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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도, 붉은 도광 백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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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성의 백강도가 허공을 가르며 마동포가 매달린 주 도화선을 향해 낙하하는 순간, 강우는 마침내 적소도를 단단히 감싸고 있던 삼베천의 첫 번째 매듭을 움켜쥐었다.


치이이익!


거친 삼베의 실타래가 강우의 거친 손가락 사이에서 뜯겨 나가며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 동시에 강우의 등 뒤에 고정되어 있던 거대한 도검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쇠사슬이 부딪치는 금속음이 천뢰동의 용암 끓는 소리를 뚫고 울려 퍼졌다. 적소도의 피울음이었다. 원수의 살기를 감지한 신검의 영성이 칼집 내부에서 울부짖으며 강우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아직 완벽한 발도의 순간은 아니었다. 가문의 피로 맺어진 혈약의 제약은 지독하리만큼 엄격했다. 원수가 스스로의 죄상을 자백하거나, 가문을 멸문시킨 원수라는 움직일 수 없는 인과가 성립되어야만 족쇄가 풀리는 법. 억지로 검을 뽑으려 하자 심장을 옥죄는 혈약의 낙인이 다시 한번 강우의 가슴속 기혈을 뒤틀어 놓았다.


“크흑!”


강우의 입가로 검붉은 피가 한 줄기 더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오른손목의 뼈가 바스러지는 통증을 무진경 3성의 심법으로 억누르며, 왼손에 쥔 도집을 번개처럼 치켜세웠.


‘도집 받치기!’


강우는 도집의 평평한 면을 사선으로 눕혀 조필성이 내리꽂은 백강도의 검날을 비스듬히 받아냈다. 콰아앙! 귀를 찢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자색 검기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백강도에 실린 조필성의 벽력 내력이 도집을 타고 강우의 전신으로 몰려들었으나, 강우는 왼손목의 현철 장갑을 움켜쥐며 그 파괴적인 충격을 대지 아래 끓어오르는 용암 속으로 흘려보냈다.


그 반동을 이용해 강우는 신형을 뒤로 날리며 소리쳤다. 비록 목소리를 내지 않는 벙어리 행세를 해왔으나, 이 순간만큼은 그의 묵직한 내력이 진동이 되어 천뢰동의 사방 벽면을 울렸다. 그것은 사전에 약속된 봉기의 신호였다.


“지금이다!”


그 소리와 함께 제단 뒤편의 어두운 암석 그늘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솟구쳐 나왔다. 소철과 구만수가 이끄는 추풍곡 민란군의 정예 인부들이었다. 소철은 품속에서 한삼에게서 빼앗은 무기 창고의 열쇠 꾸러미를 던졌고, 우직한 거한 석두와 민란군 인부들이 쇠사슬을 자를 철제 집게와 무쇠 망치를 치켜들고 용암 위 도화선 플랫폼으로 몸을 날렸다.


“마 대형! 조금만 참으십시오!”


석두의 거대한 무쇠 망치가 마동포의 발목을 묶고 있던 쇠사슬의 연결 고리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깡! 대장간에서 단련된 괴력이 실린 일격에 붉게 달아올랐던 쇠사슬이 처참하게 깨져 나갔다. 소철은 날카로운 단도로 마동포의 몸을 지탱하던 밧줄을 단숨에 베어냈다.


“어이쿠!”


마동포의 거구와 늙은 노예 장인들의 신형이 아래로 추락하려는 찰나, 구만수와 인부들이 그들의 몸을 낚아채어 안전한 석조 돌다리 위로 끌어당겼다. 마동포는 쇳가루 가득한 침을 바닥에 뱉어내며 외쳤다.


“강우야! 우린 살았다! 저 비열한 도둑놈의 목을 베어버려라!”


인질들이 완벽하게 구조되는 모습을 목격한 조필성의 얼굴이 극도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유일한 패이자 방패막이였던 장인들이 탈출하자, 그의 가슴속에 깃들어 있던 비열한 오만함이 광기 어린 분노로 뒤바뀌었다.


“이 벌레 같은 광부 놈들이 감히 내 철공소에서 반란을 일으켜? 좋다, 한강우! 네놈이 살아남아 이 지옥 구덩이까지 기어 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조필성은 적뢰검을 치켜들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의 비열한 조소가 끓어오르는 용암의 열기 위로 흩어졌다.


“그래! 5년 전 한양 한씨세가를 마교의 프락치로 몰아세워 멸문시킨 길잡이가 바로 나 조필성이다! 네 아비 한무경이 대역죄인의 누명을 쓰고 참수대 위에서 목이 잘릴 때, 그 잘난 천하제일의 야철 비급을 내 손으로 직접 강탈했지! 그 고결한 가문의 피가 이 추풍곡 지하에서 노예처럼 구르며 쇠를 달구는 잡역부로 살아왔다니, 참으로 가소롭구나!”


조필성은 적뢰검의 검날을 퉁기며 강우를 향해 검끝을 겨누었다.


“네 아비는 죽어가면서도 가문의 명예를 부르짖더군.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가문의 비급을 차지하고 무림맹주 독고성 님의 비호를 받아 일방의 패권자가 된 나 조필성이다! 네놈 역시 그 녹슨 칼날 한 자루 뽑지 못하고 아비의 뒤를 따라 참수당할 운명이다!”


