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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 상회의 가격 덤핑 공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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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도시의 하늘을 찢어발긴 소리 없는 푸른 섬광의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제국의 감시 장벽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린 하이 엘프 여제 엘리시아의 저격. 그 가공할 위력에 드워프 장인 토르발드는 넋을 잃은 채 굳어 있었고, 엘리시아 본인조차 새로 제련된 마도활 ‘바람의 노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의 손끝에 맴도는 정령의 파동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쿨럭……! 우욱.”


하지만 정작 그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인 최준서는 대장간의 차가운 흙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마력이 전혀 없는 ‘무마력 영혼 바인더’ 체질인 그가 계약의 주사위를 매개로 엘리시아의 폭주하는 마력을 억지로 조율하고 고통을 대신 짊어진 대가는 참혹했다. 양 눈은 핏발이 서서 붉게 충혈되었고, 귓가에는 삐- 하는 날카로운 이명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영혼 과부하 한계치가 이미 65%를 넘어서며 전신에 극심한 내상의 피로가 몰려왔다.


“스승님! 정신 차리십시오!”


수습 상인 한별이 비명을 지르며 준서의 어깨를 붙잡았다. 토르발드 역시 정신을 차리고 다급하게 다가왔다.


“어르신의 아드님이라더니, 정말 미련할 정도로 무모한 짓을 하는군! 이보게, 괜찮은가?”


준서는 옷소매로 턱 끝에 맺힌 핏방울을 닦아내며, 지홍의 은빛 단검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여전히 주판알을 튕기듯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 피로 죽지는 않으니까요. 토르발드 씨, 이제 상회의 전용 무기 제작소는 당신이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말이라고 하는가! 한성 어르신의 은혜를 입은 이 토르발드, 목숨을 바쳐서라도 최고의 무구들을 찍어내 주마!”


토르발드가 가슴을 쾅 치며 맹세했다. 준서는 고개를 끄덕인 뒤, 엘리시아를 바라보았다. 마력을 되찾은 엘프 여제의 녹색 눈동자에는 이전의 오만한 불신 대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영혼을 찢어발긴 인간 청년을 향한 묘한 감정의 동요가 일렁이고 있었다. 호감도 40% 도달. 아직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이제 준서를 단순한 주인이 아닌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씨 영감, 마차를 준비하십시오. 감시 장벽이 뚫렸으니 제국 세관이나 추적대장 베른이 움직이기 전에 이곳을 이탈해야 합니다.”


준서의 차분한 지시에 대장간 밖에서 대기하던 늙은 마부 김씨 영감이 즉각 가속 마차의 고삐를 당겼다. 그들은 소리 없이 슬럼가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며 준서 상회 본점으로 복귀했다.


***


다음 날 아침, 준서 상회는 토르발드의 대장간에서 정밀 제련된 ‘고효율 에테르 마도 배터리’를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했다. 폐광산 지하에서 채굴한 고순도 에테르 정수를 촉매로 삼아 제작된 이 배터리는 기존 제국산 마석 배터리보다 무려 3배 이상의 마력 출력을 내면서도 가격은 합리적이었다. 장벽 도시의 마도 마차 마부들과 중소 상인들은 열광했다. 출시 단 하루 만에 상회 본점 앞은 배터리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남부 무법지대의 상권을 독점하고 있던 거대 세력, 철혈 상회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상회 2층 집무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그의 품에 안긴 특제 수동식 계산기의 태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한별.”


준서는 차분하게 차를 음미하며 주판을 내려놓았다. 옆에 서 있던 서기 안나 역시 꼼꼼하게 다려진 서기복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장부를 펼쳐 들었다.


“철혈 상회의 후계자 레온하르트가 움직였습니다! 그 오만한 자가 남부 무역 연합의 공인 면허를 무기로 우리 상회에 들어오는 마석과 가죽 등 기초 원료 공급망을 전면 차단했습니다! 게다가…… 저들이 판매하는 기존 마도 배터리의 가격을 오늘 아침부로 우리 상회의 반값으로 내렸습니다!”


한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반값이라고요? 그 가격은 원가 이하일 텐데요?”


안나가 놀라 장부를 짚었다. 한별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완벽한 가격 덤핑 공세입니다! 저들의 자본력은 우리 상회의 수십 배에 달합니다. 저런 식으로 우리가 마진 없이 반값 전쟁에 휘말리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자금이 바닥나 파산할 겁니다. 게다가 원료 공급까지 막혔으니 새로 배터리를 제작할 수도 없습니다!”


