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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자의 냄새, 숲속의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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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비릿한 철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 사이로 대나무 잎사귀들이 사정없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형, 형님! 큰일 났어요!”


헐떡이는 소철의 목소리는 공포로 잘게 찢어져 있었다. 소년의 앳된 얼굴은 땀과 흙먼지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움켜쥔 강우의 소매를 흔드는 손길은 사르르 떨렸다.


“가문의 배신자이자 조필성의 사냥개인 한삼 그자 자식이…… 사병 수십 명을 거느리고 오두막 주변을 포위했어요! 바닥을 파헤치며 형님의 흔적을 뒤쫓고 있어요. 어서 피하셔야 해요!”


강우는 대답 대신 소철의 어깨를 왼손으로 지긋이 눌렀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벙어리 ‘아광’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지만, 깊고 형형한 눈빛만큼은 요동치지 않았다.


오두막 바닥에는 어젯밤 가문의 비전 기술을 단조하며 남은 미세한 제철 향과 한철 쇳가루의 흔적이 남아 있을 터였다. 야철의 눈을 지닌 한삼이라면 그 냄새를 맡는 순간 아광이 한양 한씨세가의 생존자 한강우임을 단번에 확신하리라.


‘연희의 공방으로 추적망이 뻗치게 둘 수는 없다.’


강우는 오른손목에 착용된 검푸른 현철 장갑을 장포 소매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었다. 천년한철로 제련된 장갑의 서늘한 기운이 부러진 뼈마디의 열독을 식혀주었지만, 여전히 손목 안쪽의 기혈은 뒤틀려 통증을 뿜어내고 있었다. 손목에 단단히 감긴 연희의 붉은 실이 살을 파고들며 팽팽한 긴장감을 더했다.


강우는 소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소철에게 어서 안전한 대나무 숲속으로 피신하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소철은 강우의 단호한 눈빛에 압도되어 마른침을 삼키고는 이내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홀로 남은 강우는 등 뒤에 삼베천과 쇠사슬로 칭칭 감아 고정한 적소도를 추스르고는, 일부러 고철 폐기장 인근의 진흙바닥을 향해 거친 발자국을 깊게 남기기 시작했다. 연희의 공방이 있는 동쪽 대나무 숲과는 정반대 방향, 추풍곡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천연의 장벽이자 비극의 금지구역인 ‘사철 늪지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사철 늪지대는 지옥의 묵시록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철분이 가득 섞여 검은빛을 띠는 눅눅한 진흙과 사철 모래가 엉겨 붙어 흘러가는 늪지대로, 미세한 쇳가루 바람이 불어 나침반조차 작동하지 않는 황량하고 음습한 분지였다. 무거운 철갑을 입은 무인이나 사병들이 한 번 발을 잘못 디디면 영원히 검은 진흙 속으로 가라앉아 뼈조차 추릴 수 없는 천혜의 덫이었다.


스스슥, 스스슥.


강우의 신형이 검은 진흙과 쇳가루 먼지가 자욱한 늪지대 초입으로 은밀하게 빨려 들어갔. 이윽고 등 뒤의 숲속에서 나뭇가지가 꺾이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가쁜 호흡 소리가 밀려왔다.


“여기다! 한철 쇳가루 냄새와 가문 특유의 야철 향이 이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검은 가죽 옷을 기워 입고 녹슨 장도를 허리에 찬 중년 사내, 한삼이 수십 명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갈대밭을 헤치며 나타났다. 그의 뺨에는 가문을 배신하던 날 밤 새겨진 흉측한 검 상흔이 일그러져 있었다. 한삼의 매서운 붉은 눈동자가 늪지대 경계에 멈춰 선 강우의 등덜미를 집요하게 찔렀다.


“벙어리 아광 놈…… 아니, 한강우 도련님이라 불러드려야 하나?”


한삼의 비열한 목소리가 검은 늪지대의 무거운 공기를 찢었다.


“천치 벙어리 행세를 하며 조필성 소주의 밑바닥에서 고철이나 치우고 살더니, 결국 꼬리가 밟혔군. 네놈의 오두막 바닥에서 나는 그 고결한 한양 한씨의 제철 냄새는 숨길 수 없다.”


강우는 묵묵히 뒤를 돌아보았다. 장포 자락이 사철 바람에 펄럭였고, 그의 깊고 어두운 안광이 한삼의 얼굴에 머물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참기 힘든 뜨거운 살기가 용광로의 쇳물처럼 끓어올랐다.


뇌리에 5년 전 그날 밤의 참상이 환영처럼 스쳐 지나갔다. 적들의 칼날에 목이 잘려 나가던 부친 한무경의 비명, 어린 자신을 아궁이 밑에 숨기고 온몸으로 칼날을 받아내던 모친 설씨 부인의 피로 물든 얼굴. 그리고 그 모든 방어 진법의 비밀 통로를 조필성에게 넘겨주고 뒤에서 비열하게 웃고 있던 가문의 하급 무사, 한삼.


그가 가문을 배신했던 진짜 이유는 가족들의 목숨이 조필성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라는 추악한 진실을 강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비극적인 사연조차 가솔 수백 명의 피를 흘리게 만든 대죄를 씻을 수는 없었다.


“도련님, 왜 검을 뽑지 못하고 도집치기만으로 버티시는지 내 아주 잘 알고 있지.”


한삼이 장도를 천천히 뽑아 들며 비웃었다. 서릉한 푸른 검기가 검날을 타고 일렁였다.


