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 제어 코어의 사투
“삐이이이—! 경고! 구역 내 비인가 침입자 감지! 즉각적인 말살 시퀀스를 가동합니다!”
타이탄 호 전역을 찢어발길 듯한 적색 경보음이 고막을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뇌 속의 배신자 영혼 말라카이를 자아 격리 쉴드 포트로 강제 봉인한 대가는 너무나 가혹했다. 하은성은 격벽 문을 통과하자마자 비틀거리며 차가운 금속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윽……! 하아, 하아……”
입술 사이로 뜨거운 선혈이 울컥 배어 나왔다. 관자놀이에 이식된 은색 데이터 소켓이 마치 과열된 원자로처럼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아 격리 쉴드의 후폭풍으로 인해 전신 시냅스가 비명을 질렀고, 머릿속은 날카로운 송곳으로 사정없이 헤집는 듯한 극통이 지배했다. 뇌 괴사율 30%. 실버-패드가 왼쪽 허벅지와 어깨에서 미친 듯이 미세 전류를 뿜어내며 마비를 억제하고 있었지만, 오른손 끝마저 감각이 무뎌져 가고 있었다.
“은성 씨! 정신 차리십시오!”
제국 하급 장교복을 피로 물들인 카일이 은성의 어깨를 단단히 부축했다. 카일 역시 격실을 돌파하며 입은 부상으로 호흡이 가빴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혁명가의 비장한 불꽃으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은성은 흐려지는 시야를 억지로 고정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제국 수송선 타이탄 호의 중앙 코어 룸은 기하학적으로 뒤틀린 중력 제어 장치들이 웅웅거리는 지옥도였다.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모호하게 일렁이는 거대한 원형 격실. 그 중심부에서 푸른빛을 내뿜으며 회전하는 양자 코어 슬롯이 보였다. 그곳에 은성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가 차가운 쇳빛을 발하며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 앞을 가로막은 존재를 확인한 순간, 은성의 양자 시야에 붉은색 경고등이 미친 듯이 점멸했다.
스스스스—
두 자루의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가 공기를 잘라내며 기분 나쁜 기계음을 흘렸다. 온몸의 80%를 검은색 중장갑 군용 의체로 개조한 종교재판소의 인간 병기, 집행관 케르베로스였다. 2미터가 넘는 거구 위에 박힌 세 개의 붉은 안구 센서가 은성과 카일을 차갑게 락온했다.
[이단 기술 접촉자 하은성. 그리고 저항군 프락치. 너희의 유기체 뇌를 포맷하고 데이터를 회수하라는 명령이다.]
케르베로스의 음성 변조기에서 쇳소리 섞인 살인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놈이 거대한 강철 발을 내딛는 순간, 중앙 코어 룸의 중력 제어 장치가 미친 듯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조심해……!”
은성이 경고를 내뱉기도 전에, 케르베로스가 가슴팍의 중력 제어 코어를 기동했다.
쿠구구구구!
순식간에 격실 내부의 중력이 기하학적으로 뒤틀렸다. 은성은 자신의 신체 무게가 순식간에 10배 이상 무거워지는 압도적인 물리적 압박을 느꼈다. 쿵! 소리와 함께 은성의 전신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이미 마비 증세로 취약해진 좌반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카일 역시 신음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지만, 악착같이 소총을 들어 올렸다.
스으으읍.
케르베로스는 10배의 중력 속에서도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는 듯, 고주파 블레이드를 치켜들고 은성의 목덜미를 향해 무자비하게 돌격해 왔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은성은 척추 신경망의 비명을 억누르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고주파 진동 단검을 휘둘렀다. 놈의 무릎 의체 관절 틈새, 장갑이 가장 얇은 부위를 노린 회심의 일격이었다.
깡—!
단검의 칼날이 케르베로스의 다리에 닿는 순간, 놈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청색 전자기 보호막이 번쩍였다. 고주파 진동 단검은 놈의 쉴드조차 뚫지 못하고 비참하게 부러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질량의 물리적 반동이 은성의 오른팔을 타고 역류했다.
