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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건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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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진의 주먹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폐방송실 내부의 무정전 전원장치(UPS)가 내는 미세한 기계음만이 두 사람의 숨 막히는 대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웅웅거리는 진동음이 낡은 콘크리트 벽을 타고 민재의 등줄기로 흘러들었다. 멱살을 쥔 우진의 손아귀는 여전히 억셌지만, 그의 손가락 끝에 실려 있던 살기 어린 힘은 이미 눈에 띄게 빠져나가 있었다.


우진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그 안에는 당혹감과 깊은 불신, 그리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본원적인 공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대치동 밑바닥을 지배하는 사채업자, 최두식. 그 잔혹한 이름이 학교에서 가장 쓸모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던 전교 꼴찌의 입에서 흘러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너…… 방금 뭐라고 씨부렸냐?”


우진이 으르렁거리며 멱살을 더 세게 쥐어짰다. 민재의 몸이 벽에 더 바짝 밀착되며 호흡이 가빠졌다. 안경테에 감긴 검은 테이프가 살짝 벌어지며 시야가 굴절되었다. 하지만 민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이성은 얼음물 속에 잠긴 것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귀가 먹은 건 아닐 텐데, 송우진.”


민재는 목을 조여오는 통증을 견디며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네 목덜미에 남은 자주색 피멍. 유도복 깃에 쓸린 자국이 아니야. 손가락 힘으로 강하게 눌러 압박한 흔적이지. 그리고 네 주먹 테이핑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주기 2.4초. 극도의 자금 압박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율신경계가 보내는 전형적인 신호야. 너, 그 현금 상자에 든 이백만 원을 뺏어서 오늘 밤 최두식에게 바치려고 했지?”


“이 새끼가 진짜……!”


우진의 주먹이 툭 치듯 민재의 볼을 스쳤다. 찌릿한 통증과 함께 뺨이 부어올랐지만, 민재는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가져가 봐. 하지만 그 돈으로는 일주일 치 이자도 안 돼. 최두식이 어떤 놈인지 너도 잘 알잖아. 빚의 원금을 줄이지 못하면, 너는 평생 그놈의 사냥개 노릇을 하며 매달려 살아야 해. 결국 유도부에서도 벌점 누적으로 잘리겠지.”


우진의 눈동자가 크게 확대되었다. 민재의 정교한 팩트 폭격이 그의 가장 아픈 역린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다. 명성고의 학칙상, 정기고사 평균 성적이 5등급 미만인 예체능 특기생은 전국대회 출전권이 박탈된다. 현재 우진의 내신은 8등급. 이번 중간고사에서 등급을 올리지 못하면 그의 유도 인생은 끝이었다. 대학 체육 특기생 장학금도, 사채 빚을 갚을 마지막 기회도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뜻이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우진이 마침내 울부짖듯 소리치며 민재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민재는 바닥으로 착지하며 가볍게 기침을 토해냈다. 목덜미에 붉은 찰과상이 남았지만, 주도권은 이미 완전히 그의 손으로 넘어와 있었다.


민재는 주머니 속에서 형의 유품인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천천히 꺼냈다. 소형 액정에 미세한 흠집이 가득한 낡은 아날로그 도구. 민재는 그것을 우진의 발밑에 툭 던졌다. 탁,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계산기가 우진의 먼지 묻은 운동화 앞에 멈춰 섰다.


“도박을 하자, 송우진.”


“……도박?”


“그래. 단순한 상납 대신, 더 큰 판돈을 걸고 벌이는 진짜 거래. 다가올 중간고사 수학 과목에서 네 성적 등급을 정확히 예측해서 올려주지. 8등급인 너를 4등급 ‘더스트 클래스’의 최상위권으로 진입시키겠다.”


우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전교 꼴찌 새끼가 누구 성적을 올린다는 거야? 그것도 수학을? 장난하냐?”


“만약 내가 실패한다면.”


민재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길고 마른 손가락 끝이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 오른손가락을 가져가도 좋아. 네 주먹에 감긴 그 스포츠 테이핑 끈으로 묶어서 부러뜨리든, 최두식에게 바치든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가 성공한다면, 너는 이 거래소 ‘명문’의 공식 경호원이자 물리적 방패가 된다. 어때, 잃을 게 없는 장사잖아?”


자신의 신체적 손상을 담보로 건 극한의 신용 도박. 우진은 침을 삼켰다. 전교 꼴찌의 눈빛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광기와 철저한 논리가 그를 압도하고 있었다.


“너…… 진심이냐?”


“수학은 거짓말을 안 해.”


민재는 안경테를 테이프로 고친 부러진 안경을 지켜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림자 암산(Mental Math) 가동.’


순식간에 민재의 뇌 속에서 방대한 데이터 세트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형의 마이크로 SD 카드에서 추출한 명성고 3개년 오답률 통계와 우진의 과거 시험 답안 패턴이 빛의 속도로 대조되었다.


“송우진. 지난 세 차례의 수학 정기고사 원점수: 24점, 18점, 31점. 평균 학습 시간 0시간. 주관식 문항 공란 비율 100%. 하지만 네 오답 패턴을 분석한 결과, 기하학 영역에서 도형의 회전 변환과 벡터의 방향성 매칭 문항의 정답률은 의외로 45%에 수렴해. 유도 선수 특유의 공간 지각 능력이 무의식중에 작동한 거지. 네가 틀리는 문항의 84%는 단순 연산 과정에서의 부호 오류(+/-)와 공식 대입 실수다.”


민재가 눈을 뜨며 우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담임 박태호의 최근 3개년 중간고사 출제 성향과 가중치 데이터를 대입해 네 오답 패턴을 보정하면, 단 12시간의 맞춤형 포트폴리오 학습만으로 네가 중간고사 수학 4등급에 도달할 확률은 정확히 99.8%다. 오차 범위는 0.2% 이하. 내 손가락을 걸 가치가 충분한 확률이지.”


우진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칠판도, 종이도 없이 머릿속으로 자신의 모든 성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해체해 읊어대는 민재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가까웠다. 우진은 비로소 깨달았다. 눈앞의 소년은 미친 도박꾼이 아니라, 숫자로 세상을 지배하는 진짜 천재라는 것을.


우진은 천천히 몸을 숙여 발밑에 떨어진 카시오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거친 손가락으로 낡은 플라스틱 바디를 쓸어내리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좋아…….”


우진이 낮게 읊조렸다.


“이 계약, 받아들이지. 대신 똑똑히 기억해라, 강민재. 0.2%의 확률로라도 네가 실패한다면…… 난 정말로 네 손가락을 가져갈 거다.”


“바라던 바야.”


민재가 차갑게 대꾸하는 순간, 그의 체육복 주머니 속에서 구형 피처폰 ‘노키아 105’가 격렬한 진동음을 울렸다. 징— 징—.


민재는 미간을 좁히며 대포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발신인은 교무실 청소 구역을 전담하는 배달부 B, 이진우였다. 메세지 창을 열자, 짧은 암호 코드가 액정 위로 떠올랐.


[EMERGENCY: 박태호, 황인호 교무부장 지시로 중간고사 수학 난이도 인위적 급상승 모의 중. 하위권 몰살 계획 포착.]


민재의 눈동자가 차갑게 굳어졌다. 기득권의 시스템이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위권 아이들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시험지 자체를 조작하려 하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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