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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의 몰락, 그림자의 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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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이익—!”


갈우영의 소매 속에서 기괴한 태엽 소리가 협곡의 정적을 사정없이 찢어발겼다.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철사방의 수석책사, 갈우영의 얼굴은 이미 광기와 공포로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치밀한 수리적 계산이 눈먼 장님의 손끝에서 놀아났다는 굴욕감, 그리고 수백 명의 아군이 안개 속에서 서로를 도륙하는 참상이 그의 뇌리를 완전히 붕괴시켰다.


“어디냐! 어디에 숨어 있는 거냐, 이 교활한 장님 놈아!”


갈우영이 소리치며 소매 끝에 장착된 독사통(毒蛇通)을 허공을 향해 마구잡이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슉! 슉! 슉! 슉!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무형의 독침들이 소나무 숲의 짙은 안개를 뚫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독침 끝에 발라진 천해독파산(天海毒破散)의 치명적인 독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며, 침이 박힌 소나무 기둥과 바위틈에서 매캐하고 푸르스름한 독무가 피어올랐다.


설하는 안개 속에서 귀식토납법(龜息吐納法)을 유지하며 몸을 낮추었으나, 사방으로 무차별하게 날아오는 독침의 궤적을 완벽히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녀의 단전 내력은 겨우 2할 남짓. 게다가 철갑랑들과의 충돌로 인해 한빙철검(寒氷鐵劍)의 검신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들이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정면으로 검을 휘둘러 침을 쳐내다가는 검이 박살 날 것이 분명했다.


“설하야, 움직이지 마라.”


통제소 바위 뒤에 앉아 있던 제갈휘의 전음입밀(傳音入密)이 그녀의 귀에 나직하게 꽂혔.


제갈휘의 상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청혈단(淸血丹)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에서 청혈심공 2단계(淸血心功)를 무리하게 지속하자, 그의 관자놀이를 송곳으로 꿰뚫는 듯한 편두통이 뇌맥을 난도질했다. 귀와 코에서 흘러내린 검붉은 피가 하얀 붕대를 적시고 턱끝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왼쪽 귀에서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한 이명이 끊임없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제갈휘는 청풍감각(淸風感覺)을 멈추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두 눈 대신, 그의 온몸의 피부와 털끝이 바람의 흐름을 읽어냈다. 독사통의 태엽이 풀리는 미세한 금속성 진동, 날아오는 독침이 갈대를 가르는 파공음, 그리고 갈우영의 거칠고 불규칙한 호흡 소리가 그의 머릿속 제갈세가 총명기(聰明記)의 가상 서고 위에서 정밀한 기하학적 선으로 그려졌다.


‘독사통의 남은 침은 열두 발. 갈우영의 무게중심은 이미 우측 벼랑 끝으로 치우쳐 있다. 놈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어 줄 마지막 한 수가 필요하다.’


제갈휘는 피 묻은 입술을 열어 설하에게 전음했다.


(설하야, 동풍이 소나무 가지를 흔드는 순간이다. 서남방 이십이 보 지점에 위치한 세 번째 청동경의 모서리를 청죽장 끝으로 치듯, 한빙철검의 옆면으로 가볍게 밀어라. 우측으로 정확히 삼 도(三度)만 비틀어라.)


설하는 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빙천보(氷天步)를 전개해 소리 없이 안개 속을 미끄러졌다. 등 뒤의 화상 상흔이 옷자락에 쓸려 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검을 쥔 손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스스슥.


설하의 한빙철검 옆면이 안개 속에 숨겨진 청동경의 가장자리에 닿았다.


팅.


아주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거울이 정확히 삼 도 비틀어졌다.


그 찰나, 갈우영의 시야에 기묘한 광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짙은 안개와 소나무 그림자가 거울의 굴절을 타고 왜곡되면서, 그의 눈앞에 한 줄기 맑은 빛과 함께 평탄하게 뚫린 흙길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환진림의 착시가 만들어낸 완벽한 허상이었다.


“찾았다……! 드디어 찾았구나!”


갈우영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는 그 평탄한 길의 끝에 진법의 출구와 자신을 살려줄 철사방의 본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 교활한 장님 놈! 결국 내 지혜가 네놈의 진법을 깨뜨렸다! 크하하하!”


갈우영은 광소하며 눈앞에 보이는 평지를 향해 기세 좋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몸이 안개 장막을 찢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가 밟은 것은 단단한 흙바닥이 아니었다.


스스슥.


허공이었다.


갈우영의 발끝이 아무런 지지대도 없는 허무한 공간을 디뎠을 때, 그의 광소는 순식간에 처절한 비명으로 화했다.


“어……? 어어어어!”


거울의 각도가 비틀리며 착시가 걷힌 순간, 갈우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만황곡의 천 길 낭떠러지였다. 벼랑 끝이 평지로 둔갑해 있던 진법의 마지막 함정, 팔진도해(八陣圖解)의 무서운 묘리였다.


“으아아아아아악—!”


갈우영의 신형이 허공에서 버둥거리며 절벽 아래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추락해 갔다. 그의 처절한 비명 소리는 바람을 타고 협곡 벽에 부딪치며 길게 메아리치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철사방의 수석 책사이자 치밀한 음모가였던 사내의 비참하고 허무한 몰락이었다.


책사를 잃은 철사방 무사들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환각 속에서 아군을 베어 넘기던 철갑대원들과 보초들은 대장의 죽음을 인지하자마자 무기를 버리고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환진림을 가득 메웠던 횃불들이 바닥에 떨어져 축축한 흙바닥 위에서 힘없이 꺼져갔다. 철사방의 삼엄했던 진형은 단 한 번의 전면전도 없이 완벽히 붕괴되었다.


