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해방 공식
폐방송실의 낡은 방음벽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먼지 쌓인 아날로그 오디오 랙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전원 잡음만이 침묵을 채우고 있었다.
전교 1등 이지원은 제 손으로 움켜쥔 아이패드 프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는 그녀가 추적해 낸 사설 성적 거래소 ‘명문(銘文)’의 알고리즘 소스코드가 붉은 패킷 신호와 함께 요동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신의 왼쪽 손목으로 향해 있었다. 살짝 밀려 올라간 검은색 아대 틈새로 드러난, 칼날로 그어진 수많은 가느다란 붉은 흉터들.
그것은 명성고등학교 학부모회장이자 그녀의 어머니인 윤혜린이 가한 숨 막히는 가스라이팅의 흔적이었고, ‘1.0’이라는 숫자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학대해 온 비참한 민낯이었다.
“점수라는 숫자가 정말 너의 가치라고 믿어?”
민재의 나직한 목소리가 지원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부러진 안경다리를 검은색 절전 테이프로 고쳐 쓴 전교 꼴찌. 그의 이마에는 사채업자 최두식이 남긴 피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지만, 안경 너머 그의 눈동자는 소름 끼칠 정도로 차분한 이성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원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서둘러 소매를 끌어내려 상처를 감추었다. 수치심과 공포가 그녀의 지적인 카리스마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하지만 그녀는 명성고의 정점에 군림하는 전교 1등이었다. 무너지려는 자존심을 억지로 붙잡으며, 그녀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 민재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동정하지 마, 강민재.”
지원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서늘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네가 내 사생활을 몇 가지 알아냈다고 해서 이 야만적인 투기판이 정당화되지는 않아. 이 알고리즘은 결국 주입식 시험의 맹점을 파고든 편법일 뿐이야. 수학에 대한 모독이라고.”
민재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놓인 카시오 fx-570 공학용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형 민우의 유품이자, 연산 기록을 남기지 않고 가장 정밀한 확률 보정값을 산출해 내는 아날로그 연산 장비. 계산기 케이스 내부에는 우진에게서 정산받은 수수료 30만 원이 은밀히 보존되어 있었다. 민재는 계산기의 낡은 자판을 손끝으로 가볍게 쓸었다.
“편법이라…….”
민재가 계산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렇다면 검증해 봐, 이지원. 네 그 오만한 지성으로 내 알고리즘이 가짜인지, 아니면 이 학교의 시스템을 전복할 진짜 수학인지.”
지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검증? 어떻게?”
“다가올 기말고사.”
민재가 한 걸음 다가서며 계산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탁, 하는 무거운 소리가 적막을 깨뜨렸다.
“너를 비롯한 ‘골드 클래스’ 아이들이 대치동 족보와 고액 과외로 어떻게 등급을 담합하고 수호하는지 잘 알고 있어. 만약 내 알고리즘이 너의 다음 시험 등급이 인위적으로 떨어질 확률과, 그로 인해 상위권 카르텔이 붕괴하는 시뮬레이션을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완벽하게 뽑아낸다면?”
지원은 실소했다.
“말도 안 돼. 시험 난이도와 출제 경향은 교사의 고유 권한이야. 게다가 나와 유현우, 임준서의 공부 패턴은 변수가 너무 많아. 그걸 통계학 따위로 예측하겠다고?”
“통계학 따위가 아니야.”
민재가 차갑게 맞받아쳤다.
“‘베이지안 확률 기반 출제 예측 모델’. 과거 기출 데이터라는 사전 확률에, 출제 교사의 최근 심리 상태와 공부 패턴이라는 사후 변수를 대입해 완벽한 사후 확률을 도출하는 공식이지. 네가 상위권 학생들의 실제 오답 데이터를 제공한다면, 이 모델의 오차율은 0.02% 이하로 수렴하게 돼.”
지원은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민재가 뱉은 단어들을 빠르게 연산하고 있었다. 베이지안 사후 확률. 단순한 통계가 아닌, 변수가 추가될 때마다 확률을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실전 금융 공학의 핵심 기법이었다. 전교 꼴찌의 입에서 나올 만한 개념이 아니었다.
“좋아.”
지원이 아이패드를 켜며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화면 위로 명성고 상위 1% 엘리트 학생들의 실제 기출 오답 변형 변수와 공부 시간 데이터가 나열되었다.
“그럼 증명해 봐. 이번 기말고사에서 내 수학 내신 등급이 2등급으로 떨어질 확률. 그리고 골드 클래스 아이들이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 가동하는 담합의 균열 지점을.”
지원의 날카로운 학술적 반박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아이패드 화면을 짚으며 민재를 압박했다.
“명성고 수학 출제진은 매번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모의고사 기출을 극단적으로 변형해. 특히 공간 벡터와 기하학 문항은 교사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기하학적 정의 자체가 뒤틀리는 예외적 변수가 존재해. 컴퓨터의 디지털 연산으로도 이 무작위 변수는 통제할 수 없어.”
민재는 대꾸 없이 카시오 계산기를 쥐었다. 그의 손가락이 낡은 자판 위를 소리 없이,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그림자 암산’의 영역이 개시되었다. 컴퓨터 없이도 복잡한 베이지안 사후 확률 보정 공식을 처리하는 비범한 암산력.
