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광산, 맨손의 투쟁
어둠은 단순히 빛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폐부를 짓누르는 축축한 유황 가스였고, 귀를 찢는 대지의 단말마였으며, 살갗을 파고드는 차가운 절망의 무게였다.
광산 감독관 독안귀가 아광(한강우)을 밀어 넣고 거대한 사철 바위로 입구를 봉쇄해 버린 지하 사철광산의 가장 깊은 막장 철창 안. 강우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천장 너머 대지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기괴한 울림은 이미 막장 전체를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지하의 지반 기둥들이 무거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강우의 귀를 때렸다. 천장의 암반이 쩍쩍 갈라지며 쏟아지는 검은 사철 먼지 비가 강우의 뺨을 서늘하게 적셨다. 대지진의 본진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간 수만 근의 흙더미에 깔려 흔적도 없이 짓눌려 죽을 터였다.
강우는 조용히 등 뒤를 더듬었다. 거친 삼베천과 두꺼운 쇠사슬로 칭칭 감겨 고정된 신검, 적소도(赤霄刀)의 묵직한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가문을 멸망시킨 원수를 대면하기 전에는 절대로 칼집에서 뽑을 수 없다는 ‘혈약의 제약’. 그러나 뽑을 수 없다 하여 무기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쇠사슬에 묶인 거대한 도집(칼집) 그 자체는 그 어떤 무쇠 철퇴보다 단단하고 위력적인 병기였다.
강우는 도집을 고쳐 잡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두 발이 사철 진흙바닥을 묵직하게 디뎠다.
‘무진경(無震勁) 2성, 침투경(浸透勁).’
단전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차가운 진기가 꿈틀거리며 용솟음쳤다. 강우는 도집 끝을 굳게 닫힌 철창의 자물쇠 이음새에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숨을 들이쉬는 찰나, 모아둔 내력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타앙-!
귀를 찢는 금속 파열음은 없었다. 무진경의 침투 내경은 철창의 표면을 때리는 대신, 쇠의 결 내부로 직접 침투해 들어가 분자들의 결합을 안에서부터 사정없이 흔들어 발산했다. 찰나의 침묵 뒤,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무쇠 자물쇠가 허무하게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강우는 어깨로 뜯겨 나간 철창문을 밀치고 밖으로 뛰어나갔.
막장 밖의 갱도는 이미 지옥도로 변해 있었다.
“살려줘! 출구가 막혔다!”
“독안귀 그 애꾸눈 악마 새끼가 입구를 바위로 막고 도망쳤어! 우릴 생매장하려는 거다!”
인부들의 비명과 절규가 무너져 내리는 돌가루 소리와 뒤섞여 갱도를 가득 채웠다. 사방에서 목조 지지대들이 부러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횃불들이 땅바닥에 떨어져 꺼져가며 사방이 어둠 속으로 잠겨갔다.
강우는 기민한 신형으로 무너지는 천장 낙석들을 피해 갱도 중앙으로 질주했다. 그의 눈빛은 벙어리 아광의 멍청한 모습이 아닌, 냉철하게 상황을 지배하는 무인의 안광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앞쪽 붕괴가 가장 심한 막장 입구 부근에서 소철의 다급한 비명이 들렸다.
“칠성아! 일어나! 제발 움직여봐!”
열다섯 살의 소년 소철이 흙더미에 다리가 깔린 쳇바퀴 같은 소년 광부, 칠성이를 필사적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칠성이의 다리를 누르고 있는 바위는 너무나 무거웠고, 소철의 가냘픈 팔힘으로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두 소년의 머리 위 천장에서 집채만 한 거대한 사철 바위가 굉음을 내며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떨어진다면 두 소년은 형체도 없이 으스러질 터였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등 뒤의 도집을 비스듬히 세워 떨어지는 바위의 사선을 쳐내려(도집 받치기) 했다. 그러나 바위가 지닌 수천 근의 낙하 속도와 질량은 인간의 인위적인 무기로 흘려보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해 있었다. 도집 끝이 바위 표면에 닿는 순간, 우지끈하는 불길한 진동이 강우의 오른손목 뼈를 타고 불타오르듯 관통했다. 이대로 억지로 쳐내려 했다간 도집이 박살 나고 팔뼈가 가루가 될 터였다.
‘안 된다. 도집이 파손되면 혈약의 맹세가 깨지기 전에 검이 고철이 된다.’
강우는 즉시 도집을 거두어 등 뒤로 돌렸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맨손의 괴력을 발동해 떨어지는 거대 바위의 밑바닥을 양손으로 정면으로 받아내었다.
쿵-!!!
대지가 내려앉는 듯한 무거운 충격음이 지하 광산을 흔들었다.
“으윽……!”
강우의 목구멍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수천 근의 중력이 그의 양 어깨와 척추를 타고 대지로 내리눌렀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고,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강골보(強骨步) 1성, 무거운 발디딤.’
강우는 단전의 진기를 발끝으로 거칠게 내리누르며 두 발을 사철 진흙바닥 깊숙이 박아 넣었다. 그의 발밑을 중심으로 사방의 대지가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져 나갔다. 뼈와 근육의 힘만으로 버텨내는 처절한 사투였다. 오른쪽 손목에 감긴 연희의 가느다란 붉은 실이 땀과 핏물에 젖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고한 아이들이 제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결코 묵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버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천장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토사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고, 바위의 무게는 갈수록 증가했다.
‘내경을 역으로 침투시켜 쪼갠다.’
강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양손바닥을 통해 무진경의 진동을 바위 내부로 역류시켰다. 무진경의 침투경은 바위의 표면을 타격하는 대신, 돌결 깊숙이 스며들어 미세한 균열들을 찾아내 흔들었다.
쩍! 쩌적-!
바위 내부에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강우가 받치고 있던 거대 바위의 절반이 조각나 좌우로 굴러떨어졌다. 짊어져야 할 무게가 순식간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강우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소철과 칠성이를 바라보며 무겁게 턱짓을 했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하라는 소리 없는 명령이었다.
정신을 차린 소철은 울먹이며 칠성이를 흙더미 속에서 끄집어내어 어깨에 멨다. 마동포와 구만수를 비롯한 다른 인부들 역시 강우가 온몸으로 낙석 장벽을 막아서고 있는 틈을 타, 붕괴하는 갱도 입구의 틈새로 신속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광 대형! 어서 피하십시오!”
마동포가 탈출하며 강우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강우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이 마지막 바위를 놓는 순간, 이 구역 전체가 완전히 매몰되어 탈출로가 영원히 막힐 터였다. 모두가 나갈 때까지 이 무게를 감당해야만 했다.
마지막 인부가 갱도 밖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흐려지는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쿠구구구구-! 콰아아앙!
막장을 지탱하던 마지막 목조 기둥이 부러지며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강우는 마침내 받치고 있던 바위를 앞으로 밀쳐내며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거대한 사철 대지의 무덤이 강우의 전신을 사정없이 덮쳤고, 그의 신형은 자욱한 먼지 구덩이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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