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와 뼈의 결전
지하 수로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오수 소리가 유독 무겁게 동굴 안을 울렸다. 뚝, 뚝. 검푸른 폐수가 웅덩이에 떨어질 때마다 썩어 들어가는 악취와 함께 자욱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살수대장 귀영의 목뼈를 꺾어버린 무강의 왼손 끝에서 걸쭉한 핏방울이 떨어져 오수와 섞였다.
무강은 숨을 헐떡이며 오른손 가죽 끈에 묶인 삼십 근 무게의 이가 빠진 무쇠 쇠망치 머리를 고쳐 쥐었다. 옆구리에서는 귀영의 단도에 찢긴 자창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왔고, 방금 전 사지 변형으로 억지로 탈골시켰다 맞춰 넣은 오른쪽 어깨 관절에서는 인대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통이 밀려왔다. 남궁태의 창궁검기가 스치고 지나간 오른쪽 뺨의 가느다란 찰과상 흉터에서도 피가 흘러내려 턱끝을 적셨다.
그러나 무강의 시선은 오직 정면만을 향해 있었다.
화아아아!
수로 입구를 가로막은 수십 개의 횃불 불빛 사이로, 사마현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의 화려한 호랑이 가죽 망토가 지하의 더러운 오수 바닥을 쓸었고, 굵은 금반지를 낀 손에는 뱀처럼 휘어지는 기괴한 애검, 연철검이 들려 있었다.
스으으으.
연철검의 얇은 검신을 따라 검붉은 진기가 폭발하듯 뿜어졌다. 일류 초입의 내공, 흑철신공의 독검기였다. 그 검붉은 기운이 스치는 수로의 오수가 치이이익 소리를 내며 검게 부식되어 갔다. 사마현의 호위 무사들과 쇠뇌수들이 사방의 암반 지대를 포위하며 은밀하게 조여왔다.
“천한 노예 놈이 기어코 내 사냥개마저 물어 죽였구나.”
사마현의 탐욕스러운 얼굴이 횃불 빛을 받아 악귀처럼 뒤틀렸다.
“단전이 파괴되어 기 한 푼 쓰지 못하는 벌레 같은 놈이 기이한 외공 뼈다귀를 믿고 분타를 난장판으로 만들어? 감히 화산파와 남궁세가의 상납금까지 건드려 내 목줄을 죄려 해? 오늘 여기서 네놈의 사지를 찢어 백골 무덤의 거름으로 삼아주마.”
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얼음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부 독고벽이 남긴 구결과 백강혁이 전수한 인체의 구조가 뇌리 속 입체 지도로 치환되었다. 적은 일류의 내공을 지녔다. 정면으로 호신강기를 뚫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죽어라!”
사마현이 포효하며 연철검을 휘둘렀다.
스윽!
연철검이 뱀처럼 기괴한 각도로 휘어지며 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검붉은 독검기가 공기를 찢으며 매캐한 유황 냄새를 풍겼다. 무강은 몸을 낮추며 왼손 손가락 끝을 강철 갈고리처럼 굳혔다.
단골수: 꺾기(Bone-Shattering Snap)!
무강은 적의 검을 피함과 동시에 사마현의 손목 관절을 움켜잡아 으스러뜨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 끝이 사마현의 손목에 닿기 직전, 사마현의 전신에서 투명하고 푸른 내공 구체가 폭발하듯 솟구쳤다. 일류 무인의 절대적인 방어막, 호심강기(Body-Protecting Qi)였다.
쾅!
강력한 기공의 반동이 무강의 손끝을 때렸다. 백련정철보다 단단하다고 자부하던 그의 철골 손가락 끝이 강한 진동에 튕겨 나갔다. 손톱 밑에서 피가 울컥 솟구쳤고, 전완 골막에 누적되어 있던 미세한 균열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열을 뿜어냈다.
“하하하! 내공 한 푼 없는 천한 외공가 놈이 일류의 호신강기를 깨부수려 하느냐! 어리석은 놈!”
사마현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연철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동시에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차가운 한빙 진기가 수로 바닥의 오수를 타고 흘렀다.
파지직! 자자작!
수로 바닥의 오수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무강의 맨발을 고정하려 들었다. 살을 에어내는 듯한 냉기와 연철검의 검붉은 부식 독성이 무강의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발목이 얼어붙고 독기에 혈맥이 녹아내렸을 터였다.
그러나 무강의 신체는 기이했다. 가혹한 흑철곡 지하에서 수년간 순도 높은 흑철 원석을 만지고, 유황과 철광석 분진이 가득한 흑철 폐수 속에서 살아가며 그의 뼈와 골막은 이미 온갖 광물독과 냉기에 비정상적인 면여력을 지니고 있었다. 뼈 속에 스며든 흑철 폐수의 중독 내성이 사마현의 한빙 독기를 물리적으로 버텨냈다.
“뭐…… 어째서 얼어붙지 않는 거냐!”
사마현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흔들렸다. 그 찰나의 방심을 무강은 놓치지 않았다. 무강이 주먹을 쥐고 정면으로 돌진하려던 순간, 사마현이 폭주하듯 연철검을 찔러왔다.
푸학!
연철검의 날카로운 검신이 무강의 왼쪽 허벅지를 깊숙이 관통했다. 검붉은 부식 검기가 살점을 도려내고 뼈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콰드득! 콰직!
