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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매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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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장, 여기서 뭐 하는 거지?”


한승우 교사의 낮고 엄숙한 목소리가 교실의 팽팽한 정적을 갈랐다. 그의 낡은 양복 재킷 자락에는 항상 묻어 있는 하얀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지만, 그가 풍기는 교사로서의 카리스마는 정호현의 황동빛 선도부장 완장보다 훨씬 묵직했다.


정호현은 민재의 멱살을 잡으려 뻗었던 손을 어색하게 허공에 멈췄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교실 문앞에 선 한승우 교사의 매서운 눈빛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손목을 움켜쥐고 신음하는 선도부원 한지훈과, 그 앞을 떡하니 가로막고 선 송우진의 스포츠 테이핑을 감은 주먹을 훑고 있었다.


“한, 한 선생님. 이건 정당한 불시 검문입니다. 이 하위권 놈들이 교내에서 불법 배팅판을 열어 자금을 은닉했다는 확실한 첩보가……”


“선도부장.”


한승우가 정호현의 말을 차갑게 자르며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방금 교실 밖에서 강민재 학생이 읊은 학칙과 교육청 조례를 나도 똑똑히 들었다. 학교장의 공식 서면 결재 문서가 없는 상태에서 쇠지렛대까지 동원해 사물함을 파손하려 한 행위가 과연 정당한 규율 집행인가?”


“그건…… 교무부장님이 구두로 허가해 주신……”


“교무부장 황인호 선생의 구두 지시는 학교장의 공식 서면 결재를 대체할 수 없다.”


한승우의 단호한 선언에 정호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주변에 모여든 2반 아이들과 복도의 ‘더스트 클래스’ 학생들이 나직하게 웅성거리며 선도부를 향해 차가운 야유를 보냈다. 교무부장의 권력만을 믿고 무소불위로 날뛰던 선도부가 평소 무시하던 9등급 전교 꼴찌 강민재의 정교한 법리적 역공에 완벽히 묶여버린 꼴이었다.


“더 이상 교실 내 소란을 용납하지 않겠다. 선도부는 부상당한 부원을 데리고 즉시 퇴거해라. 그리고 송우진.”


한승우가 우진을 바라보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학우에게 물리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니, 방과 후 교무실로 와서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예.”


우진이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정호현은 쓰러진 한지훈을 부축해 일으키며 민재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쏘아보냈다.


‘강민재…… 이 9등급 꼴찌 새끼가 감히 삼촌과 나를 엿먹여? 내 반드시 네놈을 손봐주마.’


선도부 일당이 군화 소리를 비굴하게 울리며 교실을 빠져나가자, 교실 안에는 억눌려 있던 하위권 아이들의 안도 섞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민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자리로 돌아가 낡은 책상 위에 엎드렸다. 안경테에 감긴 검은 테이프를 치켜올리며, 민재는 주머니 속의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만지작거렸다.


‘정호현은 물러갔지만, 이건 임준서가 보낸 첫 번째 사냥개에 불과해.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


방과 후, 노을빛이 붉게 물든 별관 4층의 폐방송실 아지트.


라즈베리 파이 4 서버 클러스터의 냉각 팬이 미세한 기계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이지원은 자신의 아이패드 프로 화면에 띄워진 '명문' 거래소의 트래픽 추이를 분석하고 있었고, 송우진은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앉아 손목의 스포츠 테이프를 천천히 풀어내고 있었다.


드르륵.


폐방송실의 무거운 철문이 열리며 민재가 들어왔다. 그 뒤에는 낯선 남학생 한 명이 극도로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따라 들어왔다. 스트레스로 거칠어진 피부와 깊게 파인 다크서클, 잔뜩 위축된 어깨를 가진 사내. 내신 5등급의 피해자 동맹, 조민성이었다.


“강민재…… 진짜 여기가 맞아? 다른 애들이 보면 나 진짜 끝장인데……”


조민성은 먼지 쌓인 아날로그 장비들과 차가운 디지털 모니터가 대조를 이루는 아지트의 풍경에 겁을 먹은 듯 주춤거렸다.


“여긴 안전해, 민성아.”


민재가 낡은 나무 의자를 권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선도부의 단속 정보와 학생회 내부 동향을 우리에게 가장 먼저 흘려주는 배달부들이 이곳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으니까. 자, 이제 네가 가져온 자료를 보여줘.”


