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철곡 대폭동의 서막
“천검문 무사들은 들어라! 저 천한 괴물 놈과 폭도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쇠뇌를 장전하고, 대포를 조준해라!”
천검문 북강분타의 지배자, 분타주 사마현의 피맺힌 호령이 웅장한 연무장 대리석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연무장 사방의 기와지붕 위로 검은 무복을 입은 천검문 무사들이 유령처럼 솟아올랐다. 그들의 손에는 차가운 쇳빛을 발하는 강철 쇠뇌가 쥐여 있었고, 시위는 이미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연무장 입구 쪽에서는 거대한 무쇠 바퀴를 굴리며 육중한 포신을 드러낸 대포들이 포문을 열었다. 칠흑 같은 포구는 연무장 중앙, 오직 단 한 사람을 조준하고 있었다.
설무강.
그는 무너지듯 주저앉은 남궁태의 부러진 창천검 파편을 발밑에 둔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남궁태의 창궁검기가 스쳐 지나간 그의 오른쪽 뺨에서는 붉은 피가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턱끝으로 흘러내렸다. 양팔의 피부는 갈기갈기 찢겨 붉은 선혈로 물들었고, 전완 골막에는 방금 전 명검의 일격을 정면으로 받아낸 충격 여파가 둔탁한 통증으로 고여 있었다.
‘득, 으드득.’
무강이 주먹을 꽉 쥐자, 피부 아래 골격에서 쇠가 부딪치는 듯한 미세한 파골음이 울렸다. 철기단골결 2성, 철골(Iron Bone)의 육체는 여전히 건재했으나, 무리한 골격 가동으로 인해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힌 호심침(護心針)이 심장 경맥을 찌르는 듯한 시큼한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마비되어 감각이 흐릿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심연처럼 차갑고 고요했다.
“대장…….”
무강의 등 뒤에서 소년 아성이 겁에 질린 채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연무장 바닥을 메우고 있던 수백 명의 광부 노예들 역시 사방에서 조여오는 쇠뇌의 서늘한 기운에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평생을 정파 무인들의 힘 앞에 가축처럼 짓밟혀온 이들이었다. 지붕 위의 쇠뇌와 입구의 대포는 그들에게 거역할 수 없는 지옥의 판결과 같았다.
무강은 쇠망치 머리를 가죽 끈으로 묶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루가 부러져 쇠머리만 남은 삼십 근 무게의 묵직한 무기. 그것을 쥔 무강의 어깨가 거인처럼 벌어졌다.
“우리가 여기서 개처럼 엎드려 화살에 꿰뚫려 죽을 것인가.”
무강의 갈라진 목소리가 연무장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아니면, 저들의 목뼈를 단 한 번이라도 부러뜨리고 흙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 한마디가 광부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반골의 불꽃을 건드렸다. 남궁세가의 천재가 흘린 피, 그리고 부러진 명검의 파편이 대리석 바닥에서 빛나고 있었다. 정파의 무인들도 결국 피를 흘리고 뼈가 부러지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방금 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더는…… 더는 가축처럼 죽지 않는다!”
광부들의 대열 선두에서 거구의 사내가 붉은 천으로 머리를 묶으며 소리쳤다. 설무강의 충복이자 결사대의 돌격대장, 마칠(Ma-chil)이었다. 마칠은 이가 다 빠진 채석용 대형 무쇠 해머를 치켜들며 고함을 질렀.
“형제들아! 무기를 들어라!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저 위선자 놈들의 대가리라도 깨부수고 죽자!”
“와아아아!”
수백 명의 노예들이 일제히 곡괭이와 정을 치켜들며 봉기했다. 흑철곡 대폭동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광부들의 폭발적인 함성에 사마현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천한 쥐새끼들이 기어코 미쳤구나! 쏴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멸해라!”
사마현의 낙하 지시와 함께 지붕 위의 쇠뇌수들이 일제히 시위를 놓았다.
쉬쉬쉬쉭!
수백 발의 강철 화살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무강은 망설임 없이 전면으로 몸을 던졌다.
