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뇌, 끊어진 생명선
제국군 경비대의 군화 소리가 폐선 격벽을 울리며 다가오는 소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선명했다. 녹이 슬어 삐걱거리는 고철 틈새로 붉은색 레이저 스캔 광선이 쓸고 지나갈 때마다, 하은성은 숨을 죽인 채 관자놀이를 움켜쥐었다. 리라의 정신 동조 덕분에 좌반신의 극심한 마비는 잠시 가라앉았지만, 머릿속에서 들끓는 천만 개의 영혼이 내뿜는 열기는 가실 줄을 몰랐.
"오래 버티지 못해요." 리라가 뇌리 속으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에 걸린 '진정의 목걸이'가 푸른빛을 깜빡이며 은성의 뇌파를 억누르고 있었지만, 목걸이 표면에는 이미 미세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제 정신 감응으로 뇌 신경망의 폭주를 지연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어요. 냉각탑으로 가야 해요. 당장."
은성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종족 무녀를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뇌 괴사율은 10%를 넘나들고 있었고, 머리가 통째로 타버리기 전에 살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한 고순도 액체 헬륨 냉각제가 필수적이었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 은성은 속으로 몇 번이고 다짐했다. 이건 오직 생존을 위한 거래일 뿐이라고.
"딩고, 경로 확보해."
은성의 나지막한 명령에, 낡은 가죽 코트 자락 옆에서 대기하던 노란색 원통형 로봇 딩고가 외발 바퀴를 조용히 굴리며 앞으로 나섰다. 도색이 다 벗겨져 기계 골격이 드러난 딩고는 한쪽 집게팔을 들어 올리며 기계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경고: 전방 50미터 지점, 방사능 수치 안전 기준치의 400% 초과. 주인님, 이대로 진입하면 유기체 뇌가 녹기 전에 피부가 먼저 벗겨질 수 있습니다. 물론 제 고철 몸뚱이는 멀쩡하겠지만요.]
"시끄러워. 방사능 보호 슈트 밸브 열고 전진해."
은성은 낡은 방사능 슈트의 헬멧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투명한 바이저 위로 붉은색 방사능 경고 아이콘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리라는 정거장 경비대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슬럼가 상층부의 환기구로 우회하기로 했다. 그녀의 정신 감응 주파수가 멀어지자마자, 은성의 머릿속에서 다시금 천만 명의 비명 소리가 이명처럼 찌릿하게 울려 퍼졌다. 은성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딩고에게 의지한 채, 제7지하 구역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폐기된 양자 냉각탑은 죽어버린 기계 거인의 시체처럼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과거 정거장의 핵융합로를 식히던 이 거대한 구조물은 제국의 폐쇄 명령 이후 방치되어, 사방이 녹슨 철판과 흘러나온 녹색 폐기물로 뒤덮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쇠가 타는 듯한 지독한 오존 냄새와 방사능 특유의 비린내가 가득했다.
은성은 오른손으로 낡은 데이터 패드를 꺼내 들었다. 관자놀이의 소켓이 욱신거리며 뜨거운 열을 내뿜었다. 냉각탑 주변에 설치된 제국 보안 AI '아르고스'의 감시 카메라들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저 카메라에 안면이 스캔당하는 순간, 정거장 전체에 일급 수배령이 떨어지며 바란의 추격대가 들이닥칠 것이다.
"딩고, 로컬 포트에 접속해. 내가 사각지대를 만든다."
은성은 낡은 배선함의 덮개를 뜯어내고 물리 포트에 데이터 패드를 연결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1성급 밀수꾼으로서 축적된 해킹 알고리즘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시각 사각지대 해킹 기법'을 가동했다. 감시 카메라의 전송 지연 시간과 알고리즘의 허점을 역이용하여, 자신이 이동하는 궤적의 화면만 실시간으로 3초 전의 정지 화면으로 덮어쓰는 고난도 기술이었다.
"지금이야. 움직여."
은성과 딩고는 유령처럼 감시 카메라의 눈을 피해 냉각탑 내부의 중앙 제어실로 침투했다. 내부로 들어설수록 방사능 경고음이 바이저 내부에서 날카롭게 울려 댔다. 중앙에는 거대한 액체 헬륨 냉각 탱크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하부에는 수십 년간 굳어버린 청동색 수동 밸브가 굳게 잠겨 있었다.
딩고가 집게팔을 밸브에 고정하고 온 힘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비명이 차가운 공기를 찢었다. 딩고의 관절 하드웨어가 노후화로 인해 삐걱거리며 과부하 경고를 보냈다.
[주인님, 이 밸브는 제 고철 관절보다 고집이 셉니다. 윤활유가 다 말라붙어 물리적 힘으로는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비켜봐."
