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난이도
지이잉— 지이잉—
별관 4층, 아무도 찾지 않는 폐방송실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구형 피처폰 ‘노키아 105’가 거칠게 울어댔다. 낡은 콘크리트 벽면에 기대어 숨을 고르던 강민재는 주머니에서 대포폰을 꺼내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인은 교무실 청소 구역을 전담하는 배달부 B, 이진우였다.
[EMERGENCY: 박태호, 황인호 교무부장 지시로 중간고사 수학 난이도 인위적 급상승 모의 중. 하위권 몰살 계획 포착.]
민재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굳어졌다.
방금 전 송우진과 손가락을 걸고 성적 상승 피의 계약을 맺은 직후였다. 우진은 민재가 던져준 형의 유품,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쥔 채 아지트를 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는 여전히 팽팽한 살기와 함께, 기득권 시스템이 보내온 경고장이 붉게 깜빡이고 있었다.
“역시 가만히 둘 리가 없지.”
민재는 낮게 읊조렸다.
명성고등학교의 권력자들은 하위권 학생들이 자신들의 견고한 성적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교무부장 황인호는 상류층 자녀들의 학생부를 조작하고 내신 등급을 세탁해 주는 거대한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전교 꼴찌인 민재가 사설 배팅판을 열어 하위권 아이들의 성적을 흔들기 시작하자, 황인호는 담임 박태호를 사냥개로 내세워 판 자체를 깨부수려는 것이다.
조작된 난이도. 그것은 기득권이 룰을 어기고 판돈을 모두 쓸어가기 위해 던지는 가장 비열한 ‘치트키’였다.
탁, 탁.
조용한 발소리와 함께 폐방송실의 낡은 철문이 미세하게 열렸다. 어둠 속에서 더부룩한 머리에 먼지투성이 체육복을 입은 소년이 기어들어 왔다. 배달부 B, 이진우였다. 그의 손에는 교내 청소용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민재 형.”
진우는 주위를 극도로 경계하며 목소리를 죽였다.
“교무실 쓰레기통에서 겨우 건져왔어. 박태호가 오늘 퇴근하기 직전에 비밀번호가 걸린 분쇄기 옆 일반 쓰레기통에 대충 구겨서 버린 파지 조각들이야. 분쇄기에 넣기 귀찮았는지 그냥 손으로 찢어 버렸더라고.”
진우가 청소용 수레 밑에서 꺼낸 비닐봉지를 바닥에 쏟아부었다. 찢기고 구겨진 누런 시험지 초안 조각들이 먼지와 함께 흩어졌다. 진우는 하위권이라는 이유로 교사들에게 멸시받던 상처를 품은 채, 민재의 거래소에서 얻은 정보료(GT)로 동생의 약값을 대고 있는 충실한 정보원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기득권을 향한 깊은 독기가 서려 있었다.
“고생했다, 진우야. 아무도 안 봤지?”
“응. 퇴근 시간이라 교무실엔 당직 교사 한 명밖에 없었어. 형, 박태호가 이번엔 진짜 미친 것 같아. 교무실 구석에서 황인호 부장이랑 속닥거리는데, ‘이번 기회에 배팅판 대가리랑 유도부 쓰레기들을 한 번에 청소해 버리겠다’고 하더라고.”
“청소라…….”
민재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진우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누가 청소당할지는 지켜봐야지. 너는 이만 가봐. 들키면 위험하니까.”
진우가 그림자처럼 아지트를 빠져나간 후, 민재는 스탠드 불빛 아래에 찢어진 파지 조각들을 나열했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거친 질감. 민재는 부러진 안경다리를 검은 테이프로 고쳐 잡으며, 퍼즐을 맞추듯 종이 조각들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조각난 수식들이 스탠드의 황색 불빛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 \vec{a} \cdot \vec{b} = |\vec{a}||\vec{b}|\cos\theta \)…… 아니, 이건 단순한 벡터 내적이 아니야. 기하학 문항인데 좌표 평면을 뒤틀어 놓았군. 공간 벡터의 회전 변환인가?’
수식의 구조를 맞춰갈수록 민재의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
박태호가 출제한 변형 문항의 초안이었다. 평소 그의 출제 패턴은 최근 3개년 기출문제의 숫자만 바꾸는 수준의 기계적인 변형이었다. 하지만 이 초안에 적힌 수식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복잡했다. 기하학 도형의 대칭성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연산 과정에서 수십 번의 분수 계산을 거치게 만들어 둔 의도적인 ‘시간 끌기용’ 덫이었다.
컴퓨터의 자동 연산 알고리즘을 가동하기 위해 민재는 라즈베리 파이 4 서버 클러스터를 켰다. 붉은색과 녹색 LED가 어두운 오디오 랙 내부에서 깜빡이며 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민재는 복원한 수식 데이터를 파이썬 예측 모델에 대입했다.
