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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워프의 망치와 엘프의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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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론 장벽 도시의 슬럼가 깊은 곳은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한 매연과 타르 냄새가 하늘을 찌르는 골목길 한구석. 쇠를 두드리는 웅장한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곳이 있었다. 바로 드워프 장인 토르발드의 대장간이었다.


덜컹, 덜컹.


늙은 마부 김씨 영감이 모는 특수 강화 마차가 낡은 대장간 문 앞에 멈춰 섰다. 준서는 마차에서 내려 옷깃에 묻은 붉은 먼지를 털어냈다. 폐광산 지하에서 고대 에테르 정수 광맥을 발견하고 복귀한 직후였기에 전신에 피로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채굴한 고순도 에테르 원석이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허리춤에는 은빛 안개 여관의 주인 지홍이 비상용으로 빌려준 낡은 마력 단검이 꽂혀 있었다.


“여기요, 스승님. 드워프들의 고집은 황소고집보다 더 지독하다는데 정말 이 자를 포섭할 수 있을까요?”


마차에서 내린 수습 상인 한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주판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준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나직하게 답했다.


“상인에게 꺾지 못할 고집이란 없습니다. 상대가 원하는 가장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만 있다면 말이지.”


준서가 대장간의 그을린 목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화끈거리는 열기와 함께 매캐한 석탄 연기가 코를 찔렀다. 대장간 중앙에는 거대한 용광로가 붉은 화염을 토해내고 있었고, 그 앞에는 붉은 수염을 땋아 내린 단단한 체구의 드워프가 거대한 망치를 들고 서 있었다. 그가 바로 토르발드였다.


“누구냐? 잡상인이라면 당장 꺼져라! 내 대장간에서는 쓸데없는 고철 쪼가리나 만질 시간은 없다!”


토르발드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철판을 집게로 들어 올리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인간 상인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드워프 특유의 오만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준서는 미소 지으며 품속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의 입구가 열리자, 어두운 대장간 내부를 단숨에 푸른빛으로 가득 채우는 영롱한 광채가 뿜어져 나왔. 순도 95% 이상의 고대 에테르 정수 원석이었다.


“……!!”


토르발드의 땋은 수염이 경악으로 파르르 떨렸다. 그가 들고 있던 망치가 바닥으로 떨어질 뻔했다. 드워프 일류 장인인 그가 이 결정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제국 군부조차 구하지 못해 안달인 고대 지맥의 정수가 눈앞에 실존하고 있었다.


“이, 이건…… 고대 에테르 정수잖아? 네놈들이 이걸 어디서 구한 거지?”


“출처는 상인의 비밀입니다, 토르발드 씨.”


준서가 나직하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제안하려는 것은 거래가 아닙니다. 동맹이지요. 이 에테르 정수를 무제한으로 공급해 드릴 테니, 우리 준서 상회의 전용 무기 제작소를 맡아 주십시오. 당신의 기술과 내 자본이 결합한다면 제국을 뒤흔들 명작들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토르발드는 이내 탐욕을 억누르며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흥, 아무리 귀한 광물이라 해도 인간 놈들과는 손을 잡지 않는다. 내 가문을 몰락시키고 나를 이 슬럼가에 처박은 것이 바로 인간 귀족 놈들의 탐욕이니까!”


드워프의 완강한 거절에 한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준서는 침착하게 허리춤에 꽂혀 있던 지홍의 낡은 마력 단검을 뽑아 탁자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단검의 표면에 새겨진 정교한 은빛 룬 문자가 용광로의 불꽃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


“……이, 이 문양은?”


단검을 바라보던 토르발드의 두 눈이 크게 찢어졌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들어 올려 표면의 은빛 룬 문자를 어루만졌다.


“이건 과거 최한성 대상인의 은기사단 호위대장만이 지닐 수 있는 수호의 룬이다……! 지홍 형님의 검이잖아? 네가 어떻게 이 검을 가지고 있는 거지?”


“지홍 숙부는 내 정신적 지주이자 가문의 오랜 수호자이십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가 바로 최한성 대상인입니다.”


