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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의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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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쿵.


본관 대리석 복도를 타고 내려온 군화 소리가 별관 2학년 2반 교실 문앞에서 딱 멈춰 섰다. 점심시간 직후의 어수선한 소음으로 가득했던 교실 안이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앞문이 거칠게 열리며 교실 안으로 들이닥친 무리. 칼같이 주름 잡힌 교복 바지 위에 왼쪽 가슴마다 번쩍이는 황동빛 완장. 포마드로 말끔하게 넘긴 머리 너머로 오만하고 차가운 안광을 뿜어내는 사내, 선도부장 정호현이었다. 그의 뒤로는 행동대장 백승민을 비롯한 대여섯 명의 선도부원들이 험악한 기세를 풍기며 교실 뒤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


“다들 제자리에 앉아.”


정호현의 낮고 오만한 목소리가 교실 천장을 때렸다. 그의 시선은 단 한 곳, 교실 맨 뒷구석에 위치한 개인 사물함 지대를 향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유도부 에이스이자 거래소 ‘명문’의 물리적 방패인 송우진의 사물함이었다.


“선도부 불시 검문이다. 최근 학내에서 불법 사설 도박판을 개설해 교내 질서를 어지럽히고 가짜 화폐를 유통하는 쥐새끼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정호현이 턱끝으로 송우진의 사물함을 가리켰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선도부원 한지훈이 품에서 육중한 쇠지렛대(빠루)를 꺼내 들었다. 시퍼런 쇠붙이가 교실 형광등 불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났다.


“지훈아, 뜯어라.”


“예, 부장님.”


한지훈이 사물함을 향해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스윽.


교실 뒤편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거구의 실루엣이 소리 없이 일어섰다. 185센티미터의 압도적인 피지컬, 유도부 유니폼 아래로 드러난 단단한 어깨, 짧은 스포츠머리에 날카로운 흉터가 선명한 사내. 송우진이었다. 우진은 이미 주먹과 손목에 질긴 의료용 스포츠 테이핑 끈을 칭칭 감아올린 상태였다.


우진은 한지훈의 앞을 묵직하게 가로막아 서며 사물함 앞을 완전히 차단했다. 웅장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은 듯한 위압감에 한지훈의 걸음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뭐 하냐, 9등급.”


정호현이 포마드로 넘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유도부 송우진. 네 사물함에 불법 배팅 자금과 대포폰 장부가 들어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선도부의 정당한 규율 집행을 방해하는 건 즉각 징계 사유다.”


“정당한 규율 집행?”


우진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의 주먹을 감싼 스포츠 테이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자물쇠도 안 열어보고 남의 사물함을 쇠지렛대로 부수겠다는 게 네가 말하는 정당한 법이냐, 정호현?”


“법?”


정호현이 가소롭다는 듯 코방귀를 꼈다.


“이 학교의 진짜 법은 우리 학생회와 선도부가 집행하는 학칙이야. 우진아, 너 지금 네 처지를 모르는 모양인데, 너 벌점 누적으로 한 번만 더 걸리면 유도부에서 영구 제명되는 거 알고 있지? 이번 전국대회 출전권은 물론이고 대학 체육 특기생 장학금까지 전부 날아가고 싶지 않으면 당장 그 사물함에서 떨어져.”


정호현의 협박은 잔인하고 정확했다. 우진의 가장 아픈 약점인 유도 인생과 집안의 사채 빚 고리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사물함 내부에는 가짜 미끼 장부와 빈 대포폰 케이스만 들어있을 뿐, 진짜 배팅 자금 수백만 원은 체육관 지하 창고로 대피시킨 지 오래였다. 민재의 완벽한 사전 첩보 덕분이었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부숴보든가.”


우진이 짝다리를 짚으며 차갑게 응수하자, 정호현의 안면 근육이 팽팽하게 뒤틀렸다. 1.2등급의 초엘리트 선도부장으로서 하위권 놈들에게 이런 식의 반항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진짜…… 지훈아, 뭐 해? 당장 밀어내고 뜯어!”


정호현의 명령에 한지훈이 쇠지렛대를 치켜들며 우진의 어깨를 밀쳐내려 했다. 동시에 선도부원 한지훈의 손끝이 우진의 체육복 주머니를 강제로 뒤지려 뻗어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탁—!


