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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의 빗자루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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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낡은 나무 대문이 거친 발길질에 박살 나며, 붉은 횃불의 일렁이는 빛과 함께 흑사도의 거구와 철사방 무사들이 방 안으로 난입했다.


“매캐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구나. 어이, 장님 책사. 밤중에 불도 안 켜고 대체 방 안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었던 게냐?”


흑사도의 걸걸한 목소리가 좁은 안방의 공기를 사납게 짓눌렀다. 그의 어깨에 걸쳐진 이가 빠진 검은 대도가 일렁이는 횃불 빛을 받아 기괴한 형상을 그려냈다. 그 뒤를 따르는 네 명의 철사방 무사들이 들고 있는 횃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그을음 향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순간, 제갈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차가운 경련이 일어났다. 매캐한 불내음, 흔들리는 횃불의 붉은 그림자. 뇌리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8년 전 황실 장서각의 불길이 환각처럼 솟구쳐 올랐다. 동료들의 비명 소리가 귀를 찢는 듯했고,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PTSD의 고통이 그의 전신을 옥죄었다. 제갈휘는 붕대 아래의 먼 눈을 감은 채, 손끝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청죽장을 꽉 움켜쥐었다. 심장이 요동치고 호흡이 가빠지려 했다.


‘흔들리지 마라. 지금 내가 평정을 잃으면 설하도, 백 어르신도 모두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한다.’


제갈휘는 청혈심공을 운용해 요동치는 심장박동을 강제로 가라앉혔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가늘고 길게 조율하자, 귓가를 어지럽히던 불길의 환청이 서서히 걷히고 사방의 미세한 소리들이 다시 입체적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흑사도가 코를 킁킁거리며 방 안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의 눈빛이 음험하게 빛났다.


“단순히 한약재 타는 냄새가 아니로군. 이 비릿하고도 뼛속까지 시리게 만드는 피비린내는 대체 뭐란 말이냐? 마치 얼어붙은 강물 바닥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나는구나.”


흑사도가 대도를 천천히 내리며 침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침상 위에는 기맥오행침법으로 한기가 임시 봉인된 채 혼절해 있는 설하가 누워 있었다. 이불로 덮어두었으나, 적들의 예리한 눈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백노인은 전신 내력을 소모해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침상 옆에 주저앉아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그때, 백노인이 가식적인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허허허, 흑사도 대장님 아니십니까. 이 늙은이가 밤중에 사냥꾼 돌쇠 녀석이 덫으로 잡아 온 멧돼지 피를 달여 약재로 쓰려다 보니 방 안이 온통 피비린내로 진동을 한 모양입니다. 멧돼지 피가 워낙 비리다 보니 오해를 하셨구려.”


“멧돼지 피라고?”


흑사도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백노인을 쏘아보았다.


“늙은이, 자네가 왜 이 장님 놈의 낡은 서가에 밤늦게까지 붙어 있는 거지? 그리고 멧돼지 피가 어째서 이리도 시린 기운을 풍긴단 말이냐?”


“아이고, 나으리들. 누추한 서고에 순찰을 다 오시고…….”


제갈휘가 서투르고 나약한 장님 서생의 목소리를 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마당 구석에 세워두었던 대나무 빗자루를 더듬거리며 잡았다.


“방 안이 워낙 더럽고 흙먼지가 많아 나으리들의 고귀한 가죽 장화에 흙이 묻을까 걱정됩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제가 바닥이라도 쓸어 드려야지요.”


스스스슥, 스스스슥.


제갈휘는 태연하게 대나무 빗자루를 잡고 안방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거칠고 투박한 비질 소리가 방 안의 긴장감을 기묘하게 흐트러뜨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비질이 아니었다.


빗자루 끝이 낡은 목재 바닥과 바닥에 깔린 흙먼지에 닿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이 빗자루 대를 타고 제갈휘의 손끝으로 전달되었다. 제갈휘는 청풍감각을 극대화하여 그 진동의 파동을 머릿속에서 완벽한 지형도로 재구성했다.


‘하나, 둘, 셋, 넷…… 총 다섯 명.’


흑사도의 발 디딤은 무겁고 강직했다. 그의 무게중심은 오른발 뒤꿈치에 7할 이상 쏠려 있었다. 사대도법(沙大刀法)을 수련한 자 특유의, 하체를 단단히 고정하고 상체의 완력으로 대도를 휘두르는 전형적인 외공 무사의 보법이었다. 보폭은 두 자 반. 좌측 겨드랑이 아래 기맥의 흐름이 미세하게 둔탁한 것으로 보아, 과거 그 부위에 깊은 타격을 입은 적이 있음이 분명했다.


