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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등장: 송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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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였냐? 이 재미있는 돈 잔치판 벌인 대가리가.”


송우진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별관 4층 폐방송실의 깨진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밤바람보다도 서늘한 냉기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민재는 책상 앞 스탠드의 좁은 불빛 아래에 굳어 있었다. 스탠드 불빛이 비추는 경계선 바로 너머,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송우진의 체구는 압도적이었다. 185센티미터가 넘는 거구, 유도부 트레이닝복 상의가 터질 듯 벌어진 어깨, 그리고 짧게 깎은 스포츠머리 아래로 왼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흉터가 스탠드 불빛을 받아 기괴하게 도드라졌다.


서걱, 서걱.


우진은 양손 주먹과 관절에 흰색 의료용 스포츠 테이핑 끈을 느릿하게, 그러나 강박적일 정도로 단단하게 감아올리고 있었다. 질긴 면 테이프가 마찰하며 내는 건조한 소리가 폐방송실 내부의 먼지 쌓인 낡은 아날로그 믹서 장비들과 차가운 디지털 모니터 사이에서 불길하게 울려 퍼졌다.


민재는 체육복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형의 유품,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각만이 그가 이 비현실적인 폭력의 위협 앞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유일한 닻이었다.


‘송우진. 내신 8등급. 유도부 에이스이자 명성고 내 최강의 물리적 포식자.’


민재의 머릿속에서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책상 위에는 정산 후 남은 실제 현금 배팅 시드머니 일부가 무방비하게 흩어져 있었다. 우진의 시선은 이미 그 현금 뭉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눈빛은 단순히 하위권 아이들의 푼돈을 뜯어내려는 양아치의 탐욕이 아니었다. 그것은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의 굶주림에 가까웠다.


“말이 없네, 전교 꼴찌.”


우진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거대한 그림자가 민재의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우진은 주먹에 감고 있던 테이프 끝을 이빨로 거칠게 찢어내며, 민재의 멱살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윽……!”


억센 손아귀 힘에 민재의 몸이 허공으로 살짝 들려 올랐다. 등이 거친 콘크리트 벽면에 처박히며 둔탁한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안경테에 검은 테이프를 감아 고친 부러진 안경이 코끝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이마에 사채업자 최두식이 남겼던 피멍 자국이 압박감으로 인해 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김동현이랑 박준서 그 머저리 같은 새끼들이 갑자기 돈다발을 들고 다니기에 냄새를 좀 맡았지.”


우진은 민재를 벽에 밀어붙인 채, 주먹을 감은 오른손으로 책상 위의 현금 상자를 툭 쳤다.


“근데 그 냄새의 종착지가 전교 꼴찌 강민재, 바로 너일 줄은 몰랐네. 이 아지트도 제법 아늑하고 말이야. 학교에서 이런 사설 토토판을 굴리다니, 대가리가 아주 비상해?”


“이건…… 토토 같은 단순한 도박판이 아니야.”


민재는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낮추며 차갑게 대꾸했다. 그의 이성은 본능적인 공포를 억누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송우진과 싸워 이길 확률은 0%다. 유도부 에이스의 완력을 힘으로 벗어나려는 시도는 자멸을 부를 뿐이었다.


그렇다면 기회는 오직 하나, 상대의 내면을 해킹하는 것뿐이다.


민재는 안경 너머로 우진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동공 반응 정량 분석(Quantitative Pupil Response Analysis) 가동.’


민재의 차가운 눈동자가 우진의 미세한 신체 반응들을 초 단위로 해체하기 시작했다.


우진의 숨결은 가쁘고 거칠었지만, 그것은 흥분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불규칙한 호흡 주기 1.8초. 그의 유도복 깃 사이로 살짝 드러난 목덜미에 짙은 자주색 피멍 자국이 보였다. 유도 훈련 중에 생긴 마찰 상처가 아니었다. 손가락 모양으로 길게 눌린 흔적, 즉 누군가에게 목을 졸린 억압의 흔적이었다.


결정적인 것은 그의 눈동자였다. 책상 위의 현금 뭉치를 바라보는 우진의 동공은 비정상적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뇌가 극단적인 스트레스와 자금 갈증 상태에 직면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게다가 주먹에 스포츠 테이프를 감는 그의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송우진은 지금 단순히 돈을 갈취하러 온 게 아니다. 당장 거액의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변에 위협을 받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


민재의 머릿속에서 조각나 있던 데이터들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었다. 명성고 하위권 학생들의 채무 고리, 사채업체 ‘대박 파이낸스’의 행동대장 최두식, 그리고 우진의 목덜미에 남은 폭력의 흔적.


“돈이…… 급한 모양이네.”


민재가 목을 조여오는 아픔을 견디며 낮게 속삭였다.


“뭐?”


우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의 멱살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입 닥치고 가진 돈 다 내놔. 오늘부터 이 아지트와 배팅판의 세금은 내가 걷는다. 허튼수작 부리면 이 자리에서 네 안경다리랑 손가락을 같이 부러뜨려 줄 테니까.”


“그 돈을 다 가져가 봐야 고작 이백만 원 남짓이야.”


민재는 흔들리는 안경 너머로 우진의 눈동자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의 어조에는 두려움이 전혀 섞여 있지 않았다. 오직 차가운 진실만을 가리키는 수학자의 태도였다.


“그 정도 액수로는 최두식의 일주일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할 텐데.”


순간, 송우진의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그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수축하며 초점이 거칠게 흔들렸다. 멱살을 쥐고 있던 우진의 손가락 끝에 들어간 힘이 미세하게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우진의 얼굴에서 오만한 포식자의 가면이 벗겨지고, 그 뒤에 숨겨져 있던 날것의 경악과 공포가 드러났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우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최두식.”


민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쐐기를 박았다.


“대박 파이낸스 행동대장. 내 외삼촌의 이름으로 사채를 쓰고 우리 반지하 방까지 찾아와 동생의 산소호흡기를 끄겠다고 협박하던 쓰레기. 너도 그놈한테 목이 졸리고 있는 거잖아, 송우진.”


우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이빨이 거칠게 맞물리며 으드득 소리를 냈다. 주먹을 쥔 그의 테이핑 끈이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번뜩였다. 우진의 눈동자 너머에 짙게 깔린 사채의 그림자가 민재의 분석 매트릭스 위로 선명하게 박제되었다.


“너 같은 9등급 꼴찌 새끼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설마 그 사채업자 새끼들이 보낸 프락치냐?”


우진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감돌았다. 주먹이 허공으로 치켜 올려졌다. 당장이라도 민재의 얼굴을 짓뭉개버릴 기세였다.


“아니.”


민재는 치켜 올려진 주먹을 바라보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난 그 사채업자 놈들에게 일주일 안에 500만 원을 갚겠다고 계약한 채무자야. 그리고 동시에…….”


민재는 주머니 속에서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천천히 꺼내 우진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너를 그 지옥 같은 사채 빚과 유도부 퇴출 위기에서 동시에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학자이기도 하지.”


우진의 주먹이 공중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폐방송실 내부의 무정전 전원장치(UPS)가 내는 미세한 기계음만이 두 사람의 숨 막히는 대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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