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영혼의 대가
지하 아지트의 공기는 약초를 달이는 증류기에서 흘러나온 보랏빛 김으로 몽환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낡은 진공관 라디오들이 벽면 가득 메운 고철 더미 사이에서 가냘픈 백색 소음을 뱉어냈다. 지지지직.
윤시우는 낡은 거적때기 위에 정좌한 채 가죽 노트를 무릎에 올려두고 있었다. 가슴 중앙, 심장 부근이 불에 달군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욱신거렸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팍에 새겨진 푸른색 균열 모양의 흉터가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양자 동조 호흡법의 반동으로 새겨진 괴사 흉터였다.
“호흡이 흐트러진다, 시우야.”
지하 아지트의 어둠 속에서 백발을 거칠게 뒤로 묶은 한백현이 나직하게 말했다. 먼지와 기름때가 낀 작업용 보안경 너머로, 그의 유일한 의안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백현은 거친 손으로 구식 라디오의 다이얼을 미세하게 조율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특이한 전자기 주파수가 시우의 머릿속을 맴도는 양자 노이즈를 억누르는 닻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가슴의 괴사 흉터는 네 영혼 세포가 이 세상의 물리 법칙과 충돌하여 남긴 상흔이다. 네 양자 붕괴율은 지금 겨우 40% 선에 묶여 있을 뿐이야. 힘을 함부로 탐하지 마라. 인과율은 결코 공짜로 기적을 베풀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시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기억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 소멸 직전의 지구-77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무릎 위에 놓인 ‘차원 연대기’ 가죽 노트의 수호자 creed를 읽을 때마다, 전뇌 피질을 스치는 웅장한 기함의 잔상과 보랏빛 균열의 환영만이 그의 영혼을 세차게 흔들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지지지지직!
백현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진공관 라디오가 갑작스럽게 비명을 지르며 붉은색 스파크를 튀겼다. 고요하던 아지트의 공기가 일순간 차갑게 얼어붙었다. 백현의 의안이 지상으로 통하는 천장을 향해 날카롭게 고정되었다.
“침입자다.”
백현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무겁게 가라앉았다.
“에이지스 특별수색대 놈들이군. 정찰병 3명이 고물상 정문을 부수고 침입했다. 이 구역에 방사된 잔류 양자 파동을 감지하고 냄새를 맡은 게 분명해.”
철컥. 쿵.
지상에서 무거운 군화 소리와 함께 낡은 고물상 정문 철판이 삐걱거리며 뜯겨 나가는 소리가 지하 아지트의 천장을 타고 내려왔다. 에이지스 특별수색대. 슬럼가 주민들의 이능력을 강제로 사냥해 정수를 채굴하는 군부의 사냥개들이 마침내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시우 너는 엄폐물 뒤로 숨어라. 내력의 대부분이 봉인된 나로서는 전면전은 무리지만, 늙은이의 수작으로 시선을 끌 수는...”
“아닙니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눈동자가 파란색과 보라색으로 번갈아 빛나기 시작했다. 가슴의 푸른 괴사 흉터가 격렬하게 요동치며 전신에 아드레날린을 주입했다. 아지트가 노출되는 순간, 기억을 잃은 자신을 거두어 준 유일한 스승인 한백현마저 에이지스의 실험실로 압송될 터였다. 피할 수 없다면, 여기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려야 했다.
시우는 지상으로 이어지는 지하 계단 모퉁이, 낡은 철제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지상에서 들려오는 수색대원들의 거친 숨소리와 전자기 스캐너의 삑삑거리는 작동음이 고막을 찔렀다.
“이봐, 이 고물상 지하에 비정상적인 에너지 맥동이 감지된다. 이능력자 쥐새끼가 숨어 있는 게 확실해.”
“즉각 수색하고 발견 즉시 정수를 추출한다. 저항하면 사살해.”
그들의 대화에서 자비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우는 심장 고동을 늦추며 전뇌 세포의 신경망을 다차원 격자망으로 확장했다. 머릿속에서 잠들어 있던 기묘한 이능력의 공식이 기하학적으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신체 파동을 쪼개어 동일한 물리력을 지닌 실체를 현실 세계에 투사하는 절대자의 권능.
‘양자 분신술(Quantum Clones).’
시우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츠츠츳!
시우의 몸에서 푸른빛 잔상이 분리되듯 뿜어져 나왔다. 전자기 스파크 노이즈와 함께, 시우의 실루엣과 완벽히 동일한 형상의 푸른 에너지체인 분신 ‘알파’가 시우의 전방에 실체화되었다. 알파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으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스파크는 본체인 시우와 동등한, 아니 오히려 물리 전투에 특화된 살벌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가라.’
