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의 잠입
버려진 지하철 3호선 터널의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사방으로 뻗은 녹슨 선로 위로 희미한 오렌지색 비상등이 지직거리며 주황빛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윤시우는 침상 끝에 걸터앉아 자신의 왼쪽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가죽 코트 소매 아래로 단단히 고정된 휴대용 차원 안정기가 미세하게 푸른 빛을 발산하며 나노 수액을 정맥에 주입하고 있었다. 양자 붕괴율은 55%. 이우진과의 사투 끝에 강행했던 ‘양자 회귀’의 반동으로 전신의 마력이 얼어붙은 듯 잠잠했다. 일주일간의 이능력 완전 봉인. 지금의 그는 초월적인 다중 우주의 지배자가 아닌, 그저 가슴의 괴사 흉터에서 간헐적인 통증을 느끼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시우?”
거구를 이끌고 다가온 김성태가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등 뒤의 고철 방패 ‘이글리스’를 고쳐 멨다. 방패의 유압 실린더가 지직거리며 뜨거운 증기를 내뿜었다.
“움직이는 데는 지장 없습니다.”
시우가 차분하게 대답하며 이진수에게서 탈취한 에이지스 기밀 보안 카드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금속 카드의 모서리가 손가락 마디를 자극했다.
그때, 정보실의 낡은 격벽 뒤에서 두 명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김성태가 가리킨 저항군의 정예 잠입 요원들이었다. 한 명은 검은색 밀착 슈트를 입고 몸 주변으로 그림자 같은 검은 연기를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날카롭고 과묵한 인상의 20대 여성, C급 그림자 조작자 진아란이었다. 다른 한 명은 머리에 고글을 얹은 채 가벼운 가죽 슈트를 입고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C급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자 신재희였다.
“이 친구가 수송대를 털고 안정기를 쟁취한 그 유령 청년이군.”
신재희가 시우의 손목에 이식된 안정기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반가워. 난 신재희. 공간을 조금 접을 줄 알지. 옆의 아란이는 말수가 적으니까 내가 대신 소개해 주는 거야.”
진아란은 말없이 고개를 가볍게 숙여 보였을 뿐, 그녀가 쥔 특수 흑요석 단검의 칼날 끝에서 검은 그림자 기류가 소리 없이 아른거렸다.
“시간이 없다.”
시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의 푸른 괴사 흉터가 욱신거렸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조필두가 수용소의 정수 추출 실험을 앞당겼다. 이진수의 동생과 한 노인네를 구하려면 지금 침투해야 한다. 유리가 분석한 경로대로 움직이지.”
신유리가 띄워놓은 홀로그램 지도가 깜빡였다. 에이지스 제9구역 수용소의 외곽 경비 동선과 무인 포탑들의 위치가 정밀하게 붉은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침투 팀은 김성태의 묵직한 배웅을 뒤로하고, 어두운 지하 배수관을 통해 수용소의 외곽 경계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수용소 외곽은 삼엄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하늘을 찢어발긴 거대한 보랏빛 차원 균열 아래로 50미터 높이의 거대 콘크리트 장벽이 가로막았고, 장벽 상단에 배치된 무인 자동 포탑들이 붉은색 스캔 레이저를 사방으로 방사하고 있었다.
시우는 숨을 죽인 채 장벽 모퉁이의 철제 격벽 리더기 앞에 섰다. 손목의 안정기가 마력을 쓸 수 없음을 경고하며 미세하게 진동했다. 시우는 가죽 코트 안주머니에서 이진수에게 탈취한 기밀 보안 카드를 꺼내 리더기에 가볍게 접촉했다.
삑-
녹색 LED 불빛이 점멸하며 둔탁한 기계음과 함께 강철 격벽이 소리 없이 열렸다. 동시에 장벽 상단의 무인 포탑들이 가동을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이진수의 카드가 가진 1차 보안 해제 코드가 완벽하게 작동한 것이다.
“진입한다.”
시우의 낮은 지시에 진아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양손을 펼치자,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그림자 연기가 순식간에 팽창하며 침투 팀의 사방을 감싸 안았다.
진아란의 고유 기술, ‘그림자 장막’이었다.
차가운 액체 obsidian 같은 어둠이 시우와 재희의 몸을 완전히 덮었다. 외부의 빛은 물론, 에이지스 정찰병들의 최첨단 열화상 스캐너 신호마저 완벽히 흡수하는 은신막이었다.
“3시 방향, 정찰병 4명 접근.”
시우는 이능력이 봉인되어 감각을 확장할 수 없었지만, 과거 다중 우주 지배자로서 다져진 원초적인 시각과 청각만으로 안개 속 경비병들의 미세한 군화 소리를 포착해 냈다. 그의 지시에 진아란이 그림자 장막의 농도를 조절하며 벽면에 완전히 밀착했다.
에이지스 수색대원들이 전자기 소총을 든 채 그들의 코앞을 지나갔다. 붉은색 스캐너 광선이 그림자 장막 표면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장막은 아무런 열 신호도 방출하지 않았다. 경비병들이 멀어지자 신재희가 나직하게 감탄했다.
“와우, 시우 씨.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감각이 사냥개 수준이네. 어떻게 알았어?”
“소리와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잡담할 시간 없다. 다음 격벽으로.”
그들이 도달한 곳은 수용소 1차 내부 제어실 앞이었다. 강철 문 너머로 제어 콘솔의 푸른 홀로그램 불빛이 보였다. 하지만 문 앞의 복도에는 두 기의 자동 레이저 포탑이 충전 주파수를 내뿜으며 삼엄하게 사각지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내 차례네.”
