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의 장막을 올리다
라즈베리 파이 4 서버 클러스터의 냉각팬이 금속성 비명을 지르며 폐방송실의 무거운 침묵을 갈랐다. 붉고 푸른 LED 불빛이 방음벽의 낡은 얼룩 위로 기괴하게 흔들렸다. 이지원의 아이패드 프로 6세대 화면 중앙에 선명하게 떠오른 숫자, 99.82%. 대치동 1타 강사 정찬우의 비밀 족보가 이식되자마자 알고리즘의 예측 정확도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수렴해 있었다.
“미쳤어…….”
송우진이 스포츠 테이핑을 감은 거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직하게 읊조렸다. 그의 발밑에 놓인 가방에는 2학년 2반 아이들에게서 수거해 온 실제 현금 15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숫자로 치환된 탐욕이 방 안의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민재는 테이프로 안경다리를 고친 부러진 안경을 치켜올리며 차가운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이마에 사채업자 최두식이 남겼던 피멍 자국이 욱신거렸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단계의 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정도 정확도라면 판을 전교 단위로 키울 수 있어.” 민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하지만 서태지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전산실에서 네트워크 트래픽과 전력 소모량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면, 우리가 평범한 방식으로 주소를 배포하는 순간 아지트 위치가 통째로 특정될 거야.”
지원이 아이패드를 가슴에 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목을 덮은 검은색 아대, 그리고 그 밑에 숨겨진 자해 흔적의 아픔을 지우려는 듯 그녀의 눈동자는 전교 1등 특유의 샤프한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맞아. 학교 방화벽은 외부 우회 IP를 상시 패킷 필터링하고 있어. 일반적인 웹 브라우저 접속 방식으로는 10분도 못 버티고 차단당해. 게다가 아이들이 단톡방이나 에브리타임에 주소를 공유하는 순간, 선도부장 정호현의 귀에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야.”
“그래서 디지털의 흔적을 완벽히 지워야 해.”
민재가 책상 앞으로 다가서며 주머니에서 형의 유품인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꺼냈다. 그는 계산기 케이스 내부에 숨겨둔 수수료 30만 원의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칠판으로 향했다. 분필을 쥔 그의 손끝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첫째, 디지털 은닉. ‘스텔스 코드 삽입 기법’을 쓴다.”
민재는 지원이 설계한 ‘명문(銘文)’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접속 경로를 학생들이 흔히 쓰는 ‘영단어 암기 3000’ 앱의 바이너리 코드 깊숙한 곳에 이식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학습용 앱이지만, 특정 단어를 조합해 검색창에 입력한 뒤 화면 우측 하단을 정확히 3초간 누르면 암호화 터널이 열리며 주식형 거래소 화면으로 전환되는 구조였다. 교사나 선도부가 스마트폰을 불시에 검사하더라도 단순한 학습 앱으로 보일 뿐이었다.
“둘째, 네트워크 우회. ‘다중 우회 VPN 통신 프로토콜’을 구축한다.”
지원이 자판을 두드리며 민재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실행했다. 전산실 동맹인 강하늘이 제공한 교내 무선 공유기의 DNS 취약점을 이용해, 학교 내부 트래픽을 마포구의 버려진 완구 공장 지하에 설치한 백업 서버로 분산 우회시켰다. 이중 양파 라우팅 방식을 거친 패킷들은 일반적인 학습용 데이터 트래픽으로 위장되어 학교 방화벽의 감시망을 유유히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민재가 분필을 내려놓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가장 중요한 건 오프라인의 인간 신경망이다. 익명성을 지키기 위한 ‘명문 이용약관 제3조’를 완벽히 집행하려면, 우리의 눈과 발이 되어줄 정보원들이 필요해.”
“정보원?” 우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를 포섭하겠다는 건데?”
“학교에서 기척 없이 존재하며, 교사들이나 상위권 아이들이 벌레 취급하며 무시하는 아이들. 청소 당번과 빵 셔틀들이다.”
민재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가장 낮은 등급의 아이들이 가진 ‘투명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그는 간파하고 있었다.
***
월요일 점심시간, 본관 뒤편 낡은 분리수거장 구석에서 은밀한 접선이 이루어졌다. 민재의 호출을 받고 나타난 이는 2학년 2반의 매점 빵 셔틀 출신, 내신 9등급의 박철민이었다. 땀에 젖은 체육복을 입은 철민은 불안한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민, 민재야. 왜 이런 데서 보자고 한 거야? 우진이 형도 같이 있고…… 나 뭐 잘못한 거 있어?”
“철민아, 넌 다리가 아주 빠르지.”
민재가 철민의 어깨를 짚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신뢰와 압도적인 이성이 담겨 있었다.
“잘못한 건 없어. 오히려 기회를 주려는 거지. 매일 교무실에서 시험지 검토 회의가 끝나는 순간, 네가 매점으로 뛰어가면서 교사들의 표정과 걸음걸이를 관찰해 주는 거야. 회의 직후 교무부장 황인호의 안색이 어두웠는지, 담임 박태호의 걸음 템포가 빨라졌는지 파악해서 내게 보고해. 그게 네 임무다.”
민재는 품에서 낡은 스마트폰 공기계를 꺼내 철민에게 건넸. 스텔스 코드가 삽입된 영단어 앱이 실행되어 있었다.
