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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가루 속에 핀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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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풀무방의 열기는 어제 독안귀에게 맞은 채찍질의 상흔보다 더 뜨겁게 온몸을 엄습했다.


지하 막장으로 통하는 좁은 길목에 자리한 풀무방은 사방이 시뻘건 화염과 유독한 유황 가스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서는 채 정제되지 않은 사철 먼지가 눈처럼 흘러내려 땀으로 범벅이 된 강우의 어깨와 등판 위로 쩍쩍 달라붙었다. 강우는 거친 삼베천으로 등을 대충 동여맨 채, 거대한 무쇠 풀무의 손잡이를 밀고 당겼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풀무가 숨을 쉴 때마다 화로 내부의 불꽃이 미친 듯이 날뛰며 강우의 그을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어제 독안귀의 가시 채찍에 찢겼던 상처는 밤새 오두막에서 무진경 1성(無震勁)의 심법을 조율한 덕에 겉으로는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기혈의 흐름은 여전히 묵직한 한기를 머금은 채 욱신거렸다. 화독을 억누르기 위해 기맥을 강제로 비틀어 숨겨둔 대가였다.


강우는 풀무질을 멈추지 않은 채, 슬쩍 눈을 돌려 대장간 중앙의 단조대를 응시했다.


그곳에서는 조필성의 사병들이 사용할 장도(長刀)들이 수십 자루씩 찍혀 나오고 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괴가 망치질을 당할 때마다 찌르르한 진동이 대장간 바닥을 타고 강우의 발바닥으로 전해졌다.


‘야철안 1성(冶鐵眼).’


강우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붉은 광채가 미세하게 번뜩였다. 한양 한씨세가의 핏줄에 흐르는 제철의 본능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강우의 시야에 단조대 위에서 두들겨지고 있는 철의 미세한 결이 낱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철괴 내부의 탄소 분배가 엉망이었다. 불순물이 섞여 생긴 미세한 기포들이 칼날의 척추 부분에 흉터처럼 박혀 있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게 도금되어 푸른 광채를 발하는 명검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쇳가루를 대충 뭉쳐 만든 껍데기에 불과했다. 전장에서 강한 충격을 세 번만 받으면 그대로 부러져 나갈 불량품들이었다.


‘조필성, 이 비열한 소인배 놈.’


강우는 이가 갈리는 분노를 억누르며 풀무질의 강도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조필성은 추풍곡의 척박한 환경에서 나오는 저품질의 추풍 사철을 가문의 도면으로 대충 때워 주조하고 있었다. 무림맹주 독고성에게 납품할 정예 병기라 속여 막대한 폭리를 취하고, 그 자금으로 사병을 육성하는 위선적인 음모. 가문을 멸문시키고 훔쳐 간 기술로 겨우 이딴 사기극을 벌이고 있는 원수의 비열함에 강우의 가슴속 혈약의 낙인이 다시 한번 뜨겁게 요동쳤다. 등 뒤에 감긴 적소도가 삼베천과 쇠사슬 속에서 미세한 피울음을 울려 퍼뜨리려 하자, 강우는 어금니를 깨물며 무진경으로 내력을 단전 깊숙이 억눌렀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벙어리 잡역부 아광의 행세를 철저히 유지해야만 했다.


노역 교대를 알리는 종소리가 댕, 댕 울려 퍼지자 감시자들의 눈길이 느슨해졌다. 인부들이 비틀거리며 풀무방을 빠져나갈 때, 강우는 일부러 고철을 정리하는 척하며 풀무방 구석의 어두운 고철 폐기장더미 뒤편으로 몸을 숨겼.


바스락.


그때,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고철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쥐새끼가 갉아먹는 소리치고는 묵직하고 정교한 쇠 긁는 소리였다.


강우는 숨을 죽인 채 소리 없이 발걸음을 옮겼. 그의 신형은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고철 더미의 그늘진 구석, 땋은 머리에 시꺼먼 쇳가루를 뒤집어쓴 왜소한 체구의 소년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소철이었다.


열다섯 살의 고아 소년은 조필성의 사병들이 감시하는 눈을 피해, 제련 가마에서 떨어진 순도 높은 사철 조각들을 작은 삼베 자루에 필사적으로 쓸어 담고 있었다. 굶주림에 비쩍 마른 소년의 손가락 끝은 날카로운 고철에 긁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강우가 소리 없이 소년의 배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스스슥.


