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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반의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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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조례를 알리는 종소리가 명성고등학교 본관 건물에 무겁게 울려 퍼졌다. 2학년 2반 교실은 언제나 그렇듯 극단적인 두 세계로 나뉘어 있었다. 교실 앞쪽, 창가의 햇살을 독점한 채 대치동의 고가 요약 노트를 넘겨보는 ‘골드 클래스’ 아이들의 우아한 소담. 그리고 교실 뒤편, 어두운 음지에서 스마트폰 액정에 눈을 처박은 채 무기력하게 숨을 쉬는 하위권 아이들의 웅성거림.


강민재는 교실 맨 뒷구석, 삐걱거리는 책상에 앉아 부러진 안경다리를 검은색 절전 테이프로 칭칭 감아 고쳐 썼다. 이마에는 어젯밤 사채업자 최두식의 거친 구두 굽과 주먹이 남긴 붉은 선 흔적이 선명한 피멍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밤새 형 민우의 유품인 카시오 계산기 소켓을 해독하고 알고리즘을 코딩하느라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몸은 만성 피로로 부서질 것 같았다.


하지만 민재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차갑고 명징했다.


‘남은 시간은 160시간. 일주일 안에 실제 현금 500만 원을 최두식의 손에 쥐여주지 않으면 민아의 산소호흡기는 멈춘다. 학교라는 합법적인 공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자본을 팽창시키려면, 내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보이지 않는 하부 조직망이 필요하다.’


민재의 시선이 교실 대각선 방향, 책상 밑으로 스마트폰을 숨긴 채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김동현에게 머물렀. 동현은 안경 너머로 벌건 눈을 치켜뜬 채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스마트폰 액정에는 불법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의 실시간 배당률 그래프가 어지럽게 춤을 추고 있었다.


‘김동현. 내신 5등급. 아버지가 준 용돈을 사설 도박판에 꼴아박으며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림. 하지만 반 아이들의 사소한 소비 패턴과 돈의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포착하는 본능적인 돈 냄새 감각을 지님. 첫 번째 트레이더 대행으로 가장 완벽한 카드.’


민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현의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동현은 인기척을 느끼고 깜짝 놀라며 스마트폰을 허벅지 사이에 끼워 숨겼다. 전교 꼴찌이자 구제 불능 아웃사이더인 민재의 얼굴을 확인한 동현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뭐야, 9등급. 청소 구역이라도 바꿔 달라고 징징대러 왔냐?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


동현의 목소리에는 하위 등급 특유의 예민함과 방금 전 배팅에서 돈을 잃은 자의 날카로운 신경질이 묻어나왔다.


민재는 대꾸 없이 동현의 허벅지 사이에 끼인 스마트폰 화면을 턱으로 가리켰다.


“방금 영국 3부 리그 축구에 30만 원 걸었다가 날렸지? 마틴게일 배팅법을 썼더군. 잃을 때마다 배율을 두 배로 늘려서 한 번에 만회하겠다는 초보적인 발상.”


동현의 어깨가 눈에 띄게 움찔했다.


“너, 너 그걸 어떻게…….”


“수학적으로 마틴게일은 자본이 무한대일 때만 성립하는 공식이야. 고작 고등학생 용돈 수준의 한정된 자본으로 독립시행의 확률 게임에 마틴게일을 대입하는 건, 그냥 자살행위지. 네 자금 소모율을 고려할 때, 10분 뒤에 치러질 다음 경기 배팅금 15만 원을 채우지 못해 사채나 스마트폰 소액 결제 한도까지 털어야 할 확률은 99.4%야.”


민재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오직 소수점 단위의 수치만을 나열하는 기계적인 어조. 동현은 귀신이라도 본 듯 안경을 치켜올리며 민재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너 진짜 미쳤냐?”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민재는 동현의 책상 모서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네가 돈을 잃는 진짜 이유는 확률을 모르기 때문이야. 그리고 또 하나. 너 지난주 수학 서술형 수행평가 점수, 평소보다 6점이나 깎여서 5등급 턱걸이했지? 박태호 담임이 왜 감점했는지 이유나 알아?”


동현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성적은 명성고에서 목숨보다 소중한 신분증이었다. 비록 5등급의 낙오자 라인이었지만, 등급이 더 떨어지면 급식실 대기 줄마저 맨 뒤로 밀려나는 지옥을 맛보아야 했다.


“그, 그건 그냥 내가 공식을 실수해서…….”


“아니.”


민재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동현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민재가 어젯밤 형의 알고리즘 데이터와 담임 박태호의 최근 행동 패턴을 분석해 작성한 ‘담임교사 출제 성향 일지’의 사본이었다.


“박태호는 최근 주식 계좌가 폭락해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어. 채점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서술형 평가의 채점 기준표에 ‘정의역 범위의 명시 여부’라는 독소 조항을 임의로 끼워 넣었지. 공식이 맞았더라도 그 단어 하나가 없으면 무조건 2점을 깎았어. 너를 포함해 2반 하위권 아이들 12명이 정확히 그 지점에서 감점당했지. 이건 실수가 아니라, 출제자의 인간적 편향성이 만들어낸 정교한 덫이야.”