“내 뒤로 숨어라!”
무강은 양손으로 무쇠 쇠망치 머리를 움켜잡고 원심력을 극대화하여 전방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을 향해 휘둘렀다. 무쇠 망치 난격(Iron Hammer Wild Strike)의 회전력이 허공에 검은 폭풍을 일으켰다.
깡! 캉! 카강!
망치 표면에 부딪친 강철 화살들이 불꽃을 튕기며 사방으로 꺾여 나갔다. 망치로 미처 막지 못한 몇 발의 화살이 무강의 어깨와 허벅지를 스쳤으나, 2성 철골의 단단한 피부는 화살촉의 예리함을 물리적으로 튕겨냈다. 팅, 팅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그의 몸에 가벼운 긁힌 상처만 남긴 채 튕겨 나갔다. 무강은 스스로 인간 방패가 되어 아성과 결사대원들의 전면을 완벽하게 수호했다.
“돌격해라! 무기고로 가는 길을 뚫어야 한다!”
마칠이 광부들을 이끌고 연무장 출구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나 출구는 이미 천검문 분타의 정예 경비병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묵직한 철갑을 두르고, 두꺼운 강철 방패를 맞대어 빈틈없는 방어 대형(철갑 방패벽)을 구축하고 있었다.
“비켜라, 이 개새끼들아!”
흥분한 광부 몇 명이 거친 곡괭이를 휘두르며 방패벽을 내리쳤다.
깡!
하지만 경비병들은 내공 삼류(Third-Class Inner Qi)의 푸른 진기를 방패에 실어 대기하고 있었다. 곡괭이가 방패에 닿는 순간, 내공의 강한 반동 충격파가 광부들의 팔을 타고 역류했다.
“악!”
곡괭이 자루가 허무하게 부러져 나갔고, 광부들은 손바닥 가죽이 찢긴 채 뒤로 자빠졌다. 방패벽 뒤에서 예리한 장창들이 뱀의 혀처럼 튀어나와 광부들의 어깨와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렀다. 선혈이 뿜어지며 몇 명의 결사대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정교한 군사 진형과 내공이 결합된 철갑 방패벽은 평민들의 거친 힘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철옹성 같았다.
“물러서라.”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설무강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걸음마다 대리석 바닥이 미세하게 진동하는 질량 체득(質量支配)의 위압감이 연무장을 압도했다. 무강의 두 눈은 오직 경비병들의 방패가 맞물리는 틈새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골음감지(Bone Sound Perception)의 감각이 그의 청각 신경을 자극했다. 방패를 든 경비병들의 어깨 관절이 내공을 지탱하기 위해 팽팽하게 긴장하며 내는 미세한 마찰음, 그리고 방패와 방패를 연결하는 쇠사슬 고리가 마찰하는 둔탁한 소리가 무강의 뇌리에 입체적인 구조선으로 그려졌다.
‘경첩과 사슬 고리. 그곳이 이 진형의 숨은 관절이다.’
무강은 무거운 무쇠 쇠망치를 양손에 쥐고 전력으로 돌진했다.
“천한 고기덩어리가 들이받아 봤자 뼈가 가루가 될 뿐이다! 버텨라!”
경비대 조장이 소리치며 방패에 내공을 주입했다. 방패 표면에서 푸르스름한 진기의 장막이 피어올랐다.
무강은 방패의 가장 단단한 정면을 치지 않았다. 그는 돌진하는 순간 관절 유인 보법을 가동해 상체를 미세하게 비틀며, 방패와 방패가 맞물리는 경첩 틈새를 향해 대각선 아래에서 위로 쇠망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콰아아앙!
쇠망치의 압도적인 물리적 질량과 회전력이 경첩 부위에 집중되었다. 내공 삼류의 방어막이 씌어 있었으나, 연결 부위의 미세한 틈새까지 내공의 밀도가 미치지는 못했다.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방패를 고정하던 강철 사슬 고리가 단숨에 끊어져 나갔다.