인기척을 느낀 소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소년의 예리한 눈동자가 공포와 독기로 번뜩였다. 소철은 품속에서 날카롭게 간 낡은 무쇠 송곳을 꺼내 들며 강우를 겨누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소리 지를 거야! 경비병들을 불러서 네가 나를 죽이려 했다고 말해버릴 테니까!”


소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들쥐처럼 매서웠다.


강우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벙어리 아광의 행세를 유지하며, 그저 차갑고 깊은 안광으로 소년을 묵묵히 응시했다.


쉬익!


공포에 질린 소철이 먼저 송곳을 찔러왔다. 거칠고 훈련되지 않은 삼류 이하의 기습이었지만, 날카로운 송곳 끝은 정확히 강우의 목덜미를 겨냥하고 있었다.


강우의 눈에 송곳의 결이 느리게 보였다. 야철안 1성이 읽어낸 송곳은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내부가 이미 푸석푸석하게 갈라진 고철에 불과했다.


강우는 피하지 않았다. 송곳 끝이 그의 목덜미에 닿기 직전, 강우는 왼손 손가락을 가볍게 튕겨 송곳의 옆면을 때렸다.


팅-!


맑고 짧은 금속음이 어둠 속에 울렸다. 강우가 가한 미세한 진동이 송곳 내부의 결함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소철의 손에 들려 있던 송곳이 비명을 지르듯 반으로 쩍 갈라지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부러진 칼날 파편이 흙바닥에 박혔다.


“이, 이익……!”


소철은 자신의 유일한 무기가 손가락질 한 번에 부러진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소년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경비……!”


목청을 높여 경비병을 부르려는 찰나, 강우의 신형이 귀신처럼 소철의 눈앞으로 쇄도했다. 바람 소리조차 나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강우는 현철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소철의 입을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움켜막았다.


읍, 읍!


소철은 강우의 거대한 손아귀 안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으나, 바위처럼 단단한 강우의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강우의 깊고 가라앉은 눈동자가 소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살기가 없었다. 오직 세상의 풍파를 모두 겪어낸 무인의 깊은 침묵만이 담겨 있었다.


강우는 서서히 손을 떼어냈다. 소철은 털썩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소년의 영악한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벙어리 아광은 대장간에서 가장 천대받는 잡역부가 아니었다. 조필성의 사병들은커녕, 무림맹의 고수들도 흉내 내지 못할 기이한 무공을 숨긴 괴물이었다.


“너……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지? 아니, 정체를 숨기고 있는 고수구나?”


소철이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강우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소철을 바라보았다.


소철은 침을 삼키며 자신의 삼베 자루를 가슴에 꽉 안았다.


“나를 조필성 일파에게 넘기지 마.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 몸이야. 나를 살려두면 쓸모가 있을걸? 난 대장간 구석구석을 다 다녀서 감시자들의 순찰 동선도 전부 알고 있어. 조필성이 밤마다 누굴 만나는지도 알아!”


생존을 위한 소년의 집요한 제안이었다.


강우는 가만히 소년을 응시하다가, 품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소철은 다시 한번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강우의 손에서 나온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었다.


거칠고 차갑게 식은 주먹밥 한 덩이였다. 강우가 하루 동안 배급받은 빈약한 식량 중 절반을 아껴둔 것이었다.


강우는 묵묵히 주먹밥을 소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굶주렸던 소철은 침을 꼴깍 삼키더니, 주먹밥을 낚아채듯 받아 들고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눈물이 쇳가루 묻은 뺨을 타고 흘러내려 검은 자국을 남겼다.


우물거리며 주먹밥을 삼킨 소철이 강우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은밀하게 속삭였다.


“……고마워, 아광 형. 약속은 지킬게. 아무한테도 네 정체를 말 안 해. 대신 진짜 중요한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소철의 눈빛이 기민하게 빛났다.


“대보름날 밤에, 조필성의 외아들 조태양이 여기 철공소를 직접 방문한대. 납품할 한철 무기들을 최종 검수하러 온다는데…… 그때가 조필성 일파의 경비가 가장 느슨해지면서도, 동시에 가장 삼엄해지는 날이야. 조태양의 동선을 미리 파악해 둘게.”


조태양.


가문을 멸문시킨 원수 조필성의 핏줄이자, 십삼세가의 비호를 받으며 자라난 오만한 천재 무인. 그 이름이 언급되는 순간, 강우의 심장 속 혈약의 낙인이 차가운 분노와 함께 맥동하기 시작했다. 복수의 첫 번째 표적을 향한 궤적이 서서히 그려지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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