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송선 타이탄 호 강습
우주의 심연은 차갑고도 거대했다.
오리온 제1성계의 외곽 궤도, 어둠만이 가득한 진공 속에서 낡은 밀수선 섀도우 호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함선의 외장 장갑에 도포된 특수 전자기 흡수 도료, ‘전자기 스텔스 코트’가 제국 순찰함들의 레이더 전파를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조종석 내부의 긴장감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팽팽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40분. 제7지하 감옥의 포맷 시퀀스가 시작되기 전까지 수송선을 털고 정거장으로 복귀해야 해.”
하은성은 마비 증세가 남아 있는 왼손을 실버-패드의 미세 전류로 지탱하며 조종간을 움켜잡았다. 관자놀이에 박힌 은색 데이터 소켓 주변으로 붉은 열기가 아른거렸다. 뇌 괴사율 30% 돌파. 머릿속을 짓누르는 천만 영혼의 이명이 웅웅거리며 그의 이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은성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형처럼 따르던 소년, 토비가 제국의 기계 인형으로 개조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주인님, 제국 군용 수송선 타이탄 호의 궤도 진입까지 앞으로 3분 남았습니다. 현재 후방 배기구의 열 방출 사각지대가 열리는 주기를 연산 중입니다.”
섀도우 호의 메인프레임 AI 네로의 냉소적인 목소리가 홀로그램 콘솔 위에서 깜빡였다. 은성의 눈동자가 차가운 황금빛 양자 에너지로 명멸했다.
“리라, 준비해.”
조종석 뒤편에 앉아 있던 예란족의 무녀 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가슴팍의 푸른 결정, ‘진정의 목걸이’를 쥐자 신비로운 황금빛 파동이 은성의 뇌파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섀도우 호 외벽에서 사출된 나비 모양의 생체 센서 드론 ‘제타’가 타이탄 호의 감시망 레이더 궤적을 실시간으로 스캔했다.
은성의 시야가 기하학적인 데이터 격자로 가득 찬 ‘양자 시야’로 전환되었다. 허공을 가르는 제국군의 붉은색 감시 레이더 선들이 그가 나아가야 할 사각지대를 황금빛 네비게이션 가이드 라인으로 짚어내기 시작했다.
“보인다.”
저 멀리,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제국의 거대한 기계 괴수 같은 수송선 타이탄 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성당의 첨탑을 연상시키는 고딕풍의 금빛 배기구와 거대하고 차가운 백색 장갑판이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거체 주변으로 수십 개의 정찰 위성과 순찰함들이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네로, 엔진 리미터 해제. 무동력 관성 비행으로 진입한다.”
“미친 짓입니다, 주인님. 엔진을 끄면 뒤틀린 중력 제어 장치 때문에 선체가 파손될 확률이 42%에 달합니다.”
“상관없어. 밀고 들어가.”
은성의 단호한 명령에 네로가 스러스터의 불꽃을 완전히 꺼트렸다. 섀도우 호는 거대한 암석 파편처럼 오직 관성만으로 타이탄 호의 후방 배기구 사각지대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숨소리조차 낼 수 없는 극도의 침묵이 함내를 지배했다. 제국 정찰선의 탐지 광선이 섀도우 호의 위장 장갑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쿵.
가벼운 충격음과 함께 섀도우 호가 타이탄 호의 하부 정비 배관 해치에 완벽하게 밀착 도킹했다. 무소음, 무동력의 기적적인 스텔스 진입이었다.
“도킹 성공. 외부 감시망 우회 완료.”
카일이 제국 하급 장교 복장을 단단히 여미며 소총을 고쳐 쥐었다.
“가시죠. 아버님이 남겨두신 길입니다.”
은성과 카일은 도킹 해치를 열고 타이탄 호 내부로 침투했다. 내부 통로는 제국 특유의 차갑고 거대한 회색 격벽과 고압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유압 파이프들로 가득했다. 은성은 관자놀이 소켓에 휴대용 단말기를 연결하고 ‘시스템 고스트 클로킹’ 기술을 활성화했다. 전설적인 넷러너 제로에게 전수받은 비기였다. 수송선의 메인 통제 AI 아르고스의 감시망에 은성 일행의 존재는 실시간으로 감지되지 않는 ‘유령 데이터’로 위장되었다.
