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된 안식처
기계 사냥개 ‘팽’의 붉은 안광이 어둠 속에서 은성의 이마를 비추는 순간, 골목 위 허공에서 푸른빛의 실을 뿜어내는 정체불명의 실루엣이 내려앉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실이 아니었습니다. 극도로 압축된 양자 정신 에너지가 물리적인 파동으로 시각화된, 푸른빛의 정신 감응 나선이었습니다. 실은 순식간에 은성의 전신 마비된 육체를 감싸 안았고, 동시에 골목 벽면에 부착되어 있던 구형 변압기를 향해 강렬한 전자기 충격을 날렸습니다.
퍼어억!
변압기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강력한 백색 섬광과 전자기 노이즈를 뿜어냈습니다. 기계 사냥개 팽의 광학 센서가 일시적인 과부하로 인해 찌지직 소리를 내며 흔들렸고, 붉은 안광이 갈팡질팡 흐려졌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은성은 자신을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차갑고 가녀린 손길을 느꼈습니다. 은은한 은빛 피부와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여성, 예란족의 마지막 무녀 리라였습니다.
“정신 차리세요, 하은성. 여기서 잡히면 천만 명의 영혼이 제국의 손에 소멸합니다.”
리라의 목소리가 은성의 뇌 신경망에 직접 공명하며 이명을 잠재웠습니다. 그녀는 마비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은성을 자신의 어깨에 부축하고, 반파되어 불꽃을 뿜는 딩고를 가죽 코트 자락으로 감싸 안은 채 어둠이 짙게 깔린 슬럼가 지하 수로의 사각지대로 빠르게 몸을 숨겼습니다.
은성의 의식은 끊임없이 명멸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알라릭 장군의 차가운 격투 전술 공식과 천만 영혼의 슬픈 속삭임이 뒤엉켜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좌반신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져 얼음처럼 차가웠고, 오른쪽 어깨의 자상에서는 뜨거운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려 코트를 적셨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턱밑까지 드리워진 상태에서 그들이 필사적으로 당도한 곳은, 제7지하 구역의 낡은 정비소 뒤편에 위장된 ‘닥터 반의 야매 클리닉’이었습니다.
철컥, 스르륵.
비밀 해치가 열리고 기름때와 낡은 소독약 냄새가 섞인 클리닉의 내부가 드러났습니다. 한쪽 눈에 의료용 다중 렌즈 고글을 달고 있던 노의사 닥터 반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은성과 리라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 미친 녀석아! 머리에 대체 뭘 집어넣고 다닌 거냐!”
닥터 반은 은성을 수술대 위에 눕히며 다급하게 소리쳤습니다. 그의 간호사이자 인공 신체 전문 보조원인 엠마가 즉각 의료용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엠마의 손길은 단호하고 신속했습니다.
“신경 오버로드 수치가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좌반신 시냅스가 완전히 차단되었어요. 엠마, 즉시 뉴로-진을 준비해!”
닥터 반의 명령에 엠마가 푸른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를 은성의 관자놀이 소켓 주변 신경망에 주입했습니다. 신경 안정 약물 ‘뉴로-진(Neuro-Zin)’이 차가운 얼음물처럼 은성의 뇌 신경망으로 흘러들었습니다. 귓가에서 광기 어리게 울려 퍼지던 천만 영혼의 비명과 이명이 일시적으로 마비되듯 잦아들었습니다.
“아직 멀었어. 생체 전류 자극기를 가동해라.”
엠마는 은성의 허벅지와 왼쪽 어깨에 미세 신경 전도 자극 의료 패드인 ‘실버-패드’를 밀착시켰습니다.
지지직! 지지직!
고주파 미세 전류가 마비된 신경망을 강제로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은성의 유기체 피부가 미세하게 타들어 가며 붉은 흉터와 극심한 통증이 발생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고통이 죽어 있던 감각을 깨웠습니다. 굳어 있던 왼손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은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닥터 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반…… 영감…….”
“시끄럽다, 이 녀석아. 네 관자놀이 소켓을 이식해 준 게 나지만,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하라고 해준 게 아니다. 네 뇌세포의 10%가 이미 괴사했어. 군용 양자 냉각 칩을 당장 구하지 않으면 네 뇌는 사흘도 못 가 흘러내릴 거다.”
닥터 반은 붕대로 은성의 어깨 자상을 거칠게 감싸며 혀를 찼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깊은 연민과 걱정이 서려 있었습니다. 은성에게 반 영감은 제국 데이터 수용소에서 아버지를 잃은 후, 이 거친 우주정거장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보살펴 준 따뜻한 어른이었습니다.
