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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은침, 전음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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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캐한 소나무 진액 타는 냄새가 가을밤의 찬 공기를 찢고 제갈휘의 코끝을 스쳤다.


두두두두!


멀지 않은 대나무 숲길을 따라 들려오는 발굽 소리는 족히 열댓 필에 달했다. 편자가 박히지 않은 거친 말발굽 소리, 그리고 등자와 무기가 부딪치며 내는 둔탁한 쇳소리. 만황곡을 지배하는 무자비한 사냥개들, 철사방(鐵沙방)의 순찰대였다. 그들의 선두에는 난폭한 도법을 구사하는 돌격대장 흑사도(Heuksa-do)가 서 있음이 분명했다.


제갈휘는 엽락소축의 차가운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청죽장을 굳게 쥐었다. 오른손 끝은 방금 전 설하의 태음신맥 폭주를 막아서느라 서리가 서린 채 마비되어 있었고, 관자놀이 부근은 청혈심공(淸血心功)을 과도하게 운용한 대가로 깨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명이 귓가를 때렸지만, 그의 심안(心眼)은 그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주변의 진동을 읽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철사방 무사들이 이 언덕을 올라오기까지 반 시진도 남지 않았어. 설하를 이대로 마당에 둘 수는 없다.’


그때, 엽락소축 뒤편의 울창한 대나무 숲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람의 흐름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기척을 죽이고 은밀하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였다. 사박, 사사박. 흙을 밟는 소리는 지극히 가벼웠으나, 그 안에는 묵직한 내공의 평정이 깃들어 있었다.


제갈휘의 청풍감각(淸風感覺)이 즉각 그 신형을 포착했다.


“……누구냐?”


제갈휘가 나직하게 경계의 목소리를 내뱉자, 대나무 장막을 헤치고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삼베옷을 대충 걸치고 긴 백발을 뒤로 묶은 노인, 만황곡 깊은 곳에 은거하는 전설적인 의원 백노인(Baek No-in)이었다. 백노인은 방금 전 골짜기 전체를 뒤흔들었던 지독한 극음(極陰)의 한기를 감지하고 급히 엽락소축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제갈 선생! 방금 그 기이한 한기는 대체…… 앗, 이 아이는?”


백노인은 마당에 쓰러져 전신이 검푸르게 변해가는 설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급히 다가와 설하의 손목을 잡았다.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한기에 백노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태음신맥(太陰神脈)이군! 전신 경맥이 뒤틀려 한기가 오장육부를 옥죄고 있어. 이미 단전의 맥이 반쯤 얼어붙었네. 이건 의술의 영역이 아닐세! 침을 꽂는 순간 극음의 진기가 반탄하여 시술자까지 얼려 죽일 걸세. 가망이 없네, 손을 떼야 하네!”


백노인이 황급히 손을 거두려 하자, 제갈휘가 청죽장 끝으로 그의 손목을 가볍게 내리눌렀다. 내력이 전혀 없는 물리적인 힘이었으나, 정확히 백노인의 손목 기맥이 꺾이는 지점을 타격했다. 백노인은 움찔하며 제갈휘를 바라보았다.


“제갈 선생, 무슨 짓인가? 이 아이는 이미 죽은 목숨이네!”


“살릴 수 있습니다.”


제갈휘의 하얀 붕대 아래 먼 눈이 백노인의 얼굴을 향했다. 그의 목소리는 불길이 좁혀오는 상황 속에서도 소름 끼치도록 차분했다.


“뒤틀린 경맥을 순행(順行)시키려 하니 반탄하는 것입니다. 역맥(逆行)의 흐름을 인정하고, 오행의 기운으로 한기의 출구를 열어주면 단전은 얼어붙지 않습니다. 백 어르신, 침통을 꺼내십시오.”


“무슨 소린가! 역맥의 한기를 다스릴 침구술 따위는 강호에 존재하지 않네!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존재합니다.”


제갈휘가 단호하게 말을 자르며 백노인의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리고 단전의 미세한 기운을 쪼개어 오직 백노인의 고막에만 들리도록 소리의 파동을 보냈다. 전음입밀(傳音入密)이었다.


(황실 장서각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던 비전, 기맥오행침법(氣脈五行針法)의 유실된 구결을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 지시에 따르십시오. 딴마음을 먹거나 침 끝이 일 푼이라도 어긋나면, 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철사방의 칼날에 목이 날아갈 것입니다.)


백노인의 하얗게 먼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무공이 폐해진 장님 서생인 줄만 알았던 제갈휘가 황실의 유실된 신급 침구술을 입에 담고 있었다. 더군다나 문밖에서는 철사방의 군마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마당을 울려대고 있었다.


“……미친 짓이군. 하지만 제갈 선생, 자네의 그 눈빛을 믿어보겠네.”


백노인은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낡은 가죽 침통을 꺼냈다. 침통이 열리자 은은한 약재 향과 함께 푸르스름한 은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노인은 설하를 안아 들고 엽락소축의 안방 침상으로 신속하게 옮겼다. 제갈휘는 청죽장을 짚으며 그 뒤를 묵묵히 따랐다.


방 안은 어두웠고, 설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리로 인해 입김이 하얗게 서렸다.


