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기의 눈, 열두 곳의 파혈
“끄으으윽……!”
설하의 턱끝에서 피비린내 섞인 신음이 짓눌려 나왔다. 백골령의 거친 암반 바닥에 처박힌 무릎 관절이 비정상적으로 어긋나며 뼈가 삐걱거리는 비명이 협곡의 정적을 찢었다.
조광렬의 백오십 근짜리 강철대도가 뿜어내는 검붉은 철사도강(鐵沙刀罡)은 마치 거대한 태산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압도적인 중량으로 그녀의 머리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설하가 양손으로 치켜든 한빙철검(寒氷鐵劍)의 검신 표면에는 이미 거미줄 같은 균열이 파멸적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검날을 타고 흘러든 탁하고 뜨거운 사철 도기가 그녀의 손목 경맥을 타고 들어와 단전을 사정없이 헤집어 놓았다. 전신이 오한과 발열로 동시에 진동하며 손끝의 푸른 동상 멍 자국 위로 검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내력이 오염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든 기동 불능의 사지(死地).
“으하하하! 쥐새끼 같은 년! 네년의 그 얄팍한 얼음 장난은 내 철사방의 무쇠 대도 앞에서는 한 줌의 성에에 불과하다!”
조광렬은 승리를 확신한 듯 광포한 웃음을 터뜨렸다. 놈은 단전의 남은 진기까지 모조리 쥐어짜 올리며 강철대도를 아래로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붉은 모래바람이 대도 주변으로 무섭게 소용돌이치며 설하의 목덜미 일 촌 앞까지 참격을 밀어붙였다.
그 처절한 파멸의 순간, 제갈휘는 갈라진 청죽장(靑竹杖) 끝을 대지에 지탱한 채 꼿꼿이 서 있었다. 귀밑과 코끝에서 흘러내린 붉은 피가 그의 창백한 턱선을 타고 청죽장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청혈심공 2단계를 한계 너머까지 가동한 대가로, 그의 머릿속은 수천 개의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과 함께 왼쪽 귀에서 고주파의 울음소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성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눈먼 사서의 어둠뿐인 세계 속에서, 제갈세가 특유의 비전 기억술인 제갈세가 총명기(聰明記)가 맹렬한 속도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조광렬이 내뿜는 사대도법(沙大刀法)의 거친 파공음, 붉은 사철이 바위에 쓸리는 마찰음, 그리고 놈의 단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불규칙한 호흡의 고저차. 그 모든 소리의 파동이 제갈휘의 머릿속 가상 서고 위에서 하나의 정교한 삼차원 기하학적 맥로(脈路)로 변환되어 해체되었다. 놈의 무공은 강맹하고 파괴적이지만, 기맥을 극단적으로 과부하 시킨 탓에 진기가 순환하는 마디마디마다 치명적인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사대도법의 초식 변화는 직선적이다. 놈이 완력을 실어 대도를 내리누르는 순간, 폭주하는 진기를 감당하지 못해 체내 기맥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열두 곳의 움직이는 빈틈…… 파혈(破穴)이 존재한다.’
제갈휘의 피 묻은 입술이 미세하게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오직 설하의 고막만을 울리는 전음입밀(傳音入密)이 되어 맑게 흘러들었다.
(설하야…… 내 목소리를 들어라. 지금 네 무릎을 누르는 적의 도강을 힘으로 버티려 하지 마라. 그것은 스스로를 부러뜨리는 짓이다. 오히려 놈이 내리누르는 참격의 회전축을 타고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야 한다.)
설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붉은 도강이 목덜미를 스치며 살가죽을 태우는 극통 속에서, 스승의 전음은 그녀의 영혼을 붙잡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하지만 스승님, 제 한빙철검은 이미 균열이 깊어 직접 부딪치는 순간 부서질 것입니다. 내력 또한…….)
(검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네 검은 놈의 대도를 베기 위한 것이 아니다. 놈의 폭주하는 진기 흐름 속, 내가 부르는 열두 곳의 파혈을 차례로 타격해 기맥의 역류를 유도해야 한다. 놈의 힘이 강할수록 역류하는 반탄력은 놈의 단전을 먼저 파괴할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좌표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찔러라. 나를 믿어라.)
스승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의구심도 끼어들 틈이 없는 절대적인 확신이 서려 있었다. 설하는 떨리는 검자루를 쥔 손가락 마디에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스승을 향한 종교적인 충성심이 그녀의 단전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마지막 한 줌의 극음 진기를 깨워 올렸다.
설하는 핏빛 모래바람 속에서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오직 스승이 전해주는 소리의 좌표만을 이정표 삼아, 그녀는 자신을 누르던 대도의 참격 안쪽으로 신형을 기울였다.
스스슥.
그것은 방어가 아닌, 스스로를 적의 칼날 아래로 밀어 넣는 자살행위와도 같았다. 조광렬의 대도가 설하의 어깨 가죽을 스치며 붉은 피를 뿜어내게 만들었으나, 설하는 비명을 삼키며 빙천보(氷天步)의 유연한 회전력을 이용해 대도의 측면 평평한 면을 타고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갔.
(첫 번째 좌표. 우측 삼 촌, 상단 일 척. 겨드랑이 아래 음도혈(陰都穴)이다. 망설임 없이 검 끝을 밀어 넣어라.)
제갈휘의 전음이 그녀의 뇌리를 때리는 찰나, 설하는 눈을 감은 채 한빙철검을 수평으로 곧게 뻗었다. 검신 표면의 균열 사이로 시린 푸른빛 한기가 서리꽃처럼 피어오르며, 조광렬의 겨드랑이 아래 첫 번째 파혈을 향해 날카롭게 쏘아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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