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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위의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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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콘솔이 핏빛으로 붉게 울부짖는 순간, 은성은 마비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조종간을 꽉 움켜잡았습니다.


관자놀이에 이식된 구세대 신경 동기화 장치가 웅웅거리며 기분 나쁜 기계음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자가 수술의 여파로 관자놀이 주변 가죽 코트 깃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은성은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의 오른쪽 팔은 가죽 코트 주머니 속에 죽은 고기처럼 무력하게 처박혀 있었고, 오직 왼손 하나만이 섀도우 호의 낡은 조종간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었습니다.


황금빛 양자 에너지로 발광하는 그의 왼쪽 눈은 이미 물리적인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대신 그 눈은 뇌 신경망에 직접 링크된 네로 AI의 전술 궤도 데이터와 제국 함대의 포격 주파수를 실시간 홀로그램 그래픽으로 뇌리에 투사하고 있었습니다. 시야의 오른쪽 절반은 어두운 조종실의 풍경을, 왼쪽 절반은 핏빛으로 번쩍이는 기하학적인 궤도 분석도를 비추는 기묘한 감각이었습니다.


[경고! 제국 경비 함대 사령관 드레이크 대위의 기함 ‘아이언 크로 호’가 본선을 락온했습니다. 주포 충전율 90%. 방출 주파수 감지.]


네로의 냉소적이면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조종 콘솔 한구석에서는 노란색 반딧불이처럼 둥둥 떠다니는 추진 제어 AI 파이어플라이가 미세하게 깜빡이며 스러스터의 분사각을 극도로 좁히기 시작했습니다.


“스텔스 코팅 가동해! 전력을 제어 장치로 집중시켜!”


은성이 왼손으로 보조 레버를 밀어붙이며 명령했습니다.


[본선의 전자기 스텔스 코트 전력은 현재 50%에 불과합니다. 제국 전함의 광범위 전자기 스캔에 직격당할 경우 스텔스 코팅이 강제로 무력화되고 위치가 다시 노출됩니다.]


네로의 경고와 동시에, 섀도우 호 외장 장갑을 감싸고 있던 희미한 스텔스 막이 제국 기함에서 내뿜은 강력한 스캔 광선에 닿아 파르르 떨렸습니다. 지직거리는 불꽃과 함께 스텔스 제어기가 과부하를 일으키며 스크린에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은신의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제국의 추격선들은 이미 그들의 꼬리를 완벽하게 물었습니다.


“형! 적함 3척이 후방에서 고속으로 접근 중이야! 이대로 가다간 주포 한 방에 선체가 분해될 거야!”


조종석 뒤편에서 보조 모니터를 감시하던 토비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습니다. 리라는 조용히 은성의 시트 뒤에 서서 그녀의 푸른빛 ‘진정의 목걸이’를 손으로 꼭 쥔 채 은성의 폭주하는 뇌파를 안정시키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수술을 집도했던 엠마 역시 구급 상자를 품에 안은 채 격렬하게 흔들리는 함내의 진동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닥쳐, 토비. 연산은 내가 한다.”


은성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의 뇌 속에서, 2성급 데이터 러너의 연산력과 ‘싱크율 10% ~ 15%’로 격상된 예란족 장군 알라릭의 사념이 무서운 속도로 맞물리기 시작했습니다.


‘유기체의 비행 감각은 느리다. 내 전술 데이터에 네 뉴런을 완전히 맡겨라.’


뇌 신경망 깊은 곳에서 알라릭의 차갑고 엄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와 동시에 은성의 왼손 손가락 끝에 신의 경지에 이른 듯한 초인적인 조종 감각이 흘러들었습니다.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고대 함선의 비행 궤적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입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알라릭의 ‘관성 회피 기동 수칙’이 은성의 운동 신경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콰아아아앙—!


후방에서 드레이크 대위의 순찰함선 3척이 발사한 추격 레이저포가 섀도우 호의 우측 진공을 가르며 폭발했습니다. 폭발의 충격파로 선체가 격렬하게 흔들렸고, 경보음이 조종실을 가득 메웠습니다.


“네로, 포격 궤적 시각화! 파이어플라이, 스러스터 우회 준비!”