“가문의 신검 적소도에 걸린 피의 혈약…… 원수의 목을 베기 전에는 절대로 칼집에서 빠지지 않는 저주의 사슬! 크크크, 조필성 소주를 대면하기 전에는 그 검을 뽑을 수 없겠지. 그렇다면 내 검날 앞에서 맨손으로 버텨보시지!”


쉬이익-!


한삼의 신형이 번개처럼 쏘아져 왔다. 그의 장도가 허공을 가르며 날카로운 검풍을 일으켰다. 한양 한씨가문의 기초 검식인 ‘한천수류검’의 궤적이었다. 가문의 무공을 훔쳐 사냥개 노릇을 하는 배신자의 검초는 극도로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강우는 적소도를 뽑으려 하지 않았다. 삼베와 쇠사슬로 칭칭 감긴 검은 여전히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피울음을 울릴 뿐이었다. 대신 강우는 왼손의 현철 장갑을 단단히 고쳐 쥐고 몸을 사선으로 가볍게 틀었다.


‘추풍삼보(秋風三步) 구결. 바람은 부딪치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강우의 신형이 바람에 날리는 붉은 낙엽처럼 가볍게 흐트러졌다. 한삼의 예리한 검날이 강우의 장포 깃을 단 1치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빗겨 나간 검풍이 늪지대의 검은 진흙을 폭풍처럼 쏘아 올렸다.


“쥐새끼 같은 신법이구나! 가문의 무공을 숨기려 변방의 삼류 보법만 쓰는 것이냐!”


한삼이 이를 갈며 검날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횡참과 종참이 교차하며 강우의 목과 허리를 사정없이 노렸다. 강우는 가문의 진짜 보법인 ‘적소환영보’를 철저히 억누른 채, 오직 추풍삼보의 변칙적인 회피 궤적만을 사용하여 적의 참격을 흘려냈다.


스윽, 파앗!


강우의 신형이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사철 늪지대의 검은 진흙 위로 내려앉았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발이 푹푹 빠져 중심을 잃었을 터였다. 그러나 강우는 사냥꾼 이춘삼에게 전수받은 ‘사철 늪지 생존결’의 심법을 구동하고 있었다. 늪지대 바닥 깊은 곳에 숨겨진 단단한 사철 디딤돌의 울림을 청철술로 정확히 감지하여, 늪의 표면 장력을 역이용해 깃털처럼 가볍게 미끄러지듯 디뎠다.


반면, 두꺼운 무쇠 철갑을 입고 무거운 장도를 휘두르는 한삼의 사병들과 한삼은 늪지대의 치명적인 덫에 걸려들고 있었다.


“우욱, 발이…… 발이 빠진다!”


사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검은 진흙 속으로 무릎까지 빠져들었다. 한삼 역시 무리하게 검초를 전개할 때마다 몸의 하중이 실려 장화가 진흙 깊숙이 옥죄어 들어갔다. 평정심을 잃은 한삼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이 교활한 놈! 일부러 이 검은 늪으로 날 유인한 것이냐!”


한삼이 광포하게 소리치며 내력을 실어 검날로 검은 진흙을 튕겨내 강우의 시야를 가리려 했다. 쇳가루와 진흙이 뒤섞인 폭풍이 강우의 전방을 덮쳤다.


강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자욱한 사철 먼지 바람 속에서 독기를 품은 유독한 철 가루 가스가 강우의 호흡기로 스며들었다.


“쿨럭……!”


폐부가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과 함께 강우의 단전 내부 진기가 일시적으로 정체되었다. 기혈의 뒤틀림으로 인해 몸의 균열이 가중되며, 펄럭이던 장포 자락이 한삼의 반격 검날에 스쳐 쩍 하고 찢겨 나갔다. 검은 핏방울이 검은 진흙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강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도 그의 두 발은 사철 늪지의 디딤돌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배신자 한삼의 체력과 평정심이 늪의 장력에 의해 완전히 고갈될 때까지 침묵 속에서 기회를 노렸다.


이윽고 한삼은 허리춤까지 검은 진흙 속으로 빠져들어 더 이상 장도를 정상적으로 휘두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방을 둘러싼 사병들 역시 늪에 갇혀 허우적대며 비명을 질러댔다. 완벽한 고립이자 자멸이었다.


“이, 이 괴물 같은 놈……”


한삼의 얼굴이 공포로 하얗게 질려갔다. 도집치기 한 번 당하지 않았음에도 자신들의 무력 집단이 자연의 장벽 앞에 완벽히 무너졌음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가 늪지대의 안개처럼 그의 목을 조여왔다.


하지만 가문의 배신자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한삼의 눈에 광기 어린 독기가 서렸다. 그는 진흙에 갇힌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속 깊숙이 손을 밀어 넣었다.


스으윽.


한삼의 손끝에서 붉은 광채를 내뿜는 주먹만 한 특수 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주 작은 마찰만으로도 대폭발을 일으켜 조필성의 정예 사병 본대를 즉각 호출할 수 있는 비밀 신호용 화염 구슬(화염 구슬)이었다.


“크하하하! 한강우 도련님! 네놈이 날 이 검은 구덩이에 묻으려 해도 소용없다!”


한삼이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화염 구슬을 치켜들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구슬의 신호 도화선 매듭을 건드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걸 던지는 순간, 추풍곡의 모든 사병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쳐 네놈과 연희의 공방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릴 것이다! 어서 검을 뽑아 날 베어라! 그렇지 않으면 다 함께 지옥으로 가는 거다!”


일촉즉발의 절체절명의 위기. 붉은 화염의 빛이 검은 늪지대의 안개를 피처럼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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