“하아…… 하아……”


설하는 검을 바닥에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전신의 내력이 바닥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즉시 몸을 돌려 통제소 바위 뒤로 달려갔.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바위 뒤에 주저앉아 있는 제갈휘의 몰골은 처참했다. 하얀 붕대 아래로 검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내려 그의 회색 마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제갈휘는 청죽장에 몸을 의지한 채 떨리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청혈단이 없는 상태에서 영역 전체의 수리적 연산을 실시간으로 제어한 대가는 그의 뇌 기맥을 영구적으로 파괴할 만큼 치명적이었다.


“설하야…… 숲의 동요가…… 가라앉았느냐?”


제갈휘의 목소리는 갈라진 논바닥처럼 푸석하고 힘이 없었다.


“예, 스승님. 갈우영은 절벽 아래로 추락했고, 남은 철사방 놈들은 모두 도망쳤습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설하가 제갈휘의 피 묻은 손을 꼭 쥐며 눈물을 삼켰다. 스승이 치른 신체적 대가가 너무도 뼈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갈휘는 안도의 미소를 짓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감겨 있는 눈꺼풀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렸다.


그의 심안(心眼)과 청풍감각에, 환진림의 소음이 가라앉은 고요한 틈을 타 새로운 소리의 파동이 잡히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그것은 사파 무사들의 무질서한 발소리가 아니었다. 고도로 훈련된 군마들의 규칙적이고 묵직한 말발굽 소리. 그리고 강철 갑옷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예리하고 차가운 금속음이었다. 소리의 발원지는 만황곡의 북쪽 경계 지대였다.


‘이 무겁고 정교한 기세는…… 철사방이 아니다.’


제갈휘의 심장에 서늘한 경각심이 일었다. 머릿속 총명기의 서고가 즉각 경고를 보냈다. 신흥 무림맹(新興 무림맹)의 정예 병력이 마침내 만황곡의 경계에 도달한 것이다.


* * *


같은 시각, 만황곡 북쪽 협곡 입구.


짙은 안개와 환진림의 여파로 일그러진 기류를 바라보며, 청색 순찰사 의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말을 멈추어 섰다. 날카로운 눈매와 창백한 안색을 지닌 무림맹의 청년 순찰사, 사공운(사공운)이었다. 그의 곁에는 은색 전투복을 입은 정찰대장 사천행(사천행)이 삼엄한 살기를 품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사공운은 깃털 부채를 가볍게 쥐고 숲에서 흘러나오는 기류의 왜곡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사 대장, 저 숲의 안개 흐름이 보이십니까?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지형지물과 광학적 반사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바람의 방향을 비틀어 놓았군요. 고대 현무도인의 진법과 매우 유사합니다.”


사천행이 검자루를 쥐며 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법이라니요? 만황곡의 삼류 사파 놈들이 그런 고등 기예를 펼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흥미로운 것입니다.”


사공운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걸렸다.


“철사방의 무능한 조광렬이 이끄는 대군이 저 숲에서 갈팡질팡하다 자멸하고 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요. 무공이 뛰어난 고수가 아니라, 머릿속에 천하의 지식을 담고 있는 지략가(책사)가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황실 장서각 화재 속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 제갈세가의 핏줄이 틀림없습니다.”


사공운의 눈빛이 탐욕과 살기로 번뜩였다. 장서각의 생존자를 확보하는 것은 무림맹주 천우진이 추진하는 '천기계획(天機計劃)'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일이었다.


“신기자(신기자)를 들여보내라.”


사공운의 명령에, 사천행이 손가락으로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어둠 속에서 바람조차 가르지 않는 극도로 가볍고 날카로운 신법의 소리가 울렸다. 검은 가죽 은신복을 입은 왜소한 체구의 사내, 무림맹 최고의 잠입첩보원 신기자가 소리도 없이 사공운의 말 앞에 착지했다. 그의 전신에서는 생명체의 기척이 완벽히 지워져 있었다. 귀식은신술(귀식은신술)의 극의였다.


“신기자, 숲속의 전투 흔적을 역추적하여 배후의 지략가가 머물고 있는 거점을 찾아라. 생포할 수 없다면 머리만이라도 가져오너라.”


신기자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숙인 뒤,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갈대잎 하나 흔들리지 않았고, 마른 흙바닥에 발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사파 철사방의 무식한 무공과는 차원이 다른, 정파 최고의 은밀하고 정교한 신법이었다.


* * *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제갈휘의 전신이 일시에 굳어지는 것을 본 설하가 다급하게 물었다.


제갈휘는 떨리는 손으로 청죽장을 고쳐 잡으며, 바닥에 짚은 지팡이 끝의 미세한 진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그의 청풍감각에 숲의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지극히 가볍고 날카로운 기척이 포착되었다.


‘왔구나. 바람의 결을 아주 미세하게 찢으며 다가오는 소리…… 귀식은신술로 기척을 지웠으나, 발끝이 공기를 가를 때 생기는 아주 미세한 기압의 변화까지는 속이지 못했다.’


신기자의 침투 경로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다. 놈은 환진림의 거울 장치들을 우회하며, 제갈휘가 머물고 있는 엽락소축의 비밀 지하서고(엽락소축 지하서고) 방향으로 소리 없이 좁혀오고 있었다.


제갈휘는 뇌 기맥의 극심한 통증을 억누르며 설하에게 긴박하게 전음했다.


(설하야, 지금 당장 나를 업고 엽락소축 지하서고로 가야 한다. 무림맹의 정예 자객이 우리의 거점을 향해 소리 없이 침투하고 있다. 놈의 신법은 일류 살수들을 초월한다. 서둘러라!)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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