조민성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머니에서 주름진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번 주 목요일에 발표되는 영어와 사회 과목 수행평가 조별 과제…… 임준서 그 자식이 주도하는 골드 클래스 패거리들이 또 담합을 시작했어. 나 같은 더스트 클래스 애들을 자기 조에 억지로 집어넣고는, 온갖 자료 조사랑 피피티 제작 같은 잡일을 전부 떠맡겼어. 그러고는……”


조민성의 눈에 억울함과 독기가 서려 들었다.


“단톡방에서 자기들끼리 모의하더라고. 발표 당일 날, 우리 같은 하위권 애들이 발표를 망쳤다거나 참여도가 낮았다는 식으로 교사에게 보고해서 기여도 점수를 ‘0점’ 처리해 무임승차자로 낙인찍겠대. 그리고 자기들끼리 만점을 독식하겠다는 거야. 여기, 그 단톡방 캡처본이랑 불법 대필 업체에 돈 주고 과제 대필 맡긴 영수증 내역이야.”


민성이 내민 스마트폰 화면에는 임준서를 비롯한 상위권 학생들이 하위권 학생들을 ‘벌레’, ‘무임승차용 짐짝’이라 비하하며 점수를 세탁하려는 추악한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임준서는 아버지가 재단 이사라서 교사들도 꼼짝 못 해. 우리가 아무리 정직하게 과제를 제출해도, 교사는 임준서가 제출한 기여도 배점표를 그대로 반영할 거야. 민재야, 나 지난 학기에도 이것 때문에 등급이 폭락해서 내신 5등급 브론즈로 떨어졌어. 나 이번에도 점수 깎이면 진짜 대학 포기해야 해…… 제발 도와줘.”


민재는 말없이 조민성의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안경 너머 그의 눈동자가 차가운 연산 모드로 진입하며 빛나기 시작했다.


“지원의 아이패드에 이 캡처본 데이터를 업로드해.”


민재의 지시에 지원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태블릿 화면 위로 상위권 아이들의 담합 모의 경로와 불법 대필 업체의 자금 수수 내역이 데이터 노드로 변환되어 나열되었다.


“임준서가 아주 영악한 덫을 놓았군.”


지원이 미간을 좁히며 분석했다.


“수행평가 조별 과제는 교사의 주관적 평가와 조장의 기여도 배점표가 합산되어 점수가 결정돼. 학교 시스템 자체가 상위권이 하위권을 합법적으로 착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 거지. 민재야, 교사에게 이 대필 증거를 고발해 봤자 황인호 교무부장 선에서 묵살당할 확률이 98.7%야.”


“알아.”


민재가 주머니에서 형의 유품인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꺼냈다. 낡은 플라스틱 자판을 톡톡 두드리는 그의 손끝에서 아날로그 연산음이 조용히 울렸다.


“기득권이 설계한 법과 행정 시스템 안에서 싸우는 건 바보짓이야. 그들이 점수를 독점하려는 이유는, 그 점수가 자신들의 ‘1등급’ 신분을 유지해 줄 절대적인 가치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해결책은 하나다.”


민재가 안경테의 검은 테이프를 만지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그들이 독점하려는 그 자산의 가치 자체를 시장에서 폭락시켜 쓰레기로 만드는 것.”


“가치를 폭락시킨다고?”


우진이 흥미롭다는 듯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민재는 칠판으로 걸어가 분필을 쥐었다. 거침없는 손길로 칠판 위에 게임 이론의 수학적 수식과 연산 그래프가 그려졌다.


“‘수행평가 역경매 입찰제(Reverse Auction)’. 보통의 경매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자가 자산을 독점하지. 하지만 역경매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자가 낙찰을 받는다. 우리는 이 메커니즘을 ‘수행평가 조별과제 지분권’에 대입한다.”


민재가 칠판의 수식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임준서 패거리가 독점하려는 조별 과제 기여도 배점을 거래소 ‘명문’에 가상의 지분권으로 상장시킨다. 그리고 하위권 학생들이 연대하여 이 지분권에 대규모 공매도(Short Selling)를 던지는 거지. 동시에, 상위권 아이들이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으려 발버둥 쳐도, 하위권 조원들이 집단적으로 기여도를 최하점으로 투찰하는 역경매 입찰을 감행한다.”


“하지만 민재야.”


지원이 의문을 제기했다.


“역경매에 참여하는 하위권 아이들도 결국 자신의 수행평가 점수 일부를 감수해야 하잖아? 그 연대적 비용을 아이들이 기꺼이 지불하려 할까?”


“지불할 거야.”


