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시장의 도박
테네브리스 정거장 하부 구역의 공기는 늘 기름때와 녹슨 철가루 냄새로 무거웠다. 천장에 얽히고설킨 거대한 에너지 배관에서는 독성 물질이 섞인 응축수가 끊임없이 떨어져 바닥의 오수 구덩이를 두드렸다. 보라색과 붉은색 홀로그램 광고판이 뿜어내는 기괴한 네온 불빛이 오수 표면에 반사되어 어지럽게 일렁였다.
제국 종교재판소의 총봉쇄령이 내려진 정거장은 거대한 기계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경보음이 정거장 외벽을 타고 무겁게 울리는 가운데, 하은성은 가죽 코트 깃을 깊숙이 여미며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양쪽 관자놀이에 박힌 은색 양자 데이터 이식용 소켓 주변으로 미세한 열기가 다시금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인님, 현재 체온이 정상 범위를 1.8도 초과했습니다. 방사능 피폭 흔적과 뇌 신경망의 열 폭주가 겹치고 있습니다. 8시간 이내에 양자 냉각 칩을 교체하지 않으면, 뇌세포 괴사율이 다시 가파르게 상승할 것입니다.”
옆에서 굴러가던 낡은 범용 로봇 딩고가 삐걱거리는 기계음으로 경고했다. 은성은 마비가 일시적으로 풀린 왼손을 쥐었다 펴며 혀를 찼다.
“나도 알아, 딩고. 그러니까 지금 목숨 걸고 그 미친 여자한테 가는 거잖아.”
은성이 도달한 곳은 네온 슬럼가 ‘붉은 가로등’의 가장 깊숙한 골목에 위치한 무기 개조점이었다. 붉은색 홀로그램 가로등이 입구를 비추고 있는 그곳은 정거장 하부에서 유일하게 제국의 눈을 피해 군용 부품을 밀거래하는 한나의 아지트였다.
드르륵—.
은성이 녹슨 해치를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매캐한 플라스마 타는 냄새와 금속 윤활유 향이 코를 찔렀다. 작업대 위에는 해체된 제국군 제식 소총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그 중심에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붉은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한쪽에 권총 홀스터를 찬 세련된 미모의 한나였다. 그녀는 한쪽 눈에 확대 렌즈를 낀 채 조준 경장치를 조율하다가, 은성을 흘긋 바라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어머, 현상금 10만 크레딧짜리 귀하신 몸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을까? 정거장 전체에 바란 심문관의 사냥개들이 깔렸는데 말이야.”
“용건만 간단히 하지, 한나.”
은성은 가죽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은 채 작업대 앞으로 다가갔다.
“군용 양자 냉각 칩이 필요해. 네가 숨겨둔 재고가 있다는 걸 알고 왔어.”
한나는 확대 렌즈를 벗어 던지며 비죽 웃었다.
“냉각 칩? 당연히 있지. 최고급 군용 규격으로 딱 한 개 남았어. 가격은 깔끔하게 5만 크레딧. 선불이야.”
은성은 침을 삼키며 품속에서 위조된 제국 크레딧 카드를 꺼내 한나의 결제 단말기에 꽂았다. 오랜 밀수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걸린 적 없는 일급 위조품이었다. 하지만 카드를 꽂는 순간, 단말기 화면에 잔혹한 붉은색 경고등이 깜빡였다.
[위험: 제국 금융망 실시간 차단 시스템 가동. 대상 계좌 동결 및 비인가 금융 단말기 감지. 보안 경보 전송.]
“어머나.”
한나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작업대 아래에서 순식간에 권총을 뽑아 은성의 이마를 겨누었다.
“계좌가 통째로 묶인 밀수꾼 쥐새끼가 어디서 쓰레기 카드를 들이밀어? 나를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고?”
“기다려, 한나! 정거장 봉쇄 때문에 일시적으로 오류가 난 거야!”
은성이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으나, 한나의 손가락은 이미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가 이어지던 그때, 가게 입구의 육중한 강철 해치가 강력한 유압 충격과 함께 굉음을 내며 박살 났다.
쾅—!
문이 날아가며 자욱한 먼지 속에서 구리색 중장갑을 걸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가슴팍에는 제국 징세관 그레고리의 고유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레고리가 보낸 사설 징수 대원들이었다.
“기계교단 및 징세관실의 명령이다! 이 가게의 모든 불법 무기 및 군용 장물은 즉시 몰수한다! 저항하는 자는 이단 혐의로 즉결 처형한다!”
선두에 선 거구의 징수 대원이 고압 전류가 흐르는 진동 진압봉을 휘두르며 소리쳤. 한나는 제국군을 보자 안색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작업대 아래의 비상 버튼을 눌렀.
“빌어먹을 제국의 개새끼들……! 내 전 재산을 그냥 넘겨줄 줄 알고!”