틱, 틱, 틱, 틱.
낡은 아날로그 계산기의 액정에 소수점 아래 숫자들이 빠르게 갱신되었다.
“최근 3개년 수학 오답률 통계를 대입하지.”
민재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명성고 학생들이 기하학 문항에서 범하는 고유한 오답 패턴 가중치는 0.1842. 여기에 출제 교사인 박태호의 최근 주식 폭락 스트레스 가중치 0.35를 사후 변수로 대입한다. 교사들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에 놓일 때, 매력적인 오답 선지를 만들기 위해 정의역의 제한 범위를 인위적으로 꼬아 내는 심리적 편향을 보여.”
지원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교사의 심리를 수치화하겠다고?”
“그래. ‘교사 심리 분석 매트릭스’다.”
민재는 계산기의 다이얼을 돌리며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오차 보정값을 산출해 나갔.
“박태호 교사가 기말고사 출제 기간 동안 범할 논리적 모순율은 정확히 12.45%. 그가 출제할 기하학 킬러 문항에서 정의역의 범위를 실수 전체가 아닌 양수로 제한할 확률은 94.2%. 이때 너를 비롯한 골드 클래스 아이들이 고액 과외로 독점한 대치동 족보의 적중률은 18% 이하로 폭락해. 왜냐하면 그 족보들은 정형화된 모의고사 패턴만을 암기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민재의 손가락이 계산기의 엔터 키를 강하게 눌렀다.
“결과값 도출 완료. 기말고사에서 이지원 네가 수학 18번 문항의 정의역 제한 덫에 걸려 1점을 감점당하고, 내신 등급이 1.2등급으로 하락해 2등급으로 추락할 확률— 정확히 87.64%.”
지원은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민재의 소스코드를 수동으로 디버깅하여 논리적 맹점을 찾아내려 애썼다. 전교 1등으로서의 모든 지적 자존심을 걸고, 이 전교 꼴찌가 파놓은 수학적 덫을 깨부수려 했다.
하지만 없었다.
민재가 제시한 사후 확률 보정 공식은 완벽했다. 교사의 인간적 편향성이라는 가장 불확실한 변수마저, 과거 기출의 오답률 통계와 스트레스 수치라는 정량적 데이터로 감싸 안아 하나의 아름다운 확률 밀도 함수로 수렴시켜 놓았다.
지원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하지만…… 만약 박태호가 출제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면? 그가 기계적으로 출제한다면 이 공식은 붕괴해.”
“교사는 기계가 아니야, 이지원.”
민재가 지원의 아이패드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위로 수백 개의 기출 문항 노드가 확률적 연결선을 그리며 실시간으로 압축되는 그래픽 차트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떨어뜨려야만 하는 입시 지옥의 파수꾼일 뿐이지. 너 역시 그 파수꾼들이 던져준 정답만을 암기해 1등이라는 족쇄를 차고 있는 거고. 하지만 이 공식을 봐.”
민재의 손끝이 가리키는 시뮬레이션 그래프의 수렴 지점.
“이건 단순히 등급을 예측하는 도구가 아니야. 너희 상위권 아이들이 돈과 인맥으로 굳건하게 다져놓은 등급 담합 카르텔의 맹점, 즉 ‘교사의 주관적 편향성’이라는 균열을 찔러 무너뜨리는 해방 공식이지. 이 공식을 이해하는 순간, 너는 더 이상 윤혜린 회장님이 원하는 숫자의 노예로 살지 않아도 돼. 네 스스로 등급의 가치를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으니까.”
순간, 지원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해머가 내리치는 듯한 지적 충격이 일었다.
평생 동안 그녀는 정해진 시험 범위 안에서, 출제자가 요구하는 정답만을 완벽하게 적어내기 위해 자신을 학대해 왔다. 100점을 맞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부정당하는 지옥 같은 굴레.
하지만 민재가 제시한 통계학 모델은 달랐다. 그것은 출제자의 머리 위에서, 그들이 설계한 평가 시스템 자체를 하나의 체스판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점수는 더 이상 그녀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통제하고 예측할 수 있는 가변적인 데이터에 불과했다.
지원의 아이패드 화면 위로, 기말고사 수학 오답률 시뮬레이션 그래프가converge하며 선명한 녹색 선을 그렸다. 오차율 0.018%. 사실상의 무결점.
지원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묘한 전율을 느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해방감이 치솟아 올랐다. 숫자의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가 그녀의 뇌리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그의 낡은 안경테와 피멍 가득한 이마 너머에 존재하는, 기괴할 정도로 거대하고 차가운 지성. 그리고 그 지성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시스템의 피해자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의지.
지원은 천천히 아이패드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의 반박은 무의미했다. 수학자로서, 그녀는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아니, 패배가 아닌 구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민재.”
지원이 침묵을 깨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오만함은 완전히 씻겨 나가 있었다.
“이 알고리즘…… 내가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 골드 클래스 아이들이 독점하는 대치동 비밀 족보의 가중치 데이터를 내가 직접 입력해 주지.”
민재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두 천재의 지적 결합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동맹이 공식화되기도 전에, 폐방송실 문밖에서 망을 보던 송우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지트 문을 급하게 열어젖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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