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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력의 그림자, 잠입한 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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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지옥의 숨결처럼 숨이 막혔다. 매캐한 유황 연기와 벌붉은 쇳가루가 뒤섞인 추풍 철공소의 풀무방. 웅웅거리는 용광로의 노호 소리 사이로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강우는 허리를 깊숙이 굽힌 채 거친 가죽 풀무 끈을 잡아당겼다. 겉보기에는 온몸에 시꺼먼 숯댕이를 뒤집어쓴 채 하루 종일 석탄이나 나르는 미천한 벙어리 잡역부 ‘아광’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소매 아래 감춰진 그의 왼손 손가락 끝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어제 사철 늪지대에서 가문의 배신자 한삼을 심판할 때 스며든 지독한 냉기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탓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뇌풍의 거대 철퇴를 받아내며 어긋났던 오른손목 뼈마디에서도 욱신거리는 둔탁한 통증이 심장을 향해 치솟았다.


‘의심의 그물이 좁혀지고 있다.’


강우는 묵묵히 풀무질을 하며 숨을 죽였다. 장 대인의 약방으로 가 기혈을 다스릴 설산삼즙(雪山삼즙)을 공수받아야 했으나, 오늘 새벽 약방 초소 인근에 배치된 낯선 무사들의 기척 때문에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기혈을 안정시킬 시기를 놓친 단전 내부에서는 검붉은 진기가 불규칙하게 요동치며 가슴뼈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강우의 등덜미를 타고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시선이 꽂혔.


일반적인 삼류 광부들이라면 결코 느끼지 못할, 마치 살을 파고드는 가시와도 같은 독기 서린 안광이었다. 머리 위 십 장 높이, 쇳가루 매연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대장간 들보 위였다. 그곳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가 있었다.


벽력당(霹靂堂)의 일류 살수, 귀영(鬼影)이었다.


귀영은 며칠 전 종적을 감춘 한삼의 행방을 쫓아 이곳 철공소 내부로 침투해 들어왔다. 제갈현의 명을 받은 음침한 감시자답게, 그는 대장간 인부들의 호흡 소리 하나까지 은밀하게 감시하고 있었다. 최근 발생한 조태양의 단전 파쇄 사건과 뇌풍의 내상 배후에 동일한 고수가 숨어 있으며, 그 고수가 이 척박한 철공소 내부에 잡역부로 위장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좁혀오는 중이었다.


강우는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청철공명결(聽鐵共鳴訣).’


단전 깊은 곳에서 뿜어낸 미세한 진기가 대장간 바닥의 고철 파편들과 화로의 쇠붙이들을 타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눈을 감자 사방의 소음이 일순간 소멸하고, 대지 위에 흩어진 철기들의 울림만이 심안(心眼)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들보 위 어둠 속, 미세하게 진동하는 얇은 쇠붙이의 소리가 들렸다. 귀영의 품속에 숨겨진 가시 돋친 독 비수(毒 匕首)와 얇은 암침들이 내뿜는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 주파수였다. 그리고 그 철기의 울림 뒤로, 뱀처럼 가늘고 고른 귀영의 독특한 살수 호흡이 강우의 청각을 자극했다.


‘나를 노리고 있군.’


귀영의 시선이 벙어리 아광의 구부정한 어깨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었다. 뼈마디가 어긋난 손목을 감싸 쥔 장포의 흔적, 그리고 미세하게 뒤틀린 보법의 중심을 살수 특유의 예리한 감각으로 분석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강우는 본능적으로 솟구치려는 무인의 기세를 극한으로 억눌렀다. 지금 저 시선에 반응해 고개를 들거나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는 순간, 5년간 쌓아온 벙어리 아광의 가면은 산산조각 나고 말 터였다.


강우는 일부러 오른손목의 통증을 이기지 못한 척, 쥐고 있던 무거운 무쇠 석탄 삽을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뜨렸다.


쨍강-!


날카로운 철기 마찰음이 대장간 바닥을 뒹굴었다. 강우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둔탁한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벙어리답게 “읍, 으버버!” 하는 거친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벌벌 떠는 시늉을 하며 바닥에 흩어진 석탄 조각들을 왼손으로 다급하게 쓸어 담았다. 뇌풍의 사병들이 채찍을 치켜들고 다가오자,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비굴하게 손을 싹싹 빌기까지 했다.


들보 위 어둠 속에서 귀영의 가느다란 호흡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의심이 가득했던 그의 안광에 일시적인 실소와 경멸이 스쳤다. 천하를 진동시킨 한양 한씨세가의 후계자가 저토록 비굴하게 먼지 구덩이를 구르는 천치일 리 없다는 자만심이 그의 살수 본능을 흐트러뜨린 것이었다.


