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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안개의 사투, 칼집의 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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쉭-!


파공음은 뱀의 쉭쉭거리는 소리처럼 가늘고 불길했다. 귀영의 손끝을 떠난 독 비수(귀영의 독 비수)가 공중에 매달린 소철의 목덜미를 향해 쏘아져 갔다. 푸른 사독(蛇毒)이 발린 칼날이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궤적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바닥을 기어가는 검은 도화선의 불꽃은 이미 화약 상자의 코앞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치이익 하는 도화선 타는 소리가 약방 안의 숨 막히는 침묵을 찢었다.


강우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심장이 터져 나갈 듯한 고통이 전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방금 전, 소철을 구하기 위해 적소도(赤霄刀)의 검자루를 쥐고 억지로 검을 뽑으려 했던 대가는 처참했다. 가문의 원수가 아닌 자 앞에서는 절대로 칼날을 드러낼 수 없다는 ‘혈약의 맹세 규칙’이 그의 심장 경맥을 난도질해 놓은 상태였다. 기혈이 뒤틀려 입가로 검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고, 부러진 오른손목의 뼈마디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검을 뽑을 수 없다면…….’


강우는 오른손의 통증을 억누르며, 왼손에 쥔 삼베와 쇠사슬로 칭칭 감긴 무거운 도집(칼집)을 고쳐 잡았다. 왼손목을 감싸고 있는 검푸른 현철 장갑(현철 장갑)이 등불 빛을 받아 차갑게 빛났다.


눈앞의 시야는 피와 매연으로 흐릿했다. 강우는 시각에 의존하는 대신 귀를 기울였다.


‘청철공명결(聽鐵共鳴訣).’


허공을 가르는 독 비수의 미세한 쇳소리 주파수가 그의 심안(心眼)에 선명한 선을 그렸다. 강우는 왼발을 축으로 삼아 신형을 번개처럼 회전시켰다.


‘도집파천격 3성, 도집차단(刀鞘遮斷).’


무거운 무쇠 도집이 허공에서 거대한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졌다.


깡-!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과 함께 소철의 목덜미로 향하던 독 비수가 도집의 옆면에 맞아 굴절되어 벽면에 깊숙이 박혔.


하지만 귀영의 기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귀영은 소매 속에서 소리 없는 암기 묵침(墨針) 두 자루를 연달아 퉁겨냈다. 한 자루는 소철의 심장을, 다른 한 자루는 의자에 묶인 장 대인의 미간을 노리는 잔혹한 안수(眼手)였다.


강우는 추풍삼보의 신법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오른손목의 골절 통증이 척추를 타고 뇌리를 때렸지만, 그는 단 한 마디의 신음도 내뱉지 않았다. 묵묵히 몸을 날린 강우는 도집 끝에 내력을 집중해 공중을 두 번 찔렀.


깡! 깡!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오던 묵침 두 자루가 도집 끝에 정확히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 강우는 들보 위로 도약했다. 왼손의 현철 장갑으로 소철의 몸을 묶고 있던 거친 hemp 밧줄을 움켜쥐었다.


콰드득!


천년한철의 단단함이 깃든 현철 장갑의 악력이 가차 없이 힘을 가하자, 두꺼운 밧줄이 단숨에 뜯겨 나갔다. 강우는 떨어지는 소철의 몸을 왼팔로 가볍게 안아 올린 뒤, 지면을 가볍게 디뎠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소철의 신형을 약방의 깨진 판자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창문 밖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크읍!” 하는 둔탁한 신음이 들렸다. 대장간의 우직한 동포 마동포가 대기하고 있다가 던져진 소철을 안전하게 받아낸 것이었다.


“이, 이 빌어먹을 천치 놈이……!”


소철을 빼앗긴 귀영의 회색 가면 너머로 당혹감과 분노가 서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귀영은 강우가 발도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독 비수와 묵침을 완벽히 차단하고 인질까지 구해내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귀영은 품속에서 벽력당의 비전 화약 구슬을 꺼내 바닥에 사정없이 내던졌다.


퍼어엉-!


둔탁한 폭음과 함께 자욱한 보랏빛 독안개(벽력당 독안개)가 장 의원의 약방 내부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유황 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살을 찌르는 듯한 지독한 화독(火毒)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갔.


“콜록! 윽……!”


약방 구석에 묶여 있던 장 대인이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기침을 뱉어냈다.


강우 역시 위기에 처했다. 약방 가득 찬 유독가스가 그의 호흡기를 타고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미 혈약의 제약을 어기려 한 대가로 내상이 극에 달해 있던 기맥이 지독한 화독에 반응해 격렬하게 요동쳤다. 얼어붙는 듯한 한기와 불타는 듯한 열기가 전신 경맥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우욱……!”


강우는 참지 못하고 검은 피를 다시 한 번 울컥 토해냈다. 무릎이 꺾이며 바닥으로 주저앉으려 했다. 시야는 보랏빛 독안개 속에서 완전히 붉게 물들어 흐려져 가고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칠 귀영이 아니었다.


스스스슥-


귀영은 귀영신보(鬼影神步)의 기민한 신법을 전개해 소리 없이 독안개 속을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는 강우가 피를 토하며 흔들리는 찰나를 노려, 남은 한 자루의 독 비수를 치켜들고 강우의 목덜미를 향해 정면으로 쇄도했다.


쉭-!


독안개를 가르고 날카로운 시퍼런 칼날이 강우의 목덜미 일 치 앞까지 육박했다.


강우는 눈을 감았다.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도 적의 칼날이 공기를 찢으며 내뿜는 미세한 금속의 진동이 청철공명결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강우는 왼손을 번개처럼 치켜올렸다.


‘현철장갑, 철벽방(鐵壁防).’


검푸른 철판으로 보강된 현철 장갑이 어둠 속에서 독 비수의 시퍼런 칼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끼이이이익-!


소름 끼치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사방으로 붉은 불꽃이 튀었다. 귀영의 독 비수 끝에 실려 있던 맹렬한 벽력 진기가 현철 장갑의 철판에 가로막혀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장갑을 타고 가해진 둔탁한 물리적 충격이 강우의 부러진 손목 경맥을 강하게 때렸다.


“크윽……!”


강우의 입가에서 다시 한 번 핏방울이 튀었다. 가슴속 단전의 내력이 썰물처럼 위축되며 온몸의 기맥이 마비되는 듯한 극도의 한계가 밀려왔다. 결국 강우는 버티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무겁게 꿇고 말았다.


보랏빛 독안개 너머로 귀영의 회색 가면이 기괴하게 일그러지며 비웃음 소리를 흘렸다.


“가소롭구나, 한강우. 검을 뽑지 못하는 도객은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할 뿐. 네놈이 아무리 발악해도 이 약방과 함께 고철 가루가 되는 운명은 피할 수 없다.”


귀영은 품속에서 마지막 불씨가 담긴 화공 기물을 꺼내 들었다. 그것을 약방 구석에 쌓인 주 화약고 상자들을 향해 던져 약방 전체를 완전히 날려버리려는 심산이었다.


강우는 무릎을 꿇은 채, 흐려져 가는 시야 속에서 도집을 쥔 왼손에 힘을 주었다. 스승 풍간열의 가르침이 귓가를 스쳤다.


‘칼집은 위선을 깨뜨리는 장벽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심법을 잃지 마라.’


강우는 호흡을 가만히 가라앉히며 단전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마지막 무진경(無震勁)의 진기를 적소도의 묵직한 무쇠 도집 끝으로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응축하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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