우진의 오른손이 전광석화처럼 한지훈의 손목을 낚아챘다. 유도부 에이스다운 무자비한 손아귀 힘이 지훈의 관절을 그대로 비틀어 꺾었다.


“아아악! 내 손목! 손목 부러져!”


한지훈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쇠지렛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교실 바닥을 뒹굴었다. 순식간에 교실 안의 긴장감이 극도로 치솟았다. 선도부원들이 일제히 우진을 향해 주먹을 쥐고 달려들려 했다.


“송우진! 너 지금 선도부원을 폭행한 거야! 이건 즉각 퇴학 처분 사유……”


“퇴학 처분 사유를 논하기 전에, 본인들의 행위가 가진 법적 책임부터 계산하는 게 순서 아닐까, 선도부장님?”


교실 뒤편 창가 구석에서, 덥수룩한 머리칼 사이로 부러진 안경다리를 검은 테이프로 고쳐 쓴 남학생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교 꼴찌이자 구제 불능 아웃사이더, 강민재였다.


민재는 주머니에서 낡은 학칙집 사본과 교육청 가이드라인이 빽빽하게 인쇄된 종이 뭉치를 꺼내 들었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는 차가운 얼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강민재? 9등급 꼴찌 새끼가 어디서 감히 끼어들어?”


정호현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지만, 민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명성고등학교 학칙 제24조 및 학생 생활지도 세칙 제5조.”


민재가 종이 뭉치를 정호현의 눈앞에 들이밀며 차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학생의 소지품 및 개인 보관함 수색은 학내 안전을 위협하는 명백한 물증(흉기, 마약 등)이 있거나, 학교장의 공식적인 서면 승인이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선도부장, 너 지금 교장 선생님의 서면 결재 문서 가지고 있어?”


“그, 그딴 게 왜 필요해? 우린 불법 사설 도박 단속이라는 정당한 임무를……”


“필요하지.”


민재가 정호현의 말을 날카롭게 자르며 상위 법령을 제시했다.


“경기도 교육청 학생인권조례 제12조(사생활의 자유 및 비밀 보장 원칙). ‘학교의 교직원 및 자치 기구는 학생의 동의 없이 개인 소지품 및 사물함을 수색할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한 수색 행위는 영장 없는 불법 신체 침해 및 사생활 침해로 규정한다.’ 상위 교육청 규정은 너희가 맹신하는 명성고 학칙보다 우선해.”


민재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교실 구석구석까지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교실 앞문과 뒷문 복도에 모여든 다른 반 학생들까지 민재의 거침없는 법리적 분석에 숨을 죽였다.


“즉, 공식적인 교장의 서면 승인도 없고, 당사자의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쇠지렛대를 동원해 사물함을 파손하고 신체를 강제로 수색하려 한 너희의 행위는 정당한 규율 집행이 아니야.”


민재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정호현의 동공을 똑바로 쏘아보았다.


“그건 단순한 권한 남용이자, 형법 제366조 재물손괴죄 및 제321조 주거침입죄의 법리를 준용하는 ‘개인 사유지 무단 침입 및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해. 교육청 신문고와 인권위원회에 이 현장 채증 영상과 함께 정식 고발장이 접수되면, 과연 너희 삼촌인 황인호 교무부장님이 이 법적 책임을 대신 져줄까?”


정호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포마드로 빗어 넘긴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들이 하위권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 휘두르던 ‘규정’이라는 무기가, 민재의 정교한 법률 매핑 기술에 의해 역으로 자신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주변에 서 있던 2반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 듣고 보니 진짜네…….”

“서면 승인도 없이 그냥 쇠지렛대로 부수려고 한 거야?”

“선도부장이면 남의 사물함 마음대로 부숴도 되는 줄 아나 봐.”


하위권 학생들의 억눌려 있던 분노가 민재의 법리적 정당성을 얻어 야유로 변하기 시작했다. 복도에 모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선도부의 무단 수색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가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 정호현의 오만했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해갔다.


“이, 이 꼴찌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정호현이 굴욕감과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쥐며 민재의 멱살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그 찰나였다.


드르륵—!


교실 앞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단정한 양복 재킷에 낡은 수학 교과서를 품에 안은 사내, 수학 교사이자 담임인 한승우가 엄숙한 표정으로 교실 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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