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의 고대 기연
아스카론 장벽 도시의 지하 하수도는 지독한 악취와 함께 끝없는 어둠이 도사리는 미로였다. 눅눅한 습기가 가득한 벽면에는 이끼가 가득했고, 발밑으로 더러운 하수가 출렁이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덜컹, 덜컹.
그 어둠을 뚫고 한 대의 마차가 은밀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마차의 차축은 특수 강화가 되어 있어 하수도의 불규칙한 돌바닥을 지나면서도 기이할 정도로 소음이 적었다. 마부석에 앉아 묵묵히 고삐를 쥐고 있는 이는 준서 상회의 수송 대장, 영감 김씨였다. 그는 입에 문 낡은 파이프 담배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어둠 속을 매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상단주님, 이 앞부터는 제국의 순찰대도 발길을 끊은 완전한 폐광 구역입니다. 하수도 수로와 연결되어 있기는 하나, 몬스터들의 습격이 잦아 장벽 도시의 경비대도 포기한 곳이지요.”
마차 내부에서 창밖을 보던 최준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옆자리에는 붉은 머리칼을 거칠게 늘어뜨린 화룡족 여제, 카르디아가 팔짱을 낀 채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심장 부근에는 제국이 채워둔 철못 봉인의 흉터가 미세하게 붉은빛을 뿜고 있었다.
“약골 상인. 왜 이런 썩은 냄새가 나는 시궁창으로 기어 들어가는 거지? 설마 나를 이런 곳에 묻으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카르디아의 날카로운 황금빛 눈동자가 준서를 겨냥했다. 준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오른손에 쥔 주사위 모양의 정밀 마도구, ‘계약의 주사위’를 가볍게 굴렸다. 황금빛 마법 홀로그램 수식이 허공에 흐릿하게 전개되며 하수도 벽 너머의 미세한 마력 파동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시작했다.
“카르디아, 나는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요. 일주일 뒤 바실리에게 사채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이 상회는 공중분해됩니다. 우리 복수 동맹의 첫걸음이 시작되기도 전에 끝난다는 소리죠. 그러니 지금은 가장 확실한 노다지를 캐러 가는 겁니다.”
“노다지라니? 이 시궁창 깊은 곳에 뭐가 있다는 거냐?”
“제국도, 바실리도 모르는 고대 지맥의 에너지가 결정화된 곳입니다.”
준서의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마차가 멈춰 섰다. 하수도 수로의 끝자락, 거대한 쇠창살이 무너져 내린 폐광산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감 김씨가 마차를 안전한 그늘에 대기시켰고, 준서와 카르디아는 마차에서 내려 어둡고 가파른 광산 갱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고, 음산한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일반적인 광부들이라면 공포에 질려 달아났을 어둠이었지만, 준서는 주사위가 가리키는 황금빛 궤적만을 차분히 따라갔다. 갱도 벽면은 오랜 세월 방치되어 무너져 내린 흔적이 가득했다. 준서는 벽면의 바위 틈새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미세한 진동을 느꼈다.
“이 부근입니다. 카르디아, 저 바위벽을 부수어 주십시오.”
준서가 가리킨 곳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화강암 벽이었다. 카르디아는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주먹에 가볍게 힘을 주자, 비록 쇠사슬로 억제되어 있으나 용족 특유의 초인적인 완력이 폭발했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위벽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먼지 구름 너머로,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앗!”
카르디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무너진 벽 너머에 숨겨진 거대한 공동 전체가 영롱하고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벽면과 천장 곳곳에 박힌 거대한 결정체들이 숨을 쉬듯 주기적으로 푸른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 군부나 마도원에서도 눈이 뒤집혀 찾아 헤매는 초고가치 에너지원, ‘고대 에테르 정수 광맥’이었다.
준서는 주사위를 높이 들어 광맥의 수식을 정밀 분석했다. 주사위 표면의 황금빛 문양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광맥의 에테르 순도를 측정해 나갔다.
“순도 95% 이상의 극품(High-Pure) 등급이군요. 이 정도 규모라면 바실리의 빚을 갚고도 남부 무법지대 전체의 에너지를 독점할 수 있는 양입니다.”
준서의 목소리에 흥분이 감돌았다. 그가 채굴 도구를 꺼내려던 찰나였다.
샤아아아아!
공동의 어두운 천장 위에서 기분 나쁜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준서의 계약 주사위가 급격한 경고 진동을 울렸다. 준서가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자, 푸른 광채가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세 개가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었다.
몸길이가 3미터에 달하며 온몸이 기괴한 자줏빛 껍질로 덮인 변종 거대 거미 괴수들이었다. 그들의 붉은 눈동자는 마력을 갈구하듯 굶주림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날카로운 이빨 사이로 산성 침이 뚝뚝 떨어졌다. 이 괴수들은 대지 깊은 곳의 마력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변종 마수들이었다.
“약골 상인! 뒤로 물러서라!”
