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의 도살자
붉은 비상 조명이 터널을 가득 메우고, 강철 격벽이 차례로 내려앉으며 침투 팀이 좁은 지하 통로에 완전히 갇힌다. 저 멀리서 무거운 군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시우 씨, 정신 차려! 여기서 잡히면 진짜 끝장이야!”
어깨 부위가 찢어진 가죽 전술 슈트를 부여잡은 신재희가 윤시우를 부축하며 다급하게 소리쳤. 전자기 방해 전파(EMP) 노이즈 때문에 그녀의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은 일시적인 쿨타임에 걸려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터널 내부의 매캐한 탄내와 차가운 쇠 냄새가 목구멍을 찔렀다.
“후우…… 후우……”
시우는 깊은 양자 동조 호흡을 내쉬며 전뇌 세포의 파열될 듯한 두통을 억눌렀다. 손목에 이식된 휴대용 차원 안정기는 강제 이능력 가동의 반동으로 인해 백색 스파크를 뿜으며 위태롭게 점멸하고 있었다. 일주일간의 이능력 완전 봉인.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육체는 천근만근 무거웠고, 가슴의 푸른 괴사 흉터는 욱신거리며 검은 피를 조금씩 흘려보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붉은 경보등 아래에서도 차갑게 불타고 있었다.
“재희 씨, 경비대 놈들이 오기 전에 우회 배관을 찾는다. 내 손을 잡아.”
시우는 마력이 없는 상태에서도 과거 다중 우주 지배자로서 다져진 원초적인 초감각만으로 벽면 내부의 미세한 공기 흐름을 읽어냈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환기구 배관 덮개를 발견한 시우는 오른손의 마비감을 억누르며 온 힘을 다해 덮개를 뜯어냈다.
“이 아래다. 뛰어!”
두 사람은 군화 소리가 코앞까지 다다르기 직전, 좁은 수직 배관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둡고 축축한 미로 같은 배관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기를 수십 초, 마침내 도달한 곳은 수용소 지하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비밀 고문실이었다.
바닥에 착지한 시우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고문실 중앙, 거대한 강철 프레임에 쇠사슬로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는 노인의 형상. 스승 한백현이었다. 그의 목 뒤에는 과거 수호자 시절의 낙인이 흐릿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전신에 연결된 굵은 케이블들을 통해 푸른색 생체 에너지가 강제로 빨려 나가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은 핏기가 완전히 가신 채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거친 숨소리조차 희미했다.
“스승님……!”
시우가 이성을 잃고 앞으로 뛰어나가려던 찰나였다.
“쿠궁, 쿵. 끄끄끄…… 쥐새끼들이 결국 제 발로 도살장까지 기어들어 왔군.”
기괴하고 둔탁한 웃음소리가 고문실의 젖은 벽면을 타고 메아리쳤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자는 거대한 체구를 지닌 대머리의 사내였다. 가죽 장갑을 낀 손에는 굵은 전선들이 뱀처럼 뒤엉킨 채 노란색 전자기 스파크를 사납게 내뿜는 고압 채찍이 쥐여져 있었다. 에이지스 제9구역 수용소의 악독한 소장이자, 수많은 각성자들을 고문해 정수를 채굴해 온 도살자, 조필두였다. 그의 등 뒤로 중장갑으로 무장한 에이지스 기갑 병사들이 총구를 겨누며 삼엄하게 대형을 갖추었다.
“조필두……!”
시우의 입에서 짓이겨진 분노가 흘러나왔다.
“이 노인네의 정수가 아주 달콤하더군. 전직 수호자라 그런지, 빨아들여도 끝이 없어. 덕분에 내 육체의 밀도가 아주 터져나갈 것 같단 말이지.”
조필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가죽 채찍을 바닥으로 가볍게 내리쳤다.
파지직-!
채찍의 끝단에서 갈라져 나온 1000볼트 전압의 전류가 고문실 바닥의 철판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공기 중의 오존 타는 냄새가 극에 달하며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물러서라, 시우! 여긴 내가 막는다!”
그때, 고문실 뒤편의 부서진 통로를 뚫고 거구의 사내가 앞장서서 뛰어 들어왔다. 지하 저항군 ‘언더그라운드’의 대장, 김성태였다. 그의 등 뒤에 거치되어 있던 거대한 고철 방패 ‘이글리스’가 웅장한 기계음을 내며 그의 양손에 쥐여졌다. 방패 전면의 압력 센서가 활성화되며 푸른색 전자기 보호막이 웅장하게 전개되었다.
“성태 대장, 조심하십시오. 저 채찍에는 이능력을 억제하는 전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시우가 경고했으나, 조필두는 이미 채찍을 허공으로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다 함께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조필두가 채찍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노란색 전자기 스파크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통로 전체를 뒤덮었다.
