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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의 붉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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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하방의 낡은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꺾여 들어왔다. 녹슨 경첩이 뜯겨 나가며 시멘트 가루와 먼지가 좁은 방 안으로 자욱하게 흩날렸다. 차가운 대치동의 가을 강바람이 깨진 문틈을 타고 칼날처럼 들이닥쳤다.


“쿨럭, 쿨럭! 오, 오빠…….”


침대 위에서 마른기침을 터뜨리는 민아의 가냘픈 목소리가 먼지 속에 묻혔다. 위이이잉— 쉭, 쉭. 낡은 산소호흡기의 기계음이 불길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먼지 구덩이를 뚫고 거대한 그림자가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목 뒤까지 시커먼 문신이 삐져나온 가죽 재킷의 사내. 불법 사채업체 ‘대박 파이낸스’의 행동대장, 최두식이었다. 그의 뒤로 험악한 인상의 패거리 둘이 좁은 반지하 방의 입구를 가로막아 섰다. 방 안은 순식간에 숨이 막힐 듯한 폭력의 압박감으로 가득 찼다.


“야, 강민재.”


최두식이 구겨진 담배를 입에 물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거친 군화발이 바닥에 뒹굴던 민재의 교과서들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네 외삼촌 박태식 그 인간 쓰레기가 우리 돈 5,000만 원을 들고 잠적했거든? 근데 보증인 도장에 네 엄마 이름이 떡하니 찍혀 있네? 누나니까 대신 갚아야지, 안 그래?”


“으, 으아아아!”


바닥에 쓰러져 잠들어 있던 어머니 박선자가 소란에 놀라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갈라진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민아의 침대 앞을 가로막았다.


“사, 사장님! 저희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태식이가 제 인감도장을 훔쳐 간 거라고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아줌마, 도장 관리를 똑바로 했어야지. 법이 그런 사정 봐줄 것 같아? 당장 오늘까지 이자 500만 원 안 내놓으면, 이 집구석에 있는 것들 싹 다 압류해 갈 줄 알아.”


최두식이 쇠파이프를 가볍게 툭툭 치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이 방구석의 낡은 냉장고와 텔레비전을 지나, 마침내 민아가 누워 있는 침대 옆 산소호흡기로 향했다. 붉은색 전원 LED가 깜빡이는 기계.


“어라? 이건 돈 좀 되겠는데? 의료기기가 중고나라에서 꽤 쏠쏠하게 팔리거든.”


최두식이 성큼성큼 걸어가 산소호흡기의 굵은 전원 코드를 움켜잡았다.


삐이이이—!!!


산소마스크의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경고음이 날카롭게 울렸다. 민아의 가슴이 격렬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산소가 부족해진 동생의 입술이 순식간에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창백한 뺨 위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안 돼! 제발, 그것만은 안 돼요! 우리 민아 죽어요! 제발!”


어머니가 최두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피가 나도록 매달렸다. 하지만 최두식의 부하가 어머니를 거칠게 밀쳐냈다. 콰당탕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낡은 밥상 위로 쓰러지며 이마가 찢어졌다. 붉은 피가 어머니의 거친 손등 위로 흘러내렸다.


‘죽여버릴까.’


민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분노. 시야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주먹을 쥔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 당장 싱크대 위의 식칼을 집어 들고 저 가죽 재킷의 목덜미를 쑤셔버리고 싶다는 원초적인 살의가 머릿속을 지배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민재의 무의식 속에서 차가운 얼음 장벽이 솟아올랐.


‘안 돼. 수학은 감정을 믿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죽은 형 민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민재는 안경테를 테이프로 고친 부러진 안경을 치켜올리며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깊게 들이쉬자, 분노로 날뛰던 뇌세포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극단적인 이성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최적 생존 경로 도출 (Survival Pathing) 가동.’


민재의 시야가 푸른빛의 반투명한 데이터 스크린처럼 변했다. 눈앞의 폭력적 상황이 숫자가 가득한 기하학적 궤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상황 분석: 물리적 충돌 시 생존 확률 0.2%]

- 아군: 강민재(9등급, 근력 약화), 박선자(부상), 강민아(위독).

- 적군: 최두식(사채업자, 완력 상), 부하 2명(체구 우수, 둔기 소지).

- 결과: 신체적 영구 손상 및 민아의 사망 확정.


‘물리적 저항은 자멸이다. 협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협상의 주도권은 힘이 아닌, 상대의 욕망과 공포를 통제하는 자에게 있다.’


민재는 고개를 들어 최두식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안구 주변 근육과 호흡 주기를 정밀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동공 반응 정량 분석 (Pupil Reaction Quantitative Analysis).’


최두식의 눈동자가 민재의 시선에 잡혔다.


- 동공 확장율: +12% (흥분 상태이나, 살의로 인한 수축 없음).

- 미세 표정: 왼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처짐 (불안감 은폐).

- 호흡 주기: 분당 24회 (약간 가파름).

- 손가락 반응: 산소호흡기 코드를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기를 반복함.


‘간파했다.’


민재의 입꼬리가 보이지 않게 미세하게 뒤틀렸다.