조필성의 입에서 멸문의 진상과 아비의 죽음을 조롱하는 추악한 자백이 터져 나오는 순간, 천뢰동 내부의 모든 공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그것은 혈약의 맹세가 요구하던 궁극의 조건이었다. 원수 스스로가 자행한 죄악의 자백. 가문의 억울한 피를 흘리게 만든 주범의 명확한 실체.


둥-! 둥-! 둥-!


강우의 심장 깊은 곳에 박혀 있던 혈약의 낙인이 폭풍처럼 요동치며 검붉은 빛을 사방으로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의 체내에 흐르는 한양 한씨세가의 명장 핏줄이 분노로 끓어올랐다. 등 뒤를 칭칭 감고 있던 무거운 쇠사슬과 두꺼운 삼베천이 스스로 요동치며 쇳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쩍! 쩍! 쩍!


강우의 등 뒤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적소도를 옭아매고 있던 천년한철의 쇠사슬 고리들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방으로 비산하며 박살이 났다. 콰아아앙! 사슬 파편들이 천뢰동의 석벽에 박히며 무수한 불꽃을 튀겼다. 적소도를 칭칭 감싸고 있던 거친 삼베천 역시 검붉은 기류에 휩싸여 한 줌의 재가 되어 용암 속으로 흩어졌다.


스으으으.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적소도의 도신은 온통 붉은 녹으로 뒤덮여 거친 흉터처럼 보였으나, 그 틈새로 흐르는 진기는 완벽한 혈색의 신광이었다. 칼집에서 흘러나오는 검붉은 도기가 실핏줄처럼 강우의 오른팔을 휘감으며 그의 단전과 기맥을 일깨웠다.


강우는 천천히 오른손을 뻗어 적소도의 검자루를 잡았다.


철컥.


그 순간, 평소에는 그 어떤 괴력으로도 꿈쩍하지 않던 적소도의 도신이 칼집 밖으로 단 1치 흘러나왔다. 스으으으, 검날이 빠져나오는 찰나, 천뢰동 전체가 붉은 도광의 압력에 짓눌려 진동하기 시작했다. 조필성이 쥐고 있던 명검 백강도와 적뢰검이 신검의 위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흔들렸다.


“이, 이 기운은 대체……! 칼을 뽑지도 못하던 놈이 어떻게 사슬을 끊어낸 것이냐!”


조필성의 얼굴에서 오만함이 씻겨 나가고, 그 자리에 생전 처음 느끼는 극도의 공포가 들어찼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모든 공력을 끌어올려 벽력공의 극한을 전개했다. 백강도의 검날 위로 자색 번개가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죽어라, 한강우!”


조필성이 신형을 날리며 백강도를 휘둘렀다. 자색 번개 검기가 외나무다리 전체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쏟아져 내렸다.


강우는 눈을 감았다. 그의 뇌리 속에 스승 풍간열의 마지막 음성이 스쳐 지나갔다.


‘검을 함부로 뽑지 않는 자가 천하를 벤다. 도련님, 마침내 검을 뽑을 때가 온다면 단 한 칼에 적의 숨통과 위선을 함께 잘라내야 합니다.’


강우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눈동자는 온통 검붉은 안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으으으읍.


강우는 대장간의 풀무질처럼 깊은 호흡을 들이쉬며 오른팔의 모든 기맥에 무진경의 침투 내경을 응축했다. 그리고 적소도를 칼집에서 완전히 뽑아 들었다.


스르릉-!


도검이 완전히 발도되는 순간, 눈부신 붉은 도광이 천뢰동의 어둠을 대낮처럼 붉게 물들였다. 가문 비전의 절기이자 궁극의 일격.


‘일격참수 백일하(白日下)!’


그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백일조차 붉은 도광 아래 가라앉힌다는 파멸의 일격이었다. 강우가 적소도를 사선으로 내리긋는 순간, 수십 장에 달하는 검붉은 도광의 장막이 천뢰동의 공간 자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용암 파도가 도광의 압력에 눌려 양옆으로 갈라지며 거대한 불꽃의 벽을 형성했다.


조필성이 내뿜은 자색 번개 검기는 강우의 붉은 도광에 닿는 순간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아, 안 돼……!”


조필성의 절망적인 비명이 천뢰동의 굉음 속에 묻혔다.


서릉한 붉은 선이 조필성의 목덜미와 그가 치켜들고 있던 명검 백강도의 검신을 일직선으로 통과했다. 찰나의 침묵 뒤, 쨍강 하는 청아한 파열음과 함께 조필성이 평생을 자랑하던 백강도가 두 동강이 나며 허공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조필성의 목덜미에서 붉은 선을 따라 핏방울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경악과 공포에 질린 채 강우의 적소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툭.


조필성의 수급이 어깨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몸뚱이는 다리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굳어 버렸고, 그의 잘린 수급은 포말을 일으키며 끓어오르는 용암 구덩이 속으로 깊숙이 추락했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원수의 흔적은 뜨거운 불길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우는 적소도를 비스듬히 세워 잡았다.


조필성의 잘린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적소도의 붉은 도신 위로 흩뿌려졌다. 원수의 피가 검날에 닿는 순간, 적소도가 스스로 뜨겁게 달아오르며 기이한 진동을 일으켰다.


스으으으.


도신 전체를 흉측하게 뒤덮고 있던 두꺼운 붉은 녹 한 꺼풀이 뜨거운 용암 속의 얼음처럼 사르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녹이 벗겨진 자리에서 눈이 시릴 정도로 눈부신 은빛의 신철(神鐵) 도신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가문의 신검이 마침내 첫 번째 속박에서 벗어나 부활의 서막을 알린 것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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