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군의 포위와 부패한 현감
천뢰동(天雷洞)의 무너지는 잔해를 뚫고 마침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뺨을 스치는 추풍곡(秋風谷)의 바람은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매캐한 유황 연기와 시뻘건 쇳가루 먼지를 뒤집어쓴 인부들이 연기를 토해내며 대지 위로 쓰러졌다. 지옥 같은 용암 동굴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들의 안광에 서린 것은 차가운 절망이었다.
서릉한 철갑옷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쇳소리가 협곡의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읍……!”
강우는 단전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검은 핏덩이를 억지로 삼켜냈다. 조필성을 참수하기 위해 단 한 번 적소도(赤霄刀)를 발도했던 대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가혹했다. 단전의 모든 진기를 순간적으로 쥐어짜 낸 반동으로 인해 온몸의 경맥이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오른손목은 이미 감각을 잃은 채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연희가 감싸준 붕대 사이로 붉은 실만이 위태롭게 옭아매어져 있었고, 가슴팍에 품은 야철유서(冶鐵遺書) 제1장과 독고성의 비밀 조서(獨孤成 秘密 調書)의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
강우는 벙어리 아광의 천치 같은 몸짓을 유지하려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을 응시했다.
철공소 앞마당 연무장을 중심으로 수백 명의 관군(官軍)들이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삼릉창과 무거운 쇠뇌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서늘한 살기를 뿜어냈다. 관군들의 대열 중앙, 화려한 비단 차일이 쳐진 가마 위에서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사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추풍 현감, 서가(徐家)였다.
그는 관직을 돈으로 사서 본전을 뽑기 위해 조필성과 결탁하여 사철 불법 채굴과 무기 밀매를 방관하고 막대한 뇌물을 챙겨온 탐관오리였다. 조필성이 죽고 철공소가 파괴되었으니, 자신의 더러운 비리가 황실에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민초들을 역적으로 몰아 멸구(滅口)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서 현감이 가마에서 내려와 화려한 비단 관복을 추스르며 차가운 조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마다 낀 황금 반지들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이 무도한 역적 놈들! 감히 조정의 허락 없이 사철을 약탈하고, 이곳 추풍곡의 의로운 지주이자 무림맹의 공신인 조필성 소주를 살해해? 그것도 모자라 나라의 신성한 철공소를 불태우다니, 이는 명백한 역모(逆謀)다!”
서 현감의 표독스러운 외침에 쇠사슬에서 막 해방된 노예 장인들과 인부들이 사르르 떨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관청의 법과 군대라는 절대적인 공권력 앞에서 미천한 민초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가벼웠다.
그때, 인부들의 대열 선두에서 구만수(具萬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과거 군부의 하급 무관이었던 그는 관군의 삼엄한 포위 진형과 쇠뇌 부대의 배치 상태를 노련한 안목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구만수는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면서도,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서 현감을 향해 외쳤다.
“현감 대인! 우리는 역모를 꾀한 적이 없소! 조필성은 대대로 명검을 만들던 한양 한씨세가를 모함하여 멸문시키고 기술을 강탈한 대도(大盜)이자, 우리 민초들을 쇠사슬로 묶어 밤낮으로 채찍질하며 착취한 악마였소! 우리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일어섰을 뿐이오!”
“닥쳐라! 퇴역한 미천한 군졸 놈이 감히 조정의 법도를 논하느냐!”
서 현감이 품속에서 붉은 관인(官印)을 꺼내 흔들며 포효했다.
“조필성이 어떤 죄를 지었든, 사사로이 무력을 휘둘러 법을 어긴 네놈들은 모두 역적일 뿐이다! 여봐라! 저 벙어리 놈을 비롯해 반란을 주동한 자들을 즉각 포박해라! 반항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참수해도 좋다!”
서 현감의 명령에 철갑을 두른 관군 포졸 수십 명이 창끝을 겨누며 강우를 향해 좁혀왔다.
강우는 지친 몸을 이끌고 왼손으로 등 뒤의 도집(칼집)을 잡으려 했다. 비록 조필성을 처단하여 가문의 첫 원한을 씻었으나, 원수가 눈앞에 없는 지금 적소도는 다시 칼집 내부에 단단히 고정되어 뽑히지 않았다. 무고한 관군들을 상대로 억지로 발도를 시도하려 하자, 심장 속 혈약의 낙인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경맥 파열의 통증을 유발했다.
‘검을 뽑을 수 없다…… 맨손과 도집만으로 이 수백 명의 관군을 상대해야 하는가.’
단전의 진기가 바닥난 상황에서 정면 격돌은 자살행위였다. 강우가 어금니를 깨물며 앞으로 나서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대형! 물러서십시오!”
우직한 거한 마동포가 거대한 몸집으로 강우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의 손에는 천뢰동에서 주워온 무거운 무쇠 망치가 들려 있었다. 이어 석두(石頭)를 비롯한 철공소 인부 수십 명이 무쇠 삽과 곡괭이를 치켜들고 강우의 주변을 촘촘히 둘러쌌다.
구만수가 쳇바퀴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인부들의 진형을 조율했다.
“방진(方陣)을 쳐라! 무쇠 삽을 든 자들은 전방에 서서 방패막이를 하고, 곡괭이를 쥔 자들은 뒤를 받쳐라! 우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아광 대형을 지켜야 한다!”
“와아아아!”