준서의 고백에 토르발드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수염 사이로 뜨거운 김이 새어 나왔다. 과거 최한성 상회가 제국 귀족들의 음모로 몰락할 때, 토르발드 역시 그들에게 기술을 빼앗기고 쫓겨났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주군의 아들이 살아 돌아와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한성 어르신의 아들이 살아 있었다니…… 지홍 형님이 너를 비호하고 있었군.”


토르발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준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좋다. 주군의 아들이 복수를 위해 검을 잡으라는데, 이 토르발드가 망치를 아낄 이유가 없지! 내 대장간과 내 망치를 너에게 바치마!”


마침내 상회의 가장 강력한 기술적 동맹이 확보되는 순간이었다. 준서는 즉각 준비해 온 금화 2,000닢을 토르발드에게 건넸다. 대장간의 송풍 장치와 도가니를 제국 최신식으로 전면 교체하고, 엘리시아의 각성 무기를 제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잠시 후, 대장간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은빛 머리칼을 늘뜨린 하이 엘프 여제, 엘리시아가 걸어 들어왔. 그녀의 손에는 고대 엘프 황실의 정밀 마도 설계도가 들려 있었다. 마력 누수 증상으로 인해 몸은 여전히 야위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큼은 고결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것이 내 마력 누수를 정렬하고 제어해 줄 무기, ‘바람의 노래’의 설계도다.”


엘리시아가 설계도를 펼치자, 토르발드는 돋보기안경을 코끝에 걸치고 도면을 샅샅이 분석했다. 드워프의 안목으로 보아도 그것은 인간의 기술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정교한 정령 마법 회로의 결정체였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설계로군. 하지만 하이 엘프의 정령 마력을 견디려면 일반 철강으로는 터무니없다. 내가 제련해 둔 최고급 ‘드워프식 정련 강철’을 뼈대로 삼고, 네가 가져온 고대 에테르 정수를 촉매로 사용해 ‘드워프 고온 백열 제련법’을 가동해야 한다.”


토르발드가 용광로의 온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석탄 대신 에테르 원석 조각이 투입되자, 용광로 내부에서 일반적인 화염의 5배에 달하는 순백색의 백열 불꽃이 치솟기 시작했다. 대장간 내부의 온도가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급격하게 상승했다.


“시작한다! 모두 뒤로 물러서라!”


토르발드가 거대한 집게로 정련 강철판을 용광로 속에 밀어 넣었다. 에테르의 강력한 에너지가 강철에 주입되자, 강철판이 스스로 요동치며 백은빛 광채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에테르의 열기는 일반적인 마력보다 훨씬 거칠고 폭발적이었다. 용광로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상승하며 석조 벽면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대장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용광로의 균열 틈새로 순백색의 마력 불꽃이 새어 나오며 폭발의 전조를 알렸다.


“젠장! 에테르의 열기가 너무 강해! 제련로가 버티지 못하고 터질 판이다!”


토르발드가 비명을 지르며 송풍구를 닫으려 했으나, 이미 폭주하기 시작한 에테르의 마력은 멈추지 않았다. 화염의 압력이 가중되며 균열이 점점 더 넓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대장간 전체가 날아가고 모두가 소멸할 위기였다.


“내가 조율하겠다!”


엘리시아가 앞으로 나서며 도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는 자신의 바람 정령 마력을 방출해 용광로의 폭주하는 열기를 정렬하려 ‘고대 엘프식 마도 조율’을 시전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빛의 바람 기류가 흘러나와 용광로를 감싸 안았다.


스으으으!


일순 열기가 가라앉는 듯했으나, 이내 엘리시아의 영혼에 새겨진 황금 낙인이 붉게 발작했다. 고질적인 마력 누수 증상이 발동한 것이다. 그녀의 마력 회로가 뒤틀리며 바람의 기류가 사방으로 찢겨 나갔다. 조율하려던 바람 마력이 오히려 에테르의 열기와 공명하여 더 큰 폭발 주파수를 형성했다.


“으윽……! 마력이…… 통제되지 않아……!”


엘리시아가 가슴을 쥐어짜며 비틀거렸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용광로는 이제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자줏빛 광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요동쳤다.