은성은 직접 밸브 제어 콘솔의 회로판을 뜯어냈다. 그러나 그 순간, 노후화된 배관의 틈새에서 치이이익— 하는 파괴적인 소음과 함께 녹색의 유독성 양자 방사능 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고압 가스의 방출로 인해 은성의 방사능 슈트 헬멧 바이저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바이저 내부 화면이 지직거리며 경고등이 미친 듯이 깜빡였다.
[위험: 방사능 슈트 기밀 손상. 외부 방사능 유입 시작. 유기체 세포 파괴율 급증.]
"윽……!"
방사능 가스가 피부에 닿는 순간, 불로 지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은성의 뺨을 타고 흘렀다. 동시에 뇌 소켓이 전자기 마찰로 인해 미친 듯이 과열되기 시작했다. 좌반신의 신경이 다시 굳어 가며 손끝의 감각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였다. 이대로 가스가 계속 분출되면 냉각제를 손에 넣기도 전에 방사능 피폭과 뇌 괴사로 즉사할 터였다.
은성은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서 아버지가 남겨둔 기술 노트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구형 제국 플랫폼의 밸브 제어 회로는 과부하를 가하면 비상 안전 프로토콜에 의해 강제로 차단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은성은 마비되어 가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붙잡아 콘솔의 메인 전선에 억지로 접촉시켰다. 그리고 데이터 패드의 출력 전압을 강제로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파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은성의 손끝에서 터져 나왔다. 밸브 제어 회로가 일시에 과부하로 타버리며, 굉음과 함께 차단 격벽이 내려앉아 가스 분출구를 막아버렸다. 가스 누출이 멈췄다.
딩고가 그 틈을 타 밸브를 끝까지 돌려젖혔다. 탱크 하부의 사출구에서 마침내 차가운 백색 김을 내뿜는 고순도 액체 헬륨 냉각 실린더가 슬롯으로 툭 떨어졌다.
은성은 비틀거리며 실린더를 움켜쥐었다. 그의 관자놀이 소켓 주변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가죽 코트 깃을 태울 정도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은성은 주저 없이 냉각 실린더의 주입구를 자신의 관자놀이 은색 소켓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냉각음과 함께 극도의 차가운 액체 헬륨이 그의 뇌 신경망 구석구석으로 급속 주입되었다. 머릿속이 일시에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감각이 찾아왔다. 뜨겁게 불타오르던 천만 영혼의 비명 소리가 얼음장 같은 냉기 아래로 서서히 침잠했다. 찌르는 듯한 두통이 가라앉고, 지워져 가던 차갑고 냉소적인 이성이 번뜩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은성은 깊은 숨을 내쉬며 바이저 내부의 수치를 확인했다. 뇌 괴사율이 10% 선에서 안전하게 동결되어 있었다. 살았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은성이 쥔 데이터 패드가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검은색 제국 종교재판소의 문양이 덮여왔다. 정거장 전역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고출력의 기계음이 사이렌 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알림: 제국 종교재판소 3등 심문관 바란의 명령에 따라, 테네브리스 우주정거장 전 구역의 총봉쇄령을 선포한다. 모든 금융 계좌 및 불법 자산은 즉시 동결되며, 외곽 도킹 베이의 출입구는 전면 차단된다. 비인가 함선의 출항은 발견 즉시 격침 처분한다.]
"뭐라고……?"
은성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갔다. 그의 단말기에 기록되어 있던 블랙 마켓 금융 계좌의 잔액이 실시간으로 '0'으로 변하며 동결 처리되었다. 암시장으로 통하는 길목과 섀도우 호가 정박된 제3 화물 도크로 향하는 모든 격벽이 닫히기 시작했다. 냉각제를 겨우 확보해 숨을 돌린 순간, 완벽한 고립무원의 덫에 갇혀버린 것이다.
[주인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제국의 통제 AI 아르고스가 정거장 하부의 전력 소모 패턴을 역추적하고 있습니다. 탈출 경로를 재연산해야……]
딩고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제어실 천장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구형 감시 카메라의 렌즈가 지직거리며 푸른빛에서 핏빛 같은 붉은색 안광으로 전이되었다.
카메라는 은성의 뺨에 묻은 피와, 관자놀이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은색 소켓을 정확히 락온했다. 정거장의 살아있는 눈, 아르고스가 그의 얼굴을 완벽하게 인식한 것이다.
단말기 화면에 붉은색 경고가 해골 문양과 함께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대상 확인: 이단 데이터 밀수꾼 하은성. 물리적 좌표 확보. 종교재판소 이단 추적대 강제 파견.]
정거장 전역에 은성의 위치를 알리는 날카로운 경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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