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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의 진동, 보이지 않는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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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도광(刀光)이 밤하늘의 짙은 안개를 찢으며 사정없이 내려앉았다. 철사방주 조광렬이 내뿜는 이류 극성의 사파 도기는 백골령의 청석 바닥을 가볍게 쪼개버릴 만큼 파괴적이었다. 톱날 모양의 거대한 강철대도가 울부짖으며 제갈휘의 무릎 관절을 향해 쇄도하는 찰나, 설하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 걸린 핏덩이 때문에 컥컥거리는 신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제갈휘의 세계는 암흑이었으나, 그 암흑 속에서 소리와 공기의 흐름만큼은 그 어떤 고수의 눈보다 선명한 기하학적 선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도강의 너비 세 자 반. 하강 속도 초당 오 장. 우측 어깨의 기맥이 꺾이는 각도 사십오 도.’


제갈휘의 머릿속 청혈심공 2단계(淸血心功)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뇌맥이 끊어질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찌르고, 왼쪽 귀에서는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한 이명이 고막을 찢어발겼다. 귀밑으로 흘러내린 붉은 피가 목덜미를 적셨지만,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릴지언정 흐트러지지 않았다.


스으으읍.


제갈휘는 나직하게 숨을 들이쉬며 몸을 반 보 뒤로 비틀었다. 무공이 없는 폐인의 육체로는 적의 도강을 정면으로 막는 순간 뼈가 가루가 될 터였다. 그러나 그는 힘으로 맞설 생각이 없었다.


제갈휘의 손에 쥔 청죽장(靑竹杖)이 허공에 부드러운 원형의 호를 그렸다. 청죽 선풍 흘리기(靑죽 선풍 흘리기)의 기예였다.


지팡이의 끝자락이 쇄도하는 강철대도의 측면, 도신(刀身)의 가장 힘이 실리지 않는 회전축의 중심부를 스치듯 맞닿았다. 제갈휘는 팽이의 회전축을 비틀듯, 지팡이를 시계 방향으로 아주 미세하게 회전시켰다. 십오 도의 각도 편차. 그것만으로도 조광렬이 온 힘을 실어 내리치던 강철대도의 궤적이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콰아아앙!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품은 붉은 도강이 제갈휘의 무릎 바로 옆 청석 바닥을 스쳐 지나가, 등 뒤에 솟아 있던 거대한 바위를 정면으로 타격했다. 바위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나고, 날카로운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매캐한 먼지 바람이 백골령의 안개와 뒤섞여 일렁였다.


“컥……!”


제갈휘의 입가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 비록 적의 도풍을 완벽하게 흘려보냈으나, 내력이 전혀 없는 육체로 일류 고수의 반탄력을 받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의 손바닥 가죽이 청죽장과의 마찰로 인해 미세하게 찢어지며 붉은 피가 배어 나왔고, 청죽장의 끝부분이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그의 예리한 청각에 잡혔다. 귀밑의 피 상흔이 한층 더 붉게 번졌다.


조광렬은 자신의 일격이 허공을 가르고 옆의 바위를 산산조각 낸 것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놈의 눈동자가 분노와 의구심으로 뒤틀렸다.


“이, 이 장님 새끼가…… 방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무공이 전혀 없는 장님이 자신의 전력을 실은 참격을 흘려보냈다는 사실을 조광렬의 얄팍한 무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놈은 다시 한번 대도를 치켜들려 했다. 벼랑 끝에 묶여 있는 삼월이와 칠성이의 사슬이 조광렬의 거친 움직임에 맞춰 촤르르릉 소리를 내며 요동쳤다.


제갈휘는 찢어진 손바닥의 통증을 묵묵히 견디며, 갈라진 청죽장 끝을 바닥에 가볍게 툭, 쳤다.


탁.


아주 미세한 마찰음이었다. 먼지 소동과 조광렬의 고함 소리에 묻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못한 소리였다. 하지만 청죽장 끝에서 발생한 미세한 진동은 청석 바닥을 타고 흘러가, 삼월이와 칠성이의 목덜미를 조이고 있던 쇠사슬 자물쇠 고리의 가장 취약한 연결 요처를 정확히 타격했다.


지직.


녹슬고 팽팽하게 당겨진 사슬 자물쇠 홈의 내부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물리적 균열이 발생했다. 훗날 설하의 차가운 한기가 주입되는 순간 유리처럼 바스러질 완벽한 복선이 조용히 새겨진 순간이었다.


제갈휘는 청죽장을 지탱하며 허리를 곧게 폈다. 붕대 너머의 먼 눈이 조광렬의 얼굴을 향했다. 그의 목소리는 백골령의 차가운 밤바람보다 더 시리고 낮았다.


“조 방주. 네가 이곳에서 우리를 죽이고 아이들의 목을 벤다 한들, 네 파멸은 결코 막을 수 없다. 내가 독고염의 품속에서 거둔 것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광렬의 칼끝이 멈칫했다. 놈의 거친 호흡이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소리가 제갈휘의 심안에 포착되었다.


“무슨……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무림맹 강남지부 부방주 팽무성(Pyeng Mu-seong). 그자가 너에게 장서각 생존자를 은밀히 처단하라고 내린 밀서의 배후에는, 네가 바친 수만 냥의 뇌물과 매관매직의 기록이 담긴 진짜 비밀 장부가 존재하지.”


제갈휘의 나직한 구술이 백골령의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팽무성은 맹주 천우진의 눈을 피해 강남의 경제권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너는 그자의 더러운 은전(隱錢)을 세탁해 주는 사냥개에 불과하지. 팽무성이 너에게 내린 밀서에 찍힌 사적 인장…… 그것이 무림맹 본산의 사정각(査正閣) 장로들의 손에 들어가는 순간, 팽무성이 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누구의 목을 벨 것 같으냐?”


조광렬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놈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려 피비린내 나는 얼굴 흉터를 타고 흘러내렸다. 팽무성과의 비밀 결탁은 철사방의 존립이 걸린 극비 중의 극비였다. 장서각 생존자를 잡아 공을 세우려던 탐욕이, 순식간에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올가미로 변하고 있었다.


“네놈이…… 네놈이 그걸 어찌 아느냐! 그 장부는 오직 팽무성 어른과 나만이 알고 있는 곳에 숨겨져 있거늘!”


조광렬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놈은 자신의 파멸을 예감하고 주변의 철사방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주변 경계를 강화해라! 쥐새끼 한 마리도 이 백골령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철사방 무사들이 동요하며 횃불을 흔들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 대혼란과 안개 속에서, 제갈휘는 청죽장 끝으로 바닥을 다시 한번 툭 두드리며 사슬 자물쇠의 균열을 완벽하게 고정해 두었다. 설하가 내력을 아주 미세하게 회복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조용히 벌어지고 있었다.


제갈휘는 피 묻은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미소를 지었다. 붕대 너머의 눈빛이 조광렬의 영혼을 꿰뚫는 듯했다.


“그 장부가 숨겨진 진짜 위치를 읊어주랴?”


제갈휘의 목소리가 조광렬의 귀를 찢고 들어갔.


“팽무성의 침소 뒤편, 세 번째 기둥 밑…… 그리고 네 본타 지하 밀실의 황동 불상 내부.”


조광렬의 호흡이 완전히 멎었다. 놈은 경악으로 가득 찬 눈으로 제갈휘를 바라보았다. 칼끝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장님의 입에서 나온 위치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놈은 극도의 공포와 광기에 휩싸여 칼끝을 멈추고, 제갈휘의 멱살을 잡기 위해 거친 손을 뻗어왔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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