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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의 침투, 깨어진 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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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독안개는 장 의원의 약방 내부를 지옥의 가마솥처럼 메워가고 있었다. 타오르는 유황 냄새와 살가죽을 짓찌르는 화독(火毒)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어 나갈 때, 한강우의 시야는 이미 암전되어 있었다.


눈앞을 가득 채운 가혹한 어둠. 독무에 중독되어 녹아내리는 듯한 안구의 통증보다 그를 더 옭아매는 것은, 등 뒤에 짊어진 적소도(赤霄刀)의 칼자루를 쥘 때마다 심장을 사정없이 난도질하는 혈약(血約)의 저주였다. 원수인 조필성을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발도를 시도했던 대가는 처참했다. 단전의 내력은 반 토막이 난 채 기맥 아래로 가라앉았고, 부러진 오른손목의 뼈마디는 매서운 칼바람을 맞은 것처럼 시려 왔다.


“흐흐흐…… 눈이 멀어버린 도객이라. 정말 꼴이 좋구나, 한강우.”


독안개 너머에서 귀영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귀영신보(鬼影神步)의 기민한 신법을 전개하는 그의 신형은 고정된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왼쪽에서 들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오른쪽 천장 들보 위에 가 있었고, 기척을 느꼈을 때는 이미 등 뒤의 서늘한 바람으로 변해 있었다.


치이이익-!


약방 구석에 쌓인 주 화약고 상자들로 향하는 검은 도화선은 뱀의 혀처럼 붉은 불꽃을 삼키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장 대인은 의자에 묶인 채 독기에 질식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강우를 향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서 자신을 버리고 탈출하라는 무언의 절규였다.


강우는 호흡을 가만히 가라앉혔다.


시각을 완전히 상실한 이 암흑 속에서, 그는 육신의 눈을 완전히 포기했다. 대신 마음의 눈을 뜨고 단전 깊은 곳에 가라앉은 마지막 진기를 사방으로 방출했다.


‘청철공명결(聽鐵共鳴訣).’


스승 풍간열이 구두로 전수해 주었던 가문의 비전 심법이 그의 맥박을 타고 흘렀다. 진기는 물과 같으나, 뼈 속에 흐를 때는 소리가 없어야 한다. 강우의 몸에서 흘러나온 보이지 않는 기맥의 파동이 약방 바닥에 흩어진 부러진 독침들, 벽면에 박힌 묵침, 그리고 귀영의 품속에 숨겨진 차가운 비수들의 철기(鐵氣)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징- 징-


눈먼 암흑 속에서, 기적처럼 쇳소리의 진동이 입체적인 선이 되어 강우의 심안(心眼)에 그려졌다. 흩날리는 보랏빛 독무 속에서 귀영이 디디는 발걸음의 위치, 그의 손끝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비수의 각도, 심지어 허공을 날아다니는 미세한 쇳가루의 궤적까지 청각과 진기의 공명으로 선명하게 와닿았다.


“검을 뽑지 못하는 네놈이 이 안개 속에서 내 비수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귀영이 허공으로 도약했다. 그의 회색 장포가 안개를 휘감으며 강우의 배후를 향해 벼락같이 낙하했다. 시퍼런 사독이 발린 독 비수가 강우의 정수리를 뚫기 위해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귀청을 때렸지만, 강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쉭-!


비수 끝이 강우의 뒷덜미 깃털 자락을 스치기 직전의 찰나, 강우는 몸을 반 치 비틀어 회피했다. 예리한 독날이 그의 어깨 장포를 찢으며 지나갔지만, 강우는 그 순간 귀영이 내지른 검세의 중심을 완벽히 읽어냈다. 비수가 허공을 가르며 내뿜는 쇳소리의 진동 주파수가 귀영의 심장 위치를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이다.’


강우는 왼손으로 삼베와 쇠사슬에 감긴 적소도의 묵직한 무쇠 도집(칼집)을 꽉 쥐었다. 연희가 제련해 준 검푸른 현철 장갑(현철 장갑)의 단단한 악력이 도집의 손잡이를 단단히 고정했다.


‘무진경 2성, 침투 내경(浸透內勁).’


단전 깊숙이 웅축해 두었던 마지막 무진경의 진기가 뒤틀린 경맥을 타고 도집 끝으로 폭발적으로 몰려들었다. 도집 끝부분이 검붉은 진기로 미세하게 진동하며 어둠 속에서 붉은 실선 같은 궤적을 그렸다.


강우는 뒤로 비틀거리는 척하며, 도집 끝을 귀영의 가슴 정중앙을 향해 정면으로 찔러 넣었다.


푸욱-!


귀영은 비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감싼 두꺼운 흑철 갑옷으로 도집의 타격을 받아내려 했다. 칼날이 아닌 둥근 칼집 끝의 타격 따위는 명문 벽력당의 방어 갑옷을 뚫을 수 없으리라 믿은 오만함이었다.