김성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글리스 방패를 전방에 거치하며 정면에서 거치 방어를 단행했다.
쾅-! 파지직!
채찍의 끝날이 이글리스 방패의 티타늄 외판에 작렬했다. 방패 전면의 압력 센서가 비명을 지르며 유압식 완충 장치가 붉은 증기를 뿜어냈다. 하지만 조필두의 채찍은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채찍을 타고 흐르던 이능력 억제 전류가 방패의 금속 표면을 전도해 완충 장치의 내부 회로로 역류하기 시작했다.
지리리릭! 파지직!
“크으윽……! 방패의 회로가……!”
김성태가 이를 악물며 버텼지만, 방패 내부에서 미세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전류 과부하로 인해 이글리스의 정밀 제어 칩이 완전히 타버린 것이다. 완충 장치가 마비되자 방패는 그저 80kg짜리 무거운 고철 덩어리로 변해버렸다.
“하하하! 고작 그딴 쓰레기 방패로 내 채찍을 막겠다고?”
조필두의 대머리에 핏줄이 돋아나며 그의 고유 이능력인 ‘육체 비대화’가 기동되었다. 그의 근육과 뼈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팽창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신장 2.5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괴물로 변해버렸다. 비대해진 신체 밀도는 물리적 충격을 흡수하는 완벽한 장벽이 되어 있었다.
김성태가 방패 충격파를 발산해 조필두의 자세를 무너뜨리려 했으나, 완충 장치가 fried된 방패에서는 아무런 반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필두가 비대해진 어깨로 방패를 쥔 김성태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쿵-!
“끄아아악!”
엄청난 물리적 충격이 전도되며 김성태의 거구가 뒤로 날아가 벽면에 처참하게 처박혔다. 그의 가슴팍 뼈가 부러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글리스 방패가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김성태는 가슴을 움켜쥔 채 검은 피를 토해내며 주저앉았다. 정면 방어선이 완전히 붕괴한 것이다.
“성태 대장!”
신재희가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갔다.
이제 조필두와 시우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필두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시우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자, 이제 네놈 차례다. 양자의 수호자 어쩌고 하더니, 지금은 마력 한 톨 느껴지지 않는 껍데기뿐이군.”
조필두가 다시 한번 고압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공기를 찢는 파열음을 내며 시우의 허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시우는 이능력이 완전히 봉인된 상태였다. 분신 소환도, 위상 전환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했다. 그는 전술 교관 김상사에게 받았던 가혹한 근접 격투 훈련을 떠올렸다.
‘적의 어깨를 봐라. 아무리 강한 무기를 휘둘러도, 인간의 관절은 공격 직전에 반드시 예비 동작을 취하게 되어 있다.’
시우의 두 눈이 조필두의 오른쪽 어깨에 고정되었다. 조필두가 채찍을 휘두르기 직전, 그의 오른쪽 승모근이 미세하게 3센티미터 위로 들렸다. 군사적인 버릇이었다.
시우는 마력이 없는 순수한 육체의 탄성만을 이용해 바닥을 굴렀.
촤아아앙-!
채찍이 시우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바닥 철판을 타격하며 깊은 그을음과 균열을 남겼다. 시우의 가죽 코트 자락이 전자기 스파크의 열기에 그슬려 타들어 갔다.
“이 쥐새끼가 제법 잘 피하는군!”
조필두가 분노하며 연속으로 채찍을 내리쳤다. 시우는 벽면의 파이프를 딛고 도약하며, 종이 한 장 차이로 채찍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전뇌 세포가 고열로 타들어 가듯 지독한 두통이 뇌리를 강타했지만, 그는 이빨을 깨물며 버텼다. 오직 순수한 물리적 회피 기동만으로 사선의 포화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계는 명확했다. 마력이 없는 일반인의 육체로 B급 체구 비대화 능력자의 연속 공격을 영원히 피할 수는 없었다. 복도가 무너진 잔해로 가득 차며 시우의 회피 반경이 급격히 좁아졌다.
“끝이다, 이 쥐새끼야!”
조필두가 뿜어내는 기괴한 살기가 고문실의 산소를 얼려버릴 듯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조필두는 채찍의 손잡이를 강하게 쥐며 전신에 남은 마력을 채찍 끝으로 집중시켰다. 채찍의 전류가 눈부신 백색 광선으로 변하며 주변의 공기를 녹여버릴 듯한 기세로 진동했다. 1000볼트 전압의 피니시 타격이 준비되고 있었다.
조필두의 채찍이 김성태의 쓰러진 고철 방패 이글리스를 휘감아 단숨에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방어 수단마저 완전히 사라진 순간이었다.
무방비해진 시우의 머리 위로, 고압 전류가 사납게 번쩍이는 채찍의 끝날이 무자비하게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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