지옥 같은 광산 붕괴와 용암 구덩이 속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강우를 위해,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인간 방패가 되어 포위망에 맞선 것이었다. 그들의 거친 손길과 눈빛에는 주군을 지키겠다는 피보다 진한 의리가 깃들어 있었다.
강우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벙어리 행세 속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민초들의 등판을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동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이 무고한 이들이 자신 때문에 관군의 칼날에 스러지게 둘 수는 없었다.
서 현감은 민초들의 결사적인 저항 진형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가소로운 개돼지 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관군에게 대항하는 것은 곧 황실에 대항하는 역모다! 쇠뇌 부대, 전방으로!”
스르릉! 찰칵!
서 현감의 명령에 백여 명의 정예 쇠뇌 무사들이 전방으로 나서며 가죽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시퍼런 쇳날이 박힌 화살들이 인부들의 가슴을 정확히 겨누었다. 좁은 협곡 지형에서 수백 발의 쇠뇌 화살이 쏟아진다면, 무장하지 못한 민란군 인부들은 단 한 순간에 고슴도치가 되어 전멸할 터였다.
구만수가 군부의 법도를 들어 대화를 시도하려 앞으로 나섰다.
“현감 대인! 황실의 법도에 따르면 민초들의 억울한 사정을 먼저 상소로 올린 뒤 사법을 집행해야 하오! 이토록 무자비한 학살은 훗날 조정의 감찰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감찰? 이 추풍곡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붓끝 하나로 모두 결정된다! 네놈들이 조 소주를 살해하고 난동을 부려 아군이 어쩔 수 없이 진압했다고 상소하면 그만이다! 쇠뇌 부대, 조준!”
서 현감의 오만방자한 태도에 포위망의 긴장감이 극에 달했다. 관군들의 손가락이 쇠뇌의 방아쇠를 당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강우는 심호흡을 하며 눈을 감았다. 오른손목의 뼈가 바스러지는 통증을 참아내며, 단전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줌의 진기를 억지로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야철안 2성, 공명청음(共鳴聽音).’
눈먼 어둠 속에서, 사방에 배치된 백여 자루의 쇠뇌 기계 장치들이 내뿜는 철기(鐵氣)의 미세한 울림이 강우의 심안(心眼)에 입체적인 실선이 되어 선명하게 와닿았다. 쇠뇌의 팽팽한 구리 시위와 철제 고정 걸쇠들의 주파수가 그의 뇌리를 자극했다.
‘청철공명결(聽鐵共鳴訣)……!’
강우는 오른발로 지면을 가볍게 디디며, 대지 아래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진동 파동을 은밀하게 방출했다. 그 파동은 인부들의 발밑을 지나, 관군들이 쥐고 있는 백여 자루의 쇠뇌 철제 걸쇠 장치로 정확히 뻗어 나갔다.
징- 징-!
관군들이 쥔 쇠뇌의 철제 부품들이 강우의 내력 공명에 반응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미세한 진동이었기에 무사들은 눈치채지 못했으나, 쇠뇌의 정밀한 조준과 발사 메커니즘은 이미 미세하게 뒤틀려 버린 상태였다.
“발사!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쏘아라!”
서 현감이 칼을 치켜들며 사납게 포효했다.
팅! 팅! 팅! 팅!
백여 개의 가죽 시위가 동시에 풀리는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시퍼런 화살들이 폭포수처럼 허공을 가르며 인부들의 진형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막아라!” 구만수가 절규했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인부들의 가슴을 꿰뚫어야 할 화살들이 허공에서 기묘하게 흔들리더니, 대부분 대열을 빗나가 바닥의 흙더미와 화강암 바위벽에 퍽, 퍽 소리를 내며 무의미하게 박혀버렸다. 강우가 일으킨 미세한 금속 공명 진동이 쇠뇌의 조준 궤적을 완전히 흐트러뜨린 덕분이었다.
몇몇 가벼운 화살 끝에 스친 인부들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고 대열이 흔들렸을 뿐, 민란군의 방진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완벽하게 유지되었다.
“어, 어찌 된 일이냐? 이 정예 쇠뇌 부대 놈들이 단체로 눈이 멀었단 말이냐!”
눈앞에서 펼쳐진 기이한 광경에 서 현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자신의 가마 기둥을 붙잡고 소리쳤다.
“당장 화살을 재장전해라! 두 번째 사격 준비! 이번에는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철컥, 철컥!
당황한 관군들이 다시 쇠뇌의 시위를 당기며 두 번째 화살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강우는 입가에 고인 검은 피를 훔쳐냈다. 이미 단전의 진기를 완전히 소모하여 심장 혈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내상 반동이 몰아쳤다. 눈앞이 다시 붉게 흐려지며 시력이 상실되어 가는 전조가 나타났다. 더 이상의 공명 진동을 방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지진으로 무너진 천뢰동의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날리는 협곡의 연무장 위로, 죽음의 침묵과 절체절명의 위기감이 다시 한번 무겁게 내려앉았다.
서 현감이 직접 칼을 뽑아 들고 포졸들을 향해 악에 받친 소리를 질렀.
“사격 준비가 끝나는 대로 전면 돌격해라! 저 역적 놈들의 목을 베어 내 가마 앞에 바쳐라!”
관군들의 손가락이 다시 팽팽해진 방아쇠 위로 조여들고, 화살 끝이 흔들리는 인부들의 가슴을 노리는 절체절명의 사격 위기 순간.
둥-! 둥-! 둥-!
Chupung Valley의 좁은 입구 너머에서, 땅을 뒤흔드는 장엄하고 무거운 북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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