“크아아악!”
오른쪽 손목 신경망의 미세 포트들이 전압 오버로드로 인해 일시에 타버렸다. 은성은 단검의 자루를 떨어뜨리며 바닥을 굴렀다. 오른손 전체가 스파크를 뿜으며 완벽하게 감각을 잃었다.
케르베로스가 차가운 붉은 안광을 번쩍이며 은성의 이마를 향해 블레이드를 내리찍으려 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코앞까지 드리운 순간이었다.
탕! 타당! 타타탕!
카일이 10배의 중력을 뚫고 몸을 날리며 소총을 난사했다. 특수 철갑탄들이 케르베로스의 전자기 보호막 위에서 불꽃을 튀기며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타격은 없었지만, 놈의 시선을 돌리기엔 충분했다.
“은성 씨! 일어나십시오! 당신은…… 당신은 예란족 천만 명의 영혼을 살릴 유일한 그릇입니다!”
카일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종말을 예감한 무거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케르베로스가 기계적인 몸을 돌려 고주파 블레이드로 카일의 흉부를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서걱—!
“끄아악!”
선혈이 격실 천장으로 분수처럼 뿜어졌다. 카일의 전술 장갑복이 찢겨 나가며 처참한 자상이 새겨졌다. 하지만 카일은 쓰러지지 않았다. 아니, 쓰러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강화 슈트 등 뒤에 장착된 양자 배터리의 안전 리미터를 수동으로 뜯어냈다.
화아아아악!
카일의 전신에서 불길한 청색 에너지 스파크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배터리 오버로드. 스스로를 인간 폭탄으로 만드는 저항군의 최후 전술이었다.
“은성 씨…… 기회를 만들 테니, 놈의 의체 코어를 쏘십시오!”
카일이 피를 토하며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강철 다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10배의 중력조차 그의 결사적인 도약을 막지 못했다. 카일은 온몸으로 케르베로스의 하체를 끌어안으며 배터리의 과부하 주파수를 임계점까지 끌어올렸다.
[경고! 아군 의체 주변 고출력 에너지 오버로드 감지. 회피 프로토콜 가동……]
케르베로스의 기계 지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카일을 떼어내려 블레이드를 휘둘렀으나, 카일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 속에서도 놈의 다리를 놔주지 않았다.
“지금입니다! 은성 씨—!!!”
콰아아아앙—!!!
눈을 멀게 할 듯한 청색 섬광이 코어 룸 전체를 집어삼켰다. 거대한 폭발 충격파가 은성의 몸을 뒤로 날려 보냈다. 격실 바닥의 철판이 뜯겨 나가고 뒤틀린 중력장이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매캐한 ozone 냄새와 타버린 살점 냄새가 진동하는 연기 속에서, 케르베로스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청색 전자기 보호막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놈의 가슴팍에 장착되어 있던 중력 제어 코어 역시 반파되어 검은 연기와 함께 스파크를 뿜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카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숯검둥이가 된 채 고요히 쓰러져 있었다. 대의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바친 저항군 요원의 비장한 최후였다.
“카일…… 영감……”
은성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이기적이고 냉소적이었던 밀수꾼의 껍질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천만 명의 슬픔을 품기 전, 오직 자신의 목숨만을 아꼈던 청년의 눈에 분노와 슬픔의 눈물이 고였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동료의 죽음이 그의 영혼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경고. 전자기 보호막 기능 정지. 중력 제어 장치 파손율 74%. 예비 동력으로 전환합니다.]
연기 속에서 케르베로스가 지직거리는 기계음을 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놈의 안구 센서 중 두 개가 파손되어 불꽃을 뿜고 있었지만, 남은 하나의 적색 센서가 여전히 은성을 조준하고 있었다.
‘죽여버리겠어.’
은성은 신경 세포가 타 들어가는 고통을 무시한 채, 왼손으로 품속에 숨겨둔 양자 에너지 권총 ‘발칸-X’를 뽑아 들었다.
