나처럼 버려진 쥐새끼냐?”
서기태는 무강의 비쩍 마른 행색과 손에 묶인 깨진 무쇠망치를 보더니 경계심을 늦추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만날 줄이야… 이곳은 천 년 전 정파의 박해를 피해 은거하던 고대 외공 문파의 비밀 공동이다. 나는 수년 전 붕괴 사고로 이곳에 떨어져 나가지도 못하고 이끼를 뜯어먹으며 연명하고 있었지.”
무강은 서기태의 말을 뒤로하고 공동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조 제단이 있었고, 제단 위에는 반으로 쪼개진 채 먼지가 쌓인 거대한 고대 외공 석판 조각(Ancient External Art Stone Slab)이 놓여 있었다.
석판의 표면에는 기이한 문양들과 함께 난해한 고대 문자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무강은 석판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석질 너머로 묘한 물리적 위압감이 전해졌다. 단전이 깨진 그가 본능적으로 갈구하던 힘의 냄새였다.
“이게 뭔지 아나?”
무강의 나직한 질문에 서기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안경을 고쳐 쓰며 석판을 바라보았다.
“이건… 고대 문자로 쓰인 무공 비급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무공이 아니야. 내공의 흐름을 돕는 심법이 단 한 줄도 없네. 오직 육신을 학대하고 파괴하는 기괴한 구결들뿐이야. 여기 적힌 제목은… ‘철기단골결(Cheolgi Dangolgyeol)’이네.”
서기태는 석판의 난해한 은유적 표현들을 자신의 고고학적 지식을 동원해 해부학적인 언어로 번역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전을 믿지 마라. 기공은 바람과 같아 그릇이 깨지면 사라지나, 육신의 뼈대는 대지와 같아 부러질수록 더 단단하게 굳어지느니라.’ …이건 미친 짓이네! 내공 없이 오직 스스로의 골격을 부러뜨려 더 조밀하게 재생시키는 외공이라니!”
서기태의 목소리가 경악으로 떨렸다. 하지만 그 구절을 듣는 순간, 설무강의 눈빛이 무시무시한 불꽃을 풍기며 변하기 시작했다.
단전이 깨져 정파 무인들의 채찍 아래 짐승처럼 짓밟혀야 했던 기억, 내일 아침이면 약리당의 생체 실험실로 끌려가 뼈가 녹아내릴 아성의 공포스러운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내공이 없다면, 스스로의 뼈를 박살 내어 강철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무강은 석판 조각을 응시하며 서기태를 바라보았다.
“더 읽어라. 그 뼈를 어떻게 부수고 다시 세우는지, 한 자도 빠짐없이 해독해라.”
서기태는 무강의 광기 어린 차가운 안광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석판의 가장 깊은 구결을 해독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첫 단계, 동골(Bronze Bone)에 도달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자신의 오른팔 요골과 척골을 완벽하게 비틀어 부러뜨린 뒤, 재생의 고통을 삼켜야 하느니라.’”
공동 내부에 서기태의 떨리는 목소리가 메아리쳤고, 무강은 천천히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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