“성공할 때마다 매주 300GT를 지급하지. 실제 현금 30만 원 상당이다. 매점 빵 셔틀을 하는 것보다 이 보이지 않는 정보망의 ‘배달부 A’가 되는 게 네 가치를 증명하는 길이 될 거야.”
철민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매주 30만 원이라는 거금은 평생 무시만 당해온 9등급 낙오자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그는 폰을 움켜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할게. 진짜 열심히 뛰어다닐게, 민재야.”
같은 시간, 교무실 내부에서는 또 다른 정보망이 가동되고 있었다. 교무실과 교사 휴게실 청소 구역을 전담하는 내신 8등급의 이진우, 즉 ‘배달부 B’였다. 진우는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먼지를 쓰는 척하며 교사들의 책상 주변을 배회했다.
교무실 구석에서 담임 박태호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최근 주식 계좌 폭락으로 이자 독촉에 시달리는 그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아니, 임창식 의원님 비서관님. 예, 예. 준서 학생부 세부특기사항 기록은 이미 완벽하게 조작해 놨습니다. 그런데 교장실 쪽에서 감사 얘기가 나와서…… 예, 알겠습니다. 황 부장님께도 전달하겠습니다.”
박태호는 통화를 끝내자마자 책상 위의 메모지에 무언가를 갈겨썼다. 그러고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메모지를 거칠게 찢어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진우는 빗자루를 쓸며 자연스럽게 박태호의 책상 밑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그는 청소용 수레 밑바닥에 숨겨둔 특수 비닐봉지를 꺼내, 박태호가 버린 찢어진 파지 조각들을 단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빗자루로 쓸어 담아 봉지 속으로 미끄러뜨렸다. 교무실의 그 누구도 청소 도구를 든 8등급 유령의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았다.
한편, 선도부실 구역 청소를 담당하는 내신 7등급의 최민성, ‘배달부 C’는 선도부장 정호현의 동태를 상시 감시하고 있었다. 정호현과 선도부원들이 사물함 불시 검문 계획을 모의하는 소리가 문틈 새로 흘러나왔다. 민성은 주머니 속 비밀 무선 호출기의 비상 경보 버튼을 가볍게 눌렀다. 신호는 즉각 마포구 우회 서버를 거쳐 폐방송실의 이지원에게로 무소음 경보 패킷으로 전송되었다.
***
“경보 수신 완료. 전송 지연 시간 0.04초. 무선 호출기 하드웨어 연동 이상 없음.”
지원이 아이패드의 화면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달부 A, B, C의 정보 동선이 완벽하게 겹치지 않고 분산되어 있어. ‘명문 이용약관 제3조’에 따라 이들의 계정은 각각 ‘DUST_01’, ‘DUST_02’, ‘DUST_03’으로 암호화 처리되었고, 서로의 실명과 존재를 모른 채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어.”
민재는 라즈베리 파이 서버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매핑되는 교무실 내부 데이터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교사들의 사소한 표정 변화, 버려진 메모 조각의 단어 빈도수, 선도부의 이동 경로가 통계학적 가중치로 환산되어 ‘명문’ 거래소의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으로 쌓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인간 신경망이 학교의 철저한 규율 통제를 완벽하게 해킹해 낸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폐방송실의 철문이 거칠게 열리며 배달부 B, 이진우가 숨을 헐떡이며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청소용 수레 밑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민재 형, 우진 형…….” 진우가 땀을 닦아내며 봉지 속에서 찢어진 누런 메모지 조각들을 책상 위에 쏟아놓았다. “박태호가 퇴근하기 직전에 거칠게 찢어서 버린 메모 조각들이에요. 준서라는 이름이랑 단속이라는 단어가 얼핏 보였어요.”
민재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예리하게 빛났다.
“고생했다, 진우야. 약속한 400GT는 네 익명 계정으로 즉시 이체될 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교실로 복귀해.”
진우가 고개를 숙이고 그림자처럼 아지트를 빠져나간 후, 민재와 지원은 찢어진 메모 조각들을 책상 위에 나열했다. 손끝에 닿는 거친 파지의 질감. 지원이 핀셋을 이용해 조각들을 퍼즐 맞추듯 맞추기 시작했고, 우진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 위를 내려다보았다.
찢어지고 뭉개진 글씨체 속에서 단어들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어 갔다.
[……학생회장 임준서 호출……]
[……별관 전력 사용량 이상 징후 포착……]
[……Discipline(선도부) 합동 단속 계획 수립……]
[……체육관 및 유도부 사물함 최우선 수색……]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 폐방송실 내부의 온도가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정적이 감돌았다.
학생회장 임준서가 이미 거래소의 꼬리를 잡기 위해 선도부를 움직여 대대적인 기습 단속을 모의하고 있었다.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시스템의 심장부를 겨눈 칼날이 이미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민재는 테이프로 안경다리를 고친 부러진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의 시선이 칠판 위에 적힌 99.82%라는 숫자를 지나, 찢어진 메모지의 ‘임준서’라는 석 자에 멈춰 섰다.
“전쟁의 서막이 생각보다 일찍 올랐네.”
민재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 너머로 거대한 금융 전쟁의 불길이 조용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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