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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고 습격과 철갑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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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들의 목줄기에 와닿은 차가운 칼날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서늘하게 번뜩였다. 사마현의 호령 한마디에 끌려 나온 이들은 흑철곡 깊은 갱도에서 설무강에게 흙먼지 묻은 주먹밥을 남몰래 쥐여주던 늙은 광부들과 앳된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울부짖음이 연무장 앞뜰의 삭막한 공기를 찢어발겼다.


“대장…… 제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세요!”


아성이 무강의 등 뒤에서 옷자락을 쥔 채 바르르 떨었다. 소년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진흙 범벅이 된 뺨을 적셨다.


설무강의 손아귀에 쥔 무쇠 쇠망치 머리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양팔의 찢어진 피부 사이로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지만, 그의 안광은 오히려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 내렸다. 머릿속에서 수천 번 되새겼던 사부 독고벽의 유지가 뇌리를 스쳤다.


‘뼈를 깎는 아픔 속에서도 눈빛은 차가워야 살 수 있다.’


여기서 무릎을 꿇는 순간, 정파의 위선적인 칼날은 인질과 결사대 모두의 목을 주저 없이 벨 것이다. 사마현의 저 가식적인 미소 뒤에 도사린 잔혹함을 무강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강은 슬픔과 분노라는 감정을 심장 가장 깊은 곳에 가로막고, 철심 단련 구결(Iron Heart Tempering)을 발동했다. 그의 눈동자가 칠흑 같은 심연처럼 고요해졌다.


무강은 옆에 서 있던 마칠을 향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극도로 절제된, 오직 사내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눈빛의 신호였다.


“사마현!”


무강이 쇠망치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는 시늉을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마현의 호위 무사들이 일제히 긴장하며 검날을 세웠다. 사마현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무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야 천한 고기덩어리가 주제를 파악했구나. 무릎을 꿇고 네놈의 머리뼈를 바닥에 찧어라. 그렇다면 저 늙은 개들의 목숨은 거두지 않…….”


“개소리는 거기까지 해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강의 오른발이 대지를 딛고 폭발하듯 짓밟았다. 질량 체득의 원리를 극한으로 가동한 진각이었다. 발끝이 닿은 대리석 바닥이 쩍 갈라지며, 그 충격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남궁태의 부러진 창천검 조각들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무강은 왼손으로 부러진 검날 조각을 낚아채 사마현의 목덜미를 향해 전력으로 투척했다. 내공 한 푼 실리지 않은, 오직 2성 철골의 완력과 질량만으로 날아간 강철 조각은 허공을 찢는 파열음을 내며 탄환처럼 쇄도했다.


“분타주님을 보호해라!”


일류 호법 무사들이 경악하며 사마현의 전면을 가로막고 검기를 뿜어내 검날 조각을 쳐냈다. 연무장 단상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화살을 조준하던 쇠뇌수들의 시선이 일제히 사마현의 안위로 쏠린 찰나의 순간이었다.


“지금이다! 마칠, 호철! 인질들을 품고 안쪽으로 뛰어라!”


무강의 포효가 벼락처럼 떨어졌다. 마칠이 이끄는 결사대원들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어 간수들의 손을 쳐내고 늙은 노예들과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거구의 무사 호철이 양손에 커다란 무쇠 판때기를 들고 전면에 서서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온몸으로 막아섰다. 팅, 팅, 팅! 강철 화살들이 호철의 철판 방패에 부딪쳐 꺾여 나갔다.


“막사 지하로 대피시켜라! 우리는 무기고를 친다!”


마칠이 울부짖으며 인질들을 안전한 사각지대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광부들의 손에 쥔 무기는 이가 빠진 곡괭이와 거친 정이 전부였다. 장기전으로 가면 천검문의 철갑 무사들에게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 수천 자루의 정철 병장기가 비축된 분타 비밀 무기고(Branch Secret Armory)를 점령하는 것뿐이었다.


무강은 쇠망치를 고쳐 쥐고 무기고로 통하는 지하 석조 통로를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의 뒤를 따라 마칠과 호철, 그리고 정예 광부 결사대 삼십 여 명이 들이닥쳤.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이윽고 두꺼운 철문으로 굳건히 잠긴 무기고의 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단순한 경비병들이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육중한 철갑을 두르고, 전면에 거대한 강철 방패를 맞대어 틈새를 찾아볼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방어 대형이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전신에 검푸른 철갑을 두르고 거대한 철창을 쥔 사내가 가로막고 서 있었다.


천검문 북강분타의 경비대장, 철호(Cheol-ho)였다.


