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사냥개, 한삼
뇌풍의 손가락이 강우의 부러진 손목 뼈를 강하게 움켜쥐는 순간, 일촉즉발의 침묵이 연무장을 뒤덮었다.
시퍼렇게 부어오른 강우의 오른손목을 움켜쥔 뇌풍의 악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멧돼지의 가죽도 단숨에 찢어발길 법한 거친 손가락 마디마디가 부러진 뼈를 직격했다. 그 손가락 끝을 통해 뇌풍 특유의 포악하고 뜨거운 벽력 진기(霹靂眞氣)가 사정없이 흘러들었다. 기맥을 태워 버릴 듯 파고드는 화독의 고통이 단숨에 척추를 타고 뇌리를 강타했다.
‘크윽……!’
비명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강우는 이를 악물었다. 입술 사이로 검붉은 피가 한 방울 흘러내렸지만, 얼굴에는 그저 고통에 일그러진 천치 아광의 멍청한 표정만을 유지했다. 눈동자의 초점을 흐리고, 벌린 입 사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사르르 떨었다.
동시에 강우의 단전 깊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기맥의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무진경(無震勁) 1성, 무진소식(無震소식).’
강우는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구결을 읊조리며 전신의 기맥을 뒤틀었다. 단전 깊숙이 응축된 가문의 진기를 뼈 속 가장 깊은 골수 속에 숨기고, 뇌풍의 진기가 파고드는 통로를 스스로 꼬아 차단했다. 뇌풍의 벽력 진기는 강우의 체내를 헤집었으나, 오직 거친 노동으로 단련된 껍데기 근육과 꼬여서 망가진 삼류 잡역부의 기형적인 맥박에 부딪쳐 허무하게 분산될 뿐이었다.
뇌풍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의 강력한 탐지 내력이 강우의 체내에서 아무런 내공의 저항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절정 고수라면 무의식적으로 방출했을 반탄진기조차 없었다.
“정말 내공이 전혀 없는 천치 놈이군.”
뇌풍이 중얼거리며 손을 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 끝에 걸린 미세한 이질감이 그의 움직임을 다시 멈추게 만들었다. 굳은살 아래로 느껴지는 뼈 내부의 기형적인 부종과 균열 흔적. 그것은 단순한 노역으로 생길 수 없는, 수천 근의 질량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뼈 자체에 새겨진 정교한 물리적 충격의 파편이었다.
뇌풍의 매서운 안광이 강우의 손목을 집요하게 노려보았다.
“이 손목의 부상은 대체 무엇이냐? 단순한 뼈부러짐이 아니다. 내부에서 충격을 견디다 못해 뼈가 가루가 되려 한 흔적이야.”
주변을 둘러싼 사병들이 창날을 바짝 세웠고, 마동포와 소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강우는 벙어리 아광의 연기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뇌풍의 손을 뿌리치려는 듯 어설프게 버둥거리며, 왼손으로 대장간 구석에 굴러다니던 거대한 무쇠 집게와 석탄 삽을 가리켰다. 그리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벙어리답게 읍, 읍 하는 둔탁한 신음 소리만을 내며, 며칠 전 대형 용광로의 석탄 마차를 밀다가 바퀴에 깔려 손목이 바스러졌다는 시늉을 미친 듯이 해댔다.
마동포가 그 모습을 보고 잽싸게 앞으로 나섰다.
“소장님! 저 벙어리 놈은 원래 머리가 모자라 대장간에서 가장 무거운 석탄 마차를 몰던 놈입니다! 사흘 전 마차가 미끄러질 때 멍청하게 손목으로 막으려다 깔려 뼈가 으스러졌습니다! 제가 직접 장 의원의 약방에서 고약까지 얻어다 발라주었습니다!”
뇌풍은 마동포의 다급한 외침과 강우의 비굴한 태도를 번갈아 보았다. 뇌풍의 내력 주입에도 아무런 진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는 결국 강우의 손목을 거칠게 내던졌다.
“쓸모없는 천치 놈이 목숨은 질기군. 독안귀, 이놈들을 다시 노역장으로 복귀시켜라. 하지만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다. 오늘 밤, 철공소 내부의 모든 막사와 오두막을 정밀 수색하겠다.”