칙, 치이익.
복도 모퉁이 너머로 제국 경비 보병 소대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들려왔다. 은성은 카일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카일이 품속에서 고출력 전자기 교란탄을 던져 적들의 헬멧 센서를 순간적으로 마비시켰고, 은성이 고주파 진동 단검을 휘둘러 선두의 경비병의 동력선을 정확히 잘라냈다. 소리 없는 사투 끝에 첫 번째 순찰 소대가 무력화되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이쪽입니다. 중앙 코어 룸으로 통하는 격벽입니다.”
카일이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레이저 장막이 겹겹이 흐르는 거대한 강철 격벽 문이 버티고 있었다. 제국의 삼중 보안 시스템이었다.
은성은 가죽 코트 안주머니에서 ‘레벨-3’ 보안 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접촉했다. 단말기 화면에 수많은 보안 코드가 폭포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은성은 아버지가 남겨둔 하부 전력 교차 노드의 설계적 허점을 파고들어, 백도어를 통해 보안 장막을 3초 동안 강제로 다운시키는 해킹 프로토콜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성공을 눈앞에 둔 그 순간, 은성의 뇌 신경망 가장 깊은 곳에서 검은색 아지랑이 같은 이질적인 파동이 솟구쳐 올랐다.
—흐흐흐, 멍청한 유기체 놈.
은성의 우뇌 뉴런을 타고 뱀처럼 끈적이고 비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뇌 속에 갇힌 천만 영혼 중, 과거 동족을 배신했던 변절자 영혼 ‘말라카이’였다. 말라카이가 은성의 뇌 신경계를 역해킹하여 그의 신체 제어권을 찬탈하려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윽……! 아아악!”
은성은 단말기를 쥔 채 무릎을 꿇었다. 마비가 풀렸던 왼손에 이어, 오른손가락 마디마디가 쇠붙이처럼 굳어지며 조종간처럼 뻣뻣하게 굳어갔다. 뇌 괴사율 경고음이 뇌내 네트워크를 타고 미친 듯이 울려 퍼졌다.
“은성 씨! 무슨 일입니까!”
카일이 다급히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은성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말라카이의 검은 사념이 그의 이성을 잠식하며 제국군에게 비밀 신호를 송출하려 시냅스를 강제로 오버라이드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토비가 죽게 둘 순 없다.’
은성은 머릿속 가상 공간에서 말라카이를 리라의 정신 감응으로 정화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말라카이는 그의 유년기 기억 깊은 곳에 교묘하게 기생하고 있었다. 강제로 정화하려다간 은성 자신의 자아와 기억이 통째로 날아갈 판이었다.
결국 은성은 최후의 카드를 선택했다.
‘꺼져라, 이 기생충 놈아.’
은성은 뇌 소켓 내부에 탑재된 친모 한서윤의 유산, ‘자아 격리 쉴드 포트’를 강제로 작동시켰다. 뇌의 생체 전류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차단하여 자아 영역을 강제로 동결시키는 비상 방화벽이었다.
지이이잉!
은성의 관자놀이에서 눈부신 은빛 스파크가 튀며 그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암전되었다. 전신에 가해지는 극심한 전뇌 충격에 은성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말라카이의 주파수는 뇌 내 가상 감옥 속에 완벽하게 격리되었다.
“하아…… 하아……”
마비가 풀린 은성이 굳어 있던 오른손을 움직여 보안 카드를 단말기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아버지가 설계한 전력 노드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붉은 레이저 장막이 일시에 꺼졌다.
쿠구구구!
육중한 강철 격벽 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푸른빛이 일렁이는 중앙 코어 룸의 내부가 드러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은성이 코어 룸 내부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양자 시야에 믿을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기는 거대한 그림자가 포착되었다.
온몸의 80%를 검은색 군용 장갑 의체로 개조한 종교재판소의 최정예 인간 병기, 집행관 케르베로스가 두 자루의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를 윙윙거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시에, 말라카이가 격리되기 직전 방출한 미세 주파수로 인해 타이탄 호 전역에 날카로운 비상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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