철호는 이류 극성의 강맹한 내공을 보유한 군사 전술가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군인의 냉정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한 광노 놈들이 감히 가문의 심장부를 넘보는구나. 이곳은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철호가 철창을 들어 올리자, 방패병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며 철갑 방패를 더욱 단단히 맞물렸다. 쿵 하는 육중한 진동이 지하 통로를 울렸다. 방패와 방패가 맞물린 대형은 틈새 하나 보이지 않았고, 방패 윗부분의 홈 사이로 예리한 강철 장창 수십 자루가 뱀의 혀처럼 튀어나와 숲을 이루었다.


“비켜라, 이 개새끼들아!”


성질 급한 결사대원 두 명이 곡괭이를 치켜들고 방패벽을 향해 돌진했다.


깡! 카강!


곡괭이가 방패 표면에 닿는 순간, 방패병들이 품고 있던 내공 삼류의 푸른 진기가 반동 충격파를 일으켰다. 내력의 반동이 곡괭이 자루를 타고 역류했다. 우지끈 소리와 함께 곡괭이 자루가 허무하게 부러졌고, 대원들은 손바닥 가죽이 찢긴 채 피를 흘리며 뒤로 자빠졌다.


쉬쉭! 푹!


방패 틈새로 철호의 장창이 번개처럼 찔러 들어왔다. 장창은 돌격하던 대원의 가슴을 단숨에 관통했다. 비명 횡사한 동료의 선혈이 차가운 석조 벽에 뿌려졌다. 정교한 전술과 내공이 결합된 철갑 방패 부대는 평민들의 단순한 완력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움직이는 성벽이었다.


“대장, 제 등 뒤로 붙으십시오!”


거구의 호철이 무시무시한 포효를 지르며 전면으로 나섰다. 그는 빼앗은 두꺼운 철제 흉갑을 온몸에 두르고, 양손으로 거대한 철판을 쥔 채 인간 방패를 자처했다.


푸욱! 푹!


경비병들의 창날이 호철의 철판과 흉갑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창끝이 가죽을 찢고 호철의 거친 근육 속에 박힐 때마다 붉은 피가 터져 나왔지만, 호철은 이빨을 으스러져라 악물며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압도적인 거구가 들이닥치는 창날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설무강이 돌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했다.


“호철!”


마칠이 울부짖었으나, 무강은 흔들리지 않았다. 호철이 목숨을 걸고 열어준 이 기회를 결코 헛되이 보낼 수 없었다.


무강은 골음감지(Bone Sound Perception)의 능력을 극대화했다. 시야를 좁히고 오직 소리의 진동에 신경을 집중했다. 철갑 방패 뒤에 숨은 경비병들의 어깨 관절이 내공을 버텨내기 위해 팽팽하게 긴장하며 내는 미세한 마찰음, 그리고 방패를 지탱하는 무릎 관절 뼈의 삐걱거림이 무강의 뇌리에 입체적인 구조선으로 펼쳐졌다.


특히 그들의 발끝이 석조 바닥의 특정 균열선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체중을 지탱하고 있음이 포착되었다. 그들의 내공은 대지로부터 지탱하는 힘에 기반하고 있었다.


‘기반을 무너뜨리면 방패는 쓰레기 철판에 불과하다.’


무강은 오른손 가죽 끈에 묶인 무쇠 쇠망치 머리를 움켜잡고 돌진했다.


“어리석은 놈! 철갑의 벽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철호가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철창에 검푸른 내공 진기를 실어 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찔러왔. 창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리한 창기가 대기를 찢어발겼다.


무강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관절 유인 보법을 가동해 상체를 기묘하게 비틀며 창날의 궤도를 어깨 스침으로 흘려보냈다.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 가죽이 찢기고 피가 튀었으나, 무강의 2성 철골은 창기의 파괴력을 물리적으로 튕겨냈다.


창날이 흘러간 찰나의 순간, 무강은 전신의 질량을 어깨와 등뼈에 집중시켰다. 철기단골결의 외공 초식, 철골 격침(Iron Bone Ram)이었다.


콰아아아앙!


무강의 단단한 철골 어깨가 방패벽의 정중앙을 들이받았다. 마치 거대한 성벽 분쇄기가 철문에 충돌한 듯한 무시무시한 파열음이 지하 통로를 뒤흔들었다. 무강의 무식한 체중과 뼈의 강도가 결합된 물리적 충격량은 내공 삼류의 기공 방어막을 단숨에 찌그러뜨렸다.


“끄아악!”


방패를 맞대고 있던 전면의 경비병 두 명의 팔꿈치와 어깨 관절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뒤로 꺾였다. 방패가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방어 대형의 정중앙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대형을 유지해라! 뒤를 받쳐라!”