카르디아가 준서의 앞을 가로막으며 두 팔을 교차했다. 그녀가 전신의 투기를 끌어올리자, 그녀의 신체 주변으로 투명하고 붉은 용비늘 형상의 화염 보호막인 ‘용의 비늘 방벽’이 전개되었다. 백열의 열기가 공동 내부를 가득 채우며 마수들의 접근을 차단하려 했다.
키에에엑!
괴수 한 마리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용의 비늘 방벽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괴수의 발톱이 방벽에 닿는 순간, 방벽의 화염 마력이 급격하게 괴수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마력을 흡수한 괴수의 몸집이 순식간에 부풀어 올랐고, 방벽의 붉은 광채는 눈에 띄게 흐려졌다.
“뭐라? 내 불꽃을 먹어 치운다고?”
카르디아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괴수들이 방벽의 화염 마력을 흡수하며 방벽을 갉아먹자 방벽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력을 억지로 쥐어짜 내는 과정에서 카르디아의 심장에 박힌 철못 봉인이 강하게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슴을 쥐어짜며 신음했다.
“으윽……! 심장이……!”
괴수들은 카르디아의 강력한 화룡 마력에 광분하여 더욱 거세게 방벽을 갉아먹었다. 이대로 가다간 방벽이 깨지고 카르디아의 심장마저 파괴될 위기였다.
그 순간, 준서의 뇌리가 번개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마수가 카르디아의 화염 마력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음을 간파했다. 그리고 괴수들이 자신을 바라볼 때는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서 본인은 태어날 때부터 마력이 전혀 없는 ‘무마력 영혼 바인더’ 체질이었기 때문이다. 괴수들에게 준서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 돌덩어리에 불과했다.
‘마력을 흡수하는 괴수들의 특성상, 화염 마법은 오히려 적들의 촉매가 된다. 그렇다면…….’
준서는 주사위를 꽉 쥐고 마음속으로 외쳤.
‘영혼의 속삭임, 활성화!’
카르디아의 머릿속으로 준서의 냉철한 목소리가 실시간 텔레파시로 직접 내리쳤.
- 카르디아, 들립니까? 지금 당장 화염 방벽의 마력 방출을 멈추십시오. 적들은 마력만을 흡수해 성장합니다. 마력을 완전히 지우고, 용족 특유의 순수한 물리적 괴력으로 거미의 다리 관절을 타격하십시오!
카르디아는 머릿속에 울리는 준서의 지시에 찰나의 의문을 품었으나, 준서의 목소리에 깃든 기묘한 확신에 몸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심장의 봉인이 조여오는 고통을 참아내며 전신의 화염 투기를 강제로 꺼뜨렸다. 방벽이 사라지자 괴수들이 일제히 준서와 카르디아를 향해 덮쳐왔다.
“하아앗!”
마력이 완전히 사라진 순간, 카르디아는 오직 신체 본연의 괴력만을 사용해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녀의 묵직한 주먹이 가장 거대한 괴수의 머리를 향해 내리꽂혔.
콰아앙!
마력을 흡수하지 못한 괴수의 머리가 카르디아의 초인적인 완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 나며 자줏빛 체액을 사방으로 뿜어냈다. 카르디아는 기세를 몰아 흑강 대검을 크게 휘둘러 나머지 괴수들의 다리를 무자비하게 끊어냈다. 마력 방출이 없으니 괴수들은 아무런 방어막도 전개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쓰러졌다.
퍼억! 콰직!
단 세 번의 물리적 타격 끝에 공동을 가득 메웠던 마수들이 완전히 침묵했다. 숨을 헐떡이며 대검을 바닥에 짚은 카르디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준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괴수들의 마력 흡수 공격 속에서도 단 1%의 영향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는 준서의 특이한 체질을 목격하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약골 상인……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어떻게 그 마력 폭풍 속에서 영혼이 오염되지 않고 멀쩡할 수 있지?”
“말했잖습니까. 나는 마력이 전혀 없는 체질이라고요. 가끔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것이 최고의 무기가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준서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광맥 벽면으로 다가갔다. 그는 주사위를 굴려 에테르 원석을 채취하기 위해 지맥의 흐름을 다시 한번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런데 원석을 채굴하려던 순간, 준서의 눈에 기이한 마력 파동이 감지되었다.
광맥의 가장 깊숙한 안쪽 벽면 너머에서, 푸른빛이 아닌 음산하고 거대한 자줏빛 마력의 실타래가 요동치고 있었다. 준서가 조심스럽게 주사위의 인과율 분석을 가동하자, 벽면 너머에 숨겨진 거대한 지맥의 균열이 시각화되었다.
그 균열은 아스카론 장벽 도시를 넘어, 제국의 수도인 황도 지하의 대성당 제단과 직접 연결되어 거대한 에너지를 왜곡 추출하고 있는 마력의 통로였다. 제국 황실이 이종족 여제들의 영혼을 이용해 무언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비밀의 단서였다.
준서의 눈동자가 그 자줏빛 균열을 바라보며 깊게 가라앉았다. 복수의 칼날을 겨눌 제국의 거대한 심장부가, 이 어두운 폐광 깊은 곳에서 그 베일을 미세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Chưa có bình luận nào. Hãy là người đầu tiê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