철혈 상회의 후계자 레온하르트. 금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오만한 귀족 풍의 청년 상인인 그는 준서 상회의 급성장을 자신의 완벽한 커리어에 생긴 오점으로 여겼다. 그는 거대한 자본력의 쇠몽둥이로 신흥 풋내기인 준서를 단숨에 짓밟아 무법지대에서 축출하려 한 것이다.


실제로 상회 1층 매장 밖의 소란이 잦아들고 있었다. 가격이 반값으로 내려간 철혈 상회의 대리점으로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매출 그래프가 급격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적자 경보를 울렸다.


“과연 대형 상단의 후계자다운 무식하고 확실한 방법이군요.”


준서는 오히려 나직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황금빛 눈동자에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미 계약의 주사위를 굴려 레온하르트가 제국 상인 연합의 지부장들과 맺은 불법 담합 계약서의 사본을 ‘계약서 투시’ 능력으로 은밀히 파악해 둔 덕분이었다. 레온하르트는 남부의 모든 철강과 광산 유통망을 억지로 묶어두기 위해 연합 지부장들에게 천문학적인 뇌물과 담보를 약속한 상태였다.


“대기업과의 정면 가격 전쟁은 자살 행위입니다. 저들이 돈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그 돈이 흘러나오는 댐의 기초를 무너뜨려야지요.”


준서가 코트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나, 이중 장부를 챙기십시오. 한별, 너는 매장의 재고를 동결하고 철혈 상회의 덤핑 배터리를 차명으로 최대한 매입해 두어라. 저들이 손해를 보고 파는 물건이니, 많이 살수록 저들의 적자만 늘어날 테니까.”


“예, 예? 알겠습니다, 스승님!”


준서는 곧바로 김씨 영감의 마차에 올랐다. 목적지는 장벽 도시 지하의 어두운 운하 주변에 위치한 무법 암시장, ‘섀도우 앨리’였다. 그곳에는 남부 무법지대의 어둠의 금융을 지배하는 거물, 사채업자 바실리가 상주하고 있었다.


***


섀도우 앨리 깊은 곳, 짙은 모피 코트를 걸치고 금반지를 가득 낀 대머리 노인 바실리가 매서운 매의 눈빛으로 준서를 맞이했다. 그의 탁자 위에는 준서가 담보로 맡겼던 에테르 정수 샘플 조각이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오, 빚쟁이 청년 상단주 아닌가. 일주일의 기한을 줬거늘, 철혈 상회의 덤핑 공세에 밀려 벌써 파산 서류를 쓰러 왔나?”


바실리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준서는 침착하게 바실리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품속에서 주판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탁, 타닥, 탁.


준서의 손가락이 주판알을 가볍게 튕겼다. 맑고 경쾌한 나무 마찰음이 음침한 금융소 내부에 울려 퍼졌다.


“바실리 어르신. 저는 파산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어르신께 더 큰돈을 벌어다 드리고, 눈앞의 거추장스러운 돌덩이를 치워버릴 제안을 하러 왔지요.”


“호오? 재미있군. 말해봐라.”


준서는 ‘계약서 투시’ 능력을 가동해 바실리의 금융 장부와 채권 계약서들의 마법 흐름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정확한 맥짚기를 시작했다.


“철혈 상회의 레온하르트가 남부 무법지대의 원료 유통망을 독점 담합하기 위해 최근 어르신께 거액의 사채를 추가로 빌렸을 겁니다. 맞습니까?”


바실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준서는 멈추지 않고 주판을 튕기며 말을 이었다.


“그가 담보로 제공한 자산은 남부 외곽에 위치한 흑철 광산 3곳과 에테르 광구의 지분이지요. 하지만 레온하르트는 모릅니다. 제국의 통화 정책 변화로 인해 남부 지역의 골드 통화 가치가 인위적으로 폭락하고 있으며, 그가 담보로 잡은 광산들의 실질 자산 가치 역시 거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요.”


“……!!”