위잉—
서버의 냉각팬이 비명을 지르며 회전했다. 하지만 화면에 뜬 결과는 민재의 예상과 달랐다.
[WARNING: 알고리즘 오차율 12.4% 초과. 예측 모델의 무결성이 붕괴되었습니다.]
“오차가 12%를 넘는다고?”
민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동안 99.8%의 정확도를 자랑하던 베이지안 예측 알고리즘이 무너진 것이다.
원인은 명확했다. 문제는 인간이 낸다. 컴퓨터는 정형화된 수학적 규칙을 학습하지만, 출제자의 뇌가 ‘인위적인 악의’를 품고 물리 법칙을 거스르듯 룰을 왜곡할 때 발생하는 비정형적 편향은 계산해 내지 못한다. 황인호의 압박을 받은 박태호가 하위권 학생들을 몰살하기 위해 고의로 논리적 대칭성을 깨뜨린 변칙 문제를 급조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통계학의 영역을 벗어난 ‘블랙 스완’이었다.
“기계가 인간의 악의를 계산하지 못한다면…….”
민재는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놓았다. 피로로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그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직접 그 악의의 궤적을 쫓는 수밖에.”
민재는 박태호라는 인간 자체를 해킹하기 위해 ‘교사 심리 분석 매트릭스’를 가동했다. 출제자의 인간적 편향성을 수치화하는 정밀한 심리 프로파일링 기술.
하지만 매트릭스를 완성하기 위해선 아직 결정적인 정성적 데이터, 즉 박태호의 최근 심리 상태를 대변할 현실의 변수가 부족했다.
다음 날 방과 후, 민재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학교 본관 뒤편의 허름한 매점이었다. 매점 사장 최영희 아주머니는 명성고의 모든 사소한 소문이 모이고 분산되는 살아있는 정보 도서관이었다.
“아주머니, 단팥빵 하나 주세요.”
민재는 헐렁한 체육복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며 아주 평범한 전교 꼴찌의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푸근한 인상으로 빵을 건네며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민재 왔구나. 요즘 몸은 좀 어떠니? 얼굴이 반쪽이 됐네.”
“시험 기간이라 잠을 좀 못 자서요. 요즘 선생님들도 시험 출제하시느라 다들 예민하신 것 같아요. 특히 저희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서도 엄청 짜증을 내시더라고요.”
민재가 자연스럽게 미끼를 던졌다.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
“말도 마라, 얘. 그 박 선생 말이야, 요즘 아주 제정신이 아니야. 매점에 담배 사러 올 때마다 손을 부르르 떨더라고. 내가 슬쩍 물어봤더니, 사모님이랑 크게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나왔대. 게다가 퇴직금까지 사채 비스무리한 데서 끌어다 주식에 몰빵했다가 완전히 반토막이 났다나 봐. 요즘 매점 외상 장부도 안 갚고 신경질만 부리는데, 아주 무서워 죽겠어.”
‘사채, 부부싸움, 그리고 주식 계좌 폭락.’
민재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듯 수식의 연결고리가 완성되었다.
“그렇군요…… 힘드시겠네요.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빵을 받아든 민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폐방송실 아지트로 질주했다.
아지트의 문을 잠그고 칠판 앞으로 다가간 민재는 분필을 쥐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교사 심리 분석 매트릭스’의 공백들이 실시간으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의 뇌는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인지적 왜곡을 일으킨다. 특히 박태호처럼 권위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 재정적 파산(주식 폭락)과 가정 붕괴(부부싸움)를 동시에 겪을 때, 그의 무의식은 ‘통제 권력의 극대화’로 도피하려 한다.
학교에서 그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통제 권력은 바로 ‘시험 문제 출제’와 ‘채점’이었다.
“박태호의 스트레스 가중치: 주식 폭락으로 인한 분노 가중치 +45%. 부부싸움으로 인한 수면 부족 및 주의력 결핍 가중치 +20%. 황인호의 인사 압박으로 인한 강박적 집착 +35%.”
분필이 칠판을 격렬하게 긁으며 수식들을 나열했다.
“출제자의 뇌가 피로하고 분노에 가득 차 있을 때,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창작할 여유가 없다. 대신 기존에 신뢰하던 특정 참고서의 고난도 문항을 가져와 ‘인위적으로 더럽게’ 변형하지. 연산 과정을 고의로 꼬아 평균 점수를 낮추고, 자신의 출제 권위를 증명하려는 방어 기제다.”
민재는 이진우가 가져온 파지 조각의 기하학 수식과 박태호가 도서관에서 최근 대출한 참고서 목록 데이터를 매칭했다.
