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뼈를 증명하다
남궁태의 창천검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검기가 설무강의 안면을 삼키려 쇄도하는 찰나, 설무강의 주먹이 기이하게 뒤틀렸다.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 세상은 오직 소리와 미세한 진동으로만 재구성되었다. 귀를 찢을 듯한 간수들의 환호성도, 사마준의 오만한 웃음소리도, 피부를 태울 듯이 밀려드는 푸른 창궁검기(蒼穹劍法)의 열기도 무강의 의식 저편으로 멀어졌다. 오직 단 하나, 남궁태의 몸속에서 울리는 뼈의 마찰음만이 벼락처럼 선명하게 무강의 청각 신경을 때렸다.
서걱, 슥.
남궁태가 검을 크게 회전시키며 필살의 초식을 시전하려 어깨를 뒤로 젖히는 순간이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 깊숙이 박힌 미세한 균열의 흔적, 과거 무리한 내공 단련의 대가로 남은 그 약점이 뼈마디가 맞물리는 둔탁한 마찰음을 내뿜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찰나의 지연, 단 0.1초의 빈틈.
무강은 그 짧은 공백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무강은 질량 체득(質量支配)의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양발로 대리석 바닥을 굳건히 디뎠다. 가슴뼈 아래 깊숙이 박힌 호심침(護心針)이 흉골을 찌르는 시큼한 통증이 밀려왔으나, 전신의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켜 그 통증마저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의 몸무게가 순식간에 수백 근의 무쇠 주괴처럼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죽어라, 천한 노예 놈아! 창궁벽력검(蒼穹霹靂劍)!”
남궁태가 광기 어린 비명을 지르며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벼락같은 파란 검강의 맹아가 호선을 그리며 무강의 목덜미를 향해 쇄도했다. 예리하기가 가히 철판도 단숨에 종잇장처럼 잘라버릴 기세였다.
그러나 무강은 피하지 않았다.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는 관절 유인 보법(Joint-Luring Footwork)을 가동해 무릎 관절을 기괴한 각도로 비틀며 상체를 반 보 앞으로 밀어 넣었다. 적의 검기가 가장 강한 검 끝을 피해, 내공의 전도율이 상대적으로 낮고 힘이 분산되는 검날의 중간 부분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무강은 양팔을 교차하여 전면에 세웠다. 철기단골결 2성, 철골(Iron Bone)의 경지를 실전에 투입하는 첫 방어 자세였다.
콰지직! 깡!
연무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의 고막을 찢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살점이 잘려 나가는 비린 소리가 아니었다. 단단한 강철 주괴와 명검이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발생하는 극도의 금속 마찰음이었다.
창천검의 예리한 칼날이 무강의 전완 피부를 가차 없이 도려냈다. 붉은 피가 안개처럼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칼날이 피부 아래 감춰진 뼈대에 닿는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무강의 전완 골격은 무쇠보다 단단한 검붉은 철빛을 띠며 버텨냈다. 골쇄초의 극독을 견뎌내며 백 번 두들겨 맞춘 철골의 밀도가 창궁검기의 파괴력을 물리적으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어, 어떻게……!”
남궁태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크게 흔들렸다. 자신의 필살 검기가 노예의 맨몸뚱이에 가로막혀 전진을 멈춘 것이다.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진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대리석 바닥에 깊은 균열을 남겼으나, 정작 칼날은 무강의 팔뼈에 막혀 단 일 인치도 더 파고들지 못했다.
“내공도 없는 뼈다귀가 왜 베어지지 않는 거냐!”
“내공은 그릇에 담긴 물일 뿐이다.”
무강이 차갑게 눈을 뜨며 속삭였다. 그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심연처럼 고요했다.
“그릇을 깨부수면, 물은 쏟아질 뿐이지.”
무강은 철골의 비정상적인 인장력을 발동했다. 그의 팔뼈가 미세하게 벌어지며 상처 부위로 파고든 창천검의 검날을 물리적으로 꽉 물어 고정시켰다. 검이 무강의 뼈에 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궁태가 당황하여 검을 빼내려 단전에 진기를 폭발시켰으나, 무강의 무식한 완력과 철골의 아귀에 고정된 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이거 놓아라! 더러운 노예 새끼가!”
남궁태가 급히 전신의 내공을 외부에 뿜어내며 푸른빛의 호신강기(Body-Protecting Qi) 방어막을 형성하려 했다. 무형의 기공이 무강의 신체를 밀쳐내려 강한 압력을 가해왔다.
그러나 무강은 이미 적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0.1초 느린 남궁태의 오른쪽 어깨의 골음 진동을 타며, 왼손 끝의 악력을 한 점으로 집중시켰다. 단골수(斷骨手)의 지압술이었다.
콰직!
무강의 찢어진 손바닥이 창천검의 평평한 도신 부위를 움켜잡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강철 갈고리처럼 검신을 파고들었다. 동골과 철골의 무식한 힘이 결합된 악력이 폭발했다.