하지만 귀영은 결코 호락호락한 적이 아니었다. 그는 들보 위에서 소리 없이 신형을 날려 대장간의 다른 음지로 사라졌다. 시선이 거두어지는 순간, 강우는 조용히 흙바닥을 짚은 왼손 손가락 끝을 움켜쥐었다. 가슴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 * *


밤이 깊어지자 철공소는 거대한 매연의 장막 아래 침묵에 잠겼다.


하루의 가혹한 노동이 끝나고 사방에 계엄령과도 같은 삼엄한 순찰대의 발소리만 울려 퍼지는 시간. 강우는 가슴을 옥죄는 뒤틀린 경맥의 통증을 참아내며 은밀히 오두막을 빠져나왔. 장 대인의 약방이 포위되어 설산삼즙을 먹지 못한 대가로 심장 혈도가 불타는 것처럼 시려왔지만, 지금은 멈출 수 없었다.


강우는 몸을 낮춘 채 고철 폐기장(고철 폐기장) 뒤편의 황량한 쇠무덤 더미 속으로 스며들었다. 청철공명결로 주변 십 장 내의 감시병들의 무쇠 창날 울림을 감지하며, 순찰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폐기장 가장 깊은 곳, 부러진 칼날들과 붉은 녹이 가득한 고철 더미 틈새에 조그만 죽봉(竹筒) 하나가 박혀 있었다. 개방의 사공현(사공현)이 약속대로 남겨둔 비밀 전령이었다.


강우는 소리 없이 죽봉을 회수해 품속에 넣고 오두막으로 복귀했다.


어두운 오두막 바닥에 주저앉은 강우는 품속에서 죽봉을 꺼내 마개를 열었다. 안에는 얇은 양장지 필사본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공현이 개방의 정보망을 동원해 조사한 귀영의 상세한 정보였다.


[벽력당 암전조 조장, 귀영. 제갈현의 직속 사냥개로, 가시 돋친 독 비수와 소리 없는 암기 묵침을 주무기로 사용함. 체내의 기혈을 일순간에 얼려버리는 귀영심법을 구사하며, 최근 철공소 내부에 잠입해 한삼의 실종과 조태양의 단전 파쇄 배후를 추적 중. 또한, 벽력당에서 공수해 온 대량의 폭열 화약을 철공소 장서각 주변에 은밀히 매설하여 침입자가 발생할 시 통째로 폭파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음.]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강우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제갈현의 뱀 같은 놈이 결국 화약 덫을 놓았구나.’


가문의 야철 비기 단서가 숨겨진 장서각을 통째로 불태워 흔적을 지우려는 비열한 수법이었다. 귀영은 단순한 무력파가 아니었다.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을 인질로 잡고 독과 화약으로 파멸을 설계하는 지능형 살수였다. 강우는 편지를 단전의 화독 진기로 태워 흔적 없이 날려 보냈다.


바로 그 시각, 강우의 초라한 오두막 밖 숲속 음지에서 어둠이 일렁였다.


스으윽.


소리 없이 문을 열고 강우의 오두막 내부로 침투한 그림자가 있었다. 회색 가면을 쓴 왜소한 신형, 귀영이었다. 그는 강우가 밤샘 노역을 하거나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오두막 바닥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귀영은 품속에서 얇은 양모 장갑을 꺼내 끼고, 흙바닥 구석구석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의 예리한 살수 안광이 침상 밑 어두운 흙바닥의 한 지점에 멈추었다.


그곳은 얼마 전 강우가 사철 늪지대에서 배신자 한삼을 심판하고 돌아와 적소도를 묻어두었던 흙구덩이 인근이었다. 강우가 숯가루와 짚단으로 완벽하게 위장해 두었지만, 귀영의 뱀 같은 집요함까지 완전히 속일 수는 없었다.


귀영은 바닥의 흙을 미세하게 긁어내어 코끝에 가져갔다.


킁킁.


비릿한 황토 냄새 사이로, 일반적인 철공소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독특한 기운이 풍겼다. 사철 늪지대 고유의 음습한 물이끼 냄새, 그리고 미세하게 섞여 있는 한삼의 독검에서 흘러나온 시퍼런 쇳가루 흔적이었다. 결정적으로, 짚단 틈새의 흙바닥에 아주 미세하게 말라붙은 검붉은 핏방울 하나가 귀영의 눈에 포착되었다.


귀영의 가면 너머로 비열하고 잔인한 미소가 천천히 번져 나갔다.


“찾았군…… 가문의 망령 놈.”


아광이라 불리던 그 비굴한 벙어리 잡역부가 사실은 한삼을 소리 없이 매장하고 뇌풍의 무기를 부러뜨린 한양 한씨세가의 진짜 후계자이자 가문의 생존자임을 확신하는 찰나였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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