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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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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큼한 오수 냄새와 타버린 기계 윤활유 향이 코를 찔렀다. 하수도 파이프의 좁은 틈새를 기어 나오는 하은성의 왼발이 무겁게 바닥을 끌었다. 관자놀이에 이식된 은색 데이터 소켓 주변으로 미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그 열기는 이내 왼쪽 뺨을 타고 내려와 목덜미를 짓눌렀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가로등 갱단의 경계선이에요. 은성 씨, 버텨야 해요.”


엠마가 은성의 어깨를 부축하며 속삭였다. 그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닥터 반의 클리닉이 불타오르던 광경, 그리고 제국군에게 무참히 끌려가던 노의사의 뒷모습이 여전히 그녀의 눈앞에 선한 듯했다.


은성은 이를 악물었다. 왼쪽 허벅지와 어깨에 부착된 ‘실버-패드’가 징이잉 소리를 내며 미세 전류를 척추 신경망으로 쏘아 보냈다. 닥터 반이 처방해 준 ‘뉴로-진’의 냉각 효과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마치 끓는 납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은성의 왼쪽 눈동자가 통증에 반응하듯 황금빛 양자 에너지로 파르르 명멸했다.


“반 영감이 시간을 벌어줬어. 여기서 무너지면 개죽음일 뿐이다.”


은성의 목소리는 쇠긁는 소리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의 곁을 묵묵히 따르던 리라가 푸른빛의 ‘진정의 목걸이’를 가볍게 쥐며 은성의 뇌파를 다독였다. 그녀의 초감각적인 정신 동조가 없었다면, 은성의 뇌세포 괴사율은 벌써 임계점을 돌파해 그의 자아를 통째로 태워버렸을 터였다.


셋은 마침내 제7지하 구역의 가장 깊은 슬럼가, 가로등 갱단의 영토를 표시하는 깨진 네온사인 불빛 아래에 도달했다. 붉고 푸른 네온 불빛이 오수로 젖은 철판 바닥에 기괴하게 반사되고 있었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고주파 체인 톱 검 ‘리퍼’를 어깨에 걸친 여장부가 걸어 나왔다. 가죽 재킷을 걸치고 양 갈래로 땋은 붉은 머리를 흔드는 여전사, 가로등 갱단의 리더 타샤였다. 그녀의 뒤로 십여 명의 무장 갱단원들이 총구를 겨누며 나타났다.


“나다, 타샤.”


은성이 후드를 벗으며 차가운 황금빛 안광을 드러냈다. 타샤는 은성의 얼굴과 그의 관자놀이에 박힌 소켓을 확인하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밀수꾼 하은성이군. 정거장 상층부가 온통 종교재판소 놈들의 백색 제복으로 뒤덮였는데, 감히 내 구역에 발을 들이밀어? 제국의 정화 폭격이라도 끌어들일 작정인가?”


“숨겨줘. 대가는 톡톡히 치르지. 제국 세관의 순찰 루트 원본 데이터를 넘겨주겠다.”


은성은 냉철한 계산기를 두드렸다. 타샤는 철저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여자다. 동정심 따위는 슬럼가 하수구에 버린 지 오래였다. 타샤는 은성이 제시한 조건과 그의 뒤에 선 리라, 엠마를 번갈아 응시하더니 이내 무기를 거두었다.


“안으로 들어와. 하지만 쥐새끼처럼 조용히 있어야 할 거야. 바란의 사냥개들이 하부 구역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으니까.”


갱단의 비밀 은신처는 낡은 환기 팬이 덜컹거리는 비좁은 지하 창고였다. 은성은 수술대 대용으로 쓰이는 철제 테이블에 몸을 기댔다. 실버-패드의 전류가 약해질 때마다 왼쪽 다리의 감각이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감각이 찾아왔다.


그때, 타샤가 단말기를 확인하더니 안색을 굳히며 은성에게 다가왔습니다.


“하은성, 너를 돕던 그 꼬맹이…… 토비라고 했나?”


은성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토비가 왜?”


“그 바보 같은 녀석이 네 탈출 경로를 확보하겠다고 정거장 통제국 메인 서버를 해킹하려다가 종교재판소의 아르고스 AI에게 덜미를 잡혔어. 지금 제7지하 감옥에 수감됐다더군. 2시간 뒤면 뇌 신경이 완전히 포맷되어 평생 자아 없는 안드로이드 시체로 개조될 거야.”