최두식은 진짜 사람을 죽일 배짱이 없다. 그는 살인마가 아니라, 철저히 돈을 받아내야 하는 ‘대박 파이낸스’의 말단 행동대장일 뿐이다. 만약 여기서 산소호흡기를 뽑아 동생을 죽인다면, 사건은 단순 채무 독촉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전환된다. 대치동 한복판에서 고등학생 환자를 살해한 사건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것이고,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두식의 배후에 있는 거대 자금줄(프로젝트 아테네와 관련된 재단 비자금)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최두식의 보스는 꼬리를 자르기 위해 그를 감옥으로 처넣을 것이다. 즉, 최두식에게 민아의 목숨은 돈을 뜯어내기 위한 ‘블러핑 카드’일 뿐, 진짜 죽일 의도는 없다. 그 역시 파멸을 두려워하고 있다.


민재는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두식 씨.”


방 안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사채업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는 전교 꼴찌 고등학생의 목소리에는 단 한 줌의 공포도 섞여 있지 않았다. 너무나 평온하고 건조한 목소리에 최두식이 흠칫하며 손을 멈췄다.


“뭐? 이 새끼가 미쳤나…….”


“그 코드 뽑으면, 당신은 오늘 1원도 못 가져가.”


민재는 쓰러진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눈동자는 안경 너머로 최두식의 동공을 뚫어질 듯 쏘아보고 있었다.


“제 여동생은 확장성 심근병증 환자입니다. 산소 공급이 3분 이상 중단되면 뇌사 혹은 심정지로 사망합니다. 대치동 한복판에서 미성년자 환자를 살해한 사채업자. 내일 아침 모든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겠네요.”


“이 새끼가 어디서 말장난질이야? 내가 겁먹을 줄 알아?”


최두식이 쇠파이프를 바닥에 쾅 내리쳤지만, 민재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분석은 더 날카롭게 최두식의 숨통을 조여갔다.


“당신 보스인 대박 파이낸스 사장이 살인범 부하를 지켜줄 것 같습니까?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면 당신들이 관리하는 대포통장과 비자금 세탁 경로가 전부 털릴 텐데? 보스는 당신을 경찰에 넘겨주고 꼬리를 자를 겁니다. 당신은 500만 원 받아내려다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된다는 뜻입니다.”


최두식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고등학생 꼬맹이의 입에서 ‘비자금 세탁’이니 ‘꼬리 자르기’니 하는 업계의 생리가 너무나 정확하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당신…… 정체가 뭐야?”


최두식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였다. 주도권이 완벽하게 우회하는 순간이었다.


“제안을 하죠.”


민재는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카시오 계산기를 톡톡 두드렸다.


“일주일입니다. 정확히 일주일 뒤에 이자 500만 원을 전액 현금으로 갚겠습니다.”


“하! 일주일? 일주일 만에 고딩 새끼가 500만 원을 어디서 구해? 몸기 장기라도 팔게?”


최두식이 코웃음을 쳤지만, 민재의 표정은 진지했다.


“제 신용을 담보로 걸죠. 일주일 뒤 약속한 시간에 500만 원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땐 이 산소호흡기든 제 몸뚱이든 당신들 마음대로 처분하십시오. 어차피 도망칠 곳도 없는 반지하 방입니다. 채권 회수 확률로 따져보십시오. 지금 코드를 뽑아 살인범이 되는 것과, 일주일 뒤 확실하게 500만 원을 챙기는 것. 어느 쪽이 당신에게 이익입니까?”


최두식은 멍하니 민재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은 고등학생의 탈을 쓴 냉혹한 금융가처럼 보였다. 그의 계산에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었고, 제시한 회수 확률은 사채업자인 자신의 머리로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씨발, 골 때리는 새끼네.”


최두식이 천천히 산소호흡기 전원 코드에서 손을 뗐다. 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다시 정상 작동하며 민아의 호흡이 안정을 되찾았다. 경고음이 멈추자 방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최두식이 민재에게 다가와 덥석 턱을 움켜쥐었다. 매서운 담배 냄새가 민재의 얼굴에 쏟아졌다.


“좋아. 일주일 준다. 대신 약속한 날짜에서 단 1분이라도 늦으면, 네 여동생 병실에서 산소호흡기 떼는 걸 네 눈으로 직접 보게 해 주마.”


최두식이 비열하게 웃으며 거친 손으로 민재의 이마를 툭툭 쳤다. 그의 손가락 끝에 묻어 있던 먼지와 붉은 잉크가 민재의 이마에 선명한 붉은 선을 남겼다.


“가자.”


최두식의 손짓에 패거리들이 철문 잔해를 밟으며 방을 빠져나갔. 쿵쾅거리는 발소리가 골목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민재는 그 자리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민재야…… 흑, 민재야…….”


어머니가 피 묻은 손으로 민재를 안고 오열했다. 침대 위에서 민아는 겨우 숨을 쉬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난장판이 된 반지하 방. 찢겨 나간 철문 사이로 대치동의 차가운 밤공기가 가차 없이 들이쳤다.


민재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붉은 피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마에 그어진 최두식의 붉은 선이 불타는 듯 뜨거웠다.


일주일. 현금 500만 원.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나 정직한 노동으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액수였다. 오직 하나의 길뿐이었다. 학교. 성적이 곧 권력이자 신분이 되는 그 기괴한 복마전.


민재는 책상 위의 카시오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액정에 비친 그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나약한 전교 꼴찌의 모습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학교에서, 저 오만한 학벌 카르텔의 심장부를 해킹해서.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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