뇌풍의 차가운 명령에 강우는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속으로 차갑게 침묵했다. 정체는 일시적으로 숨겼으나, 오늘 밤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된다면 오두막 바닥 흙 속에 묻어둔 가문의 신검 ‘적소도’가 발각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밤이 오기 전에 적소도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다.
* * *
밤이 깊어지자 추풍 철공소는 매연과 쇳가루 냄새 대신 서늘한 침묵과 긴장감에 휩싸였다. 사병들의 횃불이 곳곳을 비추며 순찰의 빈도가 평소보다 세 배는 촘촘해졌다.
강우는 어둠이 가장 짙어지는 자시(子時)를 기다려 오두막 바닥의 흙을 조용히 파헤쳤. 두꺼운 삼베천과 무거운 쇠사슬로 칭칭 감긴 적소도의 묵직한 도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우는 적소도를 등 뒤에 견고하게 고정하고 해진 대투를 걸쳐 무기의 형체를 완벽히 감추었다. 손목의 균열 통증이 매서운 밤바람을 타고 뼈 속 깊이 파고들었으나, 그는 묵묵히 통증을 삼키며 오두막을 빠져나왔.
그의 목적지는 아무도 찾지 않는 황량한 ‘고철 폐기장’이었다. 수십 년간 철공소에서 버려진 부러진 칼날과 쓸모없는 쇠똥들이 거대한 무덤처럼 쌓여 있는 그곳이라면, 적소도가 내뿜는 미세한 금속의 파동을 완벽히 감출 수 있을 터였다.
강우는 사병들의 순찰 동선을 피해 고철 폐기장 깊은 곳으로 신형을 움직였다. 그러나 폐기장 뒤편의 가파른 숲속 길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등 뒤에서 비릿하고 기분 나쁜 쇳가루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일반적인 철공소의 탄 냄새가 아니었다. 그것은 과거 한양 한씨세가 장인들이 쇠를 다룰 때 풍기던 특유의 야철 향이자, 동시에 가문의 피로 얼룩진 배신의 냄새였다.
어둠 속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쥐새끼 한 마리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군.”
가문 무복의 흔적이 누더기처럼 남은 옷자락을 걸친 중년 무인 하나가 나무 그늘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날카로운 눈매와 뺨에 깊게 팬 흉터, 그리고 비열하게 뒤틀린 미소. 과거 한양 한씨세가의 하급 무사였으나 십삼세가에 매수되어 가문의 방어 진법 정보를 넘겨주었던 가문의 배신자, 한삼(한삼)이었다.
한삼은 현재 조필성의 사냥개가 되어 추풍곡 내부에서 한씨가문의 생존자를 사냥하기 위해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시퍼런 안광을 내뿜는 무쇠 장도가 들려 있었다.
“벙어리 아광이라 불리는 잡역부놈…… 아니, 네놈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뇌풍 소장님은 속였을지 몰라도, 가문의 핏줄이 내뿜는 야철의 냄새는 이 한삼의 코를 속이지 못한다.”
한삼의 눈에 탐욕스러운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강우의 등 뒤에 메인 쇠사슬 뭉치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그 무거운 쇠사슬 뭉치…… 설마 전설의 적소도인가? 네놈이 정말 한무경 가주의 생존한 핏줄이로구나. 조필성 소주께 네놈의 목과 그 검을 바치면, 내 평생 부귀영화는 보장받겠지.”
원수를 마주한 순간, 강우의 심장 깊은 곳에서 핏빛 맹세의 낙인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의 적소도가 삼베천 속에서 기괴한 피울음을 울려 퍼뜨리려 요동쳤다.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전신의 경맥을 타고 폭발하려 했다.
‘배신자 놈……!’
강우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검붉은 살기로 물들었다. 당장이라도 적소도를 뽑아 저 비열한 배신자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으나, 심장이 파열될 듯한 제약의 통증이 그의 전신을 옭아맸다. 조필성을 대면하기 전에는 절대로 칼을 뽑을 수 없다는 혈약의 맹세 규칙 때문이었다.
강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심법을 운용했다.
‘혈약억제 정심결(血約抑制 靜心決).’