탁!
분필 끝이 칠판의 한 지점을 강하게 찔렀.
“찾았다. 러시아 기하학 올림피아드 기출 변형. 여기에 박태호의 분노 가중치를 대입하면…… 변별력 문항 18번과 20번의 벡터 좌표 회전각은 정확히 \( \theta = \frac{\pi}{3} \)가 아닌, 계산을 극도로 복잡하게 만드는 \( \theta = \frac{5\pi}{12} \)로 왜곡된다.”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계산하지 못한 12%의 오차는 박태호라는 인간의 ‘악의와 피로’가 만들어낸 편향이었다. 민재는 그 편향의 값을 정량화하여 사전 확률 모델에 대입했다.
위잉—
라즈베리 파이 서버의 화면이 깜빡이더니, 마침내 녹색 신호가 켜졌다.
[SUCCESS: 알고리즘 오차율 0.18%로 수렴. 기말고사 수학 과목 난이도 및 킬러 문항 변형 패턴 예측 성공.]
민재는 칠판에 기대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이 안경알을 타고 떨어졌다. 하지만 쉴 시간이 없었다. 내일 아침이면 바로 중간고사 수학 시험이 시작된다. 송우진과의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선, 이 조작된 난이도를 관통할 ‘우진 맞춤형 족보’를 오늘 밤 안으로 수동 작성해야 했다.
우진은 수학적 기초가 아예 없는 8등급의 낙오자였다. 하지만 그는 유도 선수 특유의 공간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민재는 복잡한 수식 계산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도형의 형태와 벡터의 방향성을 시각적 이미지로 치환하여 직관적으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는 특수한 ‘그림자 족보’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어두운 아지트 안에서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만이 외롭게 울려 퍼졌다.
라즈베리 파이 서버의 열기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서버의 CPU 온도는 이미 85도를 넘어서며 경고 비프음을 작게 울리고 있었다. 민재의 뇌 역시 과부하 상태였다. 컴퓨터 없이 머릿속으로 수천 번의 좌표 변환 연산을 처리하는 ‘그림자 암산’의 대가로 뇌 혈류량이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다.
눈앞이 번쩍이며 시야가 굴절되었다.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윽……!”
민재는 가슴을 움켜쥐며 책상 위로 쓰러지듯 엎드렸다. 입안에서 비릿하고 뜨거운 액체가 울컥 솟구쳤다.
퉤.
민재가 바닥에 뱉어낸 침에는 검붉은 피가 섞여 있었다. 과도한 정신적 연산 스트레스로 인해 미세 혈관이 터진 것이다. 코끝에서도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려, 그가 밤새 작성하던 우진의 족보 시험지 위로 뚝, 뚝 떨어졌다. 흰 종이 위에 붉은 핏방울이 번져가며 기괴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계산하면 끝난다.’
민재는 피 묻은 손으로 펜을 다시 쥐었다. 동생 민아의 창백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 사채업자 최두식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자신이 여기서 쓰러지면, 동생의 산소호흡기는 꺼지고 자신의 오른손가락은 부러질 것이다. 숫자로 가득 찬 이 잔인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 숫자의 지배자가 되는 길 외에는 없었다.
마지막 수식의 보정값을 적어내려가는 민재의 눈빛에 지독한 독기가 서렸다.
스윽—
바로 그 순간, 정적을 깨뜨리며 폐방송실의 무겁고 낡은 철문이 거칠게 열렸다.
민재는 반사적으로 대포폰과 장부를 품에 숨기며 문쪽을 바라보았다. 우진이 올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도부장 정호현인가? 아니면 교무부장의 수색대인가?
하지만 열린 문틈 사이로 들어선 것은 거친 일진도, 험악한 사채업자도 아니었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 티 없이 맑고 하얀 피부, 그리고 안경 너머로 지적인 빛을 발하는 차갑고 아름다운 소년의 실루엣.
명성고등학교 전교 1등이자 골드 클래스의 정점, 이지원이었다.
지원은 한 손에 최신형 태블릿 PC를 든 채, 아지트 내부의 라즈베리 파이 서버와 칠판 가득 적힌 수학 공식들을 서늘한 눈빛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코피를 흘리며 펜을 쥐고 있는 전교 꼴찌 강민재의 일그러진 얼굴에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지원이 태블릿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침묵을 깨뜨렸다.
“학교 전산망의 비정상적인 전력 소모 가중치 주기 1.2초. 그 신호의 종착지를 추적했더니 이런 쓰레기통이 나올 줄은 몰랐네.”
지원의 안경알 위로 서버의 붉은 경고등 빛이 차갑게 반사되었다.
“전교 꼴찌 강민재. 네가 명성고를 뒤흔드는 사설 배팅판의 대가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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