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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와의 기묘한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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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습한 금속의 틈새. 제7지하 구역의 폐선 격벽 사이로 흘러나오는 썩은 냉각수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하은성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온몸의 감각이 제멋대로 비틀려 있었다. 특히 왼쪽 팔과 다리는 마치 두꺼운 납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완벽하게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관자놀이에 박힌 은색 양자 데이터 이식용 소켓은 여전히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파직거리는 전자기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었다. 뇌세포가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는 지독한 고열과 이명이 머릿속을 사정없이 헤집었다. 입안 가득 비린 피비린내가 감돌았다.


"윽……!"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으려던 은성은 순간 온몸의 신경을두들기는 기이한 감각에 굳어버렸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과 황금빛이 미묘하게 뒤섞인 안개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개 너머로, 은은한 은빛 피부를 지닌 한 여성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낡아 빠진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만큼은 깊은 심연 속에서 타오르는 황금빛 불꽃처럼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예란족의 마지막 무녀, 리라였다.


"깨어났군요, 이방인."


그녀의 목소리가 뇌리 속에서 직접 공명하듯 울려 퍼졌다. 은성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왼쪽 몸은 마비되었지만, 밀수꾼으로서 다져진 생존 본능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는 오른손을 코트 안감으로 조심스럽게 밀어 넣었다. 손끝에 서늘하고 묵직한 고주파 진동 단검의 자루가 닿았다.


"움직이지 마."


서슬 퍼런 경고와 함께 은성은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단검을 겨누었다. 단검의 초고속 진동이 공기를 가르며 웅웅거리는 미세한 소음을 냈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녀의 목 피부 직전에서 멈췄다. 하지만 리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슬픔과 연민이 교차하는 눈빛으로 은성의 관자놀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의 뇌 속에서…… 천만 명에 달하는 내 동족들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요. 그들의 고통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무슨 개소리야. 난 그냥 살기 위해 이 칩을 다운로드했을 뿐이야. 비키지 않으면 이 목줄기를 따버리겠어."


은성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의 위협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관자놀이의 소켓이 폭발하듯 붉은 광운을 내뿜으며 뇌 전체에 벼락을 내리쳤기 때문이다.


"아아악!"


은성은 단검을 떨어뜨리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두개골이 깨져나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뇌 괴사율이 실시간으로 폭증하는 경고음이 뇌내 네트워크를 타고 요란하게 울렸다. 이대로 두면 자아가 완전히 붕괴될 터였다. 은성은 필사적으로 허리춤의 구형 데이터 패드를 꺼내 소켓의 전원을 강제로 차단하려 해킹 프로토콜을 입력했다.


[에러: 시스템 리미터 해제 불가. 양자 데이터 동기화율 1% 돌파. 강제 차단 시 뇌 신경망 즉각 영구 폐쇄.]


"제장……!"


강제로 끄려 할수록 좌반신의 마비 증세는 더욱 심해졌고,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극심한 발작이 전신을 지배했다. 은성이 고통에 겨워 흰자위를 드러내며 호흡을 멈추려던 그 순간, 리라가 조용히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가냘프고 차가운 손을 은성의 뜨거운 관자놀이 소켓 위에 살포시 얹었다.


"진정하세요. 흐름을 거스르려 하면 당신의 유기체 뇌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릴 겁니다. 내게 당신의 뇌파를 맡기세요."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라의 목에 걸린 푸른빛의 결정체 목걸이가 공명하듯 은은한 광채를 뿜어냈다. 예란족의 생체 진정 장치인 '진정의 목걸이'였다.


동시에 은성의 정신 속으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정없이 날뛰던 뇌파 주파수가 리라의 정신 감응 파동과 실시간으로 맞물리며 고요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머리를 지져대던 불길 같은 고열이 서서히 식어가고, 차갑고 맑은 물줄기가 뇌 신경망 구석구석을 채우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그리고 정신 깊은 곳, 천만 영혼의 심연 속에서 희미하게 잠들어 있던 존재가 고개를 들었다. 예란족의 선조 무녀 리안의 사념이었다. 리안의 영혼은 은성의 정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리라의 정신 파동과 은성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았다. 싱크율이 1%에서 5% 사이를 오가며 비로소 안착하는 순간이었다.


발작이 멈추고 거친 호흡을 진정시킨 은성이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왼쪽 눈동자 가장자리에 미세한 황금빛 양자 에너지가 서려 있었다.


"……날 살려둔 이유가 뭐야?"


은성은 단검을 다시 챙겨 들며 그녀를 극도로 경계했다.


리라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손을 거두었다. "말했잖아요. 당신의 머릿속에 우리 종족의 마지막 생존 데이터가 들어있다고요. 당신이 죽으면 천만 명의 영혼도 우주의 먼지로 소멸합니다. 그러니 난 당신을 살려야만 해요."


그녀는 허공에 황동색 빛의 홀로그램을 띄웠다. 은성의 뇌 신경망 지도였다. 실시간으로 붉게 괴사해 가는 뇌세포의 영역이 선명하게 표시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정신 감응은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당신의 뇌 괴사율은 이미 10%에 육박하고 있어요. 뇌 신경망의 열 폭주를 근본적으로 막아줄 냉각 장치가 없다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당신의 뇌는 완전히 녹아내릴 겁니다."


은성은 이빨을 사려 물었다. 자신의 생명선이 반나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뼛속 깊이 와닿았다. 비즈니스적인 계산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굴러갔다. 이종족 무녀를 믿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당장 그녀의 정신 안정 능력이 없다면 자신은 다음 행선지로 움직이기도 전에 뇌사할 터였다.


"좋아, 비즈니스 계약을 맺지." 은성이 냉소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살아야겠고, 넌 네 동족의 영혼을 지켜야 하니까. 하지만 오해하지 마라. 난 네 동족을 부활시키는 영웅 따위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내 머릿속에 빚을 지지 마라. 난 오직 내 목숨을 건사하기 위해 네 능력을 철저히 이용할 뿐이니까."


"상관없어요. 그들이 소멸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든 치르겠어요."


리라의 목소리는 고요하면서도 단호했다. 그녀는 은성의 관자놀이에 흐르는 미세 전류의 흐름을 보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 정거장 하부, 제7지하 구역의 폐기된 양자 냉각탑에 제국군이 미처 회수하지 못한 고순도 액체 헬륨 냉각제가 남아있어요. 극심한 방사능 오염 구역이라 봉쇄되어 있지만, 당신과 당신의 로봇이라면 침투할 수 있을 겁니다."


은성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살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폐기된 냉각탑이라…… 거기로 간다."


은성은 고주파 진동 단검을 코트 품속에 깊숙이 찔러 넣으며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그 순간, 폐선 틈새 너머 정거장 상층부에서 제국 종교재판소 경비대원들의 무거운 군화 소리와 전자기 센서의 경보음이 아스라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포위망이 좁혀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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