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면암의 피바람
북강의 매서운 칼바람이 귀면암(Demon Face Rock)의 기괴한 암벽 사이를 통과하며 귀곡성을 질러댔다. 검붉은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하는 황량한 절벽 위, 횃불 수십 개가 일제히 타오르며 음산한 그림자들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약리당에서 갈염을 격살하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온 설무강은 귀면암 초입의 바위 그늘에 몸을 숨겼다. 전신을 뒤덮은 산성 독무의 화상 자국에서 진물이 흘러내려 마의를 축축하게 적셨다. 남궁태의 창궁검기가 남긴 오른쪽 뺨의 가느다란 흉터가 찬 바람을 맞아 시리게 아려왔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보다 무강의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힌 호심침(Heart-Protecting Needle)의 둔탁한 진동이었다. 심장이 요동칠 때마다 흉골을 찌르는 마찰통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무강이 이놈! 어디 숨어있느냐! 당장 기어 나오지 못할까!”
귀면암 절벽 끝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가학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뱀처럼 얇은 입술을 뒤틀며 소리치는 사내, 흑철곡의 총감독관 송지효(Song Ji-hyo)였다. 그의 손에는 핏자국이 검붉게 들러붙은 가죽 채찍, 혈사편(Blood-Thread Whip)이 쥐여 있었다.
송지효의 발밑에는 늙고 병든 광부 노예 십여 명이 쇠사슬에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 팔봉(Pal-bong)이 절벽 끝 나무 말뚝에 온몸이 묶인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가혹한 채찍질로 인해 팔봉의 마른 등 가죽은 이미 갈가리 찢겨 뼈가 보일 지경이었다.
“쿨럭! 컥…….”
팔봉이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야윈 목덜미에는 송지효가 들이댄 예리한 단도가 차갑게 맞닿아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면 그대로 목줄기가 끊어질 터였다. 사마현 분타주 역시 호위 무사들을 거느린 채 절벽 위 단상에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삼엄한 계엄령(Lockdown)이 내려진 분타의 정예 병력들이 귀면암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무강은 바위 틈새로 그 모습을 응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오른손 가죽 끈에 묶인 삼십 근 무게의 이가 빠진 무쇠 쇠망치 머리가 묵직한 살기를 흘렸다. 당장이라도 절벽 위로 도약해 송지효의 대가리를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주변 지형을 살피는 무강의 뇌리는 냉정하게 굴러갔다.
‘지반을 무너뜨려 적들을 쓸어버릴까.’
무강은 지하에서 돌석이 가르쳐 준 지반 붕괴의 맥을 짚어보았다. 귀면암 좌측의 거대한 암반 지대를 진각으로 내리치면 절벽 일부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인질들이 묶여 있는 위치가 정확히 붕괴 예상 범위 내에 있었다. 지반을 무너뜨리는 순간, 팔봉 할아버지와 다른 노인들 역시 절벽 아래 백골 무덤(The Hundred Bone Tomb)으로 추락해 사지가 으스러질 터였다.
물리적인 함정을 쓸 수 없다면, 남은 것은 정면 돌파뿐이었다. 하지만 사방의 지붕과 바위 언덕 위에는 천검문의 정예 쇠뇌수 수십 명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긴 채 대기하고 있었다. 무강이 몸을 드러내는 순간, 수십 발의 강철 화살이 그의 사창을 꿰뚫을 것이 분명했다.
“무강아! 오지 마라!”
그때, 절벽 끝에 묶여 있던 팔봉이 전신을 바르르 떨며 소리쳤다. 목에 닿은 단도 때문에 살이 베여 나가 피가 흐르는데도, 노인의 목소리에는 꺾이지 않는 민초의 억척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이 늙은이 때문에 저 악마 놈들에게 무릎을 꿇지 마라! 내공도 없는 우리가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음을 네가 보여주지 않았느냐! 절대 굴복하지 말고 도망쳐라! 도망쳐서 이 지옥 같은 광산을 무너뜨려 다오!”
“이 시끄러운 영감탱이가 아직도 주둥이를 놀리는구나!”
송지효가 안색을 굳히며 혈사편을 높이 치켜들었다.
