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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회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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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고등학교 본관 5층에 위치한 학생회장실은 고등학교 자치 기구라기보다는 대기업의 임원실에 가까웠다. 은은한 침향 냄새가 감도는 방 안에는 최고급 이탈리아제 가죽 소파가 놓여 있었고,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들은 교내 곳곳의 전산망 트래픽과 전력 사용량 그래프를 실시간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별관 4층 폐방송실의 퀴퀴한 먼지 냄새와는 근본부터 다른, 기득권의 오만함이 물리적 공기로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의 상전(上典), 학생회장 임준서는 단정하게 다려진 맞춤 교복 차림으로 가죽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학생회 기획국 소속 부원 세 명이 고개를 숙인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탁.


임준서가 들고 있던 최신형 태블릿 PC를 유리 테이블 위에 가볍게 내려놓았다. 둔탁한 마찰음이었지만, 기획국원들의 어깨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전교생의 80%.”


준서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노골적인 분노는 없었으나, 오히려 그 냉정함이 듣는 이의 척추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게 우리 학생회 기획국이 구멍 뚫린 줄도 모르고 방치한 결과인가? 내신 지분 토큰, GT라고 부르더군. 현금과 1대1로 연동되어 교내에서 은밀하게 유통되는 사설 화폐의 규모가 이미 수천만 원 대를 넘어섰어. 그런데 창립자가 누구인지, 서버가 어디에 있는지는커녕 가입 경로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기획국장 서태지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다급히 해명했다. “녀석들이 일반 영어 단어 암기 앱의 바이너리 코드 속에 접속 경로를 숨겨두는 ‘스텔스 코드’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패킷 통신 역시 교내 공유기의 취약점을 이용해 마포구에 있는 외부 우회 서버로 분산 처리하고 있어서, 단순한 전산망 패킷 분석으로는 실시간 IP 추적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불가능이라.”


임준서의 입가에 뱀 같은 미소가 걸렸다. 그는 대치동의 거대 자본가이자 재단 이사인 아버지를 둔 정략가였다. 그에게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 아니라, 향후 정계 진출을 위한 로비 자금과 엘리트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사적 지배 영토였다. 그런데 그 영토 밑바닥에서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난 거대한 지하 경제 시스템이 굴러가고 있었다. 이는 명백한 도전이었다.


“태지야. 내 사전엔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어. 오직 무능만이 존재할 뿐이지.”


임준서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회장실 안쪽의 이중 방음문이 열리며 한 남학생이 들어섰다. 칼같이 주름 잡힌 교복 바지, 왼쪽 가슴에 번쩍이는 황동빛 선도부장 완장, 포마드로 말끔하게 넘긴 머리 너머로 오만한 안광을 뿜어내는 사내. 교무부장 황인호의 조카이자 명성고의 물리적 집행관, 선도부장 정호현이었다.


“불렀어, 준서?”


정호현은 기획국원들을 벌레 보듯 훑어보며 준서의 맞은편 소파에 거만하게 걸터앉았다.


임준서는 태블릿 화면을 정호현 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명문’ 거래소의 실시간 지분 변동 차트가 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붉게 깜빡이는 노드는 놀랍게도 정호현을 비롯한 골드 클래스(1등급) 학생들의 성적 지분이었다.


“이걸 봐, 호현아. 네 내신 등급 가치가 저 밑바닥 브론즈 놈들의 놀이터에서 ‘하락 배팅’을 당하며 조롱거리로 전락해 있어. 네가 교무실에서 기출 족보를 독점하며 유지해 온 그 오만한 1등급이, 저 보이지 않는 지배자의 손가락 끝에서 공매도 폭탄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뜻이야.”


정호현의 안면 근육이 사정없이 뒤틀렸다. 1.2등급의 초엘리트로서 하위권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던 그에게, 자신의 등급이 하류층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분석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굴욕이었다.


“어떤 쥐새끼가 이딴 판을 짠 거지?” 정호현이 주먹을 꽉 쥐며 이빨을 갈았다. “당장 교칙 제7조(출제 분석 유포 금지) 위반으로 학폭위에 회부하고 전원 퇴학 처리를 시키겠습니다.”


“물증은?” 임준서가 나직하게 물었다. “상대는 디지털의 흔적을 완벽히 지우고 있어. 전산실에서 트래픽을 차단하려 해도 매번 우회 경로를 뚫어내지. 결국 오프라인에서 물리적인 꼬리를 잡아야 해.”


정호현이 살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하위권 브론즈 놈들의 사물함과 스마트폰을 전수 압수수색하는 겁니다. 사설 도박판을 개설해 학내 질서를 교란했다는 명분이라면 교무부장님을 통해 즉각적인 강제 집행 권한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그때, 회장실 구석의 비서 책상에서 묵묵히 회의록을 작성하던 학생회 서기 한소희가 펜을 멈췄다. 그녀는 이지원의 중학교 동창이자, 학생회의 강압적인 방식에 남몰래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는 인물이었다. 소희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회장님, 선도부장님. 아무런 명확한 물증도 없이 하위권 학생들의 사물함을 강제로 부수고 수색하는 건, 교육청의 ‘학생 인권 및 사생활 보호 가이드라인’에 심각하게 저촉될 우려가 있습니다. 만약 이 사실이 외부 신문고에 제보라도 된다면, 다가올 재단 감사에서……”


스윽.


임준서의 차가운 시선이 한소희에게 닿았다. 준서의 눈동자에는 감정이 배제된, 기득권 특유의 압도적인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소희는 순간 목구멍이 턱 막히는 듯한 숨 가쁨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소희 서기.” 준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언제부터 우리 명성고 학생회가 저 쓸모없는 낙오자들의 눈치를 보았지? 이 학교의 진짜 법은 교육청 가이드라인 따위가 아니라, 우리 명성교육재단이 제정한 학칙이야. 그리고 그 학칙의 집행 권한은 오직 우리에게만 주어져 있어.”


준서는 다시 정호현을 바라보았다.


“호현아. 작전을 승인한다. 꼬리를 잡는 즉시 주동자는 무조건 퇴학이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사용하는 메인 서버를 발견하는 즉시 압수해서 학생회 기획국으로 강제 귀속시켜. 그 정교한 예측 알고리즘…… 우리가 흡수한다면 아주 유용한 자금줄이 될 테니까.”


“걱정 마, 준서. 쥐새끼들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는지 똑똑히 보여줄 테니.”


정호현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하위권 학생들을 합법적으로 짓밟을 수 있다는 가학적인 흥분이 가득 차 있었다.


“우선 유도부 사물함부터 턴다. 체육관 뒤편에서 하위권 놈들의 배팅금을 수거하는 거구의 트레이더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어. 송우진, 그 무식한 유도부 녀석의 사물함에 진짜 현금 장부와 대포폰이 들어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정호현이 회장실 문을 열고 나가자, 대기하고 있던 선도부 행동대장 백승민을 비롯한 열 명의 선도부원들이 일제히 군화 소리를 내며 정렬했다. 완장을 찬 사냥개들이 마침내 고삐를 풀고 사냥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터벅, 터벅, 터벅.


선도부원들의 묵직한 발소리가 본관 대리석 복도를 지나 별관 유도 체육관을 향해 빠르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기득권의 거대한 공권력이 거래소 ‘명문’의 물리적 방패를 짓밟기 위해 소리 없이 압박해 들어가는 일촉즉발의 밤이었다.

HẾT CHƯƠ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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