그러나 타격의 순간, 둔탁한 충격음 대신 기이한 공명음이 약방 내부에 울려 퍼졌다.


웅-!


무진경 2성의 침투 내경은 겉 표면의 흑철 갑옷에는 단 한 줄의 금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갑옷 표면을 우회한 파괴적인 진동의 진기가 귀영의 가슴 가죽을 뚫고 체내 깊숙이 침투했다. 귀영의 가슴 뼈와 오장육부의 기맥이 내부에서부터 사정없이 흔들리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꺼, 억……!”


귀영의 회색 가면 너머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둔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입에서 시꺼먼 선혈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강우의 도집 표면을 적셨다. 내부의 경맥이 완전히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귀영은 온몸의 내력을 잃고 뒤로 날아가 벽면에 쳐박혔다.


쾅-!


“이, 이 괴물 같은 놈이……!”


귀영은 박살 난 오장육부를 움켜쥔 채 검은 피를 연신 토해냈다. 가슴의 흑철 갑옷은 멀쩡했으나, 내부의 기맥이 완전히 폐해져 더 이상 진기를 운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패배를 직감한 귀영은 비틀거리며 장 대인의 결박을 풀던 밧줄을 낚아채 벽력당의 자폭 덫 장치를 강제로 가동했다.


치이이이익-!


약방 구석의 화약 상자들이 요란한 연기와 함께 폭발하려는 찰나, 귀영은 약방의 뒷벽을 온몸으로 부수며 어둠 속으로 비참하게 도망쳤다.


쿠구구궁-!


약방의 절반이 화약 대폭발의 화염에 휩싸이며 석조 벽면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욱한 불꽃과 먼지 속에서 강우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장 대인을 안아 올리고 부서진 약방 문밖으로 몸을 던졌다.


스스스슥-


약방 마당의 차가운 흙바닥에 장 대인과 함께 굴러떨어진 강우는 가슴을 움켜쥐며 피를 토해냈다. 유독가스 흡입과 무리한 내경 방출로 인해 심장 혈도가 타들어 가며 의식이 흐려져 가고 있었다.


“도련님! 한 도련님!”


결박에서 풀려난 장 대인이 다급하게 강우의 곁으로 기어왔다. 장 대인은 품속에서 붉은 비단 자락에 싸인 오래된 목조 상자를 꺼내어, 그 안에 들어 있던 황금색 환약, 청심단(청심단)을 꺼냈다. 장 대인의 떨리는 손가락이 강우의 굳게 다문 입술을 벌리고 환약을 밀어 넣었다.


“제발 씹어 삼키셔야 합니다! 심장의 화독을 가라앉혀야 해요!”


청심단이 입안에서 녹아내리자, 얼어붙을 듯 차갑고 맑은 약 기운이 강우의 식도를 타고 내려가 폭주하던 심장 혈도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타들어 가던 경맥의 열독이 일순간에 진정되며 흐려졌던 시야가 미세하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비록 오른손목의 뼈마디는 여전히 욱신거렸으나, 단전의 진기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흘렀다.


강우는 장 대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타오르는 약방의 붉은 화염이 그의 그을린 회색 장포와 무거운 도집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때, 무너진 약방 마당 주변의 어둠을 헤치고 묵직한 발소리들이 밀려왔다.


“아광 대형! 장 의원님!”


대장간의 우직한 장사 마동포(마동포)가 땀방울을 흘리며 최전선에서 달려왔다. 그의 뒤로는 쇠창과 곡괭이를 든 구만수(구만수)와 수십 명의 철공소 인부들이 횃불을 밝히며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불타는 약방 앞에서 홀로 도집을 쥔 채 당당히 서 있는 강우의 모습을 목격했다. 눈이 먼 채로도 명문 벽력당의 살수를 격퇴하고 자신들의 은인인 장 대인과 소철을 구해낸 복수자의 비장한 풍모.


인부들의 눈빛에 경악을 넘어선 거대한 경외감이 서려 들었다. 그들은 이 말수 적고 미천한 벙어리 잡역부 아광이 자신들을 지옥 같은 착취 속에서 구해줄 가문의 진정한 영웅이자 의인임을 뼛속 깊이 확신했다.


구만수가 낡은 군도를 치켜들며 강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광 대형…… 아니, 한씨세가의 의인이시여. 더 이상 조필성 그 악마 같은 놈 밑에서 개돼지처럼 죽어가지 않겠소. 당신의 붉은 도 뒤를 따르겠소!”


“목숨을 바쳐 조필성을 치겠소! 봉기를 허락해 주십시오!”


마동포와 철공소 인부들이 일제히 무쇠 망치와 곡괭이를 치켜들며 장엄한 함성을 질렀다. 횃불의 불꽃들이 밤하늘을 붉게 수놓으며, 억눌렸던 민초들의 분노가 거대한 봉기의 횃불이 되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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