쫙!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가시 채찍이 팔봉의 가슴팍을 가로질렀다. 가시 끝에 걸린 살점이 도려 나가며 노인의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났다. 팔봉은 극통에 온몸을 비틀면서도 이빨을 악물며 신음을 삼켰다. 그의 흐려진 눈동자는 여전히 바위 그늘 속에 숨어있을 무강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한 무강의 가슴 속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며 호심침 부위의 경맥이 터질 듯 아려왔다. 분노로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려던 찰나, 무강은 사부 독고벽의 유언을 떠올렸다.
‘뼈를 깎는 아픔 속에서도 눈빛은 차가워야 살 수 있다.’
무강은 크게 심호흡을 하며 철심 단련 구결(Iron Heart Tempering)을 가동했다. 뇌 신경을 지배하는 감정의 흐름을 강제로 억누르고 심장을 얼음물에 담근 듯 차갑게 식혔다. 요동치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그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심연처럼 차갑고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슬픔도, 분노도 사라진 자리에 오직 적을 처단하기 위한 기계적인 계산만이 남았다.
사사삭.
무강은 바위 그늘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저기 놈이 나타났다! 쇠뇌를 조준해라!”
경비병들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사방에서 쇠뇌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금속 마찰음이 울렸다. 수십 개의 화살촉이 무강의 심장과 머리를 겨냥했다.
그러나 무강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쿵, 쿵, 묵직한 철골(Iron Bone)의 무게가 실린 발걸음이 귀면암의 자갈밭을 딛을 때마다 대지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송지효는 무강이 피투성이가 된 채 비틀거리며 걸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걸어 나오는 무강의 전신은 독무의 화상으로 진물이 흐를지언정, 기세만큼은 태산과 같이 웅장했다. 특히 감정이 거세된 무강의 차가운 눈동자가 자신의 목덜미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응시하자, 송지효는 등등한 기세에 눌려 자신도 모르게 단도를 쥔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서, 서라! 더 움직이면 이 영감의 목을 당장 쳐버리겠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송지효가 비명에 가까운 호통을 질렀다.
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묵묵히 오른손에 쥔 무쇠 쇠망치 머리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어깨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켰다. 그의 기세는 언제든 화살이 날아오면 쇠망치를 초고속으로 회전시켜 흑철 장벽(Black Iron Barrier)을 형성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강이 풍기는 압도적인 물리적 위압감에, 시위를 쥐고 있던 쇠뇌수들의 손끝이 땀으로 젖어 들었다. 단 한 명도 감히 먼저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이 괴물 같은 놈이…… 감히 내 경고를 무시해?”
무강이 거리를 좁혀올수록 송지효의 마음속 공포는 광기로 변해갔다. 상대가 무릎을 꿇고 애원해야 자신이 주도권을 쥘 수 있거늘, 저 노예 놈은 기계처럼 차갑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자신의 목뼈가 가장 먼저 꺾일 것이라는 극도의 생존 본능이 송지효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네놈이 기어코 이 영감탱이가 죽는 꼴을 보고 싶구나!”
송지효가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들고 있던 혈사편을 크게 휘둘렀다.
쫙!
가시 채찍이 절벽 끝에 묶여 있던 팔봉의 가슴뼈 정중앙을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이미 으스러져 있던 노인의 흉골이 완전히 파괴되며 하얀 뼈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커헉……!”
팔봉이 굵은 선혈을 뿜어내며 고개를 떨구었다. 송지효는 광기 어린 실소를 지으며, 단도를 쥔 발로 팔봉의 야윈 가슴팍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말뚝을 고정하고 있던 낡은 밧줄이 끊어지며, 노인 팔봉의 피투성이 육체가 절벽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수백 장 아래, 도망치다 죽은 노예들의 원한이 서린 황량하고 어두운 공동, 백골 무덤(The Hundred Bone Tomb)의 암흑 속으로 팔봉의 신체가 허공을 가르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무강의 차갑게 식어 있던 눈동자가 일순간 폭발하듯 붉은 광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철심 단련 구결의 얼음 같던 경계가 단숨에 산산조각 나며, 뼈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구친 불 같은 분노가 그의 전신 철골을 무섭게 뒤흔들었다.
으드드득! 쾅!
무강의 전신 골격에서 고막을 찢는 듯한 기괴한 파골음이 울려 퍼지며, 귀면암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무시무시한 진동이 발끝에서부터 대지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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