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의 지옥과 잔상의 격노
하늘을 뒤덮은 보랏빛 균열이 마치 살아 숨 쉬는 괴수의 눈동자처럼 기괴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 균열 아래로 쏟아지는 싸늘한 오로라 광채는 서울 제9구역의 무너진 빌딩 숲을 한층 더 황량하게 비추었다.
독고진과의 위험한 거래를 마치고 블랙마켓의 어두운 통로를 빠져나온 윤시우는 가죽 코트 깃을 단단히 여몄다. 독고진이 넘겨준 양자 위장복 코트 안감의 실버그레이 전도체 합금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그의 몸에서 방출되는 양자 파동을 흡수하고 있었다. 덕분에 에이지스의 일차 검문소는 무사히 통과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불안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양자 붕괴율은 여전히 50%에 고착되어 있었고, 심장 부근에 새겨진 푸른색 괴사 흉터는 맥박이 뛸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을 선사했다.
그때였다. 저 멀리 남부 구역의 폐허 모퉁이에서 거친 기계음과 함께 주민들의 비명 소리가 대기를 찢었다.
시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그 방향은 민우가 블랙마켓 임시 대피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제9구역에 남겨진 고아 동생들을 확인하러 간 남부 폐허 지하 피난처가 있는 곳이었다. 불안한 예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쿠구구구궁!
지반을 뒤흔드는 거대한 진동과 함께 검은 매연을 뿜어내는 에이지스 군부의 대형 철거 장비들이 골목을 가로막았다. 에이지스의 특별 수색 명령을 수행하는 철거 용역반 ‘크러셔’의 진격이었다. 그 선두에는 에이지스 수색대 장교모를 비뚤게 쓰고 질겅질겅 껌을 씹고 있는 사내, 강태오 대장의 악독한 부관 김중사가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마력을 무자비한 화염으로 변환해 방사하는 거대한 화염방사기가 장착되어 있었다.
“반란군 쥐새끼들의 은신처가 이곳이 확실하군. 에이지스 특별수색 작전 강령에 의거, 기준치 이상의 양자 파동이 감지된 이 구역을 완전히 청소한다. 남김없이 불태워라!”
김중사의 가학적인 외침과 함께 그의 화염방사기 포구가 붉은 빛으로 달아올랐다.
화아아아악!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오렌지빛 화염 폭풍이 지하 피난처의 유일한 입구를 집어삼켰다. 유독성 가스와 불길이 좁은 지하 통로로 밀려 들어가자, 그 안에서 숨어 있던 무고한 아이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
“쿨럭! 형...! 살려줘...!”
피난처 안쪽에서 아이들을 감싸 안은 민우가 울부짖었다. 소년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눈동자에 붉은 마력 기류를 일렁이며 염동력으로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를 치우려 애썼으나, 미숙한 마력 순환으로 인해 이내 코피를 쏟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산소는 빠르게 고갈되고 있었고, 화염의 지옥은 서서히 아이들의 숨통을 조여왔다.
골목 모퉁이 어둠 속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우의 이성이 끈을 놓았다.
기억을 잃은 자신을 거두어 준 스승 한백현, 그리고 자신을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민우와 슬럼가의 무고한 약자들. 이 차가운 디스토피아 속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온기를 느꼈던 터전이 짓밟히고 있었다.
시우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양자 위장복 코트를 거칠게 벗어던졌다. 코트 안감의 은빛 전도체 합금이 불길에 반사되어 쓸쓸하게 빛났다. 위장막이 걷히자, 시우의 전신에서 억눌려 있던 푸른색과 보랏빛의 양자 스파크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손목의 안정기 센서가 위험을 경고하며 요란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 해라.”
시우의 목소리는 낮고 낮았지만, 화염의 포효를 뚫고 김중사의 귀에 명확하게 꽂혔다.
“앙? 어떤 쥐새끼가 아직도 기어 다니고 있는... 헉! 네놈은 그 특급 수배자...!”
김중사가 경악하며 화염방사기 포구를 시우를 향해 돌렸다.
“마침 잘 됐다! 네놈의 정수까지 통째로 채굴해 주마!”
김중사가 가슴의 제어 장치를 누르자, 화염방사기에서 아스팔트를 녹여버릴 듯한 광역 화염 포격이 격발되었다. 시우의 눈앞이 붉은 지옥으로 가득 찬 그 찰나, 시우는 전뇌 세포의 신경망을 한계까지 가속했다.
‘양자 분신술.’
시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그의 좌우 공간이 보랏빛으로 일렁이며 푸른 잔상의 실체 분신 알파(Alpha)와 베타(Beta)가 동시에 실체화되었다.