그 순간, 준서가 주저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 그는 마력이 전혀 없는 무마력 영혼 체질이었기에 용광로가 뿜어내는 마력 오염 폭풍 속에서도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준서는 비틀거리는 엘리시아의 가녀린 손을 꽉 맞잡았다. 그의 손끝에서 ‘계약의 주사위’가 황금빛으로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엘리시아, 나를 믿고 당신의 마력 주파수를 내 영혼으로 전송하십시오!”


준서의 뇌릿속에 ‘에테르 주파수 미세 조율법’의 수식들이 실시간으로 홀로그램처럼 스쳐 지나갔. 준서는 주사위를 굴리며 엘리시아의 뒤틀린 마력 파동을 자신의 무마력 영혼을 매개로 삼아 정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녀가 겪고 있는 마력 누수의 극심한 고통을 자신의 영혼으로 직접 끌어당겼.


‘고통 분담(Pain Sharing), 최대 출력!’


“우욱……! 컥!”


엘리시아의 고통이 신경망을 타고 들이치는 순간, 준서의 입에서 검붉은 피 한 움큼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전신에 실핏줄이 검게 솟구쳤고, 양 눈이 붉게 충혈되며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이명이 울려 퍼졌다. 영혼 과부하 한계치가 위험 수위까지 치솟았지만, 준서는 엘리시아의 손을 놓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의 무마력 영혼이 정화 필터 역할을 하며 엘리시아의 폭주하는 마력 파동을 부드럽게 정렬해 나갔다.


스으으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준서의 조율을 거친 엘리시아의 바람 마력이 완벽하게 안정되며 용광로의 에테르 열기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했다. 폭발하려던 용광로의 붉은 불꽃이 차분한 푸른빛으로 가라앉으며 정련 강철판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지금이다, 토르발드! 두드려라!”


준서가 피를 흘리며 외쳤다. 토르발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대한 망치를 치켜들었다. 그의 전신에 드워프의 장인 투기가 타올랐다.


“오오오오! 백열의 철퇴(Incandescent Hammer)!!”


토르발드의 망치 머리가 백열의 백색으로 타오르며 정련 강철판을 향해 내리꽂혔.


콰아앙! 콰아앙! 콰아앙!


대장간 전체를 울리는 장엄한 망치질 소리가 벼락처럼 내리쳤다. 토르발드가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준서와 엘리시아가 정렬해 놓은 고대 에테르의 정수가 강철의 미세한 분자 구조 속으로 완벽하게 흡수되어 각인되었다. 쇳물이 스스로 고대 엘프의 룬 문자 형태로 용동치며 활의 형상을 갖추어 나갔다.


마침내 용광로의 열기가 완전히 가라앉고, 토르발드가 달구어진 무구를 특수 냉각수에 밀어 넣었다.


치이이이이익!


자욱한 수증기 너머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롱한 백은빛 광채를 뿜어내는 한 자루의 마도활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대 에테르 정수와 정련 강철이 완벽하게 융합되어 제련된 엘리시아 전용의 전설적 무기, ‘바람의 노래(Wind's Song)’였다.


엘리시아는 떨리는 손으로 활을 들어 올렸다. 활을 쥐는 순간, 그녀의 마력 누수 증상이 거짓말처럼 멈추며 전신의 마력 회로가 완벽하게 정렬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서 있는 준서를 바라보았다. 오만하던 그녀의 녹안에 깊은 감동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신뢰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영혼의 무기인가.”


엘리시아는 대장간의 천장 환기구를 향해 활시위를 조용히 당겼다. 활시위에는 그 어떤 물리적인 화살도 얹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시위를 당기자, 대기 중의 바람 정령들이 소용돌이치며 순백색의 투명한 마력 화살을 형성했다.


팅-!


가벼운 파열음과 함께 소리 없는 바람의 화살이 밤하늘을 향해 쏘아 올려졌다. 화살은 순식간에 대기권을 가르며 날아가, 아스카론 장벽 도시 전체를 덮고 있던 제국의 거대한 마법 감시 장벽의 일부분을 소리 없이 관통하여 거대한 구멍을 뚫어버렸다.


장벽 도시의 하늘을 가르는 소리 없는 바람의 신사(神射). 전설적인 마도활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서막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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