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천뢰동, 원수의 유산
쿠구구구구구!
지옥의 아가리가 열린 듯한 굉음이 지하 동굴 천뢰동(天雷洞) 전체를 뒤흔들었다.
조필성의 목이 잘려 시뻘건 용암 구덩이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찰나, 천뢰동 지하 전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붉은 용암 파도가 사방의 암벽을 때리며 솟구쳤고, 머리 위 천장에서는 집채만 한 화강암 낙석들이 비명처럼 쏟아져 내렸다.
“도련님! 위험합니다!”
외나무다리 건너편에서 마동포(馬東包)가 쇳가루 가득한 목소리로 절규했다.
하지만 한강우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스릉.
적소도(赤霄刀)가 칼집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울렸다. 원수의 목을 베자마자 검날을 칭칭 감고 있던 붉은 광채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다시 거친 녹덩이가 도신 위로 들러붙기 시작했다. 완전히 녹이 벗겨진 은빛 신철의 자태는 오직 검날의 앞부분 일 치(寸) 남짓에만 흔적으로 남았을 뿐이었다.
“으윽……!”
검을 칼집에 밀어 넣는 순간, 억눌려 있던 혹독한 대가가 강우의 전신을 덮쳐왔다.
가문을 멸문시킨 원수 앞에서만 발도할 수 있다는 ‘혈약의 제약’. 비록 조필성의 자백을 받아내어 제약을 깨뜨리고 최초의 발도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단전의 모든 진기를 순간적으로 쥐어짜 낸 반동은 가혹했다. 심장 주위의 경맥들이 불타는 쇠사슬에 묶인 듯 뒤틀리며 불타올랐다. 목구멍까지 뜨거운 핏덩이가 치밀어 올랐으나, 강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그것을 억지로 삼켜냈다.
오른손목은 이미 감각이 완전히 사라진 채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연희가 묶어 준 가느다란 붉은 실만이 찢어진 붕대 사이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움직여야 한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강우는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이를 악물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앞에는 머리가 사라진 조필성의 거대한 몸뚱이가 굳어 있었다. 강우는 왼손을 뻗어 조필성의 비단 장포 가슴팍을 거칠게 뒤졌다. 손끝에 닿는 묵직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
철컥.
조필성의 품속에서 놋쇠로 제련된 무거운 열쇠 꾸러미, 천뢰동 지하 열쇠(天雷洞 地下 鍵)가 딸려 나왔다. 조필성이 평생 목에 걸고 다니며 지하 무기고와 감옥, 그리고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 금고를 통제하던 열쇠였다.
“도련님! 제 어깨를 잡으십시오!”
낙석을 피해 외나무다리를 돌파해 온 마동포가 강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거한의 단단한 손이 강우의 왼팔을 강하게 부축했다. 강우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는 벙어리 행세를 유지하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내력을 낭비해 전음(傳音)조차 보낼 수 없을 정도로 기혈이 뒤틀려 있었다.
쿠와아앙!
두 사람이 디디고 있던 돌다리의 중앙 부분이 거대한 낙석에 맞아 용암 속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불꽃과 쇳물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달리십시오!”
마동포가 강우를 어깨에 들쳐 메다시피 하며 무너지는 터널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소철(蘇鐵)과 구만수(具萬秀), 그리고 해방된 노예 장인들이 그들의 뒤를 따라 어두운 광산 통로를 향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
사방에서 유독한 황성 가스와 열독이 몰아쳤다. 강우는 가슴팍 안쪽의 ‘무진경 3성’ 심법을 가동해 폭주하려는 단전의 불꽃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뼈가 시리는 손목의 통증과 경맥이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그의 왼손은 조필성의 시신에서 빼앗은 천뢰동 지하 열쇠를 꽉 쥐고 있었다.
* * *
추풍 철공소 지상 구역은 이미 혼돈의 도가니였다.
조필성의 사병들은 천뢰동 지하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지동(地動)과 대장간 연무장에서 벌어진 인부들의 봉기에 기가 꺾여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마동포의 부축을 받으며 지상으로 빠져나온 강우는 곧바로 철공소 뒤편에 위치한 조필성의 사저로 향했다. 화려하게 지어진 목조 누각은 주인을 잃고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강우는 소철에게 눈짓을 보냈다. 눈치 빠른 소년은 즉시 사저 입구의 횃불을 꺾어 들고 어두운 침전 내부를 밝혔다.