그는 단전의 폭주하려는 살기를 가라앉히며 평정심을 강제로 유지했다. 붉은 눈으로 세상을 보면 복수가 아니라 살육이 될 뿐이었다. 냉철해야 했다. 한삼은 이류 무인이지만 가문의 무공 기초를 알고 있는 자였다. 여기서 가문의 검식을 한 번이라도 보여준다면 정체가 완벽히 폭로되어 조필성 일파의 대포위망에 갇히게 될 터였다. 철저히 변방의 잡무공과 도집만으로 이 자를 소리 없이 유인해 제압해야 했다.
강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벙어리 아광의 겁먹은 표정으로 위장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도망치려 하느냐? 천한 핏줄 놈!”
한삼이 비웃으며 검을 비스듬히 치켜들었다. 그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강우의 배후를 기습적으로 노려왔다.
쉭!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한삼의 무쇠 장도가 강우의 목덜미를 향해 사선으로 베어 들어왔. 가문의 기초 검식 중 하나인 유수검(流水劍)의 궤적이었다.
강우는 눈빛을 가라앉히며 보법을 전개했다.
‘추풍삼보 구결(秋風三步 口訣).’
그는 가문의 정통 보법인 한천환영보를 철저히 숨겼다. 대신 낙엽이 바람에 날리듯 신형을 가볍게 흐트러뜨리며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한삼의 서슬 퍼런 칼날이 강우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며 허공을 갈랐.
“법도가 예사롭지 않군! 하지만 그 보법은 가문의 것이 아니다! 정체를 숨기려 발버둥 치는구나!”
한삼은 더욱 흥분하여 검을 가로로 크게 휘둘렀다. 숲속의 굵은 나뭇가지들이 검기에 잘려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한삼은 집요하게 검을 내찌르며 강우의 발놀림에서 가문의 흔적을 찾으려 안달이 나 있었다.
강우는 철저히 모르는 척 흙바닥을 구르고 비틀거리며 볼품없는 개싸움의 형태로 회피를 이어갔다. 한삼의 검끝이 강우의 해진 장포 자락을 찢어발겼으나, 강우의 육체에는 단 한 치의 상처도 내지 못했다.
강우는 도집조차 쓰지 않은 채, 오직 신체의 미세한 회전력만으로 기습을 무력화하며 한삼을 숲 깊은 곳, 깎아지른 절벽 지대로 서서히 유인했다.
‘청철공명결(聽鐵共鳴訣).’
강우는 질주하는 와중에도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삼의 무쇠 장도가 허공을 가를 때 발생하는 미세한 바람의 결소리와 금속 고유의 울림 진동이 그의 심안에 1치의 오차도 없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적의 검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완벽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한삼이 가문의 비전 초식명을 크게 외쳤다.
“한천낙뢰격(寒天落雷擊)!”
그는 강우의 본능적인 방어 동작이나 가문 특유의 방어 검식을 유도하려 일부러 웅장한 기세로 검을 내리찍었다. 가문의 생존자라면 이 절체절명의 일격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문의 무공으로 응수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강우는 철저히 침묵을 지켰다. 그는 가문의 검식을 펼치는 대신, 숲속의 가파른 바위 언덕을 딛고 몸을 날려 회피했다. 한삼의 장도가 바위를 내리치며 엄청난 불꽃과 함께 돌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 끈질긴 쥐새끼가 끝까지 벙어리 행세를 하는구나!”
한삼은 분노로 눈이 뒤집혀 숲속 막다른 절벽 끝까지 강우를 밀어붙였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고요한 공터였다.
한삼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는 검을 낮게 깔며 천천히 강우의 앞을 막아섰다.
그는 더 이상 성급하게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대신 가슴 깊이 숨겨두었던 배신의 칼날을 완전히 드러내려는 듯, 한양 한씨세가의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정교한 검식인 '한천수류검'의 준비 자세를 취했다.
검을 사선으로 눕히고, 왼손 손가락 두 개로 검신을 가만히 받쳐 든 채 무릎을 굽히는 자세. 가문의 무인이라면 뼈에 새겨져 있을 본능적인 대응 초식을 유도하기 위한 완벽한 미끼였다.
한삼이 어두운 숲속길에서 강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한씨가문 특유의 기초 검식 자세를 취해 강우의 무의식적인 반응을 유도하려 칼날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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