무강의 허벅지 뼈에 예리한 칼날이 부딪치며 골격에 깊은 균열이 발생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지하 수로에 울려 퍼졌다. 2성 철골의 단단함 덕분에 뼈가 완전히 양분되지는 않았으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물리적 충격과 극통이 무강의 뇌수를 강타했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요동치며 쇼크사 직전의 한계 상황이 밀려왔다.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무릎이 꺾이려 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는 순간 외공은 무너진다.’
무강은 쓰러지는 대신 오른손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 혈도를 강하게 내리쳤다.
팍! 팍!
백강혁에게 전수받은 자가 마취 비술, 혈점 압박(Bloodpoint Compression)이었다. 손가락 끝이 흉골을 뚫을 듯 강하게 자침하자,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혀 있던 호심침이 심장 경맥을 강하게 자극했다.
순간, 뇌 신경을 지배하던 모든 통각이 단번에 차단되었다. 무강의 눈동자에서 인간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칠흑 같은 심연과도 같은 차가운 안광만이 남았다. 허벅지 뼈가 부러진 통증이 사라지자, 그의 신체는 기계처럼 완벽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사마현은 검에 꿰뚫린 노예가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오히려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오자 소름이 돋았다. 무강은 허벅지에 박힌 연철검의 검날을 맨손 왼손으로 움켜잡았다. 철골의 밀도를 손바닥에 집중시키며 검날을 꽉 쥐자, 손바닥 가죽이 찢어지며 핏물이 흘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놔라!”
사마현이 당황하여 연철검을 비틀어 무강의 손가락을 잘라내려 흑철신공의 내공을 폭발시켰다. 검신이 기괴하게 진동하며 검붉은 기운을 뿜어냈다.
그러나 무강의 움켜쥔 손아귀는 백 근의 흑철 원석을 으스러뜨리는 철골의 악력이 실려 있었다. 지레의 원리를 이용해, 무강은 연철검의 검날 중간 부분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비틀었다.
콰드드득! 쨍강!
지하 수로에 날카로운 금속 파열음이 울렸다. 사마현이 자랑하던 천검문 명장의 보검, 연철검이 무강의 맨손 악력에 의해 반으로 처참하게 부러져 나갔다. 검신 조각이 오수 바닥으로 떨어지며 파문을 일으켰다.
“내, 내 보검이…… 맨손에?”
사마현이 부러진 검 자루를 쥔 채 넋을 잃고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의 두꺼운 호신강기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며 균열이 발생했다.
무강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른손 가죽 끈에 묶어둔 이가 빠진 무쇠 쇠망치 머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 전신의 질량과 철골의 탄성을 오른팔에 집중시켰다.
“사마현.”
무강의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판결처럼 차갑게 떨어졌다.
“백골 무덤의 원한을 받아라.”
스으윽! 콰아아앙!
무거운 무쇠 쇠망치 머리가 사마현의 머리 위로 하강했다. 사마현이 급히 남은 진기를 끌어올려 머리 위에 기공 방어막을 쳤으나, 내공이 실리지 않은 순수한 삼십 근의 물리적 질량과 철골의 타격 속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흔들리던 호신강기가 유리창처럼 산산조각 나며 파편으로 흩어졌다.
퍼억! 콰직!
쇠망치가 사마현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강타했다. 두개골이 함몰되며 뼈가 바스러지는 둔탁한 파골음이 동굴 벽을 흔들었다. 사마현의 눈동자가 뒤집혔고, 그의 거구는 수로의 검푸른 오수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물보라와 함께 붉은 피가 오수를 빠르게 적셔갔다. 천검문 북강분타주 사마현의 허망한 최후였다.
“분, 분타주님이 죽었다!”
“괴물이다! 노예 괴물이 분타주님을 죽였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경비병들과 쇠뇌수들이 사마현의 시신을 보고 극도의 공포에 질려 무기를 떨어뜨리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수로 내부에 가득했던 삼엄한 포위망이 한순간에 와해되었다.
무강은 숨을 헐떡이며 사마현의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혈점 압박의 마취 효과가 서서히 풀려가며, 허벅지와 전신 뼈마디에서 기괴한 진동과 함께 극심한 부작용 통증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이 마비되어 감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무강은 이빨을 악물고 사마현의 품을 수색했다. 그의 가슴팍 안쪽 주머니에서 묵직한 가죽 뭉치와 장부가 손끝에 걸렸다. 꺼내어 보니, 황실 안왕부(Anwang)의 붉은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비밀 역모 장부와 함께 뇌물 거래 내역이 적힌 서류들이었다. 황실과 천검문 간의 불법 무기 밀매를 증명할 결정적인 물증이었다.
무강은 장부와 함께 품속의 독각사 담즙 주머니를 단단히 갈무리하여 자신의 거친 가죽 옷 안쪽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때였다.
수로 안쪽 통로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매캐하게 풍겨왔다. 화약 기술자 명식(Myeong-sik)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숨을 헐떡이며 전력으로 뛰어왔다.
“무강아! 무강아!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한다!”
명식이 무강의 어깨를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제련소 용광로와 흑선탄 저장고에 설치한 화약 도화선에 이미 불이 붙었다! 도화선이 타들어 가고 있어! 조금만 더 지체하면 수로 천장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우리 모두 산채로 매장당할 거다! 당장 수문을 열고 탈출해야 해!”
쿠구구구구!
명식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하 수로의 천장에서부터 굵은 바위 더미와 돌가루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수로 전체가 거대한 거인의 손에 쥐인 듯 사정없이 흔들리며 붕괴의 전조를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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