나머지 네 명의 부하들은 호흡이 거칠고 내력이 얕은 삼류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발소리는 가벼우나 규칙성이 없어 제갈휘가 빗자루 끝으로 일으키는 기류의 변화만으로도 그들의 정확한 위치와 칼끝의 방위를 소수점 단위로 예측할 수 있었다.


“이 장님 놈이 미쳤나! 어디서 먼지를 피우는 게냐!”


부하 무사 하나가 제갈휘의 비질에 흙먼지가 날리자 기침을 하며 거칠게 소리쳤다.


“형님, 이 방 안에는 늙은 의원 놈과 눈먼 서생밖에 없습니다. 샅샅이 뒤져서 숨겨둔 돈궤나 장서각 비급 조각이라도 찾아내지요!”


흑사도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침상 쪽을 노려보았다.


“비켜라, 장님 놈아. 내 눈으로 직접 침상 위를 확인해봐야겠다.”


흑사도가 거구의 신형을 움직여 침상으로 다가가려던 바로 그 순간, 마당 외곽을 수색하던 부하 무사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방 안을 향해 소리쳤다.


“대장님! 이쪽 마당 구석에 서리 같은 게 하얗게 낀 핏자국이 있습니다! 돼지 피가 아니라 아주 시퍼렇고 차가운 피 흔적입니다! 마당 바닥도 얼어붙어 있습니다!”


흑사도의 안광이 번뜩였다. 그는 즉시 대도를 치켜들며 제갈휘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서슬 퍼런 칼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도기가 제갈휘의 얇은 마의 깃을 스쳤다.


“장님 놈이 감히 우리를 기만하려 들었구나! 돼지 피라고? 마당의 서리 핏자국은 대체 무엇이냐! 이 방 안을 샅샅이 뒤져라! 침상 위의 이불까지 전부 찢어발겨라!”


무사들이 일제히 침상을 향해 쇄도하려 했다. 일촉즉발, 설하의 정체가 탄로 나고 백노인의 목숨이 날아갈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제갈휘의 뇌리 속 총명기의 서고가 번개처럼 회전했다. 흑사도의 대도 궤적, 좁은 안방의 가구 배치, 바닥의 먼지 밀도까지 모든 수치가 기하학적으로 연산되었다.


‘지금이다.’


제갈휘는 빗자루를 쥐고 있던 오른손 손목을 부드럽게 꺾으며 고목수선장(枯木手禪杖)의 비결을 기동했다. 내력이 전혀 없는 신체였으나, 관절의 회전력과 무게중심의 이동만으로 폭발적인 속도를 만들어냈다.


청죽 선풍 흘리기(靑竹 旋風 拂)의 기예가 대나무 빗자루 끝에서 실체화되었다.


스아아아악!


제갈휘가 빗자루 끝을 바닥에 밀착시킨 채 나선형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아궁이 주변에 쌓여 있던 시커먼 재와 바닥의 마른 흙먼지가 세찬 소용돌이를 그리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순식간에 횃불의 불빛이 흐려지고, 안방 내부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자욱한 흙먼지 장막으로 가득 찼다.


“콜록! 쿨럭! 으아악! 눈이!”


“이 눈먼 개새끼가 미쳤나!”


무사들이 들이닥친 먼지 폭풍에 눈을 움켜쥐며 비명을 질렀다. 횃불을 들고 있던 무사들은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에 횃불이 꺼질 듯 흔들리자 당황하여 제자리에 멈춰 섰다.


“죽여라! 그 장님 놈의 목을 베어라!”


흑사도가 분노로 포효하며 대도를 사납게 내리쳤다. 사대도법의 묵직한 하강 참격이 먼지 장막을 찢으며 제갈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대도가 가르는 공기의 파공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제갈휘는 눈이 보이지 않았으나, 칼날이 공기를 찢으며 발생하는 미세한 기압의 변화를 귀와 피부로 완벽히 읽어내고 있었다.


‘오른발 뒤꿈치 고정, 참격의 각도는 정남향에서 동쪽으로 삼 도 기울어짐. 속도는 빠르나 중심이 앞으로 쏠려 있다.’


제갈휘는 단 한 치의 당황도 없이, 왼쪽으로 반 보 미세하게 몸을 비틀었다. 칼날이 그의 귀밑 붕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제갈휘는 대나무 빗자루의 대를 흑사도의 앞발 디딤축인 오른발 장화 발가락 끝에 정확히 밀어 넣었다. 빗자루 손잡이를 지렛대 삼아 가볍게 위로 들어 올리는 미세한 회전 타격이었다. 고목수선장의 흘리기 요령이었다.