민재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동안 혼자서 착취당하며 0점을 받던 아이들이야. 하지만 협력하면 상위권 엘리트들의 점수를 자신들과 같은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전복의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면, 그리고 그 공매도 성공으로 얻는 엄청난 GT 배당금을 보장해 준다면,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소액 점수를 담보로 던질 거다. 가난한 더스트 클래스의 유일한 무기는 바로 그 압도적인 머릿수니까.”


민재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아, 브론즈 유니온의 행동 대원들을 소집해. 각 반의 하위권 아이들에게 이 역경매 규칙과 배당률을 전파해라. 그리고 지원, 아이패드로 이 역경매 입찰 엔진을 '명문' 앱의 백그라운드 소스코드에 이식해.”


“좋아. 밤새 코딩하면 내일 아침 조례 전에는 배포할 수 있어.”


지원의 눈동자가 지적 전율로 빛나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우진 역시 주먹을 쥐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임준서 그 오만한 새끼 콧대를 꺾어놓을 수 있다면, 내 유도부 놈들을 풀어서라도 전원 가입시키지.”


조민성은 칠판 위의 정교한 금융 전복 시나리오를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전교 꼴찌 강민재가 설계한 차가운 수학적 올가미가, 명성고의 절대 권력인 임준서의 목을 향해 소리 없이 조여들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명성고등학교 교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차가운 공기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스마트폰 속은 이미 폭풍 전야였다. 민재와 지원이 밤새 구축한 '수행평가 역경매 입찰제'의 붉은색 알림이 전교생의 60%에 달하는 5~8등급 '더스트 클래스' 학생들의 '영단어 암기 3000' 앱 화면 위로 은밀하게 배포되었기 때문이다.


[알림: 수행평가 조별과제 지분권(Grade Token) 역경매 입찰 개시.]

[대상 조: 2학년 영어 조별 과제 제1조 (조장: 임준서)]

[현재 공매도 배당률: 8.5배]


아이들은 교실 구석에서,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침을 삼켰다. 그동안 골드 클래스의 무임승차자 프레임에 걸려 억울하게 점수를 빼앗기던 아이들의 눈빛에 서서히 탐욕과 전복의 독기가 차올랐다.


“정말…… 이걸로 임준서 그 자식 점수를 깎아내릴 수 있다고?”

“배당률이 8배가 넘어. 내가 10GT만 걸어도 수행평가 감점을 메우고도 남을 현금이 정산돼.”


브론즈 유니온의 행동 리더인 신우현과 각 반의 하부 트레이더들이 아이들의 배팅 참여를 은밀히 독려하며 여론을 완벽하게 장악해 나갔다.


같은 시각, 본관 5층 학생회실.


학생회장 임준서는 자신의 고급 맞춤 교복 소매를 정리하며 거만하게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영어 수행평가 조별 과제 기여도 배점표가 놓여 있었다. 조민성을 비롯한 하위권 조원들의 점수는 이미 '0점'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준서야.”


기획국장 서태지가 다급하게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 들린 태블릿 화면에는 이상 트래픽 경고등이 켜져 있었다.


“이상해. 지금 교내 와이파이망의 전력 소모량이 특정 암호화 패킷으로 가득 차 있어. 그리고 ‘명문’ 거래소의 서버에 임준서, 네 수행평가 지분 가치에 대한 비정상적인 투매 주문이 쏟아지고 있어. 누군가 의도적으로 네 점수 가치를 떨어뜨리려 공매도를 던지고 있어!”


“뭐라고?”


임준서의 미간이 사정없이 좁혀졌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숨겨진 뱀 같은 차가운 눈빛이 번뜩였다.


“어떤 쥐새끼가 감히 내 점수를 가지고 장난을 쳐? 당장 그 매수 물량을 학생회 자금으로 전부 받아내 방어해. 숏 스퀴즈를 유도해서 그 공매도 세력을 파산시켜 버리라고!”


“하지만 준서야, 물량이 너무 많아! 한두 명의 투기가 아니야. 이건 마치……”


서태지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


“전교의 모든 하위권 놈들이 연합해서 너한테 폭탄을 던지는 것 같아!”


바로 그 순간, 아지트에서 이지원의 아이패드 화면 위로 녹색의 연산 그래프가 폭발적으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민재는 책상에 기댄 채 낡은 카시오 계산기의 소수점 연산 수치를 확인하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입찰 시작해.”


민재의 명령과 동시에, 명성고 '브론즈 유니온' 학생들의 손가락이 일제히 스마트폰 화면의 붉은 입찰 버튼을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역경매 입찰 버튼이 활성화되자, 전교생의 60%에 달하는 브론즈 유니온 학생들이 일제히 상위권의 조별과제 지분권에 공매도를 던지기 시작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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