신재희가 고글을 고쳐 쓰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전방의 공간을 가볍게 응시하는 순간, 공기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파지직-
찰나의 순간, 공간의 마찰열로 인한 미세한 스파크 소리와 함께 신재희의 신체가 복도 끝 제어 콘솔 뒤편으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단거리 순간이동이었다.
그녀는 나타나자마자 품에서 특수 나이프를 꺼내 포탑과 연결된 광섬유 배선을 단숨에 잘라냈다. 포탑의 보랏빛 조준선이 깜빡이다가 완전히 꺼졌다. 재희가 콘솔의 차단 레버를 내리자, 지하 심층부로 통하는 거대한 강철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성공이야. 어서 들어와!”
재희가 손을 흔들며 나직하게 외쳤다. 시우와 아란이 그림자 장막을 거두고 빠르게 문 너머로 진입했다. 수용소 깊숙한 곳, 스승 한백현이 갇혀 있을 지하 고문실과 랩-9 연구소로 통하는 나선형 터널이었다.
하지만 시우가 열린 문턱을 완전히 넘어선 그 순간.
띠리리릭-!
지하 터널 바닥에 매설되어 있던 원형 스캐너 플레이트가 기괴한 주파수 소리를 내며 붉은 빛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경고. 비정상적인 미세 양자 잔상 감지. 침입자 스캔 개시.]
“뭐야?! 배선은 분명히 차단했는데!”
신재희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순식간에 씻겨 내려갔다.
시우는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에이지스 군부의 보안 장비가 아니었다. 배신자 대장장이 독고영이 형 독고진의 기술을 훔쳐 개조한 최첨단 ‘양자 잔상 분석 레이더’의 하위 호환형 센서였다. 시우의 손목에 이식된 프로토타입 차원 안정기가 붕괴율 55%를 유지하기 위해 방출하던 극미량의 미세 양자 누출 파동을 정확히 포착해 낸 것이다.
위이이이이이잉-!
터널 전체를 가득 메우는 찢어질 듯한 비상 사이렌 소리와 함께, 천장에 매달린 회전식 비상 조명등이 붉은 광선을 광폭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안 돼!”
신재희가 비명을 질렀다. 천장에서 두께 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강철 격벽 세 개가 무서운 속도로 내려앉으며 통로를 차단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격벽이 완전히 닫히면 침투 팀은 좁은 터널 사이에 갇혀 압사당하거나 밀폐된 공간에서 몰살당할 터였다.
격벽이 내려앉는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미 첫 번째와 두 번째 격벽이 바닥에 닿으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대지를 흔들었다. 마지막 세 번째 격벽마저 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앉으며 틈새가 단 10센티미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탈출구는 없었다. 신재희가 동료들을 모두 데리고 순간이동을 시도하려 했으나, 비상 경보와 동시에 사방에서 살포된 전자기 방해 전파(EMP) 노이즈로 인해 공간 인지 회로가 교란되어 도약 범위를 초과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비켜라!”
윤시우의 두 눈이 파랗게 빛났다. 이능력이 봉인되어 마력이 흐르지 않는 전뇌 신경망이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지금 격벽을 넘지 못하면 스승을 영원히 잃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자신의 봉인된 신경계를 강제로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시우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손목의 차원 안정기가 과부하로 인해 찌르르 비명을 지르며 백색 스파크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가슴의 푸른 괴사 흉터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내뿜었지만, 그는 신경의 가속을 멈추지 않았다.
세포 수준에서 분자 구조를 일시적으로 고정하는 비술, ‘위상 고정(Phase Lock)’이었다.
마력이 억눌린 육체가 비명을 질렀으나, 시우는 0.01초의 찰나에 자신의 신체 분자 진동수를 Descending하는 강철 격벽의 틈새 주파수와 일치시켰다. 그의 손바닥이 반투명한 푸른빛으로 흔들리며 내리꽂히는 격벽의 틈새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
스사사삭-
시우는 격벽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그 좁은 강철 틈새를 유령처럼 통과해 내며 반대편 바닥으로 거칠게 굴렀다. 그 순간 그는 뒤처져 있던 신재희의 옷자락을 강하게 낚아채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콰아앙-!
마지막 세 번째 격벽이 바닥과 충돌하며 귀를 찢는 듯한 폭음을 내뿜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신재희는 무사히 격벽 너머로 끌려왔으나, 격벽 돌파 과정에서 그녀의 전술 가죽 슈트 어깨 부위가 날카로운 강철 모서리에 걸려 찌지직 찢겨 나갔다.
“쿨럭, 컥……!”
시우는 바닥에 엎드린 채 검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무리하게 봉인을 깨고 이능력을 가동한 대가로 손목의 안정기가 격렬하게 요동쳤고, 전신의 신경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몰려왔다. 양자 붕괴율 센서가 붉게 깜빡였다.
“시우 씨! 괜찮아?!”
신재희가 찢어진 슈트를 부여잡고 당황한 표정으로 시우를 부축했다. 격벽 너머에 홀로 남겨진 진아란은 두꺼운 강철벽을 주먹으로 두드렸지만, 1미터 두께의 격벽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완벽한 분단이었다.
위이이이이잉-
붉은 비상 조명이 좁고 어두운 터널 내부를 피비린내 나게 적셨다. 사방이 꽉 막힌 철창 같은 통로.
철컥, 철컥, 철컥.
저 멀리 어둠이 내리앉은 터널 심층부의 복도 끝에서, 수십 명의 무장한 군인들이 내딛는 웅장하고 무거운 군화 소리가 붉은 벽면을 타고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수용소 소장 조필두의 정예 요격 부대가 사냥감을 처리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