철호가 당황하여 내공을 폭발시키며 장창을 회수해 무강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후방의 방패병들이 무강을 밀어내기 위해 힘을 모아 앞으로 전진하려 했다.


하지만 무강은 이미 그들의 기반이 흔들렸음을 알고 있었다. 무강은 오른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온몸의 뼈마디를 긴장시키며, 질량 체득의 무게를 한 점에 집중시켰다.


“무너져라.”


무강의 묵직한 음성과 함께, 그의 오른발이 지하 석조 바닥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외공의 진각 기술, 진각: 지반 붕괴(Earth Stomp: Ground Collapse)였다.


쿵! 콰콰콰쾅!


단순한 진각의 울림이 아니었다. 지하 수십 장 아래까지 광산 갱도가 얽혀 있어 원래부터 지반이 취약했던 무기고 앞 석조 바닥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사방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무강의 발끝에서 시작된 강력한 물리적 충격파가 지면을 타고 방패병들의 발밑으로 흘러 들어갔다.


쩍! 쩍쩍!


단단하던 석판 바닥이 주저앉으며 거대한 균열이 생겼고, 천장에서 굵은 돌가루와 낙석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단단히 발을 붙이고 체중을 지탱하던 방패병들의 물리적 균형이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육중한 철갑 무게 때문에 그들은 균열 속으로 발이 빠지며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지금이다! 쓸어버려라!”


마칠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형 무쇠 해머를 휘두르며 벌어진 방패벽 틈새로 호랑이처럼 뛰어들었다.


“와아아아!”


결사대원들이 곡괭이와 정을 들고 균형을 잃은 경비병들의 철갑 틈새를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방패를 잃은 경비병들은 평민들의 분노 어린 난타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철호 역시 지반 붕괴의 충격에 균형을 잃고 뒤로 물러서며 창 끝의 매서움을 잃었다.


무강은 쓰러진 경비병들의 무기를 짓밟고 무기고의 거대한 무쇠 빗장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손가락 끝에 단골수(斷骨手)의 악력을 집중시켰다. 손가락 뼈가 삐걱거리며 무시무시한 아귀 힘이 발휘되었다.


쩍! 쩌적!


무기고 문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강철 빗장이 무강의 맨손 악력에 찌그러지며 부러져 나갔다. 무강이 거대한 철문을 양손으로 밀어젖히자, 마침내 분타 비밀 무기고의 내부가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냈다.


벽면 가득 정교하게 제련된 정철 보검과 장창, 예리한 대도와 단단한 철제 흉갑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어두운 창고 내부가 무기들이 뿜어내는 서늘한 쇳빛으로 하얗게 빛났다.


“무기다! 진짜 강철 무기들이야!”


마칠이 흥분하여 외치며 가장 크고 묵직한 강철 해머를 손에 쥐었다. 광부 결사대원들이 일제히 정철 검과 철갑 보호대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이가 빠진 곡괭이를 버리고 명문 정파의 예리한 병장기를 손에 쥔 그들의 눈빛에 꺾이지 않는 투지와 생존의 희망이 뜨겁게 타올랐다.


호철 역시 몸에 박힌 창날을 뽑아내고, 백강혁이 남겨준 지혈 가루를 상처에 뿌린 뒤 거대한 강철 도끼를 치켜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제야 싸울 맛이 나는구나! 천검문 개새끼들, 다 기어 나오너라!”


결사대의 함성이 무기고 지하 공간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그들은 천검문의 정예 무장 세력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승리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습하고 어두운 무기고 천장의 환기구 사각 틈새로부터, 기이할 정도로 달콤하면서도 코끝을 찌르는 듯 시큼한 냄새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먼지 냄새가 아니었다. 냄새를 맡은 광부 몇 명이 갑자기 목을 움켜쥐며 거친 기침을 터뜨렸다.


“콜록! 쿨럭! 이, 이게 무슨 냄새지?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피, 피가……!”


기침을 하던 대원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피부가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변하며 바닥에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무강의 안광이 급격히 좁혀졌다. 그의 고도로 발달한 후각 신경이 공기 중에 스며드는 독성의 기전을 단번에 읽어냈다. 그것은 과거 사촌 형 설무현의 신체를 괴물로 만들고 노예들의 뼈를 녹여버리던 약리당의 비전 독약, 연골단의 성질과 일치하는 맹독 가스였다.


무기고 입구 너머, 인접한 천검문 약리당(Cheongeom Sect Medicine Hall) 건물 방향에서부터 짙은 초록색의 독무가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독무 너머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 어리석은 광노 놈들. 무기고를 점령한들, 숨을 쉬지 못하면 결국 썩은 고기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약리당주 갈염(Gal Yeom)의 음산한 목소리가 독무의 울림을 타고 무기고 내부로 무섭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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