동현은 수첩에 적힌 박태호의 출제 공식 변형 패턴과 채점 기준 분석 수치들을 멍하니 읽어내려갔다. 꼴찌 강민재가 작성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통계학적 데이터였다.


그때, 교실 뒷문이 열리며 덩치가 크고 체육복을 대충 걸친 남학생 한 명이 걸어 들어왔. 2학년 5반의 배팅판 관리자이자 의리파로 소문난 박준서였다. 준서는 2반의 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동현과 민재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준서는 입이 무겁고 의리가 깊어 하위권 아이들 사이에서 신뢰가 두터운 인물이었다.


“야, 김동현. 여기서 뭔 소란이냐? 뒤에서 보니까 분위기 묘한데.”


준서의 날카로운 눈빛이 민재의 멍든 이마와 부러진 안경테에 머물렀다. 민재는 피하지 않고 준서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박준서. 마침 잘 왔어. 너도 5반에서 담임의 수행평가 감정 횡포 때문에 등급 떨어질 위기지? 내 유도부 후배들이 벌점 때문에 운동부 퇴출당할 위기라는 소문은 들었다.”


준서의 미간이 좁혀졌다.


“너 꼴찌 주제에 말이 많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너희 두 사람에게 제안을 하러 왔어.”


민재는 교실 구석의 감시 카메라와 앞줄 골드 클래스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목소리를 극도로 낮췄다. 가방 안에서 낡은 검은색 가죽 주머니를 꺼내 책상 밑으로 가볍게 흔들었다. 짤랑거리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빳빳한 5만 원권 지폐 뭉치가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민재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여동생의 약값을 위해 모아두었던 마지막 생명줄이자, 첫 배팅판을 돌리기 위한 ‘현금 배팅 시드머니’ 50만 원이었다.


“이건 내 시드머니 50만 원이야. 내가 자체 개발한 알고리즘으로 이번 주 금요일에 치러질 수학 수행평가의 구체적인 감점 기준과 오답률을 99.8% 확률로 예측해 내겠어. 너희는 이 돈을 보증금 삼아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행평가 점수 예측 배팅판을 여는 거다.”


“뭐……? 수행평가 점수로 배팅을 하라고?”


동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설 토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학교의 금기를 정면으로 깨부수는 미친 제안이었다.


“미쳤어? 걸리면 즉시 퇴학이야! 학생회 기획국이랑 선도부장 정호현이 눈을 부릅뜨고 하위권 애들 징계할 꼬투리만 찾고 있는데!”


준서가 민재의 멱살을 잡을 듯이 다가오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민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차가운 이성을 유지했다.


“그러니까 철저히 익명으로 움직여야지. 너희는 각 반의 ‘학급 트레이더’가 되는 거야. 동현이는 돈 냄새를 맡고 아이들의 배팅금을 수거하는 정산 담당. 준서는 입이 무겁고 의리가 있으니, 담임의 감시망을 우회하며 비밀 연락망을 유지하고 아이들의 입단속을 시키는 물리적 보안 담당. 배팅금 수거 총액의 정확히 2%를 너희에게 수수료로 취득하게 해주지.”


“2%……?”


동현의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머릿속에서 요란하게 울렸다. 반 아이들 전체가 배팅에 참여하고 판돈이 커진다면, 수수료만으로도 자신이 잃은 토토 자금을 아득히 초과하는 현금을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재는 준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제공하는 ‘수행평가 예상 채점 기준표’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너희를 포함한 ‘2학년 2반 배팅 연합’ 하위권 아이들은 감점을 완벽히 피해 만점을 받게 될 거야. 돈도 벌고, 성적 등급도 올리는 게임이지. 밑져야 본전 아닌가? 돈은 내가 대고, 정보도 내가 주는데.”


침묵이 내려앉았다.


교실 뒤편의 차가운 음지 속에서, 돈과 등급이라는 억압에 신물이 나 있던 두 하위권 학생의 눈동자가 탐욕과 희망으로 격렬하게 소용돌이쳤다. 꼴찌 강민재의 이마에 새겨진 사채업자의 붉은 선 흔적과 차가운 눈빛은, 그가 단순한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님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좋아.”


마침내 김동현이 허벅지 사이에 숨겨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한 번 믿어보지. 어차피 이대로 가면 난 이번 달 용돈도 없고 등급도 나락이니까. 준서 너는 어쩔래?”


준서는 한참 동안 민재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수수료와 만점 가이드라인, 단 1점이라도 틀리면 난 네 안경다리뿐만 아니라 손가락도 부러뜨릴 거다, 강민재.”


“틀릴 확률은 0.2% 미만이야.”


민재는 차갑게 대꾸하며 카시오 계산기를 주머니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조례 시작을 알리는 담임 박태호의 거친 발소리가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2반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명성고등학교의 견고한 등급 성벽 밑바닥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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