“뭐라고?”


은성의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 이명이 다시 폭발했다. 뇌 괴사율이 요동치며 소켓 주변 신경망이 붉게 타올랐다.


‘그 멍청한 꼬맹이가…… 왜 그런 짓을.’


평소 은성을 친형처럼 따르며 기름때 묻은 고글을 머리에 얹고 헤헤거리던 소년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은성은 언제나 ‘내 머릿속에 빚을 지지 마라’며 철저히 이기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닥터 반의 희생에 이어, 이제는 자신 때문에 자식 같은 제자까지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 은성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고 무거운 분노가 솟구쳤다.


“내 다리가 이 모양인데…….”


은성은 마비가 시작된 왼손을 쥐었다 폈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괴사율 30% 돌파. 뇌세포가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 상태로는 감옥 침투는커녕,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는 것조차 기적이었다.


그때, 창고의 어두운 해치가 열리며 제국 하급 장교 제복을 걸친 사내가 조용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눈빛만큼은 혁명가의 불꽃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체제 저항군 ‘진리 연대’의 요원 카일이었다.


“하은성 씨, 토비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카일이 홀로그램 단말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파란색 입체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거대한 함선의 3D 도면이 공중에 투사되었다.


“이건…… 제국 군용 수송선 타이탄 호인가?”


은성이 양자 시야를 가동해 도면의 세부 회로도를 읽어내며 물었다.


“맞습니다. 토비가 갇힌 지하 감옥은 종교재판소 요새의 심장부에 있습니다. 전자기 억제 장막이 흐르고 있어 정면 돌파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타이탄 호를 강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카일이 도면의 한 지점을 붉게 표시했다.


“타이탄 호의 중앙 코어에는 제국 해군의 극비 장비인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Legacy Neural Sync Card)’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현재 단종된 구형이지만, 제국의 추적망을 우회하여 당신의 뇌 소켓과 영혼 데이터를 완벽히 격리할 수 있는 유일한 하드웨어죠. 그걸 얻으면 당신의 좌반신 마비를 완구히 치료하고 괴사 속도를 멈출 수 있습니다.”


카일은 은성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장치로 마비를 치료한 뒤, 타이탄 호의 전력망을 역해킹해 정거장 지하 감옥의 전자기 억제 장막을 일시적으로 다운시키는 겁니다. 그것이 토비를 구출하고 이 정거장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설계입니다.”


은성은 차가운 눈으로 도면을 분석했다. 뇌 속의 고대 정비사 카르단과 군사 전략가 알라릭의 사념이 은성의 뉴런과 공명하며 해킹 공식을 실시간으로 도출해 냈다.


“타이탄 호의 삼중 보안 레이저 장막은 제국 표준 방화벽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규격이다. 카일, 저항군의 해킹 프로토콜로는 저 장막에 닿기도 전에 뇌가 구워질 텐데?”


카일이 지적한 한계에 은성이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하지만 은성은 이미 머릿속으로 변칙 경로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면 해킹이 아니라, 수송선 코어의 전력망과 연결된 하부 정비 배관의 전력 교차 노드를 오버로드시키는 변칙 경로를 쓸 거다. 내 뇌 속의 지식을 빌린다면, 3초 동안 보안 장막을 강제로 다운시킬 수 있어.”


은성이 자신의 단말기에 백도어 해킹 프로토콜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손가락 끝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편두통이 밀려와 은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엠마가 다급히 그의 상태를 스캔했지만, 은성은 멈추지 않았다.


카일은 은성의 천재적인 해킹 설계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놀랍군요. 제국의 최신 방화벽을 그런 식으로 우회할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당신이 이 설계를 성공시켜야만 하는 진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카일이 목소리를 낮추며 도면의 개발자 서명란을 확대했다. 그곳에는 기하학적인 나선 문양과 함께 익숙한 제국 기술자의 이름이 암호화되어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송선의 보안 아키텍처와 당신이 강탈하려는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 그걸 설계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은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설마…….”


“하정우. 당신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예란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 제국 몰래 이 장치를 설계했고, 숙청당하기 전 이 수송선 깊은 곳에 프로토타입을 숨겨두었습니다.”


카일의 목소리가 비장하게 창고 안을 울렸다. 은성은 자신의 가슴팍에 든 낡은 양자 컴파스를 꽉 쥐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 그리고 아버지가 설계한 함선의 심장부. 모든 운명의 실타래가 제국 수송선 타이탄 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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