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빠진 대도, 무진의 철벽
새벽빛이 추풍 철공소의 검은 지붕을 타고 흐를 때, 대장간의 가마는 이미 붉은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매캐한 유황 연기와 벌겋게 달아오른 쇳가루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강우는 묵묵히 풀무 가죽을 잡아당겼다. 가죽이 쓸리는 거친 소리 사이로, 그의 가슴속에서는 전날 밤의 비린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채 맴돌고 있었다.
가문의 배신자 한삼. 그자가 내민 유수검의 궤적을 강우는 철저히 천치 '아광'의 몸짓으로 흘려보냈다. 가문의 무공을 유도하려던 배신자의 얕은 수작에 동요하지 않고, 오직 추풍삼보의 투박한 발디딤과 청철공명결로 검날의 울림을 읽어내어 피한 뒤, 한삼이 방심한 찰나 그의 턱밑을 도집 끝으로 찔러 기절시켰다. 숲속 깊은 토굴 속에 그 비열한 사냥개를 묶어두고 돌아온 참이었다.
하지만 강우의 오른손목은 여전히 시려 왔다. 뇌풍의 진기 주입으로 뒤틀렸던 경맥이 매서운 아침 바람에 가느다랗게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오른손목에 감긴 연희의 붉은 실만이 그의 심장을 차분하게 지탱하고 있었다. 벙어리 아광의 가면을 유지해야만 하는 강우는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며 풀무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철공소 입구의 무거운 목조 정문이 굉음을 내며 열렸다.
쿵, 쿵, 쿵.
대지를 울리는 둔탁한 발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중심에 선 사내는 가죽 장포 위에 하북팽가의 붉은 사자 문양이 새겨진 철갑을 덧대고 있었다. 거구의 체구, 주저앉은 콧날 아래로 험악한 턱수염이 무성한 무인. 팽만강이 조필성을 감시하고 철공소의 한철 무기 거래를 검수하기 위해 보낸 행동대원, 팽호였다.
그의 어깨에는 성인 남성의 허벅지만큼 두껍고 거대한 대도, 참철도가 비스듬히 메여 있었다.
"조필성 소주가 자랑하던 추풍곡의 명검들이 고작 이딴 것들이란 말이냐?"
팽호는 단조대 위에 놓인 갓 제련된 검들을 훑어보며 가소롭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검 한 자루를 쥐고는 내력을 실어 가볍게 퉁겼다.
깡-!
불협화음이 섞인 둔탁한 쇳소리가 대장간 내부에 울려 퍼졌다. 야철안을 지닌 강우의 눈에는 그 칼날 내부의 치명적인 기포와 불균형한 탄소 분포가 선명하게 보였다. 팽호 역시 무학의 기초를 닦은 천재답게 칼의 조잡함을 단번에 알아챘다.
"불순물이 가득 섞인 개철이군. 이딴 쓰레기를 명검이라 속여 우리 가문에 넘기려 했다니, 조필성이 감히 우리 하북팽가를 기만하는구나."
팽호는 들고 있던 검을 단조대 모서리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검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허무하게 동강 나 바닥으로 굴렀다. 대장간의 수석 장인 장삼이 마른침을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팽 대협, 추풍곡의 사철은 정제가 까다로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저희 장인들은 밤낮없이 가마를 지켰습니다."
"시간? 변명 따위는 필요 없다. 천한 대장장이 놈들이 게으름을 피운 대가는 오직 피로만 치를 뿐이다."
서릉한 살기와 함께, 팽호의 어깨에 메여 있던 거대한 참철도가 번쩍였다. 시퍼런 도광이 대장간의 어둠을 가르고, 장삼의 이마 바로 앞 일 치 거리에서 멈췄다. 예리한 도풍에 장삼의 이마 가죽이 미세하게 찢어지며 붉은 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네놈의 머리통을 쪼개어 가마 속에 던져 넣으면, 다른 놈들이 정신을 차리겠지."
장삼은 눈을 감았다. 무림맹의 권세를 뒤에 업은 세가 무인의 칼날 앞에서, 미천한 장인의 목숨은 길가의 잡초보다 가벼웠다. 그때, 묵묵히 풀무 가죽을 쥐고 있던 강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장삼 아저씨를 죽이게 둘 순 없다.'