조필성의 침실 가장 깊은 곳, 화려한 호랑이 가죽이 깔린 침상 아래의 바닥판을 걷어내자 차가운 무쇠로 단조된 이중 철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필성의 비밀 금고(趙筆成 秘密 金庫)였다.
철문 중앙에는 기괴한 삼중 자물쇠 장치와 함께, 침입자가 강제로 문을 열려 할 시 화약이 폭발하도록 설계된 비열한 덫이 장착되어 있었다.
강우는 품속에서 한삼(韓三)에게서 빼앗았던 무쇠 인장(無쇠 印章)을 꺼냈다. 가문의 배신자가 지니고 있던 그 인장은 조필성이 비상시를 대비해 만들어 둔 예비 열쇠이자 장치 해제기였다.
강우가 무쇠 인장을 중앙 홈에 끼워 넣자, 검붉은 진기가 미세하게 일렁이며 인장의 내부 기계 장치와 공명했다.
탁, 타닥!
철문 내부에서 무거운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화약 폭발 장치가 안전하게 해제되는 신호였다. 이어 강우는 조필성의 시신에서 확보한 천뢰동 지하 열쇠 중 가장 거대하고 정밀한 놋쇠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밀어 넣고 힘껏 돌렸다.
철컥- 콰아아앙.
묵직한 무쇠 철문이 좌우로 열리며, 음습하고 차가운 지하 밀실의 공기가 사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밀실 내부에는 조필성이 평생 동안 민초들의 고혈을 짜내어 모은 황금 궤짝들과 밀수된 병기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강우의 시선은 그 눈부신 재화들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야철안(冶鐵眼)은 밀실 가장 깊은 곳, 가문 특유의 쇳가루 냄새가 희미하게 뿜어져 나오는 작은 현철 상자를 정확히 포착했다.
강우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가 현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반쯤 헤지고 그을린 가죽 두루마리가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야철유서(冶鐵遺書) 제1장].
5년 전, 한양 한씨세가가 멸문당하던 피비린내 나는 밤에 조필성이 강탈해 갔던 가문의 궁극적 유산이었다. 천하제일의 제철 기술과 내공을 융합하는 비법이 적힌 가죽의 감촉이 강우의 손끝에 닿았다.
강우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억울하게 죽어간 부모님과 가족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가죽 두루마리를 품속 깊은 곳에 밀어 넣은 강우의 시선이 상자 바닥에 깔린 또 다른 서책으로 향했다.
그것은 무림맹의 공식 문양이 찍힌 낡은 서신철이었다.
[독고성의 비밀 조서(獨孤成 秘密 調書)].
가문을 마교의 프락치로 몰아세워 학살을 자행하고, 그 배후에서 제철 비기를 강탈하도록 조필성을 조종한 무림맹주 독고성의 추악한 친필 밀서들이 고스란히 묶여 있었다. 정파의 수호자라 불리는 자들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잔혹한 진실이 그 안에 적혀 있었다.
강우가 서신철을 품에 안고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였다.
지잉-!
강우의 단전이 미세하게 요동치며, 가슴팍 안쪽에서 차가운 금속의 공명 주파수가 흘러나왔. 야철안 2성(공명청음)의 감각이 극도로 예리해진 덕분이었다.
대지 아래를 타고 전해지는 무겁고 규칙적인 진동. 그것은 평범한 민초들의 발걸음이 아니었다.
철갑옷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서릉한 쇳소리, 수백 마리의 군마가 대지를 짓밟는 둔탁한 말발굽 소리, 그리고 허공을 가득 메운 시퍼런 쇠뇌 시위의 팽팽한 긴장감.
최소 수백 명에 달하는 관군(官軍) 무리가 철공소 외곽을 촘촘하게 포위하며 좁혀오고 있었다. 조필성에게 막대한 뇌물을 받아 챙기던 부패한 관청의 군대였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