“엇……!”


흑사도는 자신의 참격이 허공을 가른 것에 당황한 순간, 오른발 끝이 대나무 빗자루 대에 걸려 공중에 뜨며 무게중심이 완벽히 무너졌다. 거구의 신형이 앞으로 강하게 쏠렸다.


쉬이익! 쾅!


흑사도가 휘두른 거대한 대도는 제갈휘의 목 대신 안방의 단단한 나무 문설주를 정면으로 내리찍었다.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대도가 문틀 깊숙이 박혀 고정되었고,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으아아악!”


중심을 잃은 흑사도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며 박살 난 나무 문짝 더미 위로 처참하게 굴러떨어졌다. 먼지 구덩이 속에서 거구가 볼품없이 구르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아이고! 나으리들! 제 손이 미끄러졌습니다! 장님이 비질을 서투르게 하다 그만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으리들!”


제갈휘는 빗자루를 떨어뜨리고 마당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덜덜 떠는 연기를 펼쳤다. 그의 목소리는 겁에 질린 초라한 장님 서생 그 자체였다.


먼지 장막이 서서히 가라앉자, 흙먼지와 재로 온통 뒤덮인 철사방 무사들의 비참한 몰골이 드러났다. 흑사도는 문틀에 박힌 대도를 억지로 빼내며 흙먼지를 뱉어냈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굴욕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퉤! 퉤! 이 재수 없는 장님 새끼가……!”


흑사도가 칼을 치켜들고 제갈휘의 목을 치려 했으나, 곁에 있던 부하 무사 하나가 그의 소매를 황급히 잡아끌었다.


“대, 대장님! 참으십시오! 이 장님 놈은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폐인입니다. 방금은 그저 먼지 속에서 발이 미끄러져 우연히 일어난 사고일 뿐입니다. 괜히 이런 쓸모없는 장님 놈을 죽였다가 현상금 수색에 차질이 생기면 방주님께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흑사도는 씩씩거리며 제갈휘를 노려보았다. 제갈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의 낡은 마의 소매 끝은 흑사도의 도기에 스쳐 찢어져 있었고, 내력이 없는 신체는 극심한 한기 부하로 인해 가벼운 오한을 느끼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초라하고 무력한 장님의 모습이었다.


“……쯧! 재수 없는 장님 놈의 집구석이라 먼지만 가득하구나! 멧돼지 피 썩는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어이, 늙은이! 돼지 피나 잘 달여 먹고 빨리 이 골짜기에서 꺼져라!”


흑사도는 침을 퉤 뱉으며 대도를 거칠게 칼집에 쑤셔 넣었다.


“가자! 이런 먼지 구덩이에 장서각 생존자 같은 거물이 숨어들었을 리가 있겠느냐. 다른 구역을 수색한다!”


철사방 무사들은 횃불을 든 채 엽락소축의 박살 난 대문을 지나 마당 바깥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들의 거친 군마 발소리가 멀어지며 마침내 만황곡 깊은 밤의 정적이 다시 찾아왔다.


방 안의 먼지가 완전히 가라앉자, 백노인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눈빛에는 제갈휘를 향한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과 공포가 서려 있었다. 무공이 전혀 없는 몸으로, 오직 대나무 빗자루 하나와 미세한 보법 이동만으로 일류 수준의 사파 돌격대장을 완벽히 농락해 내보낸 것이다.


“제갈 선생…… 자네는 대체 어떤 괴물이란 말인가.”


제갈휘는 대답 대신 바닥에 떨어진 청죽장을 더듬어 쥐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귀밑에서 멈췄던 핏방울이 다시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다관 뒤편의 대나무 숲 장막이 거칠게 열리며, 땀에 젖은 거친 발자국 소리가 엽락소축 마당으로 쇄도했다.


사냥꾼 청년 돌쇠(Dol-soe)였다. 그의 얼굴은 횃불빛 없이도 하얗게 질려 있었고, 가슴을 헐떡이며 안방 문틀을 붙잡았다.


“제, 제갈 형님! 큰일 났습니다! 방금 철사방 본타에서 전령이 내려왔는데…… 철사방 놈들이 만황곡 입구를 통째로 목책으로 봉쇄하고, 약초꾼들과 주민들에게 살인적인 통행세를 갈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항하는 송 영감님은 다리가 부러지도록 매를 맞으셨습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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