바실리가 들고 있던 담뱃대를 멈추었다. 준서가 주판을 밀어내며 바실리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르신이 발행하신 ‘암시장 무기명 채권’의 이자율을 일시적으로 역조작하여, 철혈 상회가 담보로 제공한 광산들의 위험 지수를 극대화하십시오. 담보 자산의 신용 가치가 폭락하는 순간, 어르신은 계약 조항에 따라 레온하르트에게 즉각적인 담보 보강이나 대출금 일부 조기 상환을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준서가 기획한 ‘암시장 이자율 역조작’ 금융 역공이었다. 적이 가격 전쟁에 정신이 팔려 유동 자금을 전부 쏟아붓고 있는 지금, 배후의 채무 구조를 흔들어 숨통을 끊어버리는 전술.


“하지만 내가 왜 그런 위험한 짓을 해야 하지? 레온하르트가 파산하면 나도 골치가 아파지는데.”


바실리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준서는 미소 지으며 품속에서 최고급 계약서를 꺼내 올려놓았다. 준서 상회의 마도 도장이 찍힌 공식 문서였다.


“그 대가로, 우리 준서 상회가 독점 발견한 고대 에테르 정수의 남부 유통 지분 10%를 어르신께 영구 양도하겠습니다. 제국의 가짜 마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절대적인 에너지 주권입니다. 평생 마르지 않는 황금 샘을 얻으시는 겁니다.”


바실리의 매서운 눈동자가 탐욕으로 크게 일렁였다. 고대 에테르 정수의 가치는 이미 그가 검증한 바 있었다. 철혈 상회의 낡은 철광산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천문학적인 이권이었다. 바실리는 붉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펜을 들었다.


“지독한 놈이군…… 아비인 최한성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영리해. 좋다, 이 거래를 승인하지.”


서명이 완료되는 순간, 바실리가 금융소 중앙의 마법 전광판을 향해 손짓했다. 암시장의 채권 이자율 주파수가 급격하게 재조정되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철혈 상회 남부 지부의 화려한 집무실.


레온하르트는 비단 소파에 기대어 앉아 와인을 마시며 오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준서 상회의 매출이 폭락했다는 보고를 받으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탓이다.


“풋내기 상인 놈, 감히 철혈 상회의 자본력에 비비려 들다니. 이제 며칠만 지나면 스스로 무릎을 꿇고 에테르 광맥의 위치를 불겠지.”


그때, 집무실의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수석 회계사가 사색이 된 얼굴로 들이닥쳤다.


“도, 도련님! 큰일 났습니다! 암시장의 사채업자 바실리가 움직였습니다!”


“바실리가 왜? 이자는 꼬박꼬박 주고 있잖아.”


레온하르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회계사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금융 통지서를 내밀었다.


“바실리 측에서 우리가 담보로 제공한 남부 광산들의 신용 위험 지수를 강제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이자율이 역조작되어 폭등했고, 담보 가치가 기존의 3분의 1로 폭락했습니다! 바실리가 지금 당장 금화 15,000닢의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대출금 원금의 절반을 24시간 내로 조기 상환하라고 통보해 왔습니다!”


“뭐, 뭐라고?! 금화 15,000닢을 당장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레온하르트가 와인잔을 떨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재 철혈 상회의 모든 유동 자금은 준서 상회를 고사시키기 위한 마도 배터리 반값 덤핑 전쟁과 원료 독점 담합 비용으로 묶여 있어, 금고가 텅 빈 상태였다.


“만약 상환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우, 우리의 핵심 자산인 남부 광산들의 소유권이 즉각 바실리에게 강제 압류됩니다! 그렇게 되면 상회의 금융 신용도가 폭락해 제국 상인 연합에서도 영구 제명당할 위기입니다!”


레온하르트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가격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믿었던 순간, 자신의 발밑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금융의 영토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최준서……! 그 비열한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나를……!”


레온하르트는 이 모든 배후에 준서의 지략이 있음을 직감하고 이빨을 갈았다. 자금줄이 완전히 막혀 파산 위기에 처한 오만한 도련님의 눈동자에 광기 어린 복수심과 살기가 서서히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는 거칠게 책상을 내려치며 비서에게 소리쳤다.


“당장 지하 무법 상단 ‘검은 이빨’의 바르가스에게 연락해라!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그 약골 상인 놈의 목을 가져오고 비밀 창고를 짓밟으라고 해!”


금융 시장의 붕괴가 초래한 적들의 대공황, 그리고 이성을 잃은 자가 선택할 마지막 피의 습격. 준서 상회를 향한 더 어둡고 거친 폭풍우가 남부 무법지대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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