강우는 들고 있던 풀무 끈을 내려놓고, 천천히 장삼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쇳가루를 뒤집어쓴 채 비루한 마의를 걸친 벙어리 잡역부의 등장이었다. 팽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이 천치 새끼는 또 뭐냐? 벙어리 놈이 대신 죽고 싶은 모양이군."
팽호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거대한 참철도를 치켜들었다. 그의 굵은 팔뚝에 힘이 들어가며, 수천 근의 무게를 지닌 패도가 강우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내리눌렀다. 강우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의 안광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붉은 불꽃이 일렁였다.
'야철안.'
강우의 시야가 기이하게 변했다. 팽호가 휘두르는 거대한 참철도의 표면이 미세한 결의 흐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검붉은 쇠의 흐름 속에, 제련 과정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미세한 기포와 불순물이 엉겨 붙은 치명적인 결함 부위가 그의 눈에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칼날 중간 부분, 자루에서 세 치 위 지점이었다.
동시에 강우는 등 뒤에 삼베와 쇠사슬로 묶인 적소도를 고쳐 잡았다. 칼날을 뽑을 수는 없었다. 원수 조필성의 피를 마시기 전에는 결코 뽑히지 않는 혈약의 도였기에, 그는 묵직한 무쇠 도집 자체를 무기 삼아 앞으로 나아갔다.
'도집파천격 2성, 반탄경.'
강우는 도집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치켜들며 팽호의 낙하하는 대도를 마주했다.
스으으윽- 쾅!
대도의 날카로운 칼날이 강우의 도집 옆면에 닿는 순간, 강우는 몸의 각도를 미세하게 틀어 충격을 대지로 흘려보냈다. '도집 받치기 (횡경막)' 초식이었다. 팽호의 무지막지한 거구의 힘과 검기가 사선으로 미끄러지며 대장간 바닥의 돌들을 박살 냈다.
"원형을 잃지 않았다고?"
팽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자신의 참격을 한낱 목조 도집으로 가볍게 흘려보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격분한 팽호가 대도를 횡으로 크게 휘두른 채 덮쳐왔다.
강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체를 천근추의 무게로 지면에 단단히 고정하고, 현철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도집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지금이다.'
강우는 도집 끝에 무진경의 침투 내경을 응축했다. 그리고 팽호의 대도가 반환점을 돌며 힘이 가장 집중되는 찰나, 야철안으로 포착한 칼날 중간의 미세한 기포 결함 부위를 정확히 겨냥했다.
타앙-!
첫 번째 격타.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팽호의 손목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 쥐새끼가!"
팽호가 내력을 더해 도기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강우의 도집은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타앙-!
두 번째 격타. 동일한 지점을 타격당하자, 참철도 내부의 균열이 겉 표면으로 퍼지며 미세한 쇳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일격. 강우는 단전 깊은 곳에서 무진경의 진동 에피소드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려 도집 끝에 실었다.
콰앙-!
세 번째 격타와 동시에, 대장간 내부에 유리 깨지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팽호의 눈동자가 공포로 가득 찼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거대하고 단단한 참철도가, 강우의 도집 끝에서 시작된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수십 개의 파편으로 갈라지며 공중으로 비산했다.
쨍그랑, 쨍강!
부러진 명검의 파편들이 연무장 돌바닥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팽호는 텅 빈 도끼자루만을 쥔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의 손목은 무진경의 침투 내경에 당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전신 기맥이 꼬여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대장간 내부에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장삼도, 소철도, 그리고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조필성의 최측근 뇌풍과 감시 사병들의 안광이 일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저, 저 벙어리 놈이……!"
뇌풍이 자신의 거대한 철퇴를 천천히 뽑아 들며 걸어 나왔다. 그의 붉은 눈동자 속에 살기가 뱀처럼 피어올랐다. 사방에서 사병들이 창날을 세우며 강우를 촘촘히 포위하기 시작했다. 흩어진 참철도의 파편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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