“끄아악!”
방패를 들고 있던 경비병의 손목뼈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기괴하게 꺾였다. 방패벽의 한 축이 무너지며 틈새가 벌어졌다. 무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쇠망치를 회전시키며 연속 타격을 가했다. 무쇠 망치 난격의 파괴력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쾅! 콰직! 콰장창!
두꺼운 강철 방패들이 물리적인 충격량을 이기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방패벽을 짜고 있던 경비병들의 어깨 관절과 쇄골이 망치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차례로 함몰되었다. 그들은 피를 토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때, 무너진 방패벽 뒤에서 또 다른 경비병이 무강의 심장을 노리고 장창을 번개처럼 찔러왔다. 창끝에는 서늘한 내공의 기운이 실려 있었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무강은 피하는 대신 왼쪽 팔뚝을 들어 올려 창끝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철골 호신의 방어술이었다.
깡!
예리한 강철 창끝이 무강의 팔뚝 피부를 찢고 골막에 닿는 순간, 강철과 무쇠가 부딪치는 맑은 마찰음이 울렸다. 창끝은 무강의 단단한 팔뼈를 뚫지 못하고 비스듬히 미끄러져 나갔다. 무강의 팔뚝에는 하얀 긁힌 자국과 함께 붉은 피가 배어 나왔을 뿐, 뼈는 단 일 인치도 손상되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괴물 같은 뼈란 말이냐!”
경비병이 경악하며 창을 회수하려 했으나, 무강의 손가락 끝이 이미 그의 창 자루를 움켜잡고 있었다. 무강은 단골수의 악력을 발동해 창 자루를 꽉 쥐고 반대 방향으로 강하게 비틀었다.
우지끈!
두꺼운 참나무 창 자루가 걸레짝처럼 뒤틀리며 부러졌고, 경비병은 무강의 무식한 완력에 이끌려 앞으로 딸려 나왔다. 무강은 그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메쳐버렸다. 적의 머리뼈가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연무장에 울렸다.
“방어선이 뚫렸다! 무기고로 진격해라!”
마칠이 부러진 방패 조각을 방패 삼아 경비병들의 무기를 쳐내며 소리쳤다. 광부 노예들은 무강이 열어젖힌 돌파구를 타고 노도처럼 연무장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지붕 위의 쇠뇌수들이 황급히 화살을 쏘아댔으나, 이미 대열이 흐트러진 광부들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무장을 탈출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에 불과했다.
댕! 댕! 댕! 댕!
천검문 북강분타 전체에 삼엄한 비상 경종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분타의 거대한 청동 성문들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닫혔고, 모든 출구가 통제되는 완전한 계엄 상태에 돌입했다. 사방의 요로마다 철갑을 두른 무사들이 대형을 짜고 가로막기 시작했다.
사마현은 연무장 높은 테라스 위로 대피해 있었다. 그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내려다보며, 오만하던 얼굴을 잔혹한 살기로 물들였다. 그의 단전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내공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천한 노예 놈들이 감히 분타의 방어선을 넘 넘보는구나. 하지만 너희들의 뼈대가 아무리 단단한들, 이 지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사마현이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잔혹한 명령을 내렸다.
“연무장 뒤편의 병약한 늙은 노예들과 계집, 어린아이들을 전부 연무장 앞뜰로 끌어내라. 이 폭도 놈들의 눈앞에서 한 놈씩 목을 쳐라! 저들의 단단한 뼈대가 자신들의 혈육의 피 앞에서도 버텨내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
무사들이 들이닥쳐 연무장 뒤편 막사에 숨어 있던 비전투원 노예들을 거칠게 끌고 나오기 시작했다. 무강에게 남몰래 흙먼지 묻은 주먹밥을 쥐여주던 늙은 광부들과 어린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연무장 앞뜰을 가득 메웠다.
아성을 등 뒤에 숨긴 채 무쇠 쇠망치를 꽉 쥔 설무강의 눈동자가, 들이닥치는 인질들의 울부짖음 속에서 무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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