쩌어어억! 콰장창!
연무장에 맑고 서늘한 쇠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남궁세가가 자랑하던 명검 창천검이, 설무강의 맨손 아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허리 부러지듯 단숨에 두 동강이 나버렸다. 부러진 검날의 파편들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지며 쟁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무강은 손에 남은 검날 조각을 남궁태의 발밑에 툭 던졌다.
“가문의 명예는 참 쉽게도 깨지는군.”
“아, 아아…… 내 검이…… 내 창천검이……”
남궁태는 부러진 검 자루를 쥔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생을 정파의 천재로 추앙받으며 살아온 그의 세계가, 내공 한 푼 없는 광산 노예의 맨손 주먹 아래 완전히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그의 자존심과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태야! 정신 차려라!”
단상 위에서 결투를 관전하던 남궁세가 북강 지부장 남궁무(Namgung Mu)가 참다못해 대리석 의자를 부수며 일어섰다. 가문의 천재가 노예에게 패하고 보검까지 부러진 것은 남궁세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치였다.
“여봐라! 저 사악한 외공 괴물 놈을 당장 사로잡아라!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전원 출격하여 저놈의 사지를 절단해라!”
남궁무의 서슬 퍼런 명령과 함께, 연무장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남궁세가의 정예 무사들과 철갑 방패를 든 호위대원 수십 명이 검을 뽑아 들고 일제히 연무장 중앙으로 쇄도했다. 그들의 무복 자락이 푸른 바람을 일으키며 무강의 사방을 겹겹이 에워쌌다.
무강은 밀려드는 적들을 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양팔의 피부가 찢겨 검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전신의 뼈마디에는 검기를 정면으로 받아낸 충격 여파로 둔탁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었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마비되어 감각이 무뎌졌으나, 그의 심장은 오히려 차갑고 단단하게 뛰고 있었다.
무강은 연무장 구석에 놓여 있던 자신의 무기, 이가 빠진 무쇠 쇠망치(Chipped Cast Iron Hammer)를 향해 걸어갔다. 삼십 근 무게의 묵직한 무쇠 머리가 그의 오른손 가죽 끈에 단단히 묶였다. 자루가 부러져 쇠머리만 남은 투박한 무기였으나, 무강의 손에 쥐이는 순간 그것은 천하를 부술 파괴의 병기가 되었다.
“막아라! 방패벽을 짜라!”
남궁세가의 호위대원들이 두꺼운 철판 방패를 맞대며 무강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내공 삼류의 진기를 방패에 실어 단단한 강철의 벽을 구축한 것이다.
무강은 대지를 딛고 도약했다. 그의 신체가 지닌 물리적 질량이 허공을 가르며 방패벽을 향해 낙하했다. 무강은 양손으로 무쇠 쇠망치를 거켜 쥐고 원심력을 극대화하여 허공에서 아래로 사정없이 휘둘렀다. 무쇠 망치 난격(Iron Hammer Wild Strike)의 초입이었다.
콰아아앙! 쾅!
거대한 폭음이 연무장을 뒤흔들었다. 무강의 쇠망치가 철갑 방패의 중앙 고정 장치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내공을 실어 단단하다고 자부하던 철판 방패들이, 무강의 무식한 질량과 회전력을 이기지 못하고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방패를 들고 있던 무사들의 손목뼈가 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무강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망치를 가로로 길게 휘두르며 다가오는 검수들의 칼날을 정면으로 때려 부쉈다.
깡! 캉! 콰직!
무강의 쇠망치가 지나가는 길마다 정파 무인들이 자랑하던 강철 검들이 이가 나가고 부러지며 허공으로 날아갔다. 내공의 기교와 화려한 검초는, 무강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물리적 타격력과 강철 뼈대의 힘 앞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단 몇 번의 휘두름만으로 남궁세가의 정예 방어선이 무참하게 궤멸되었다.
부러진 검 자루를 쥔 채 진흙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 떠는 남궁태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차가운 아침 햇살이 비쳤다. 그리고 연무장 주변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백 명의 광부 노예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평생 정파 무인들의 칼날과 내공 앞에 가축처럼 짓밟히며 살아온 bách성들이었다. 내공이 없는 자는 결코 무인을 이길 수 없다는 절망이 그들의 뼈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과 똑같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노예 소년이 맨손으로 명문 세가의 검을 부러뜨리고 철갑을 으스러뜨리는 기적을 똑똑히 목격했다.
수백 명의 광부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억눌려 있던 뜨거운 반란의 불꽃이 소리 없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 쥐인 곡괭이 자루가 미세하게 떨렸다.
바로 그 순간, 연무장 단상 너머에서 웅장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검문 무사들은 들어라! 저 천한 괴물 놈과 폭도들을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쇠뇌를 장전하고, 대포를 조준해라!”
분타주 사마현의 피맺힌 호령과 함께, 연무장 사방의 지붕 위로 수백 장의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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