관자놀이의 소켓이 황금빛으로 미친 듯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은성의 왼쪽 눈동자가 완전한 황금빛 양자 입자로 타오르며 뇌 신경망의 모든 리미터가 해제되었다.
“신경 가속(Neural Overdrive)—!!!”
지이이이잉—!
뇌 소켓 주변의 시냅스가 영구적으로 연소되는 감각과 함께, 은성의 세계가 급격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수송선 내부를 가득 채웠던 요란한 비상 경보음이 길고 왜곡된 저음의 신음으로 늘어졌다. 공기 중에 떠다니던 카일의 재와 파편들이 마치 투명한 액체 속에 갇힌 것처럼 허공에 고요히 멈춰 섰다. 케르베로스가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궤적조차 달팽이의 기어가는 움직임처럼 느리게 변했다.
은성은 신경 가속 상태에서 뒤틀린 중력장의 균열 사이를 가볍게 도약했다. 왼손에 쥔 발칸-X의 조준선이 케르베로스의 몸체 위로 겹쳐졌다.
양자 시야가 놈의 중장갑 의체 내부를 투시했다. 카일의 자폭 폭발로 인해 목 관절의 장갑판이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고, 남은 하나의 안구 센서 아래로 핵심 기계 코어의 도선이 노출되어 있었다.
‘단 세 발.’
은성은 흔들림 없이 발칸-X의 트리거를 당겼다.
타앙—!
첫 번째 양자 탄환이 느리게 흐르는 시공간을 가르며 날아가, 케르베로스의 남은 적색 안구 센서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붉은 렌즈가 산산조각이 나며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타앙—!
두 번째 탄환이 목 관절의 벌어진 틈새를 뚫고 들어가, 머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메인 제어 도선을 녹여버렸다. 케르베로스의 거대한 몸체가 제어력을 잃고 굳어지기 시작했다.
타앙—!
마지막 세 번째 탄환이 카일의 희생으로 노출된 가슴 중앙의 의체 코어 깊숙한 곳에 박혔다. 양자 가속 에너지가 코어 내부의 초전도 셀과 충돌하며 푸른빛의 폭발을 일으켰다.
스르르르륵.
시간이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다.
콰아아앙!
케르베로스의 목과 가슴에서 푸른 기계 불꽃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거대한 인간 병기는 두 자루의 블레이드를 떨어뜨린 채, 대지를 울리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세 개의 안구 센서가 모두 암전되며 놈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었다.
“하아…… 윽, 쿨럭!”
신경 가속이 해제되자마자 은성은 자리에 쓰러져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오른쪽 손목은 이미 감각이 없어 덜렁거렸고, 왼쪽 눈은 황금빛 입자로 완전히 흐려져 물리적인 시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극심한 편두통이 자아를 통째로 부수려 들었다.
하지만 은성은 이를 악물고 기어갔다. 쓰러진 케르베로스의 거체를 넘어, 중앙 코어의 양자 슬롯 앞으로 다가갔다.
스파크가 튀는 슬롯 내부에서, 차갑고 푸른빛을 내뿜는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Legacy Neural Sync Card)’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은성은 감각이 없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뻗어, 온 힘을 다해 동기화 장치를 슬롯에서 뜯어냈다.
쩌적!
손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하드웨어의 감각. 마침내 뇌 괴사를 멈추고 천만 영혼의 사념을 완벽히 격리할 열쇠를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은성이 동기화 장치를 거머쥐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던 바로 그 순간, 타이탄 호의 메인 콘솔 스크린 전체가 핏빛 적색으로 물들며 차가운 합성 기계음이 격실 전체를 울렸다.
[경고. 중앙 통제 코어 파괴 및 핵심 시스템 정지 감지. 제국 군용 프로토타입 자폭 시퀀스가 강제 활성화되었습니다.]
[타이탄 호 완전 소멸까지 남은 시간—180초.]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