그때, 닥터 반의 개인 단말기가 조용히 진동했습니다. 화면을 확인한 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은성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조용히 은성의 수동 단말기에 데이터 링크를 연결했습니다.
“은성아, 내가 가진 마지막 신경 외과 수술 일지 파일이다. 네 뇌 괴사를 완전히 멈출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을지 모르니…… 기회가 되면 반드시 열어보아라.”
그것은 단순한 일지가 아니었습니다. 닥터 반이 체포되기 직전 은성을 위해 몰래 전송한, 전설의 행성 ‘에델가드’로 향하는 첫 번째 좌표 조각이 담긴 극비 파일이었습니다. 은성이 의아한 눈빛을 보내기도 전에, 클리닉 내부의 경보등이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며 요란한 경보음을 울려 댔습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경보? 아르고스 AI가 벌써 여기까지 감지한 건가?”
엠마가 모니터를 확인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화면에는 슬럼가 약재상 옷을 입은 사내, 제국 밀정 사르카가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제국 이단 추적대를 안내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제국 종교재판소의 잔혹한 3등 심문관 바란과, 온몸의 80%를 기계로 개조한 인간 병기 집행관 케르베로스였습니다.
“밀정 놈이 클리닉 위치를 불었군.”
닥터 반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쾅—!
클리닉 입구의 이중 합금 격벽이 귀를 찢는 듯한 금속 파쇄음과 함께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습니다. 집행관 케르베로스의 양손에 장착된 고주파 진동 블레이드가 불꽃을 뿜으며 격벽을 뚫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 뒤로 검은색 종교재판소 제복을 입은 심문관 바란이 차가운 안광을 번쩍이며 걸어 들어왔습니다.
“이단 기술을 숨겨주는 불법 쥐구멍이 여기 있었군.”
바란의 목소리가 클리닉의 차가운 공기를 얼려버렸습니다.
“도망쳐라, 은성아! 리라 무녀님을 데리고 당장!”
닥터 반이 은성의 어깨를 강제로 밀치며 수술대 뒤편의 비밀 환기구 해치를 열었습니다. 은성은 왼손을 짚고 일어나 품속의 양자 권총 발칸-X에 손을 뻗었습니다.
“반 영감! 같이 가야 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지금 네 다리로는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엠마, 은성이를 데리고 가!”
엠마가 눈물을 흘리며 은성의 마비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다리를 붙잡고 강제로 환기구 안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은성 씨, 제발요! 지금 나가면 닥터 반의 희생이 완전히 헛수고가 돼요!”
리라 역시 은성의 손을 잡고 어두운 환기구 안쪽으로 그를 당겼습니다. 은성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비밀 해치 너머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좁은 환기구 틈새 너머로 비극적인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이단 데이터를 밀수하는 하은성은 어디 있나, 늙은이.”
심문관 바란이 신경 채찍을 가볍게 털었습니다. 파지직하는 고압 전류의 푸른 불꽃이 바닥을 긁었습니다.
“그 녀석은 벌써 정거장 외곽의 제3 화물 도크를 통해 탈출했다, 이 제국의 사냥개 놈들아!”
닥터 반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거짓 좌표를 말하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찰그락!
“건방진 늙은이가 감히 종교재판소를 기만하려 드는군.”
바란이 신경 채찍을 내리쳤습니다. 고압 전류와 전자기 펄스가 닥터 반의 목덜미를 휘감았고, 노인의 몸이 처참하게 떨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졌습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 가는 극심한 고문이 이어졌습니다.
“영감님—!”
은성이 소리치려 했으나, 엠마가 그의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았습니다. 은성의 주먹이 바닥의 철판을 긁으며 피로 물들었습니다. 평생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며 오직 자신의 안위와 돈만을 쫓았던 뇌 신경 밀수꾼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난생처음으로 뜨거운 분노와 지울 수 없는 마음의 부채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기지를 정화하라. 먼지 한 톨 남기지 말고 태워버려라.”
바란의 냉혹한 명령에 집행관 케르베로스가 플라스마 화염방사기를 가동했습니다. 눈부신 백색 화염이 클리닉 내부의 의료 장비와 닥터 반의 수술실을 무참하게 집어삼키기 시작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과 자욱한 연기가 환기구 내부까지 밀려 들어왔습니다.
“가야 해요, 은성 씨.”
리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붙잡았습니다. 은성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제국군에게 끌려가는 닥터 반의 젖은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눈에 새겼습니다.
‘바란…… 케르베로스…… 제국 놈들…….’
은성은 어두운 하수도 파이프를 향해 몸을 던졌습니다. 눈물과 그을음이 범벅이 된 그의 왼쪽 황금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증오의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수동 단말기 화면에는 닥터 반의 마지막 유산인 암호화된 파일이 소리 없이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