두두두두! 쿵!


그 순간, 엽락소축의 대나무 사리문 바깥에서 거친 말울음소리와 함께 횃불의 붉은 그림자가 창문 종이를 붉게 물들였다.


“이봐! 장님 책사! 안에 살아 있나? 철사방의 순찰이다! 문 열어라!”


흑사도의 부하들이 대문을 거칠게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삐걱거리며 먼지가 쏟아졌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제갈휘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청혈심공의 감각을 설하의 신체로 집중시켰다. 그의 뇌리 속 총명기의 서고가 기동하며, 설하의 뒤틀린 기맥 지도가 입체적인 선과 수치로 시각화되었다. 제갈휘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과도한 정신력 소모로 인해 귀밑에서 미세한 핏방울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백 어르신, 첫 번째 침입니다. 은침 삼 촌을 잡으십시오. 설하의 척추 제삼협, 신주혈(身柱穴)에서 좌측으로 이 푼 비껴간 지점입니다. 침 끝을 정남향으로 십도 기울여, 일 푼 깊이로 찌르십시오.)


제갈휘의 전음이 백노인의 뇌리를 때렸다. 백노인은 침을 쥐고 설하의 등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제갈휘가 지시한 위치는, 정상적인 의학에서는 절대 찌르지 않는 사혈(死穴)에 가까웠다.


“정말 이곳인가? 기맥이 완전히 뒤틀려 있네!”


(망설이지 마십시오. 그곳이 한기가 역류하는 첫 번째 옹이 구멍입니다. 찌르십시오!)


백노인은 침을 굳게 쥐고 설하의 신주혈 옆 기맥 요처를 정확히 찔러 넣었다.


스스스슥!


침이 들어가자마자 설하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녀의 피부 표면에 돋아나 있던 하얀 서리들이 은침을 타고 올라와 백노인의 손가락 끝을 얼리려 했다. 백노인은 이를 악물고 내력을 운용해 한기를 버텨냈다.


“으윽……! 한기가 침을 타고 역류하네!”


(버티셔야 합니다. 두 번째 침입니다. 은침 사 촌을 잡으십시오. 단전 바로 뒤편, 명문혈(命門穴) 아래 일 푼 지점입니다. 이번에는 침 끝을 수직으로 세워 이 푼 깊이로 꽂으십시오.)


제갈휘의 전음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바깥마당의 소리도 동시에 연산되고 있었다. 철사방 무사들이 사리문을 부수고 마당으로 진입하는 발걸음 소리. 가죽 장화가 흙을 밟는 서슬 퍼런 진동이 청죽장을 통해 전해졌다.


“형님! 마당 바닥이 얼어붙어 있습니다! 서리가 아주 차가운데요?”


“뭐라? 장님 놈의 마당에 웬 서리냐? 샅샅이 뒤져라! 쥐새끼가 숨어들었을지 모른다!”


흑사도의 거친 목소리가 엽락소축 마당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들이 안방 문 앞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서서히 좁혀지고 있었다. 스물 보, 열다섯 보, 열 보…….


백노인의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제갈 선생, 적들이 문 앞까지 왔네! 침을 다 꽂기도 전에 발각될 걸세!”


(평정심을 잃지 마십시오. 마지막 세 번째 침입니다. 기해혈(氣海穴) 정중앙입니다. 침 끝에 어르신의 내력을 미세하게 실어, 일순간에 찔러 넣으십시오. 단전의 문을 열어 한기를 방출해야 합니다. 지금입니다!)


제갈휘의 전음이 백노인의 심장을 강타했다. 백노인은 마지막 은침을 쥐고 설하의 아랫배 기해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쿵! 쿵! 쿵!


“장님 새끼야! 안에 있는 거 다 안다! 문 안 열면 들이부수겠다!”


안방 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리며 나무 문짝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백노인의 손끝이 마지막 요처를 향해 번개처럼 내리꽂혔다. 은침이 기해혈에 정확히 닿는 순간, 설하의 몸에서 웅장한 진동이 일어났다.


피이이이익!


설하의 입에서 시린 푸른빛 연기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검붉은 탁혈이 뿜어져 나왔다. 탁혈은 바닥에 닿자마자 하얗게 얼어붙으며 목재 바닥을 깨뜨렸다. 동시에 그녀를 옥죄던 뒤틀린 기맥이 오행의 통로를 따라 안전하게 봉인되며, 가쁜 숨소리가 점차 가늘고 평온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치료가 성공한 것이다.


“후우…… 후우…….”


백노인은 전신이 탈진한 채 침상 옆으로 주저앉았다. 제갈휘 또한 과도한 전음과 심안 운용으로 인해 귀밑에서 흘러내린 피가 턱선까지 타고 내려와 있었다. 그는 소매로 급히 피를 닦아내며 청죽장을 고쳐 잡았다.


바로 그 순간.


쿠구궁!


“이 장님 놈이 감히 문을 안 열어?”


안방의 낡은 나무 대문이 거친 발길질에 박살 나며, 붉은 횃불의 일렁이는 빛과 함께 흑사도의 거구와 철사방 무사들이 방 안으로 난입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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