천장에서 유압 실린더 작동음과 함께 방어용 양자 자동 포탑이 내려왔다. 한나가 포탑의 제어 콘솔을 작동시키려 했으나, 포탑은 지직거리는 불꽃만 뿜어낼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최근에 정거장 전체를 휩쓴 EMP 여파나 배선의 미세한 균열로 인해 내부 회로가 완전히 fried된 상태였다.
“안 돼! 회로가 왜 이래?!”
한나가 비명을 질렀고, 제국의 징수 대원들이 비웃으며 총구를 겨누었다.
그 순간, 은성의 관자놀이에 박힌 양자 소켓이 미친 듯이 진동하며 뇌리에 거칠고 호탕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하하하! 꼬맹아, 기계 꼬락서니가 그게 뭐냐? 저따위 조잡한 양자 회로 하나 제어하지 못해 쩔쩔매다니. 비켜라, 내 손가락 뉴런을 네놈에게 동기화해 주마. 저 고철 더미를 단 5초 안에 깨워주겠어!]
뇌 속에 깃든 예란족 최고의 함선 정비사이자 대장장이였던 카르단의 영혼이었다. 은성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뇌 신경의 통제권을 카르단의 사념에 일시적으로 개방했다.
우웅—!
은성의 양쪽 관자놀이에서 강렬한 황금빛 신경망 흉터가 번져나가며, 그의 두 눈동자가 황금빛 양자 에너지로 발광하기 시작했다. 신체 제어권의 일부가 카르단과 동기화되는 순간, 은성의 양손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움직였다.
파지직! 파지직!
은성은 단숨에 작업대 위로 도약해 고장 난 자동 포탑의 하부 배선판을 뜯어냈다. 카르단의 지식이 그의 시각 뉴런을 지배하며, 포탑 내부의 뒤틀린 양자 흐름과 미세한 균열들이 3D 설계도처럼 머릿속에 완벽히 시각화되었다.
은성의 손가락 끝에서 미세한 전자기 나노 스파크가 튀었다. 그는 타버린 주 전력선과 보조 배선을 단 5초 만에 완벽히 임시 배선 복구했다. 고차원 기계 뉴런 동조 기술의 정수였다.
위이이이잉—!
정지해 있던 포탑이 눈부신 푸른빛을 내뿜으며 기동을 시작했다. 포탑의 총구가 회전하며 제국 징수 대원들을 락온했다.
두두두두둥—!
초고속 플라스마 탄환들이 실내를 휩쓸었다. 징수 대원들의 중장갑 방어막이 순식간에 깨지며 비명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 압도적인 화력 앞에 제국 대원들은 무기를 버리고 박살 난 해치 너머 골목으로 비틀거리며 도망쳤다.
연기가 자욱한 가게 내부에서, 은성은 빠르게 몸을 돌려 포탑의 제어권을 자신의 단말기로 오버라이드했다. 그리고 포탑의 총구를 한나의 머리 위로 고정시켰다.
철컥—.
포탑의 차가운 총구가 한나를 겨냥하자, 그녀는 권총을 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은성을 향한 경악과 공포, 그리고 기묘한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자…… 잠깐만, 은성. 진정해.”
“이제 다시 협상하지, 한나.”
은성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뇌 소켓에서는 가벼운 전자기 노이즈가 유입되어 귓가에 삐— 하는 이명이 들려왔지만, 표정만큼은 냉혹함을 유지했다.
“방금 네 목숨과 이 가게의 장물들을 구한 대가야. 군용 양자 냉각 칩을 내놔.”
한나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천천히 손을 내려 작업대 가장 깊은 곳의 비밀 금고를 열었다. 그리고 은색으로 빛나는 소형 양자 냉각 칩을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칩을 은성에게 밀어주지 않고, 손가락으로 칩을 지긋이 누른 채 은성을 응시했다.
“네 기술…… 방금 그건 단순한 해킹이 아니야. 정거장 메인 AI도 해내지 못할 고대 양자 배선 기술이지. 너, 진짜 정체가 뭐야?”
“알 필요 없어. 칩이나 넘겨.”
“이 냉각 칩을 가져가도 넌 오래 버티지 못해.”
한나가 붉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품속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내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눈부신 황금빛 제국 독수리 문양과 레벨-3 보안 크레스가 새겨진 sleek한 검은색 양자 카드였다.
“제국 군용 수송선 ‘타이탄 호’의 극비 보안 카드 레벨-3야.”
은성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나가 속삭이듯 제안을 던졌다.
“타이탄 호가 지금 정거장 상층 궤도에 정박해 있어. 그 함선 내부 깊숙한 곳에 네 뇌 소켓의 열 폭주를 영구적으로 제어해 줄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와 군용 냉각 칩 보관소가 있지. 이 카드를 줄 테니, 나와 거래를 하나 더 해. 수송선을 습격해서 장비를 확보하면, 이 냉각 칩은 공짜로 주지. 어때, 도박을 해볼 텐가?”
제국의 삼엄한 수송선을 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도박. 하지만 은성은 자신의 뇌세포 괴사를 완벽히 막기 위해선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은성은 천천히 검은색 보안 카드를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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