시우의 뇌파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신 알파가 계단을 밟고 지상으로 폭발하듯 도약했다. 콰아앙!
공기를 찢는 듯한 소닉붐 소음과 함께 푸른 잔상이 지상의 고물상 마당을 휩쓸었다. 에이지스 정찰병 3명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푸른 유령의 모습에 경악했다.
“뭐, 뭐야! 각성자다! 사격...!”
탕! 타당!
정찰병들이 소총을 겨누고 격발했으나, 분신 알파는 기하학적인 궤적을 그리며 탄환의 궤적을 가볍게 우회했다. 물리 법칙을 왜곡하는 초고속 잔상 격투술이었다. 알파의 푸른 주먹이 첫 번째 정찰병의 턱을 그대로 후려쳤다. 콰직! 턱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정찰병 한 명이 공중으로 붕괴하듯 날아가 고철 더미에 처박혔다.
알파는 멈추지 않았다. 착지와 동시에 몸을 회전하며 두 번째 정찰병의 가슴팍을 강타했다. 쿠웅! 단단한 강철 군용 흉갑이 움푹 찌그러지며 정찰병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단 3초 만에 벌어진 압도적인 무력의 현장이었다.
엄폐물 뒤에서 분신의 시야를 공유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시우는 승기를 잡았다고 확신했다. 분신의 압도적인 힘에 전율을 느끼며, 이대로 마지막 한 놈마저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혹한 오판이었다.
“이 괴물 같은 녀석이...!”
마지막 남은 에이지스 정찰병이 광기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품에서 은빛 단검을 뽑아 들었다. 단순한 쇠붙이가 아니었다. 단검의 손잡이에 부착된 소형 배터리가 가동되자, 칼날 주변의 공간이 보랏빛으로 비틀리며 귀를 찢는 듯한 고주파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초당 수만 번 진동하여 분자의 결합 자체를 끊어버리는 에이지스의 살상 무기, ‘고주파 진동 단도’였다.
분신 알파는 자아가 없는 에너지체였기에 무기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정면으로 돌격했다. 정찰병이 비명을 지르며 진동 단도를 앞으로 내질렀다.
서걱.
기괴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 소리가 아지트 마당에 울렸다. 고주파 진동 단도의 칼날이 분신 알파의 가슴 정중앙을 그대로 관통했다. 분자 결합이 해체되는 파괴적인 진동 에너지가 알파의 푸른 양자 구조를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아... 아아악!”
그 순간, 지상의 분신 알파가 아닌, 지하 계단 뒤에 숨어 있던 본체 윤시우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
분신 제어 등가 교환 법칙. 소환된 분신은 본체와 감각과 고통을 실시간으로 완벽히 공유한다. 그리고 분신이 파괴될 때 발생하는 영혼의 훼손은 고스란히 본체의 뇌 신경으로 역류한다.
시우는 자신의 심장이 수만 조각으로 찢겨 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가슴을 쥐어짜며 돌바닥 위로 굴러떨어졌다. 전뇌 세포가 고열로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의 기억 중추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어렴풋이 복원되려던 은빛 은하수의 잔상들이 비명을 지르며 어둠 속으로 산산조각 나 사라졌다.
‘신경 링크를... 끊어야 한다...!’
시우는 필사적으로 분신과의 연결을 수동으로 절단하려 했다. 하지만 각성 초기인 그의 제어력으로는 가혹하게 몰아치는 고통의 소용돌이를 끊어낼 수 없었다. 지상에서 분신 알파의 형체가 푸른색 모래 먼지가 되어 허공으로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 시우의 전신 피부가 반투명하게 흐려지며 붕괴율 센서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삐비비빅! 삐비비빅!
손목에 이식되지 못한 채 아지트 구석에 놓여 있던 임시 안정제의 경고음이 사납게 울렸다. 시우의 양자 붕괴율은 안전선이었던 40%에서 순식간에 50%를 돌파해 치솟았다. 심장 부근의 푸른 괴사 흉터가 검붉은 피를 흘리며 시우의 가죽 코트를 적셨다.
“으윽... 으아아아악!”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붕괴 충격을 견디지 못한 시우는 결국 눈동자의 빛을 잃으며 차가운 아지트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의식이 암전되는 마지막 순간, 지상에서 정찰병을 완전히 침묵시킨 백현의 묵직한 발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기절했다가 어스름한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뜬 시우는, 가슴의 푸른 흉터를 움켜쥐며 뼈저린 진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양자 분신술은 무한한 기연이 아니었다. 능력을 남용하고 분신이 파괴될 때마다, 자신의 수명과 영혼이 영구히 깎여 나간다는 비장한 등가교환의 법칙.
그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수호자의 원죄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차갑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