화염 포격이 시우의 본체를 덮치기 직전, 시우는 0.001초의 찰나에 ‘차원 위상 전환’을 격발했다. 콰앙!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기하학적인 공간의 파열음과 함께 본체와 분신 알파의 위치가 맞바뀌었다. 김중사의 화염은 허공을 가르며 알파가 서 있던 자리의 콘크리트 벽을 녹여버렸고, 본체인 시우는 화염의 궤적을 완벽히 우회하여 김중사의 우측 사각지대로 파고들었다.
동시에 정찰 특화 분신 베타가 소리 없이 기동했다. 베타는 김중사의 방어 슈트가 지닌 빈틈을 노려 파고들었고, 시우가 주입한 위상 왜곡 주파수를 두른 양자 단검 페이즈 블레이드로 김중사의 오른쪽 어깨 무장 장갑판을 깊숙이 베어냈다.
치이이익!
고압의 유압 실린더가 파열되며 스파크가 튀었다. 무장의 균형이 무너지자 김중사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 이 괴물 같은 녀석이...! 감히 에이지스의 기술력을...!”
극도로 흥분한 김중사가 화염방사기의 출력을 150% 과부하 모드로 기동했다. 그의 전신에서 광역 불꽃 폭발의 기류가 뿜어져 나오며 주변 반경 10미터를 통째로 잿더미로 만들 기세였다.
아이들이 위험했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신체 밀도를 극대화한 방어용 분신 감마(Gamma)를 소환해 아이들의 방패막을 세우려 했다.
‘나와라, 감마!’
그러나 그 순간, 시우의 전뇌에 쇠못을 박아넣는 듯한 극심한 과부하 통증이 휘몰아쳤다. 뇌 신경망이 비명을 지르며 일시적인 마비가 찾아왔다. 무리한 연속 다중 소환의 대가였다. 세 번째 분신 감마의 소환은 허공에서 보랏빛 연기로 흩어지며 처참히 실패했다.
“크윽...!”
시우가 머리를 감싸 쥐며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중사의 과부하된 화염 폭발이 전방을 향해 해일처럼 덮쳐왔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시우는 이를 악물고 자신의 본체 표면 10cm 앞에 마력을 집중했다.
‘위상 반전 배리어(Phase Reversal Barrier)!’
시우의 전면에 푸른색 기하학적 격자무늬 장벽이 홀로그램처럼 전개되었다. 김중사의 파멸적인 화염 에너지가 장벽에 닿는 순간, 배리어의 공간 위상이 반전되며 거대한 소닉붐과 함께 모든 열에너지가 역방향으로 굴절되어 김중사에게 그대로 반사되었다.
“뭐, 뭐야?! 으아아악!”
자신이 쏜 화염에 휩싸인 김중사가 비명을 질렀다. 그 혼란을 틈타, 시우는 분신 알파와 베타를 초고속으로 교차 소환하며 사방에서 타격을 가하는 피니시 기술, ‘양자 잔상 타격’을 격발했다.
슈슈슈슉!
적의 눈에는 시우가 세 명으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보랏빛 잔상을 두른 분신들의 주먹과 본체의 양자 단검이 김중사의 방어 슈트 전반을 무자비하게 난타했다. 마지막 일격은 김중사의 등에 장착된 화염방사기 연료통을 정확히 관통했다.
콰아아아앙!
연료통이 대폭발을 일으키며 거대한 불꽃 기둥이 밤하늘을 찔렀다. 철거 용역반 크러셔의 장비들이 폭발의 여파로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김중사는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잔당들과 함께 황급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불길이 잦아들자, 시우는 쓰러져 있던 민우와 아이들을 무너진 피난처 잔해 속에서 하나씩 끌어냈다.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었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민우가 눈물을 흘리며 시우의 가죽 코트 자락을 붙잡았다.
“형... 고마워요... 형이 우리를 구했어요...”
하지만 시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리하게 분신들을 유지하며 위상 전환을 가동한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뼈아팠다. 시우의 가슴에 새겨진 푸른색 괴사 흉터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눈부신 푸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어... 윽...!”
시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흉터가 쩍 갈라지며 보랏빛 광채를 머금은 검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가슴과 바닥을 적셨다. 양자 붕괴율이 65%까지 수직 상승했다. 세포가 나선형으로 해체되는 극도의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고, 시우의 손끝부터 육체의 윤곽이 반투명한 유령처럼 흐릿하게 번지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형?! 형 몸이 왜 이래요?! 피가...!”
민우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시우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쓰러지며, 자신의 생존 타이머가 종말을 향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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