은성은 마비된 오른손을 가슴팍에 고정한 채, 왼손 하나로 조종간을 기기묘묘한 각도로 꺾었습니다. ‘칼날 관성 회피(Blade Dodge)’ 기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섀도우 호는 우주 공간에서 관성을 무시하고 칼날처럼 가파르게 90도로 꺾여 들어갔습니다. 추진 제어 AI 파이어플라이가 스러스터의 분사각을 0.001초 단위로 미세 조정하여, 급격한 회전 기동으로 인해 선체가 공중분해되는 것을 물리적으로 지탱해 주었습니다. 붉은 레이저 광선 두 줄기가 섀도우 호의 장 장갑판을 겨우 몇 센티미터 차이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스쳐 지나간 열기만으로도 외장 장갑판의 15%가 녹아내리며 경보등이 깜빡였습니다.


“따라붙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저놈들, 우리를 완전히 가둘 생각이야!”


철호가 거구의 몸을 벽면에 밀착시킨 채 소리쳤습니다.


실제로 제국 순찰함들은 섀도우 호의 좌우를 포위하며 기하학적인 압박을 가해오고 있었습니다. 드레이크 대위는 노련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섀도우 호가 변칙적인 비행을 구사하자, 즉각 화력 포격을 멈추고 특수 탄두를 장착했습니다.


[경고! 적함이 중력 억제 탄두(Gravity-Suppression Warhead)를 발사했습니다. 착탄 예정 시간 3초.]


“중력 억제 탄두라고?”


은성이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후방에서 발사된 검은색 탄두가 섀도우 호의 후방 500미터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슈우우우웅—!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중력 왜곡 장막이 우주 공간을 덮쳤습니다. 주변의 진공이 끈적끈적한 타르처럼 무거워졌고, 섀도우 호의 메인 엔진 출력이 순간적으로 30%나 급감했습니다. 기체가 둔중하게 가라앉으며 가속력을 잃어갔습니다. 보조 배터리는 이미 완전 방전 상태로 빨간 불을 뿜고 있었습니다.


‘스러스터 역분사. 180도 회전 후 저격한다.’


알라릭의 전술적 직관이 은성의 뇌리에 번개처럼 내리꽂혔습니다. 정면 돌파로는 저들의 그물망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은성은 왼손으로 조종간의 비상 중력 제어 스위치를 수동으로 들이받았습니다.


“파이어플라이, 전방 스러스터 최대 역분사! 네로, 후방 레이저 저격포 조준!”


기체가 앞으로 나아가려는 관성을 유지한 채, 전방 스러스터가 격렬한 화염을 뿜었습니다. 섀도우 호는 제자리에서 팽이처럼 급격하게 180도 회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력 억제 장막의 압박 속에서 선체가 삐걱거리며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이 울렸습니다. 은성의 목 신경망과 뇌 소켓에 극심한 물리적 반동 충격이 가해졌고, 그의 입가에서 다시금 한 줄기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섀도우 호의 기수는 이제 추격해 오던 선두 제국 순찰함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가라!!!”


은성이 왼손 엄지로 트리거를 눌렀습니다.


피이이잉—!


섀도우 호의 후방 레이저 저격포가 선두 순찰함의 메인 광학 센서 어레이를 정확하게 관통했습니다. 번뜩이는 백색 폭발과 함께 선두 순찰함이 시야를 잃고 갈팡질팡하며 궤도를 이탈했습니다. 포위망의 한구석에 아주 미세한 균열이 발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저 틈새로 빠져나가야 해!”


토비가 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은성의 황금빛 왼쪽 눈은 그 균열 너머에 존재하는 더 거대한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오리온 성계 외곽에 방치된, 미세 블랙홀과 잔해들이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죽음의 우주 재난 구역이었습니다.


중력 붕괴 구역 ‘데드 존(Dead Zone)’.


“은성 씨…… 저곳은 물리 법칙이 뒤틀린 곳이에요. 진입하면 선체가 버티지 못해요!”


리라가 은성의 어깨를 잡으며 다급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은성의 눈빛은 차갑고 단호했습니다.


“저 뒤에는 드레이크의 기함과 전함들이 버티고 있어. 정면 대결은 백 퍼센트 격침이다. 하지만 저 지옥 속이라면…… 알라릭 장군의 비행술로 살아남을 확률이 단 1%라도 존재하지.”


은성은 왼손으로 엔진 출력 가속 레버를 한계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섀도우 호는 황금빛 추진 불꽃을 마지막으로 뿜어내며, 빛조차 왜곡되어 흘러내리는 데드 존의 칠흑 같은 소용돌이를 향해 기수를 던졌습니다.


섀도우 호가 미세 블랙홀과 소행성 파편이 요동치는 중력 붕괴 구역의 경계선을 넘어서자, 함선 외벽이 비명을 지르며 뜯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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